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26일 -
에머지)
선생님, 당초에 그 돈 타 오실 적에, 선뜻 반 뚝 잘라서 북한주민 돕기에 내어놓으실 줄
알았습니다. 하도 선생님께서 북한을 도와줘야 한다고 해 샀기에 말입니다. 정일이 주머니에 넣어 준다면야 선생님께서도 너무 노골적인
것 같아 좀 메슥메슥 하실거고, 또 더러 욕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테지만, 북한주민 돕는 데야 누가 뭐라 했겠습니까. 선생님
체면도 세우고, 또 상 탄 은공도 갚고 일거양득 아니었겠습니까. 결국 정일이 주머니에 들어가더라도 말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몽땅 무슨 재단이라는 곳에 넣어버렸습니다. 말하자면 오른쪽 주머니 것을 왼쪽 주머니에 넣으신 것입니다. 그때만 해도 그 재단은 선생님
것이었으니까요. 거 참 이상하다. 그러실 분이 아닌데... 그렇다면 북한 돕는다는 말 몽땅 거짓이고 위선이었단
말인가. 기천원이면 북한주민 몇사람을 며칠간 연명할 수 있다고 해샀던 때여서 선생님 처사가 너무나 야속해 보여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역시 이 사람은 머리가 나쁜 모양입니다. 선생님이 나랏돈으로 그렇게 팍팍 북한에 돈벼락 안겨주는 줄도
모르고 상금 몇 억원 내놓지 않는다고 야속이니 어쩌니 했으니 말입니다. 이까짓 몇 억원이 문제냐...... 선생님의 높으신 뜻
그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선생님은 역시 선생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엊그제 신문 보니까 선생님이 왼쪽
주머니에 넣었던 그 돈 또 도루 오른 쪽 주머니로 옮겼더군요. 이건 또 무슨 조환가 싶어, 머리 나쁜 이 사람, 한참 또
생각을 했습니다. 오라 왼쪽 주머니가 빵꾸가 난 게로구나. 그 재단을 어느 대학인가에 기증한다 어쩐다 해 샀으니
말입니다. 그러시다면, 선생님 이름까지 가져 가셔야지요. 이 사람 듣기엔 영문으로 된 그 재단 이름에 선생님 이름이 들어 가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설마 돈도 이름도 모두 탐이 나신 것은 아닐테니까요.
선생님, 아무리 그렇기로소니,
어찌 일단 넣었던 돈을 도루 가져가십니까? 준 것 뺏어가는 것만큼 치사한 것 없다는 속담 비슷한 말도
있던데........ 새삼스레 북한에 보내려고 가져가신 건 아닐테고, 옛날 누구처럼 졸개들 데리고 폼 재기 위해 가져가신 것도
아닐테고, 혹시 불쌍한 남한사람 도와 줄 원대한 계획이라도 있으십니까? 그렇지 않고야, 고대광실 높은 집에 나랏돈으로 비서관
경호원 데리고, 나랏돈에서 품위유지비 풍족하게 받아가며 사실 선생님께서, 무엇 때문에 또 돈이 필요하겠습니까? 설마 손주들 줄
용돈 모자라 가져가신 건
아닐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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