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 가는대로

팔자에 없는 일 하다 보니

이강기 2015. 9. 9. 12:38

팔자에 없는 일 하다 보니
       (“기획회의”197호, 2007.4)


원고요청 전화에 기분 좋게 덜렁 응해놓고 돌아서다 아차 싶었다. ‘번역가가 말하는 번역’에 대해 쓰라는데, 이제 겨우 책 여남은 권 번역한 주제에 번역가랍시고 이러쿵저러쿵 아는 체 하기가 좀 뭐할 듯 싶었기 때문이다. 응할 때만 해도 대단히 할 말이 많을 것 같더니 일단 쑥스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머리가 텅 비어 버린다. 그러나 이제 와서 어떡하랴. 다시 무르자니 실없는 사람 되겠고, 에라 모르겠다, 좀 뻔뻔해 보자. 좌우지간 써 보자.


오기로 덥석 시작한 번역

번역의 길로 들어선 건 순전히 그레고리 헨더슨의 Korea, The Politics Of The Vortex(번역서명: 『소용돌이의 한국정치』)라는 책과 한 분의 소중한 벗 덕분이다. 어느 날 이 분과 커피를 마시다가 헨더슨이 한국 근대 정치사에 관해 쓴 책이 출간(1968년)된 지 30년이 지나도록 아직 한국어로 번역이 안됐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원 세상에 이럴 수가!” 하는 탄식이 나왔고, “그럼 우리라도 한번 해보자.”는 오기가 솟았고, 그리고 그 벗이 어렵사리 찾은 원서를 들고 몇 군데 출판사를 거친 끝에 역시 통이 큰 한울아카데미 사장님한테서 응낙을 받아내 마침내 번역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렇게 얼떨결에 시작한 번역의 서막은 또한 화려하기까지 했다. 헨더슨(1988년 작고)이 한국의 내로라하는 많은 엘리트들에게 인심을 얻은 줄은 미처 몰랐다. 그의 책이 번역된다는 소문이 나자 자진해서 해제를 쓰고 추천사를 쓰겠다는 저명인사들이 나오고, 정말 장한 일을 한다며 격려해 주시는 분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헨더슨 추모회원 몇 분들의 주선으로 조선호텔 볼룸에서 열렸던『소용돌이의 한국정치』출간기념회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원저자의 미망인인 헨더슨 여사가 이 일로 미국에서 날아와 참석하고, 대통령(김대중)의 축하화분을 대변인이 직접 들고 와 인사를 하고, 전직 총리, 전.현직 장관들, 의원들, 언론사 간부들, 그리고 모모한 저명인사들이 홀을 가득 메웠다. 모두가 헨더슨 생전에 그와 교분을 쌓았거나, 한국 민주주의 발전과 엘리트 양성에 끼친 그의 공적을 흠모해 마음에서 울어 나와 모인 사람들이었다. 요즘도 간혹 사계의 실력자들이 과시하려고 거창하게 출간기념회를 열곤 하지만 그런 것과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달랐다. 모두들 자진해 와서 충심으로 우리 초심자들이 번역한 책의 출간을 축하하고 치하해 주었다. 참으로 ‘번역입문식’ 한번 거창하게 치렀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번역을 계속할 뜻은 없었다. 아니, 계속하고 싶다고 해서 계속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그저, 30년이 지나도록 빛을 못보고 있는 한 외국인의 한국정치관련 노작을 한국어로 옮겨놓았다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것만으로도 큰일 하나 한 것이라 자부했다. 그런데 그 책을 계기로 한울아카데미에서『디지털 경제 2000』,『밀레니엄의 종언』등, 계속 일을 맡겨주었고, 이어서 김영사에서도『촘스키 9-11』『오너십이 기업운명을 지배한다』를 요청해 왔다. 결국 번역의 길로 들어서고 만 것이다. 대학학보사 시절에 어쩌다 입수하는 외국 대학교지의 글을 몇 번 번역해 본 적은 있지만, 내가 번역을 업으로 삼다시피 하리라고는 정말 예전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번역은 그저 대학교수(적어도 번역에 관한한 교수도 교수 나름이라는 생각이 든 것은 훨씬 훗날의 일이다)나 그에 버금가는 학식과 외국어 실력을 가진 사람들만이 하는 것인 줄 알았다. 적어도 내가 읽은 번역서의 역자들은 그랬다. 실상이야 어떻든 겉보기엔 기라성 같은 사람들의 이름들뿐이었다. 나는 그들을 저 먼 세상 사람들로 치부하면서 번역가 같은 건 아예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팔자에 없는 ‘번역가’가 된 것이다.   


