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 가는대로

상하이 斷想

이강기 2015. 9. 9. 11:09

상하이 斷想

 

 (2001년 1월20일)
김정일 위원장의 방문으로 약 1만여 명의 상하이 춘제(春節.설) 귀성객들이 驛舍에도 못 들어가고 역 광장에서 겨울비를 맞으며 오들오들 떨어야 했다는 기사를 읽으며 역시 중국은 아직도 멀었구나 싶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김 위원장의 출발 전후에는 상하이 역을 통과하는 모든 열차들의 운행을 정지시키고, 그에 앞서 시내도 곳곳에서 교통통제를 하는 바람에 그러찮아도 출퇴근 교통난이 심각하기로 소문난 상하이 시내 교통질서를 엉망으로 만든 모양이다.

외국 지도자 한 사람 때문에 1만 여명이 찬비를 맞으며 떨고, 수백만 명이 교통체증으로 고통을 겪어야 하는, 그리고 그런 것을 관례로 생각하고 당연시하는 정치지도자들이 다스리는 나라는 누가 뭐래도 삼류국가임에 틀림없다싶다. 입만 열면 "국민(인민)을 위해서"라는 발린 소리를 끝없이 늘어놓으며 정작 행동은 국민(인민)들을 개떡같이 취급하는 이런 위선자들이 다스리는 나라 치고 제대로 된 나라 못 봤기 때문이다. 지난 번 김대중 대통령이 북에 갔을 때 평양시민의 거의 절반이 나와 꽃술을 흔들고 홀짝홀짝 뛰며 환영했다고 입이 함박처럼 벌어지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걸 보며 한심하다 못해 속에서 무엇이 확 치받쳐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언제부터 끌려나와 몇 시간을 저 자리에서 서 있었을까? 집에 아픈 사람을 눕혀놓고 온 사람들은 없었을까? 아니 본인도 몸살기가 있는데도 불랙리스트에 오를까봐 이를 악물고 버티고 서 있는 사람들은 없었을까? 리무진 타고 휙 지나치며 눈길이나 한번 주었는지도 모를 "위대한 지도자"를 위해 잠깐 동안 괴성 지르며 꽃술 몇 번 흔들려고 꼭두새벽부터 나와 점심때가 지나도록 그러고 있으려니 하고 생각하니 정말 동정을 금할 수가 없었다.

 
하긴 중국과 북한 얘기나 하며 그들 나라 사람들을 동정하고 한심해 할 처지도 아닌 것 같다. 민주화 이후 숙지근하던 "동원"이 바로 김대통령이 평양서 서울로 돌아오던 날 재현되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공항에서 청와대로 돌아오는 도중 두어 번 차에서 내려 태극기를 흔들며 환영하는 군중들에게 다가가서 악수를 하는 장면을 연출하는 것을 보고 "언제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환영하러 나갔었나 참 신기하기도 하지." 했었는데, 뒤에 알고 보니 수천 명의 공무원들을 동원했다는 얘기였다. "동원망령이 또 살아나는구나! 그놈의 권위주의는 언제쯤이나 없어질는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세대들이 학교 다닐 때 정말 갖가지 명목으로 무던히도 끌려 다니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울화통이 터진다. 아마도 그런 기억들 때문에 저번 북한의 그 장면을 보고 그리고 이번 상하이 기사를 읽으며 더욱 분개한 맘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쓰린 기억은 서독(당시)의 뤼브케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던 60년대 초 어느 해였다. 부산에 귀한 손님이 온다하여 지나는 길에 아스팔트를 새로 깐다, 대로변 집들의 페인트칠을 새로 한다하며 부산을 떠는 것 까진 좋았으나, 한 술 더 떠 사전에 두 번이나 한나절씩 차량통행을 완전 차단하고 시장이 몸소 차를 타고 리허설을 한 것이었다. 그 바람에 중앙동에 볼일을 보러 나왔다가 10km가 넘는 동래 온천장의 집까지 두 번을 걸어서 왔던 것이다. 결국 뤼브케대통령이 왔을 때의 실제상황과 두 번의 리허설하고 합쳐 부산 시민들이 세 번이나 곤욕을 치른 것이다. 요즘처럼 부분통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너댓 시간 일체 차량통제를 금해버린 것이었다. 시민들을 정말 하찮은 미물로 여기는 것 같은 수작이었다.

3월에 김정일위원장이 서울에 온다는 말이 있는데, "환영인파"를 어떻게 연출해낼지 벌써부터 호기심이 인다. 북한에서 "대대적인 환영"을 했으니까, 우리도 강제동원이라도 하여 흉내를 내려고 할지, 아니면 우리는 우리 식 대로라며 간소하게 치르고 말지 궁금해지는 것이다. 어쩌면 김정일위원장 환영을 어떤 방식으로 하는가에 따라 현 정부의 "대북자세"를 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제발 부산을 떨지 말고 의젓한 자세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