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 가는대로

알라 할림(서평)

이강기 2015. 9. 6. 22:25
알라 할림(서평)    
 
 

<고등사기극>인 진리탐구에 대한 풍자

 
어느 신문에 난 인터뷰기사에서 화가 이우환씨는 이런 얘기를 했다.

<예술은 고등사기다.. '고등'이란 말은 사기를 잘 쳐야 한다는 거다. 아주 지혜롭게 깊게 말이다. 결국 그건 사기가 아니다......(그림을 잘 그리려면) 1만권의 책을 읽고, 만감(사색)을 갖고, 만리길(경험)을 간 다음 붓을 들어야 된다>

이우환씨가 어떤 분인지도 잘 모르면서 <예술은 고등사기>라는 제목에 끌려 그 기사를 읽다가 나는 마치 불에라도 덴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바로 며칠 전에 독파를 끝낸 김재기교수의 소설 '알라 할림(신만이 아신다)'이 퍼뜩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실, 존경하는 분의 권유로 '알라 할림'을 읽긴 했는데,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도 나는 마치 무엇에 홀렸다 놓여난 것처럼 그냥 멍해져 있었다. 분명히 현란한 무엇이 있었고, 거기에 듬뿍 취한 것 같긴 한데 그냥 몽롱할 뿐 그게 무엇인지 제대로 가닥이 잡히지 않았던 것이다.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것일까? 다른 일을 하면서도 줄곧 '알라 할림'이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그런데 정말 엉뚱하게도 이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서 그 책에 대해 어슴푸레 무엇이 지펴오는 게 아닌가. 예술이 고등사기일진데, 신앙 내지 종교적 진리라고 떠드는 행위자체는 진짜 고등사기가 아닐까? 아니 우리들 삶의 상당부분이 이 고등사기극에 휘말려 있는 것이나 아닐까? 이 책은 바로 이걸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소설에서 고명한 스승으로 나오는 할리드란 인물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도 그런 것을 뒷받침해 주는 것 같았다.

<모든 거짓이 다 악의에서 나오는 건 아니다. 어떤 건 단순한 무지에서 나오고, 어떤 건 어쩔 수 없는 착각이나 오해에서 나오며, 또 어떤 건 뜨거운 열정에서 나오고, 심지어 자비로운 선의에서 나오는 거짓도 있는 법! 이 모든 거짓 앞에서 우리가 가진 지혜는 보잘 것 없고, 우리에게 씌워진 운명은 가혹하다는 걸 잊지 마라>

'알라 할림'이 현란했다고 하는 이유는, 이 소설이야말로 <1만권의 책을 읽고, 만감(사색)을 갖고, 만리길(경험)을 간> 다음 붓을 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소설이 아니라 소설의 형식을 빌어 쓴 철학 내지 종교 에세이 같았다. 아니 문화사나 지성사라고 하는 것이 더 근사한 말이 될까? 한국 소설 치고 어느 소설에 이렇게 지성이 현란하게 너울너울 춤추며 읽는 이의 혼을 빼 놓는 게 있었던가? 인물 하나 하나가 모두다 대단한 문화적 종교적 배경을 갖고 등장한다.

구사되는 언어도 라틴어에서부터 시작하여 아랍어, 카스틸라(스페인)어, 폴투칼어, 프랑스어, 토스카나(이탈리아)어, 히브리어 등이 때로는 원어까지 동원된다. 어느 소설에 각주가 이렇게 많을 수가 있는가. 마치 박사학위 논문에 달린 각주같다. 철학자가 소설을 쓴다면 어떤 내용이 될까하는 생각을 종종 해 온 적이 있는데,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주인공 알리가 천신만고하며 진실을 밝히려다가 오히려 점점 더 꼬이고 악화돼 가는 살인사건이나, 찾으려고 했던 '비전의 진리'가 담긴 서책은, 결국 '파랑새를 찾아서'와 같은 동화 같은 얘기가 돼버렸지만, 그것이 바로 '거대한 사기극' 속에서 진실을 찾고 진리를 밝히려는 우리 인간들의 허망한 짓거리들을 풍자한 것이 아닐까싶다.
 
2002년 12월21일 이강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