점점 힘들어지는 번역작업

서막이 거창했기 때문이었을까, 첫 몇 권까지는 호기로웠다. 영어와 일어도 어느 수준은 된다고 자신했고 까마득한 옛날 일이긴 하지만 한때 문학 지망생이었으니 문장도 어느 정도 다듬을 줄 안다고 생각했다. 우연한 기회에 모 대학 교수들이 번역한 영국 유명 수필가의 수필집과 로마사 관련 서적을 읽다가 하도 난해하고 비문이 많아 “내가 번역해도 이보다는 낫겠다.” 싶은 자만까지 생겼다. 간혹 접하는 저명인들의 오역, 비문, 대리번역 시비(최근에 불거진 사건을 말하는 게 아니다)는 거꾸로 내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평소에 ‘아마 거의 완벽한 번역을 해내겠지’ 하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이외로 저 모양인데 내가 기죽을 게 뭐 있나 하는 일종의 반사 심리에서다.

 그러나 이 모든 게 세상물정 모르는 초심자의 턱도 없는 오만이란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회를 거듭할수록 번역이 점점 더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시간도 더 걸렸다. 처음엔 초벌번역 후 대개 네 번 정도로 끝내던 퇴고가 여섯 번 일곱 번으로 늘어났다. 점점 자신이 없어진 것이다. 그래도 성이 안 차 원고를 프린트하여 다시 보았다. 컴퓨터 화면과 지면이 느낌이 다를 것 같아서다. 그런데도 출간된 책을 읽어보면 맘에 안 드는 표현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번역은 정말 어렵고도 어려운 작업이구나 싶다. 차라리 창작을 하는 게 번역보다 훨씬 수월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창작은 처음부터 자기 방식으로 말을 하니까 문장구성이 쉽지만, 번역은 처음부터 남의 방식으로 말을 하자니 이렇게 어려운 게 아닌가 싶어서다. 어떤 사람들은 1년에 10권도 번역한다는데(물론 책의 내용이나 부피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나는 고작 한두 권 가지고 이렇게 쩔쩔매고 있다. 문장 하나를 두고 한 시간 넘게 사전과 씨름할 때도 있다. 그 문장의 핵심단어에 대한 적절한 번역어가 떠오르지 않아 너 댓개의 포털사이트 외국어사전 창을 다 열어놓고 찾아봐도 맘에 드는 말을 발견할 수 없어서다. 하나의 원문을 두고 여남은 개의 번역문을 만들어 본 적도 있다. 여러 번을 고치다 보면 맨 처음 선택했던 용어나 문장으로 되돌아 가 있는 경우도 종종 있다. 눈도 밤 다르고 낮 달라진다. 밤중에 근사해 뵈던 문장이 이튿날 낮에는 형편없어 보일 때도 있다. 번역도 수학처럼 응용공식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애꿎게 담배만 죽어난다. 평소 사흘에 두 갑 정도 되는 흡연양이 번역작업을 할 땐 하루 한 갑으로도 모자란다. 머리가 멍해져 적절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을 때 베란다에 나가 담배 한 대를 피우며 그 원문을 되뇌어 보면 불현듯 실마리가 풀릴 때가 많다. 참으로 신기하다. 그래서 종종 그 방법을 이용한다. 비교적 규모가 큰 작업 하나를 끝내고 나면 육체적인 피로에다 정신적인 허탈감까지 겹쳐 한 열흘 몸살을 한다. 한창 일에 빠져 있을 때는 느끼지 못하다가 꼭 끝난 후면 나타나는 증세다. 누가 번역을 3D 업종이라고 했다지만, 전혀 틀린 말이 아니구나 싶어 새삼 놀란다. 

 간혹 ‘원서보다 더 나은 번역서’란 말을 쉽게 입에 올리는 사람들을 본다. 그 사람들이 원서와 번역서 두 개를 놓고 얼마나 열심히 비교 연구했는지는 모르지만 턱도 없는 소리 같다. 그 번역서가 번안수준이 아니고 진짜 번역서라면 그런 말은 성립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원작자가 표현하고자 한 뜻을 90퍼센트 이상 옮겼다면 그건 성공한 번역서일 것이란 생각을 자주 한다. 그 유명하다는 슐레겔의 셰익스피어 독일어 번역서도 95퍼센트 이상은 넘지 못했을 것이란 게 요즘 내 생각이다.


