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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는 신성불가침인가

이강기 2015. 9. 7. 21:58
[편집장칼럼] ‘민족주의’는 신성불가침인가

함영준  주간조선 편집장(
yjhahm@chosun.com)

주간조선 2003년 9월4일


다보탑, 석가탑, 청자, 백자 등 우리 문화재만이 최고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계기는 17년 전 런던의 대영박물관을 구경했을 때였다. 당시 첫 해외 여행으로 유럽을 가게 돼 프랑스와 스페인을 거쳐 영국에 도착, 세계 각국의 내로라하는 문화재 등을 두루 접하면서 느낀 ‘아! 우리 것보다 뛰어난 예술작품이 수두룩하구나’는 생각은 당시로선 충격적이었다.

‘남의 것이 뛰어나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판단인데 그때 ‘아시아 촌놈’의 가슴은 그게 아니었다. 마치 자신의 아버지가 남의 아버지보다 부족하고 못난 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이런 아버지를 둔 사실을 감추고 부끄러워해야 하는 건지, 내 아버지의 과대포장된 이미지를 만들어 억지 자기만족을 하든지 아니면 못난 모습도 사실로 인정하고 향후 발전의 모티브로 삼든지, 그 선택을 놓고 고민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아무튼 그때 이래로 외국인들을 만나면 굳이 우리나라에 대해 ‘반만년 역사’니 ‘문화민족’이니 하는 장황한 소개를 삼가게 됐다.

비단 유럽에서만 역사와 문화를 느낀 것은 아니었다. 과거의 영화를 접어둔 채 지금은 가난하고 혼란에 빠진 아시아 후진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캄보디아 정글에 세워진 앙코르와트 유적, 18세기 강성대국을 자랑한 미얀마 국립박물관의 유물들, 지금은 중국의 자치구로 전락한 티베트 포탈라 왕궁의 위용과 불가사의한 축조 기술, 네팔 수도 카트만두나 인근 고도시 박타푸르에 세워진 왕궁과 사원들은 유럽 어느 사적지에 못지 않은 예술성과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이런 모습과 비교해 불과 150여년 전 조선왕조 말기 경복궁 하나 개보수하느라고 국가 재정이 바닥났다는 우리의 사실(史實)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1000년 전 신라 문화는 동시대 지구상 어느 곳에도 떨어지지 않는 선진문화였지만 말이다. 이처럼 각국의 역사와 문화는 그만큼 변화무쌍한 국가의 흥망성쇠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돌이켜 보면 해방 후 수십년 간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역사는 매우 민족주의적(nationalistic)인 것이었다. 한국의 반만년 역사는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 속에 자주성을 지킨 응전과 성취의 자랑스러운 것이요, 그 속에서 연마된 한국인의 은근과 끈기가 민족의 저력이라고 찬양한 ‘박종홍식 역사관’은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문제제기나 부정을 제기할 틈새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 때 그 시절 일방적 국사 교육이 시행된 뒷 사정을 지금 이해못할 바는 아니지만 문제는 우리 경제가 발전하고 개방화 사회로 나가면서도 우리 의식하에 자리잡은 민족주의는 더욱 강고(强固)해지지 않았는가라는 점이다. 이 점에선 진보나 보수나 할 것 없이 똑같다.

‘우리 식대로 살자’며 전세계 유일 유교·왕조적 공산주의 통치를 실행하는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수출로 성공한 남한도 외국에 대한 배타의식은 세계 수준급이다. 국력·행복·문화의 척도를 GNP 개념으로 따져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에 대해선 차별의식을, 우리보다 강한 나라에 대해선 “강대국이면 별거야”라는 묘한 적대감을 보이는 현상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최근 ‘삿포로에서 맥주를 마시다’란 책을 낸 전여옥씨의 “아시아에서 일본과 한국은 왕따”라는 말이나,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170여개국 외국선수들을 초청해놓고 일방적 관심을 남북한 선수·응원단에다 맞추는 모습도 같은 맥락이다. 서울대 박지향 교수는 저서 ‘일그러진 근대’에서 우리가 역사의 비극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과 우리 역사를 계급주의 역사 관점에서 편협한 이분법으로 뜯어 맞추는 작업을 지양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일단의 한·일 학자들이 모여 ‘국사의 해체를 향하여(Deconstructing National History)’란 주제로 공개토론회를 가진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우리에게 국사는 억압이며 배제이며 은폐다”라는 파격적 주장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은 양국의 과잉 민족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최근 ‘민족’이나 ‘통일’이란 개념이 마치 어느 누구도 의의를 제기해선 안되는 절대가치(絶對價値) 내지 신성불가침(神聖不可侵) 영역으로 인정되는 일부 세태를 놓고 볼 때 더욱 필요한 시도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