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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덩샤오핑 위대하다 평가한 하버드대 석학

이강기 2020. 12. 22. 14:02

[발자취] 박정희·덩샤오핑 위대하다 평가한 하버드대 석학

 

에즈라 보걸 명예교수 별세… 미국 동아시아 학계의 권위자
동북아 경제 발전의 원동력 연구 “비전과 애국심이 한국 성장시켜”

 

 

유석재 기자

조선일보

2020.12.22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에즈라 보걸 교수의 최근 모습. 그는 구미에서 ‘일본을 배우자’는 열풍을 일으킨 주인공이었고, 중국 덩샤오핑 전문가였으며, 한국의 박정희 전 대통령을 재평가한 학자였다. /트위터

 

 

“한국은 역사적으로 강대국 사이에서 균형을 취하려 노력해 왔다. 중국이 너무 강하다고 느낄 경우 또 다시 균형을 찾으려 할 것이다. (남북) 통일이 된다고 하더라도 일본과 일대일로 경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유럽의 어느 한 강국처럼 중간 규모의 나라가 될 것으로 본다.”(2006년 본지 대담)

 

미국 학계의 대표적 동북아 전문가인 에즈라 보걸(90) 하버드대 명예교수가 지난 20일(현지 시각) 별세했다고 교도통신 등 외신이 보도했다. 보걸 교수는 수술 후 합병증으로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병원에서 숨을 거둔 것으로 전해졌다.

 

보걸 교수는 구미 학계에 현대 동아시아를 바라보는 프리즘을 제공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미국 오하이오주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1958년 하버드대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예일대를 거쳐 1964년부터 하버드대에서 교편을 잡고 페어뱅크센터·아시아센터 소장을 지냈다.

 

2년 동안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어를 배우며 중산층 가정을 인터뷰한 뒤 1963년 ‘일본의 신(新)중산층’을 냈고, 1979년 ‘일등 국가 일본’을 출간했다. 패전 이후 일본의 성장 비결로 연공서열 등 사회 제도와 근면성을 꼽고 “일본이 서구를 배운 것처럼 서구도 일본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2011년 펴낸 ‘덩샤오핑 연구’는 중국어로 번역돼 100만 부 넘게 팔렸다.

 

그는 한국에 대해서도 주목했다. 1991년 저서 ‘네 마리의 작은 용: 동아시아의 산업화 확산’에서 유교 윤리에 바탕을 둔 아시아식 자본주의 정신이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고 주장해 커다란 주목을 받았다.

 

2006년 '박정희 시대' 출간 당시 미국 뉴욕에서 본지와 인터뷰하는 에즈라 보겔 교수.

 

한국의 군사 정권을 비판적으로 보던 그는 2011년 ‘박정희 시대: 한국의 변혁’을 집필하고 “군인 출신으로 근대화를 이뤄냈으며 엄청난 애국심과 강한 비전을 갖고 경제 발전을 위해 일했다는 점에서, 터키의 케말 파샤, 중국의 덩샤오핑, 한국의 박정희는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당시 본지 인터뷰에서 그는 “박정희는 전두환·노태우 등과 달리 경제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에 대한 비전이 있었고, 계속 경제를 배워가는 비상한 능력도 지녔다”고 했다. 또 “지난 수십 년만 놓고 보면 한국이 일본을 이겼고, 그 바탕에는 강력한 정치 리더십이 있었다”고 짚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넓은 비전으로 박정희 시대에 불가능했던 진전을 이뤄냈지만, 그가 1961년에 집권했다면 박정희와 같은 경제 발전을 이뤄냈을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2015년 일본 전공 학자 186명과 함께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부정하거나 하찮게 하는 일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공동 성명을 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종래 서구 학계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6·25전쟁 등 특정 분야에 치우쳐 있었는데, 보걸 교수는 현대 한국 사회의 변화하는 모습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고 국제사회에 학문적으로 알리기 시작한 인물이었다”고 말했다.

 

유석재 기자

 

문화부에서 학술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유석재 기자의 돌발史전'과 '뉴스 속의 한국사'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메일은 karma@chosun.com 입니다. 언제든지 제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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