인터넷과 번역

번역작업의 3분지1을 인터넷이 한다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몰라도 내겐 그 이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터넷을 이용하여 번역작업을 하다보면 정말 좋은 세상에 살고 있구나 싶어 흐뭇해지기까지 한다. 옛날 같으면 영영, 영한, 불한, 독한, 백과사전 등 사전이란 사전은 다 펼쳐놓고 해도 부족해, 도서관에 가서 관련 서적을 찾아보고, 권위자들에게 자문을 구하기까지 해야 할 일을 지금은 인터넷이 거의 처리해 준다. 불어단어 몇 개와 독어 단어 몇 개 때문에 불한, 독한사전을 샀던 게 아깝기만 하다. 작년에 나온『읽는다는 것의 역사』에선 라틴어가 하도 많이 나와 거금을 들여 라틴어 사전을 사고 성당 주임신부님을 찾아다니며 묻곤 했는데, 나중에 보니 인터넷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인물이나 고유명사, 사건명 등 보충설명을 해줘야 할 부분은 물론이고 사전에 없는 용어도 ‘구글’에 들어가 정확한 뜻을 안 경우가 많다. 어릴 때부터 컴퓨터와 함께 자라온 세대들은 그까짓 당연한 일가지고 뭘 그리 호들갑이냐 할지 모르지만 아날로그 이전시대를 산 나로선 너무나 편리하고 신기하기만 하다. 출판사 분들 얼굴 한번 보지 않고도 내가 번역한 책을 버젓이 받아 볼 수 있는 세상이니 이 아니 감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특히 나처럼 틀어박혀 있길 좋아하는 사람에게 인터넷은 내 번역작업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맙다 인터넷!                


인세 베이스 인문서 번역은 노력봉사?

얼마 전 보도에, 한국 문화예술인들의 56퍼센트가 월수입 100만 원 이하며 특히 창작활동과 관련한 수입이 전혀 없는 사람이 27퍼센트나 된다고 했다. 번역가도 이 계산에 들어갔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이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할 것 같지는 않다. 내 경우를 보자. 우선 일거리가 그렇게 많지 않고, 어쩌다 들어오는 것도 대체로 까다롭고 힘 드는 인문서가 대부분인데다가 그마저 인세 베이스로 하자고 한다. 대개 4-6개월간 밤 가는 줄 모르고 작업을 한 후 책이 나오고 나면(때로는 책도 즉시 나오지 않는다), 기십 만원씩 두어 번 송금해 주다가 소식이 없다. 책이 안 팔려서다. 결국 4-6개월간의 노동 대가가 100만원 미만, 때로는 기십 만원으로 끝나 버린다. 물론 출판사 측으로도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 어디 하소연해 볼 곳도 없다. 어떤 땐 원고를 보냈으나 도무지 출간이 되지 않는다. 사정을 알아보니 당초의 기획자는 퇴사해 버렸고, 후임자는, 다시 검토해 보니 시장성이 없어 보여 출간이 안 될 것 같다는 대답이다. 말이라도 곱게 하면 밉지나 않지. 퇴사한 사람과 무슨 원수라도 졌는지 숫제 그 쪽으로 책임을 미루며 쌀쌀맞다. 드잡이를 하여 보상금 몇 푼 받아내 봐야 소개해준 분과 앞서의 담당자에게 누만 될 것 같다. 번역자는 약자다. 참는다. 결국 몇 개월간의 헛고생으로 막을 내린다.

