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 가는대로

지기를 또 보내고

이강기 2015. 9. 9. 11:20

 

 

지기를 또 보내고

 

 

(200094)

 

- 비뚤어진 이 땅의 의료문화와 그리고 때마침 일어난 의료폐업이 아까운 생명을 죽였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

 

그의 형이 간지 3년여만에 그예 그마저 가고 말았다. 그의 형처럼 한창 일할 나이에 형과 비슷한 병으로 가고 말았다. 졸지에 남동생 둘을 앞세워버린 누이는 하관 후 관 위에 영별의 흙을 뿌릴 때 피를 토할 것 같은 소리로 동생의 이름을 부르다 혼절했다. 한 때 고향 일대에서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로 위세가 등등하던 집안은 하나 둘 사람이 가면서 그 많은 재물도 가버렸고, 조부 장례 때 거지만도 300여명 넘게 몰려들었다는 바로 그 묘역의 끝자락에서 때마침 오락가락 하는 폭우 속에 가족 친지 합쳐 스무나무명의 조문객으로 치룬 장례식은 문득 "의사 지바고"의 첫 장면이 연상될 정도로 쓸쓸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너무나 어이없는 죽음이었다. 사태가 하도 급속도로 진행됐기 때문에 그를 아는 사람들은 마치 무슨 사고로 갑자기 그를 잃은 듯한 착각을 할 지경이었다. 발병한지 4개월, 본인이나 가족이 간 경화라는 것을 알게 된지 2개월 보름, 그리고 가까운 친척이나 지기들이 그의 병환을 알게 된지 2개월만에 장대 같이 멀쩡하던 사람이 가버린 것이다. "() 두고는 가는 법이 없다."는 어른들 말처럼 모든 걸 운명으로 돌리는 것이 마음 편한 일이야 하겠지만, 너무 창졸간에 당한 일이어서 미련이 안 남을 수가 없고, 과연 그가 죽을 죽음을 맞이한 것이냐 하는 의문도 지워버릴 수가 없어 남 탓 같지만 나름대로 분석을 해보기로 했다. 우선 첫째 집히는 것이 이 땅의 의료문화였다.

 

뒤에 안 일이지만 그의 병은 처음에 심한 감기 끝의 설사로 시작되었다. 감기약 복용에서 온 소화불량으로 알고 약방에서 설사 멎는 약을 부지런히 사 먹었으나 효험이 없었다. 그 후 한 달 보름 동안을 신약, 한약, 돌팔이 조제약 가릴 것 없이 설사에 좋다고 주위에서 소개하는 약이란 약은 다 먹었으나 설사는 멈칫 멈칫 하다가 계속됐다. 이웃이나 친구들이 간혹 병원에 가보라고 권유를 안 한 바도 아니었지만 평소에 아침조깅이나, 초기 축구, 베드민튼, 낚시 등을 열심히 하며 건강에 남달리 자신감을 가진 탓인지 들은 척도 않고 설사약만 계속 먹어댔다. 여기엔 집안의 직계 어른들이 한 분도 안 계시고 다 돌아가신 점, 그리고 남은 피붙이들이 천리나 멀리 떨어져 사는 탓에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를 오랫동안 감감 모르고 있었다는 점도 한 몫 했다. 또 남에게는 물론 피붙이들에게까지 자기 약점을 여간해서 보이기 싫어하는 그의 성격도 일을 그르치는데 기여했다. 아무한테도 알리지 말라는 당부를 시도 때도 없이 하더라는, 그래서 그렇게 했다는 고지식하기 짝이 없는 그의 안식구의 말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를 1개월 보름 동안이나 병원에를 가지 못하게 한 것은 병이 나면 으레 병원에 갈 생각은 않고 우선 자가진단을 거쳐 약부터 사 먹고 보는 뿌리깊은 이 땅의 의료문화가 아니었던가 한다. 여기엔 신의학이 들어오기 전 재래의 한의원이 병원과 약국을 겸했던 데서도 원인이 있겠고, 신식 약국이 웬만한 치료행위까지 서슴없이 해대는 관행과 또 병원에 한번 가기가 여간 번거롭지 않고 시간을 많이 빼앗기는 현실(공교롭게도 병원 폐업사태와도 겹쳤다.)에도 원인이 있겠다. 병원에 입원하기까지 회사는 하루도 빠짐없이 나갔다고 하니 병원에 간다고 시간 빼먹는 것을 싫어하는 우리 나라 근로관행과 그의 고지식한 성실성에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결국 한 달 보름동안 이름도 출처도 애매한 "설사약"을 계속 먹어해 댔으니 말하자면 간 질환과 상극인 독소들을 마구 투여하고 있었던 셈이었다.

