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가장 친한 우방"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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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며칠 전 연합뉴스 보도로 각 신문에 실린 한 조그마한 기사가 마음에 걸려 지금까지도 씁쓸한 기분이 영 가시지를 않는다. 내용인즉 경북 안동지역 어린이 신문인 키즈뉴스가 안동지역 초등학교 5, 6학년생 263명을 대상으로 우방과 적대국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42.6%가 북한을 우리 나라와 가장 친한 우방으로 꼽고, 68.4%가 일본을 적대국으로 꼽았다는 것이다. 우선 눈에 거슬리는 것이 이걸 무슨 뉴스거리라고 연합통신이 잽싸게 타전을 하고 또 각 신문사는 그걸 너도나도 옮겨서 보도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점이었다. 물론 그런 행위에 형식논리상 잘 못된 점은 없다. '포용정책'과 '역사교과서 문제'로 對北관계와 對日관계가 전 국민들의 초미의 관심사가 돼 있는 마당에 어린이들의 對北觀이나 對日觀에 대한 여론조사라면 충분히 기사거리가 될 수도 있다. 더욱이 문제의 그 조사에서 어린이들이 일본보다 북한을 훨씬 선호한다는 결론이 나왔음에랴. 키즈뉴스라는 신문도 그런 점을 노렸을 것이고, 그것을 전국 뉴스로 띄운 연합뉴스의 속셈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기사 말미에 [조사 관계자는 "이번 조사결과 다수 어린이들이 같은 민족인 북한을 가장 친한 우방으로 생각하는 등 주변국과 우리 나라의 관계에 대해 기성세대들과 다른 가치관을 보였다"고 말했다]고 한 것으로 보아 북한이 "우리 나라와 가장 친한 우방"으로 둔갑되지 않았다면 그렇게 전국뉴스로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한발 물러서, 그 키즈 뉴스나 연합뉴스는 태생적으로 그렇다 치고, 문제는 신문사, 특히 보수개혁층을 대변하는 일부 신문사들의 데스크다. 그걸 무시해버리든지 아니면 기사란이 아닌 단평란에 동 설문조사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실었어야 할 것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아직 역사나 정치 등 사회과학에 대한 지식이나 판단력이 미약한 초등학교 어린이들에게 '우방이냐 적대국이냐' 하는 흑백논리식 설문조사를 해서는 그걸 뉴스라고 방방 떠들어내고 있는 우리 나라 기성인들의 정신연령이나 문화수준이 참으로 한심하다 싶다. OX나 사지선다형 시험을 위주로 한 교육만 받아와 편가르기와 "全部 아니면 全無"식 극단논리에 찌들은 기성층이 이제 자라나는 새싹들에게조차 그걸 강요하고 있는 형상이다. 설문지의 물음 자체도 조잡하기 짝이 없다. 기사로 미루어 보건대 '좋아하는 나라, 싫어하는 나라'가 아닌 '우방국과 적대국'으로 분류한 모양인데, 일본이 '싫어하는 나라'가 아닌 '적대국'이 된 것도 웃기는 일이지만, 더욱 가관인 것은 북한이 '우방국'으로 둔갑된 일이다. 북한이 '우방국'이고 일본이 '적대국'이라면, 현재 휴전선 근방에 포진해 놓은 무기와 병력 대부분을 일본과 마주보고있는 동남해안으로 옮겨야 할 것이다. 문제의 기사는 어린이들이 대북관에 대해 기성세대들과 다른 가치관을 보였다며 대견해 하는 듯한 뉴앙스를 풍기고 있었는데, 요즘 부쩍 떠들고 있는 일부 친북 진보주의자들의 생각이 그대로 반영된 듯한 느낌이다. 얼마 전 북한이 주적이냐 아니냐로 논란이 일더니 마침내 우방국이란 말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작년 언젠가 남한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총서기가 손을 맞잡고 있는 사진을 초등학교 2학년 교과서에 싣는다고 하더니 어느 새 어린이들의 대북관이 이렇게 180도로 바뀌어버린 가치전도현상이 일어났나 싶어 어지러움을 느낄 정도다. 키즈뉴슨가 뭔가 하는 신문의 설문이 그렇게 유도한 결과인지, 아니면 정말로 요 몇 년 동안에 초등학교 사회과 교육내용이 그렇게 변해버린 결과인지는 몰라도 어린이들 마음속에 북한이 '우방국'으로까지 격상된 게 사실이라면 문제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 나아가 대한민국이 주체가 되는 통일개념도 그네들이 기성세대가 되었을 때쯤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게 아닌가 싶다. 과거의 반공일변도 교육이 개혁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얘기지만, 그렇다고 어떤 객관적인 변화가 없는데도 어제의 적이 하룻밤 사이에 우방으로 변하는 요사이 초등학교 사회교육은(상기의 설문결과가 교육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과거의 반공교육방식 이상으로 잘 못 된 것이다. 혁명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가치관이 이렇게 극에서 극으로 바뀌는 세상에 우리들이 살고 있구나 싶은 생각을 하니 왠지 섬직하기까지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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