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 일본의 부활” 역자후기
이 책은 얼핏 보면 메이지 유신 때부터 고이즈미 정부에 이르기까지의 일본의 대외관계, 특히 미.일 관계를 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일본외교사 내지 미.일 관계사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 관계에 따른 일본과 일본인의 변화와 대응, 심리적 갈등 등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있어 역시 “일본.일본인론”에 관한 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유신 선포 후 메이지 지도자들이 강대국들과 맺은 불평등조약을 개정하려고 했을 때, 그들은 일본이 문명의 표준에 맞게 제도를 개혁해야만 그것이 가능하다는 말을 듣는다. 그로부터 1894년, 조약이 개정될 때까지 25년 동안 일본의 지도자들은 부지런히 거의 모든 제도와 법률을 서구의 표준에 맞게 뜯어 고친다. 조상전래로 내려오는, 마땅히 장려해야할 아름다운 풍속마저 가차 없이 버린다.
그들이 얼마나 ‘게걸스럽게’ 서구의 것을 모방했던지 당시의 조선 사람들은 일본을 비웃으며 부산의 일본인 거류지(왜관) 담벼락에다 이런 벽보를 붙였다.
“일본인은 외국의 제도를 채용하면서 그들의 관습은 물론 모습까지 바꾸는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더 이상 그들을 ‘일본인’으로 취급하지 않을 참이다.”
또 이런 에피소드도 있다. 1891년 일본을 방문한 영국 시인 에드윈 아널드 경이 일본인의 전통적인 심미안에 감탄한 나머지 일본의 언론인, 정치가, 관리들을 모아놓고 다음과 같은 연설을 한다.
일본은 내가 항상 그리던 이상향에 아주 근접한 나라로 보입니다. 가마쿠라와 니코의 아름다운 전원풍경을 배경으로 사원의 뜰과 요정 같은 정원 연못에 가득한 수련, 위엄 있는 삼나무 가로수 길, 섬뜩하면서도 공상에 잠기게 하는 신사(神社) 경내, 찻집의 하얀 다다미, 근사한 저잣거리, 잠자는 것 같은 호수, 장중한 산들.............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의 유럽적인 삶의 혼란과 비속(卑俗)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 그러나 내가 이 곳에서 후지산보다 더 놀랍고, 자수를 놓고 금박을 한 비단보다 더 아름답고, 미려하게 조각한 모든 상아제품보다 더 귀중하고, 칠보법랑(七寶琺瑯)보다 더 우아하다고 생각한 것은,,,,,,,,거의 신성할 정도로 상냥한 일본인의 기질입니다. 솔직히 나는 이런 점에서 일본을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높이 평가합니다. .......... 제발 부탁입니다만 여러분, 이 같은 민족적인 특성을 오래 오래 보존하십시오. 이것은 여러분이 수입한 것이 아니고, 그리고 참 안된 일이지만 절대로 수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널드의 찬사는 그가 기대했던 전혀 ‘상냥한 기질’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교양 있는 일본인은 그들의 과거와 관계를 단절한 사람들이며 지금까지와는, 그리고 부분적으로 현재와는 다른 어떤 사람, 어떤 것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아널드가 연설한 이튿날 어떤 일본신문이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아널드 경이 진짜 말하고자 한 것은 칭찬이 아니라 일본인의 의기소침한 성향을 비난한 것이다. 예술이니, 경치니, 상냥한 기질이나 하며 늘어놓고 있는데, 한심한 생각이 든다. 왜 아널드 경은 우리의 거대한 기업, 상업적 재간, 부와 정치에 대한 명민성, 강력한 군사력에 대해선 칭찬하지 않을까? 물론 그가 솔직하게 그런 말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우리의 진정한 가치를 평가해 보고 사실상 우리가 아주 약골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청일전쟁의 승리로 할양받은 라오동반도를 ‘삼국간섭’으로 결국 러시아에게 빼앗기면서 일본은 현대 외교사에서 가장 충격적이고 잊기 어려운 치욕과 고립감을 느낀다. 이때부터 일본의 대외관계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어느 정도 국내제도 정비를 끝내고 국력을 쌓았으니 이제 강대국들과 대등한 입장에서 세계경영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우선 치욕을 안겨준 러시아에 복수하기 위해 절치부심 대러 전쟁을 준비하면서 영일동맹을 맺는다. 이른바 세계 최대강국과 손을 잡는 ‘기회주의적’ 본성이 이때부터 드러나기 시작한다. 1922년 영일동맹이 영국측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폐기된 후 한동안 별 내키지 않은 워싱턴 체제에 의탁하다가 다시 1936년부터 1945년까지 독일과, 그리고 1952년엔 미국과 동맹을 맺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본은 변신(기회주의적 대응)의 귀재다. 그것도 아래로부터의 사회변혁을 통한 변신이 아니라 위로부터의 인위적인 변신이다. 다이묘에 충성하던 봉건주의에서 황제숭배(메이지유신)로, 민주주의(다이쇼 데모크라시)로, 무지막지한 군국주의(일본.독일.이탈리아의 3국동맹)로, 그리고 다시 자유민주주의(미군점령)로 표변해 왔다. 국민이 하자고 해서 한 것이 아니다(일본에는 진정한 의미의 사회혁명이 없다). 지도층에서 ‘세카이노 다이세이(세계대세)’에 맞춰 그렇게 한 것이다. 그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것이 바로 이 ‘세계대세’이다. 일왕의 항복칙서에서도 이 “세계대세‘ 때문에 부득이 종전을 선언하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가 서두에 나온다. 일왕(지도층)의 ’종전‘이라는 말 한마디에 어제까지 결사항전이니 1억 옥쇄니 하며 철천지원수로 여기던 미군의 점령을 얌전하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또 다른 대변신을 시작한다.