 

다음으로는 문제의 "건강식" 투여였다. 이것 역시 그릇된 의료문화다. 그의 형처럼 그도 오만가지 "건강식"을 시식한 후에 저 세상으로 간 셈이었다. 그래도 그의 형은 의사의 "선고"가 내린 후에 "건강식"을 시작했으니 "선고" 이전에 "건강식"을 시작한 동생의 경우보다 차라리 나은 편이었다. 몸무게가 7kg이나 빠진 후 인근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는 분명히 간경화 초기라는 진단을 내렸다. 그 때쯤만 해도 의사도 심각하게 생각하는 기색이 아니었고, 본인이나 가족들도 그로부터 2개월 보름 후에 벌어질 운명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한 보름여 병원치료를 받고 있던 중 "암을 이기는 방법"인가 뭔가 하는 책 뒷 표지에 나온 달콤한 내용의 광고에 속아 "() 청소제"라는 것을 의사 모르게 투여하기 시작했다. 더욱 기막히는 일은 "간을 깨끗이 청소한 후에 약을 먹어야 효험이 있기 때문에 당분간 병원약을 안 먹는 것이 좋다."는 외판사원의 말을 곧이듣고 20여일 병원치료를 끊은 점이었다. 보름치에 70만원, 2차례를 청소해야한다고 했으니 기간은 한 달이고 그 비용은 140만원인 셈이었다. 뒷날, 먹다 남은 문제의 그 "청소제"를 조사해 보니 영어로 된 이름의 노란색과 푸른색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액체와 진공비닐포장을 한 육골즙이었다. 종이상자에는 서울 모처에 있는 XXX 한의원이라고 쓰여있었다. 전화를 해보니 보건복지부 승인을 받은 "건강식품"이라고 했다. 왜 병원약을 끊도록 유도했느냐고 했더니 자기들 외판사원은 절대로 그러는 법이 없다고 딱 잡아떼었다. 유사품 운운하며 문제의 그 "청소제"를 자기 회사제품이 아닐 거라고까지 했다. 결국 병원치료를 끊은 지 20여일 만에 상태가 점점 나빠져 간질환치료에 소문이 난 항구의 어떤 큰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됐다.

 

그런데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병원은 전공의들이 파업 중이었고 유명하다는 그 과장 의사만이 한번씩 얼굴을 보일 뿐 줄잡아 100여명의 각종 간 질환 환자들에게 간호원들만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그 과장의사는 치료에 차질이 없다고 단언하고 있었지만 환자 가족들은 영 맘이 놓이질 않았다. 그렇다고 섣불리 다른 곳으로 옮길 수도 없었다. 서울의 유명하다는 병원에 예약을 하려고 했더니 한 달 후에나 짬이 난다는 대답이었다. 그냥 응급실로 쳐들어갈까 해봤지만 그 곳도 전공의들이 파업하긴 마찬가지여서 사정이 이 곳과 다를 것이 없겠고 또 이 병원도 간 질환 치료에 소문이 난 곳이어서 불만스럽지만 참기로 했다. 가족들 말에 의하면 처음 정밀진단을 한 후 의사의 결론은 그렇게 비관적이지 않았고 "열심히 치료를 하면 길이 있지 않겠느냐."였다고 한다. 열흘 남짓 치료를 받은 후 의사의 권고에 따라 일시 퇴원을 했다. 집에서 처방약은 계속 먹고, 한번씩 통원치료를 하고, 그리고 "복수가 완전히 빠지면 조직검사를 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던 것이 퇴원한지 보름쯤 지난 후 상태가 극도로 악화되어 재입원을 한다는 통보가 친지들에게 왔고, 부랴부랴 친지들이 문병차 달려 내려가 의사를 만난즉 "전혀 치유가망이 없으니 포기하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 뱉는 것이었다. 이게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가? 이 병원에 처음 입원했을 때만 해도 의사는 분명히 희망적인 말을 했다고 한다. 퇴원한 보름 동안에 가족들이 또 고약한 "건강식"이라도 대량 투여하여 사태를 악화시켰단 말인가? 가족들은 그런 적이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당초 병원에서 오진을 했거나 치료를 제대로 안 했거나 했단 말인가? 의사는 처음부터 가망이 없는 상태였다고 가족들의 전언과는 다른 말을 했다.

 

아무튼 이렇게 어어! 하다가 사람을 보내버리고 말았다. 마지막 이틀간(이 때는 이미 현주소지 도시의 역시 이름난 병원으로 옮겼다.)은 필자도 직접 목격한 바였지만, 참으로 분통터지는 일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냥 방치상태라고 하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가족들 말에 의하면 앞서의 병원에서도 내내 그 모양이었다고 한다. 의사는 아침나절에 간호사들만 대동하고 한번 다녀가면 하루 종일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고, 가래가 많으니 제거해 달라고 하면 간호사가 어디다 전화를 한 후 빼 주고, 간장을 한번 시켜보면 어떠냐고 하면 또 간호사가 어디다 전화를 한 후 간장을 시켜주고 하는 식이었다. 가족들이 요청하지 않으면 링거 갈아주는 것 외엔 병원에서 하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 지금까지 정말 병원에서 제대로 치료나 받았는지 의아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혼자서 100여명의 환자를 돌보려니 그저 형식적인 대응을 했고 그 바람에 살릴 수 있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불현듯 들기도 했다. 그러나 무슨 방법으로 그것을 증명해 내랴. 이미 사람은 가버렸고, 그런 얘기로 유가족의 슬픔을 자꾸 되살리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고, 또 미망인도 무얼 따지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어서 "간 청소제"는 꼭 문제를 삼아보고 싶은 맘을 그냥 꾹 참고 발길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땅의 비뚤어진 의료문화와 이번의 의료파업이 아까운 생명을 죽게 한 것 같은 생각을 자꾸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