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큰 소수와 말없는 다수 - 언론 세무조사 전말을 보며
(2001년 7월27일 -
에머지)
언제나 그랬지만 이번엔 특히 그랬다. 거리에서, 방송에서, 신문지상에서 목소리 큰 사람 있어 쳐다보면 그들이었다.
방송 3사에서 <언론학자 107명>이 신문개혁 촉구 선언을 했다기에 웬 사람들인가 싶어 그 면면들을 훑어보니 역시 진작부터 빅3
신문에 흰 잇빨을 드러내던 바로 그 사람들이었고, <각계각층의 인사>가 국세청의 세무조사 내역을 밝히라고 성명을 발표했다기에 쳐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늘 큰 소리로 떠들던 바로 그 사람들이었다. 요란한 내용의 플래카드들이 숲을 이룬 가운데 머리띠 두르고 <족벌언론
해체하라>고 고함을 질러대며 불끈 쥔 주먹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자세히 보니 늘 그런 짓하고 다니던 바로 그 사람들이었다.
방송들은 한결같이 마치 그들이 각 부문의 여론을 대변하는 사람들인 양 신바람 나게 보도를 해댔다.
시나리오대로 움직인대도 그렇게
아귀가 척척 맞을 수가 없고, 이곳 저곳서 그들이 질러대는 소리 또한 3박잔지 4박잔지는 모르지만 척척 그렇게 박자가 맞아들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소위 <언론문건>이라는 것이 알만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하더니 웬걸 얼마 지나지 않아 대통령의
<언론개혁> 언급이 있었고, 또 얼마를 지나더니 느닷없이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시작됐다. 또 공정위에선 불공정거래를 조사한다며 나섰다.
일부언론사는 그야말로 십자포화의 타킷이 된 꼴이었다. 어찌 이 호기를 놓칠 수 있으리요. 그 때부터 예의 그 목소리 큰 사람들이 <응원단을
조직하여> 거리로, 방송으로 신문사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옮겨가며 열심히 응원들을 해댔다. 국제언론인협회(IPI)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자, 과연 그런 부서가 필요한지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국정홍보처란 곳에서 잽싸게 무슨 질문서란 것을 보내며 IPI가 일부 신문(아마도 빅3
지칭)의 대변인 노릇 한다며 비난을 퍼붓고, 얼른 국제기자연맹(IFJ) 총회가 서울서 개최되고 한국의 언론사주들을 비난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마침내 사상 초유의 1천 여명이라는 대 군단 투입에 기일을 연장해 가면서까지 장장 132일이란 긴 장정의 <작업>이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자, 정부 관계 부처와 여당을 포함한 소위 진보, 친정부 언론과 시민단체, 학자들의 응원기세 또한 높아만 갔다.
정부.여당은 한결같이 <통상의 세무조사>에 불과하다 했고, 예의 그 목소리 큰 사람들은 언제나 처럼
<정의>와 <개혁>을 부르짖었다. <조세정의>을 실현하려는데 <수구세력들>은 입도 벙긋하지 말라했고,
<족벌언론들>을 해체해야만 나라가 바로 선다고 했다. 그들이 흔들고 있는 플래카드엔 <언론의 사유화를 배격하자>라는
글귀까지 보였다. <사유물화를 배격하자>라는 의미 같은데 그들의 성향에 대한 선입감 때문인지는 몰라도 마치 프라우다나 노동신문 같은
<공유물>로 만들자는 소리 같이 들렸다.
<통상의 세무조사>인데 <발표식>은 왜 그렇게 거창하게
벌였을까? 나라에 변괴가 났거나 무슨 크게 자축할만한 일이 벌어진 것도 아닌데 TV 3사들은 왜 그렇게 부산을 떨었을까? 때맞춰 거리에선 예의
그 목소리 큰 사람들이 장대비를 맞아가며 <언론개혁> 시위를 벌이고 예의 그 진보.친정부 언론들은 소리 높여 맞장구를 쳐댔다. 왜
그랬을까?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에 대한 고민으로도 머리가 아픈 이 불민하기 짝이 없는 민초의 눈엔 저 사람들이 무슨 여유가 있고 무슨 신바람이
나서 저러고 있을까 싶었다. 탈세를 했으면 바로 잡아야 하고 범법을 했으면 제재를 하면 되는 것이다. 저렇게 거창하게 판을 벌이고 저렇게 핏대를
올려가며 떠들고 다녀야만 그들이 약방감초처럼 들먹이는 소위 <정의>가 실현되는 것일까 ? 오히려 저렇게 호들갑을 떨고 있으니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바로 들리지 않고 그들의 발표가 미심쩍어지는 것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탈세를 했으면 추징을 해야하고 범법을
했으면 단죄를 받아야 한다. 다만 정말로 올바른 잣대로 재량을 했는지, 정말로 언론 길들이기가 아니었는지 철저히 점검해 본 후에 그렇게
해야한다. 여기서 한가지 꼭 짚고 넘어갈 것은 탈세와 언론 개혁과는 전혀 별개의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데도 그들 목소리 큰 사람들은 그걸
결부시켜 숨통을 죄려 하고 있는 것 같다. 모 진보계 신문에는 벌써 <명예혁명>이니 <새 시대의 여명>이니 해가며 신바람나
하고 있다. 탈세 고발했다는데 왜 그들이 신바람이 나야 하는가? 마치 세상이 뒤집힌 양 왜 그들이 희희락락 하는가? 이는 분명히 이번 사건을
올가미로 하여 더 큰 일을 벌인다는 것을 예상하고서, 아니면 어떤 정보에 의해 그런 확신을 하고서 하는 수작들일 것이다.
그러나
착각은 자유겠지만, 단언하건대 그들의 뜻대로는 되지 않을 것이다. 소위 언론개혁이라는 미명을 들고 나온 사람들이 지금은 목소리 큰 사람들의 등에
업혀 마치 호랑이 등 탄 것처럼 내닫고 있지만, 말없는 다수가 싸늘한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해 목소리를 높이는 날 그들은
마침내 곤두박질을 치고 말 것이다.
언론개혁! 좋은 얘기다. 그리고 해야한다. 그런데 왜 정부가 해야 하나? 왜 진보계열
시민단체가 떠들어야하고 소위 안티조선파들이 나서야 하나? 과문한 탓인진 몰라도 정부 비판하는 신문을 시민단체와 진보계열 지식인들이 나서서 온갖
비난을 퍼부어 가며 목을 죄려는 나라는 처음 봤다. 정말 월권도 유만부동이다. 싫으면 안보면 되는 것이고 독자가 적어지면 자연히 그 신문은
위축되거나 망하게 되는 것인데 왜 인위적인 힘으로 밀어 부치려 하는가? 그 목적이 무엇인가? 누구 말처럼 정말로 과거의 프라우다나 북한의
노동신문 같은 기관지 신문을 만들려고 하는 것인가?
참으로 착각들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말없는 다수가 조직도 없이 가만히 보고
있으니까 영 덩신 취급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들 다수는 차라리 <족벌신문>을 봤으면 봤지 정부 기관지 같은 신문은 산더미처럼
있어도 쳐다보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저들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참으로 너무 설쳐대는 것 같아 딱한 생각이 든다. 시소오가 한쪽으로 너무
기울면 그 반동 또한 크다는 것을 그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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