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 가는대로

투사=정치지도자 등식은 이제 그만

이강기 2015. 9. 9. 11:25

 

 

투사=정치지도자 등식은 이제 그만

 

 

(2001518- 에머지)

 

우리에게는 전통적으로 반정부 투쟁으로 핍박을 받거나 감옥살이한 전력을 무슨 훌륭한 정치 이력으로 간주하는 풍조가 있다. 이는 멀리는 옛 왕조시대에 법이 공정하게 집행되지 않고, 음모로 정적을 제거하는 악습을 수 천년간 반복한 전통에서 비롯된, 소위 법정의(法正義)에 대한 오랜 불신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겠고, 가까이는, 일제시대에 정치범이나 사상범으로서의 감옥살이가 곧 바로 애국애족의 표상쯤으로 생각한 데서 온 것일 수도 있겠다.

 

왕조시대의 권력자가 정적을 제거할 때는 곧잘 역적이라는 누명을 둘러씌우고, 일제 당국이 독립투사를 잡아드릴 때는 흔히들 마적두목이니 사기협잡꾼이니 하는 비양심범으로 몰았기 때문에, 정보에 어두운 일반 백성들로선 진정 누가 역적이고 충신인지, 누가 애국자고 마적두목이나 사기협잡꾼인지 구분도 판단도 모호해지는 일이 허다했다. 그 바람에 진짜 역적도 충신이라 울부짖으며 죽어 가는 일도 있었고, 진짜 사기협잡꾼도 애국자라며 감옥살이 한 것을 무슨 큰 벼슬이나 한 것처럼 의기양양해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요즘 정치가들이 선거법위반이나 뇌물수수죄로 단죄를 받고도 곧잘 사면되어 정치판에서 다시 승승장구하고, 유권자들도 그들의 범법전력을 전혀 도외시하며 표를 몰아주곤 하는 풍조도 바로 이런 역사적 유습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한국 정치판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인사들 중 상당수가 소위 양심수로서 감옥살이를 했거나 정적으로부터 핍박을 받은 투사형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 감옥살이와 그 핍박을 훌륭한 정치적 업적으로 간주하고 있고, 일반 유권자들 역시 그것에 전혀 저항감을 느끼지 않고 그들에 대한 어떤 보상차원에서도 그들이 정치지도자가 되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다. 어쩌면 이것은 자연스런 현상인지도 모른다. 2차 대전 후의 여러 다른 나라들의 경우를 봐도 건국초기나 혁명시기에는 이와 비슷한 일들이 있었다. 독립투사들이 건국의 주역이 되고, 독재에 대한 투쟁에 인생을 건 투사들이 그 후에 오는 민주사회의 주역이 되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사회가 일단 안정기에 들어가면 국민들은 그런 투사형보다는 정규적인 교육을 받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한 실무형을 중시하게 되고 그런 사람들이 정치지도자로 성장한다. 오히려 건국초기의 투사형 지도자들은 권좌에 앉자마자 독재로 흐르거나 실정을 저질러 또 다른 정치적 변혁을 몰고 오는 수가 허다했고, 설사 그런 경우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그들이 정치지도자로서는 그렇게 빛을 발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모르긴 해도 남아공의 만델라를 제외하곤 투사출신 치고 그렇게 성공한 지도자가 없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가 그랬고, 가나의 앵크루마가 그랬고, 켄야의 켄야타가 그러했다. 간디가 만약 암살되지 않고 정치지도자가 되었다면 그 역시 오늘날 그가 받고있는 존경이 반감되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경우는 어떠했던가? 독립투사였던 이승만이 초대대통령이 되어 독재를 하다 쫓겨나고, 그 후 군사독재가 들어서 다시금 반독재 투쟁이 일어나고, 문민정부가 들어서 과거의 투사들이 정치지도자로 부상하는 예는 다른 나라들과 대동소이하다. 그런데 여기에 두어가지 차이점이 있다. 하나는 남북분단이라는 특수상황에서 온 우익 친일세력의 득세로 이승만을 제외한 대부분의 독립운동 주역들이 정권에서 배제되어 본인들로선 , 국민들로선 연민의 정을 남긴 점이고, 다른 하나는, 독립 된지 올해로 56년째, 민주화 된지 13(87년 직선제 대선을 기점으로 쳐)이 지났건만 아직도 국민들이 줄기차게 투사형 정치가들을 선호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직도 감옥살이(비록 양심수로서이지만)가 훌륭한 정치적 이력이 되고 있고, 학창시절에 학생운동 한 것이(심지어 친북 좌경운동까지) 마치 정치가로서의 자질을 검정 받은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아직도 투사출신 지도자가 대통령으로 있고, 이미 대통령을 지낸 또 다른 투사출신 지도자도 여전히 정치에의 미련을 못 버리고 있다. 아직도 후진국형인 스튜던트 파워가 사회 중요 세력으로 남아있고, 그들의 지도자들은 그들의 선배 투사출신 정치 지도자들에 의해 국회의원공천의 우선 순위권에 들어가고 있다.

 

이런 투사출신들이 한국정치를 주물럭거리고 있으니 한국정치가 투쟁 일변도로 흐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은 정치활동도 마치 독재에 대항하여 민주화 투쟁운동 하듯 하고 있다. 선전 선동과 바람잡기, 밀어붙이기 등에 의존하는 행태와, 조직을 만들고 운영하는 수법이며 대중에 대한 권모술수가 평화롭고 안정된 나라의 정치활동 그것이 아니다. 언젠가 "빨치산 수법 운운" 한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러한 정치행태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선호, 중용되고 이런 사람들이 의원이 되고 장관이 되고 대통령이 되고 있으니, 나라가 바람잘 날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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