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 가는대로

日帝 콤플렉스 - 우리는 아직도 日帝治下에서 살고 있는가?

이강기 2015. 9. 9. 09:39

日帝 콤플렉스 - 우리는 아직도 日帝治下에서 살고 있는가?

 

 

(2001.4.21)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초등학생들, 아니 유치원생들까지 고사리 손에 규탄 피켓을 들고 그들의 입에서 감히 나옴직 하지 않는 생경한 구호를 외쳐대며 거리를 행진하는가 하면, 4, 50년 전에나 소름끼치며 봄직한 혈서도 다시 등장했다. 어떤 의원나리는 서울이 아닌 東京의 남의 나라 의사당 앞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가고 무슨무슨 이름의 대표단들이 연락부지로 일본에 가서는 일본 고위층들을 만나선 항읜지 애걸인지를 하고 온다. 마침내 대통령까지 나서서 한 말씀 하니까 이하 '문무백관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줄줄이 일본성토의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다.

그런데도 일본정부는 요지부동이다. 문부과학성의 검정은 어디까지나 합법적인 절차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본 여당인 자민당의 총재선거에 입후보한 4명의 후보자들까지도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와 같은 목소리를 내었다. 이들 중 어느 한 명이 26일의 의회선거를 거쳐 차기 일본 총리가 될 테니까 결국 차기 총리한테 매달려도 별 볼일이 없게 된 셈이다. 일부 지식층에서 규탄의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전반적인 일본의 태도 - 언론도, 정치가들도, 일반 여론도 - 는 냉담하기 그지없다. 그저 우리 쪽만 흥분해서 볼썽 사나운 삿대질을 해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전후 사정을 보아하니, 얼핏 韓日양국의 정치 중심지는 역시 東京이고, 韓日양국의 정치현안을 해결하는 열쇠를 쥔 쪽은 역시 東京 당국자들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남의 나라가 만든 역사 교과서에 온 나라가 흥분을 하고, 남의 나라 의사당 앞에 가서 단식농성을 하고, 남의 나라 정치가들을 찾아다니며 항의하고 사정하고.... 하는 양이 마치 과거 일제치하에서 이따금씩 발표되는 가혹한 식민정책에 온 나라가 들끓고, 이를 기화로 독립투사들은 저항의지를 더욱 굳히고, 추밀원의원 같은 친일파들은 조선총독이나 '천황폐하'에게 직접 읍소하겠다며 나서곤 하던 일을 떠올리게 한다. 흥분하는 모양새며 항의하는 방법이며 가 영락없이 그 시절을 닮았다. 독립국이 된지 벌써 56년째로 접어들었고, 어쩌다 日本을 칭찬하는 말 한 마디만 해도 친일파니 사대주의자니 하며 서슬푸르게 설쳐대는 '애국자'들이 득시걸거리는 나라가 되었건만, 부끄럽게도 우리의 의식수준은 아직도 일제치하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일본은 간교한 나라다. 어쩌면 이번 역사교과서 일만 해도 일본은 곧잘 냄비 끓듯 흥분하고 곧잘 식어버리는 한국의 性情을 처음부터 꿰뚫어보고 일을 벌인 것인지도 모른다. 최근 역사교과서 문제를 논평하는 어느 일본신문의 글에서 한국과 중국의 현 정치지도자들의 日本重視정책을 들먹이는 것이 벌써 예사롭지가 않았다. 그들은 자기들이 결정한 '한갓 어줍잖은 일'에 과거 식민지로 다스렸던 나라가 벌떼처럼 일어나고, 그 나라의 정치지도자들이란 사람들이 자기들 문지방 앞에서 성시를 이루는 것을 보고 속으로 은근히  "이 못난 작자들아!" 하는 멸시와 함께 '역시 우리는 대국이구나' 하며 쾌재를 불렀을지도 모른다.

비단 이 역사교과서 일 뿐만 아니라 그간 여러 차례 시끄러웠던 韓日間의 문제들을 해결한 과정을 되돌아 볼 때, 아예 우리 쪽이 그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일본의 정치지도자들이 회담준비를 위해 실무진들과 함께 주판알을 부지런히 퉁기고 있을 때, 우리의 위대한 정치지도자들은 아래 것들이나 하는 그런 젊잖치 못한 짓은 군자가 할 짓이 못된다고 생각하고, 보스들끼리 만나서 한꺼번에 정치적으로 일괄 타결해버리는 것만 선호하고 있다가 결국 번번이 당하고 말았다. 큰 것만 꼽아보아도 한일회담이 그랬고, 한일어협협정이 그랬다. 앞으로 또 무슨 일들이 그런 식으로 끝날지 모르는 일이다. 독도문제만 해도 그들이 하나 하나 외교적 기록을 남기는 일을 집요하게 지속하고 있는 양이 심상치가 않다.

그들이 역사적으로 그들에게 별로 유쾌한 기억이 될 수 없는 페리 제독의 黑船이나 나가사끼의 蘭館을 복원하여 수많은 외국관광객들을 불러들여 돈을 벌고 있을 때, 우리들은 그들이 만든 것이라 하여 구 총독부 관사와 청사를 수백 억을 들려 허물고는 '애국했다' 하며 의기양양해 했다. 최근에 아프칸의 탈리반정권이 바미얀 대불을 폭파했다하여 온 세계가 비웃고 탄식했지만, 따지고 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파괴의 정신적인 바탕은 우리도 그들과 오십보 백보다.

이래서는 안 된다. 일제치하 때 가졌던 '저항의식'에서 이젠 완전히 깨어나 명실상부한 독립국 국민으로서 對日문제에 대한 새로운 의식을 정립해 가야한다.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다. 곧잘 흥분하여 그들에게 얏 보이지 말고 냉철한 머리로 대처하며 끝까지 의젓한 자세로 그들이 잘 못하는 일을 그들 스스로를 부끄러이 여기도록 만드는 방안을 모색해야 가야한다. 같은 역사 교과서 문제로 중국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그들은 정부와 일부단체의 강력한 비난과 얼음장으로만 대처하고 있지 우리들처럼 이렇게 흥분하여 왼 나라가 들썩거리고 있지 않다. 그럴 시간에 차라리 맡은바 일이나 부지런히 하는 것이 상대를 이기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저간의 일본측 태도로 보아 우리가 이번에 거국적으로 나선다고해서 호락 호락 고쳐질 것 같지도 않으며, 또 설사 고쳐진다고 해도 그들은 언제 또 같은 짓을 되풀이 할지 모르는 일이다. 언제까지 마치 독립운동하는 식으로 그들의 역사교과서에 "저항"할 것인가? 역사교과서 문제는 차근 차근 따져 그들을 비난하고 경멸할 사항이지 거국적으로 흥분하고 거국적으로 항의하며 매달릴 일이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