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 가는대로

상금 13억

이강기 2015. 9. 9. 11:22
 
상금 13억
(2003년 4월26일 - 에머지)

선생님,
당초에 그 돈 타 오실 적에, 선뜻 반 뚝 잘라서
북한주민 돕기에 내어놓으실 줄 알았습니다.
하도 선생님께서 북한을 도와줘야 한다고 해 샀기에 말입니다.
정일이 주머니에 넣어 준다면야 선생님께서도 너무 노골적인 것 같아
좀 메슥메슥 하실거고, 또 더러 욕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테지만,
북한주민 돕는 데야 누가 뭐라 했겠습니까.
선생님 체면도 세우고, 또 상 탄 은공도 갚고 일거양득 아니었겠습니까.
결국 정일이 주머니에 들어가더라도 말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몽땅 무슨 재단이라는 곳에 넣어버렸습니다.
말하자면 오른쪽 주머니 것을 왼쪽 주머니에 넣으신 것입니다.
그때만 해도 그 재단은 선생님 것이었으니까요.
거 참 이상하다. 그러실 분이 아닌데...
그렇다면 북한 돕는다는 말 몽땅 거짓이고 위선이었단 말인가.
기천원이면 북한주민 몇사람을 며칠간 연명할 수 있다고 해샀던 때여서
선생님 처사가 너무나 야속해 보여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역시 이 사람은 머리가 나쁜 모양입니다.
선생님이 나랏돈으로 그렇게 팍팍 북한에 돈벼락 안겨주는 줄도 모르고
상금 몇 억원 내놓지 않는다고 야속이니 어쩌니 했으니 말입니다.
이까짓 몇 억원이 문제냐......
선생님의 높으신 뜻 그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선생님은 역시 선생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엊그제 신문 보니까
선생님이 왼쪽 주머니에 넣었던 그 돈
또 도루 오른 쪽 주머니로 옮겼더군요.
이건 또 무슨 조환가 싶어,
머리 나쁜 이 사람, 한참 또 생각을 했습니다.
오라 왼쪽 주머니가 빵꾸가 난 게로구나.
그 재단을 어느 대학인가에 기증한다 어쩐다 해 샀으니 말입니다.
그러시다면, 선생님 이름까지 가져 가셔야지요.
이 사람 듣기엔 영문으로 된 그 재단 이름에
선생님 이름이 들어 가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설마 돈도 이름도 모두 탐이 나신 것은 아닐테니까요.

선생님, 아무리 그렇기로소니,
어찌 일단 넣었던 돈을 도루 가져가십니까?
준 것 뺏어가는 것만큼 치사한 것 없다는
속담 비슷한 말도 있던데........
새삼스레 북한에 보내려고 가져가신 건 아닐테고,
옛날 누구처럼 졸개들 데리고 폼 재기 위해 가져가신 것도 아닐테고,
혹시 불쌍한 남한사람 도와 줄 원대한 계획이라도 있으십니까?
그렇지 않고야,
고대광실 높은 집에 나랏돈으로 비서관 경호원 데리고,
나랏돈에서 품위유지비 풍족하게 받아가며 사실 선생님께서,
무엇 때문에 또 돈이 필요하겠습니까?
설마 손주들 줄 용돈 모자라 가져가신 건 아닐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