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수 변호사의 어떤 일면
(2001년 5월24일)
서초동 교육대학 뒷담을 끼고 들어가는 골목 입구의 한 허름한 건물에 그의 변호사 사무실이 있었다. 법원 동네이긴 하지만 법원에서 이 사무실까지 오려면 지하도를 대각선으로 건너서 50여 미터쯤 남쪽으로 내려와야 하기 때문에 변호사 사무실로는 좀 후미진 곳이다. 사무실도 검소하다 못해 초라했다.
거기서 그와 이경택 변호사(이제 와서 TV 화면을 보고 알았다), 그리고 또 한사람(아마도 사무장?)이 매주 하루씩 무료 법률상담 서비스를 벌써 10년 넘게 해 오고 있다. 사람들이 많이 몰려 올 때에는 저녁식사까지 늦추며 상담에 응했다. 처음엔 선거운동의 일환이라고 빈정거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국회의원 선거에서 내리 3번이나 떨어지고도 변함없이 무료상담을 계속할 정도로 성실할 뿐 아니라 주소를 어디에 두고 있든 가리지 않고 친절하게 맞아들이는 것을 보고 모두들 칭찬이 자자했다.
그가 법무장관이 됐다는 뉴스를 듣고 "고생한 보람이 있다, 참 잘됐다."고 기뻐했다. 그의 사무실에 몇 번 법률 상담하러 간 적이 있는 아내는 더욱 기뻐했다. 약간 멋 적어 보이긴 하지만 항상 웃는 그의 얼굴이 화면에 비쳤을 땐 마치 가까운 지기가 장관이 된 것처럼 즐거웠다.
그런 그가 사상 최 단명 장관이란 오명을 남기고 물러났단다. 정말 관운이 지지리도 없는 사람이다 싶다. 왜 그런 소리를 썼을까? 10여년 넘게 음지에서 고생한 것을 대통령이 알아주니까 너무 감격한 나머지 그런 실수를 한 것일까? 그가 너무나 인간적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정치를 지망하면서도 정치를 너무나 몰랐기 때문에 불쑥 그런 소리가 나와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참으로 안타깝다.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나는 더욱 그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아내의 강권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번도 그에게 표를 던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싫어서가 아니라 그가 소속된 당이 싫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에게 표를 줄래야 줄 수도 없는 곳으로 이사와버렸으니 더욱 안타깝다. 만약 그가 우리 동네로 이사와 또 국회의원에 나온다면 그가 어느 당 소속이든 내 꼭 그에게 표를 던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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