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중동지배시대는 이미 끝났다?
포린 어페어스지 2006년 11-12월호엔 미국 외교협의회회장인 리처드 N. 하스가 쓴 “새로운
중동(The New Middle East)"이란 제목의 의미심장한 논문 한편이 실려 있다. 요약컨대 중동에서 미국이 지배하는 시대는 이미
끝났으며 새로운 시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14만 명의 미군이 주둔 중인 이라크는 말할 것도 없고 사우디아라비아 동부지역과
카타르, 바레인, 쿠웨이트 등 페르시아 만 토후국 곳곳에 미군부대를 전개시켜 중동천지를 호령하며 과거 어느 때보다도 미국의 개입도를 높이고 있는
이 마당에 생뚱맞게 ”미국지배시대가 끝났다“니 놀라운 진단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자.
하스에 따르면, ‘현대 중동시대’는 1798년 나포레온이 이집트를 점령하면서 시작되었으며, 그 후
200여 년간 모두 네 번에 걸쳐 지배세력이 바뀐다. 1차는 1798년부터 1918년 1차 대전 패전으로 인한 오스만 터키제국의 붕괴와 현대
터키공화국 수립까지로 영국.프랑스,독일 등 서구열강의 중동간섭시대다. 2차는 1918년 이후부터 식민지시대 종언(정확히는 1956년 수에즈
사태)때까지로 이 시대에는 영국과 프랑스가 식민지 쟁탈전을 벌였다. 3차는 1956년부터 소련의 붕괴로 동서냉전체제가 종식된 1991년까지로
미.소 영향력의 확대, 아랍 민족주의 대두, 석유무기화, 이란의 친미 이탈 등을 특징으로 한다. 미국 독주시대인 4차는 1991년 1차
이라크전쟁 때부터 2003년 2차 이라크전쟁 때까지이다.
하스는, 불가피한 전쟁이었던 1차 이라크전으로 미국의 시대가 열렸는데 별
필요도 없는 2차 이라크전을 벌이는 바람에 스스로 미국지배시대의 종언을 촉진한 사실을 두고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평한다. 그렇다면 지금 형성되고
있다는 5차 새 중동시대는 어떤 시대가 될까? 그것은 한마디로 혼돈과 불확실성의 시대이다. 새 시대에도 미국은 이 지역에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겠지만 그 강도는 과거보다 약화되고, 대신 EU, 중국, 러시아의 영향력이 확대된다. 이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2대 국가 중 하나인 이란의
영향력이 커지고, 또 다른 강대국이며 유일한 핵보유국인 이스라엘이 재래식 무력을 더욱 확충하여 발언권을 높일 것이다. 과거 이 지역 중심 국가
중 하나였던 이라크는 취약한 중앙정부, 분열된 사회, 종파투쟁 등으로 허약한 국가가 될 것이며, 어쩌면 전면적인 내전으로 치달아 단일국가 유지에
실패하고 이웃 국가들의 간섭을 불러올지도 모른다.
이 논문을 ‘의미심장’ 하다고 한 이유는 필자인 리처드 하스의 미국외교가에서의 위치 때문이다. 하스는
아버지 부시 대통령 때 국가안보회의에서 일했으며, 파월 장관시절 국무부 정책기획실장을 지냈고, 한 때 브루킹스 연구소 부소장으로 있다가 지금은
초당파적 민간단체인 외교협의회 의장으로 일하고 있다. 외교협의회라면 “미국의 외교정책과 세계정세를 둘러싼 논란의 중심추를 잡는 곳이며, 미국은
물론 세계외교가의 ‘사랑방’인 동시에 외교정책과 이론의 산실역할을 하는 곳”이다. 외교문제의 최고 권위지인 포린 어페어스지도 여기서 발행한다.
바로 그런 사람이 중동에서의 미국지배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리고 과거 이란, 이스라엘과 더불어 중동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 중 하나였던 이라크가 이웃 국가들의 간섭을 받는 약소국으로 전락하리라고 예측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 미군의 이라크 철군문제가 심심찮게 언론에서 회자되고 있는 것도 하스의 이런 진단과 겹쳐 생각하면 예사롭지가 않다. 하스는 최근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도 “문제는 미국이 어떻게 덜 초라하게 이 일(이라크 문제)을 마무리 짓느냐에 있다.”고 말한 바 있다.
(2006.12)
이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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