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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붕괴 후 그 많던 공산주의자들 어디로 갔나?

이강기 2015. 8. 30. 11:45
소련 붕괴 후 그 많던 공산주의자들 어디로 갔나?

구소련 체제전환 후 자살한 사람 단 2명

[2005-06-01 12:07]

 

 

공산주의 체제 몰락 직후인 1991년 9월 러시아는 시끄러웠다.

그 중에서 드루니나(Drunina) 시인의 자살 사건은 러시아인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드루니나는 러시아에서 인기 있는 여류 시인이었다. 그는 자살 이유를 유서에 뚜렷이 설명했다. 그 이유는 “공산주의와 공산당에 대해 충성한 사람으로서 소련의 몰락을 견딜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무렵 또 한 사람이 자살했다. 소련 군부의 실력자 아흐로메에프 (Ahromeev) 원수였다. 이유는 드루니나와 비슷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공산주의를 위해 죽은 사람은 없었다. 2천만 명에 달했던 소련공산당원 중에는 공산주의 몰락을 환영한 사람들이 많았다.

1950년 이전과 이후

1950년대 이후 공산당에 입당한 것은 정치적인 의미가 별로 없었다. 당원 중 국가에 충성한 사람이 있었지만, 그들도 공산주의 사상보다 초강대국이 된 소련의 국력을 중시했다. 그러나 구 숫자도 많지 않았다. 공산당 입당은 주로 ‘기회주의’의 일환이었다.

자살한 드루니나 시인과 아흐로메에프 원수는 둘 다 2차대전 때 자원 입대하여 전선에서 입당한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의 세대, 즉 1925년 이전에 태어나 전쟁을 경험한 세대는 공산주의와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비교적 강했지만 이후 세대들은 그렇지 않았다.

1950년대에 들어와 ‘당원증’은 출세를 위해 필요한 조건이었다. 사회적 성공 욕구가 강한 사람들은 입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출세를 위해 당원이 되었는데, 80년대 말 공산당 체제가 비틀거리자 원래도 별로 믿지 않던 공산주의 사상을 헌 옷처럼 벗어 버렸다.

진성당원도 공산주의 환상 버려

그러나 공산당에 기회주의자들만 들어갔다고 하면 지나친 말이다. 그 중에 공산주의 사상이나 공산주의로 상징되는 국가체제를 진실로 믿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면 91년 공산체제 몰락 이후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의 운명은 다양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진실한 당원들도 새로운 역사적 경험 때문에 공산주의에 대한 환상을 버렸다. 그러나 이들을 공산주의자로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1991년 쿠데타 사건 이후 구소련 공산당은 활동이 금지되었다. 극우 세력이 공산당을 나치 독일의 민족사회당처럼 ‘범죄적인 단체’로 선언할 것을 요구했지만, 공산당 간부 출신들을 중심으로 한 옐친정권은 민주주의 원칙에 맞지 않다며 반대했다. 그 결과 91년 러시아연방 공산당(러공당)이 창당되었다.

처음부터 '노인정당'으로 출발한 러시아연방공산당

러시아에는 지금도 레닌주의 원칙을 따라 간다고 주장하는 정당이 20여 개 있다. 따라서 러공당이 유일한 공산당은 아니다. 하지만 러공당은 다른 공산주의 단체보다 지지율도 높고 당원 수도 훨씬 많다.

러공당 창당 무렵 당원 수는 구소련 공산당의 2%에 불과한 40만 명이었는데, 최근에는 대략 8만여 명 정도로 추정된다. 불과 14년만에 이렇게 대폭 줄어든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우선 여전히 공산주의 사상을 믿던 사람들이 세월이 갈수록 실망이 커지면서 당을 떠난 경우가 많았다. 또 창당 때 입당한 사람들 중 청년들이 거의 없었다. 당시까지 공산주의 사상에 환상을 유지한 사람들 대부분은 제2차 대전 무렵 세계관이 형성된 세대, 즉 60세 이상이었다. 그러니 애초에 ‘노인 정당’이었던 러공당이 세월이 갈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러시아 공산당 목표는 '강성대국'

러공당의 강령이나 간행물을 보면 민족주의 경향이 너무 두드러져 진짜 공산주의 정당으로 인정하기도 어렵다. 1930년대부터 스탈린 정권이 공산주의를 민족주의와 결합시키는 정책을 실시했는데, 1960-80년대의 소련식 공산주의는 세계혁명보다 ‘강성대국 건설’이 더 중요했다. 이미 권력을 잃어버린 러공당에서 이러한 경향이 더 뚜렷했다.

러공당은 개인소유를 부정하지 않고 있으며, 대신 “소유의 모든 형식은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러공당은 체제전환 후의 러시아 정부를 ‘친미괴뢰정권’으로 규탄하기도 했다. 또 세계 공산주의 혁명보다 러시아를 다시 초강대국으로 변화시키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이 때문에 러공당은 “전세계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라는 유명한 구호를 버리고, 그 대신 “러시아, 노동, 민권, 사회주의!”라는 구호를 기본원칙으로 삼고 있다.

사회주의 경험못한 신세대 극좌단체 늘어

러공당 외에 다른 수많은 공산당이나 좌파 단체들은 별로 힘이 없다. 그렇다고 러시아에 공산주의나 극좌운동에 완전히 미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러시아에는 러공당과 관련 없는 소규모 극좌단체들이 늘고 있다. 이 단체에 들어간 사람들은 사회주의를 경험하지 못한 20-25세 젊은이들이다.

그러나 공산주의 체제를 잘 기억하는 구소련 사람 대부분은 지금의 어려운 경제현실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가 복구되는 것을 바람직하게 보지 않는다. 재미있는 현상이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교수, 역사학 박사


<필자 약력> -구소련 레닌그라드 출생(1963) -레닌그라드 국립대 입학 -김일성종합대 유학(조선어문학과 1986년 졸업) -레닌그라드대 박사(한국사) -호주국립대학교 한국사 교수(1996- ) -주요 저서 <북한현대정치사>(1995) <스탈린에서 김일성으로>(From Stalin to Kim Il Sung 2002) <북한의 위기>(Crisis in North Korea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