 창작활동은 우선 수입이 적더라도 언젠가 다시 빛을 볼 희망이라도 있다. 예컨대 기십 만원의 원고료로 어느 잡지에 실린 시나 단편소설은 훗날 어느 때 눈 밝은 평론가에 의해 그 가치가 재발견 될 수도 있고, 하다못해 한국 소설전집이나 시 전집 같은데 실려 문학사에 길이길이 남을 수도 있다. 그런데 번역은 그럴 구석도 전혀 없다. 생명이 길어야 4-5년이다. 10여년 후 그 작품이 다시 뜬다고 해도 필경 새 번역자의 이름으로 나온다. 아마도 그 새 번역자는 옛 번역서를 부지런히 참고할 것이다. 이런 상황인데 4-6개월의 대가가 겨우 기십 만원밖에 안된다면 얼마나 허망하겠는가. 번역자는, 사회적 대접도 부실했을 것인데다 자기 이름도 남기지 못한 신라 토기나 고려자기를 만든 장인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언젠가 김화영교수의 “번역이란 무엇인가?”에서 이런 구절을 읽은 적이 있다.


“박식한 학자와 기술자(언어학자)와 영감 넘치는 예술가(작가)의 중간쯤에 위치한 수공업자인 번역자는 고통스럽고 고단하지만 대개의 경우 자신의 고통과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보다는 실수에 대한 비판을 더 많이 거두어들이는 딱한 존재다. 번역자는 한 번도 다른 평범한 독자들처럼 독서의 흐름에 마음을 싣고 느긋하고 즐겁게 흘러가는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괴로운 독자다.”


내겐 명언으로 들렸다.


그러나 기쁨과 보람도

번역은 열정과 정성의 산물이라는 게 내 짧은 경험에서 얻은 결론이다. 물론 일정 수준의 외국어실력과 문장력과 지식을 전제하고서다. 그런데 이 열정은 어디서 올까? 물론 번역할 책의 내용에서 온다(이 역시 내 경험이다). 마음 편하게 해 주는 출판사라면 금상첨화다. 내 취향에 딱 맞는 문명사, 문화사, 정치사, 사회사, 외교사, 지성사, 혁명사, 전쟁사(포괄적으로 ‘역사’라고 하면 되겠지만 굳이 이렇게 구분하고 싶다) 같은 것, 예컨대 토인비의 A Study of History나 토크빌의 Democracy in America(영문판), 윌리엄 쉬러의 The Rise and Fall of The Third Reich 비슷한 책이 있어 번역하라고 한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것 같다.

 그런 책을 나는 두 번 경험했다. 하나는 앞서 말한『소용돌이의 한국정치』이고 다른 하나는『읽는다는 것의 역사』다.『소용돌이의 한국정치』는 우리나라의 정치사, 특히 대원군시대부터 제5공화국까지 한국(조선)의 엘리트들이 벌이는 ‘정치놀음’을 분석한 책이다. 대원군의 개혁, 일본의 식민통치, 해방, 미군정, 6.25전쟁, 4.19혁명, 5.16쿠데타 등, 때로는 질곡의, 때로는 희망의 우리 역사를 독특한 시각으로 심도 있게 그리고 있다. 이들 엄청난 역사의 회오리를 일부나마 경험한 사람들은 구구절절이 새삼 놀라운 눈으로 바라볼 내용들이다.『읽는다는 것의 역사』는 최초로 나온 서양 독서통사로서 독특한 범주의 서양 문화사며 지성사다. 이 한권으로 서양 지성의 발달 경위를 훤히 꿰뚫어 볼 수 있다. 책, 독서, 독자, 출판과 관련된 갖가지 에피소드들이 끝도 없이 나오는데 하나하나가 모두 역사적인 무게를 가지는 귀중한 자료들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왜 한국독서통사, 동양독서통사는 나오지 않았는지 안타까운 생각이 들 정도다.

 이런 내용의 책들이니 내가 껌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두 책에 대한 작업을 할 땐(한 권은 공역) ‘번역삼매경’에 빠졌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었다. 우선 취향에 딱 맞았고, 재미있었고, 그리고 좋은 책을 번역한다는 자부심과 보람에서였다. 고생이 많겠다고 위로하는 출판사 관계자 분에게 참 행복하다고 답한 것도 이 두 책이었다.  

 그러나 번역자가 아무리 보람 있고 행복한들 뭣하나. 문제는 책이 많이 팔려야 하는데 이 두 책 역시 그렇지를 못했던 것 같다. 역시 인문서고 너무 무거워서일까? 아니면 “마차에서도, 산책길에서도, 극장의 막간에서도, 카페에서도, 목욕탕에서도 책을 읽는(『읽는다는 것의 역사』 468쪽)” 그런 세상이 아니어서 일까? 나 혼자만 실컷 좋아 한 것 같아서 마치 미몽에서 깨어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