”일본인은 자존심이 강하고 자주적이며 용기 있는 국민이다.“ ”일본인은 사람을 당황하게 하는 복잡성과 모호성을 가진 국민이다.“ ”패전국민으로서 일본인은 선례가 없을 정도로 공손한가 하면 불온하고 거만하며, 그들의 행동이 비길 데 없이 고루한가 하면 그들 자신을 극단적으로 쇄신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일본인은 새로운 경향이 나타나면 그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너무 늦기 전에 그것에 탐닉하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낀다.“ ”일본인의 사고방식은 원칙보다는 오히려 상황에 의존한다........중국인과는 전혀 반대다......일본인에게는 원칙이 없다.“ 이런 일본인관이 이 책에는 수없이 나온다.
이 책은 또한 일본인들이 서구에는 저자세로 대하면서 이웃나라들은 얼마나 경멸했는지도 분석하고 있다. 탈아입구(脫亞入歐)라는 것부터가 일본인이 아니고는 생각하지 못할 일이다. 그들은 한국이나 중국을 ”좋지 않은 무리“로 보고 그 무리에 섞이게 되면 나쁜 평판을 얻을까봐 그들과 절교하고 싶다고 했다. 외무장관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는 일본법을 서구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말끝에 ”결국, 우리 일본국민을 조선식 법과 공판에 따르게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하며 하필이면 애꿎은 조선을 끌어 들였다. 조선의 법이 후진국 법의 대표적인 사례라는 투다. 1893년 《고꾸민노 도모(국민의 벗)》라는 잡지는 세계 국가들을 존숭 순위로 서열을 매겼다. 일등국은 미국과 같이 강력하고 문명화한 국가, 이등국은 문명을 뒤떨어지지만 야만적인 힘과 정복욕 때문에 존경심을 강요하는 러시아와 같은 국가, 그리고 최하위 3등 국가는 문명도 야만적인 힘도 없는 이집트와 조선 같은 국가라고 했다.
일본 정치 지도자들의 망언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국회 의사진행 발언 중에 자민당 지도자인 시이나 에스사부로(椎名悅三郞)는 주일 미군주둔군을 일본을 지키는 ”번견(방켄: 집지키는 개)“이라 불렀다. 다른 의원이 시이나에게 미국을 ’개‘라고 호칭하는 것은 무례하고 모욕적인 언사가 아니냐고 질문하자, 시이나는 조롱조로 이렇게 사과 답변을 했다. ”미안합니다. 그들은 번견님(방켄 사마)입니다.“ 상대가 미국이 아니고 한국이었다면 아마도 한동안 온 나라가 시끄러웠을 것이다.
이 책은 이런 에피소드들을 포함하여 역사적인 대사건들과 세계 유수의 학자, 외교관, 정치가, 언론인, 문인들의 일본에 관한 언설을 반추해 가며 일본은 과연 어떤 나라이며 일본인은 과연 어떤 사람인지를 진지하고 집요하게 그리고 철저히 규명하고 있다. 또한 미래에 올 통일한국의 위상과 그로 인한 동아시아의 역학관계, 통일 후의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의 미래, 중국의 부활로 인한 동아시아의 미래에 대해서도 총 3장(章)을 할애하여 분석과 전망을 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더욱 폭넓은 이해를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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