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의 나라, 말은
번드르르하다!
(2002.5.15)
(선비의 나라라며 조선을 칭송하는 어느 분의 글에 대한
반박문임)
칼보다야 붓이 훨씬 좋다. 칼은 생각만 해도 베일까 소름이 돋고 붓은 생각할수록 정겹다. 오죽하면
나폴레온까지도 붓을 칭송했을까. 지필묵 챙겨들고 도포자락 휘날리며 산천경개 찾아가 고담준론 읊조리는 것, 정말 멋있다. 아리따운 기생 년이
따라주는 감주 홀짝거려가며 입만 열면 이태백이 두보 시가 술술 나오고 붓만 들었다 하면 당송팔대가의 명귀들이 일필휘지로 갈겨지는 자리, 정말
황홀하겄다. 선비의 나라, 얼마나 평화롭고 정서적인 이름인가. 글 몇 줄만 쓰면 금준미주 옥반가효가 술술 나오는 나라, 이건 영락없이 신선들의
나라다. 進酒君莫停, 與君歌一曲, 請君爲我側耳聽. 鐘鼓饌玉不足貴, 但願長醉不用醒. 古來聖賢皆寂寞 惟有飮者留其名(그대에게
한잔 권하노니 사양일랑 하지마소. 그대에게 내 노래 한곡 부를테니, 그대여! 날 위해 귀기울려 들어보게나. 종이며, 북이며, 맛난 음식이며,
옥이며, 귀한 것이 아니나니, 그냥 이대로 오래 취해서 깨어나지나 말았으면..., 자고로 성현님네들은 모두다 적막할 뿐이오, 오직 술 잘 마신
사람들이 그 이름을 남겼으니....).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그런 이태백이 세상이 영원히 계속될 수 있다면 나라도 그런
세상에 살고 싶다.
그런데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더니, 그네들 입에 들어가는 먹거리는 누가 땀흘려 농사짓고 고기 잡아
장만해 주며, 홀짝거리는 감주는 누가 담가주나. 그네들 걸치고 있는 하이얀 명주 바지저고리는 또 누가 누에쳐 만들어 주나. 그네들 마음놓고
노닥거리게 강산은 또 누가 지켜주나. 그네들 하인들이 농사짓고 밥하는 데 쓰이는 쟁기며 괭이며 솥이며 그릇들은 누가 만들어 주나.
대저 한 나라를 경영해 가려면 오만가지가 다 필요하다. 바꾸어 말하면 오만가지가 다 중요시 돼야 한다. 지배계층이 있고
피지배계층이 있는 거야 역사의 순리니까 어쩔 수가 없고, 또 지배계층이 자기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어느 정도 배타적이 되는 거야 사람의 욕심이니까
이해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라를 옳게 다스리려면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선비들도 마땅히 떠받들어져야 하지만, 무인들도
대접해 주어 국방도 튼튼히 하고, 匠人들도 사람구실을 하게 해줘 신명나게 器物을 만들게 하고, 장사치들에게도 이문을 충분히 남게 해주고 토지
구매권도 주어 부자가 생기게 해주고, 승려도, 풍각쟁이도, 백정도 그들의 권익을 충분히 보호해주어 신바람 나게 천직에 종사케 해야 되는 것이다.
누누히 얘기 하지만 사회 모든 구성원들의 기를 살려 주어 사회에 힘이 넘쳐나게 해야 되는 것이다. 그래야만 나라가 제대로 굴러가고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걸 제대로 해 가면서 동인 서인으로 갈라지든 이태백이 놀음에 빠지든 했다면 오늘 날 조선보고 비난할 사람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어땠나. 그들은 그야말로 <선비답게> 나라를 다스렸다. 마당에 늘어 논 벼가 소나기에 떠내려가도 꿈쩍
않고 방안에 앉아서 공자왈 맹자왈 했던 바로 그런 선비답게 다스린 것이다. 그렇다고 크게 학문을 떨친 것도 아니다. 500년간 주자학에
골몰했으면, 세계적인 학자 수백 명은 나왔음 직한데 몇 사람, 그것도 관직을 사양했거나 밀려나 학문에 전념한 일부 사람들에 불과하다. 모두들
과거에 급제하여 입신양명하는 데만 정신을 쏟은 결과다. 요새 고시가 그렇지만, 과거공부는 그게 학문을 위한 공부가 아니다. 허풍은 또 얼마나
세었나. 곧 죽어도 큰 소리 치는 것이 선비의 기개라나 뭐라나 하면서 적이 곧 밀고 오겠다는 데도 큰 소리만 치다가(특히 병자호란때) 수십
만명의 생령을 잃거나 포로로 잡혀가게 했다. 하도 큰 소리를 치니까 조선의 실정을 살피려 왔던 명나라 監軍 黃孫民이, 보기에 딱했던지
<귀국의 인심이나 기개가 결코 강대한 적의 침략을 당해내기 어렵다. 한 때 褒奬하는 詔勅이 있다고 해서(명나라가 한국을 칭찬한다고 해서)
적과 화친하는 일을 끊지 마라>고 충고할 지경이었다. 막상 명나라보다도 중간에 있는 우리가 反淸의 깃발을 더 높이 흔들어 淸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언필칭 천하지대본이라던 농업도 세금 거둬갈 궁리만 열심히 했지, 개간이나 관개 등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훗날 일본인들이 들어와 토지구획정리사업을 하면서 <임자 없는 토지>들을 무더기로 가로 챌 수 있었던 것도 미개간지,
버려진 하천부지 등이 엄청나게 많고 지적정리가 엉망진창이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해 놨더라면 아무리 그들이 날강도라 한들 어떻게 임자가 눈을
시뻘겋게 뜨고 있는 토지를 가로챌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임란때 도자기기술 전해 준 것 가지고 두고두고 자랑만 할 줄 알았지 그걸
더욱 발전시킬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는데(말기로 내려오며 오히려 쇠퇴했다), 그들은 우리 기술의 바탕 위에다 중국 징더전(景德鎭)의 기술을
접목하여 유명한 아리타 도자기로 발전, 나중엔 중국 것을 누르고 이미 17,8세기에 유럽에 수십 만개를 수출했다. 지금도 대영박물관에 가면 그
시절의 일본 도자기가 상석에 자리잡고 있다.
결코 그들이 학문 좋아하고 평화 좋아한 것 가지고 시비 걸지 않는다. 그들이 武를
소홀히 하고 후기 들어 나라를 엉망으로 만드는 바람에 19세기말에서 20세기 중반기까지 우리들이 당한 치욕을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
같기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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