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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 특사 사건으로 고종이
폐위당하고 맏아들 순종이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로 즉위하던 1907년. 10세의 영친왕 이은(고종의 일곱째 아들)이 황태자로 책봉됐다. 그는
곧바로 조선 통감 이토 히로부미의 압력에 의해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영친왕의 생모인 순헌황귀비 엄씨는 황태자가 방학 때마다 조선을 방문하는
조건으로 유학을 허락했다. 하지만 엄씨는 191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아들 영친왕을 다시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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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친왕(왼쪽에서 둘째)이 부인 이방자 여사(왼쪽에서 넷째)와 함께 군 부대를 시찰하고 있다(上). 영친왕은 1926년 순종이
승하하자 일제로부터 ‘이왕(李王)’으로 불렸다. 사진이 촬영된 1943년엔 일본군 중장 신분으로 사진에서도 군복 차림이다.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영친왕은 군부대와 학교를 돌며 군인과 학생들을 격려하는 등 일제의 선전 도구로 이용됐다. 일제의 압력을 받은 영친왕은 황태자가 되기 전
약혼한 민씨 처녀와 파혼하고, 일본 황족 출신의 나시모토 마사코(이방자)와 1920년 결혼식을 올렸다. 아래 사진은 결혼식 당시의 영친왕(左)과
이방자 여사(右)의 모습. 당시 각각 23세와 19세였다. [자료 촬영=임현동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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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서 망국의 한을 달래던 영친왕의 유품이 한국에 왔다. 그가 일본에서 살던 시절 입던 6점의 의복과 19장의
사진이 1일 숙명여대에 기증됐다.
이번에 숙대에 유품을 기증한 사람은 차길진 한국불교신문 사장. 그는 2003년 일본 궁내성
관리였던 지인에게 유품을 얻어 보관해 왔다.
그동안 영친왕의 유품은 서울대 박물관과 한국학 중앙연구소에 보관된 사진첩이 거의
전부였다. 일본 생활을 담은 사진과 의복은 이번에 처음 공개되는 셈이다. 사진 중엔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43년 영친왕 내외가 일본 군부대와
학교를 방문해 격려하는 장면들도 포함돼 있다. 망국의 황태자가 일본 군국주의 선전에 동원된 ‘가슴 아픈’ 증거다. 영친왕은 일본 패망 후인
63년 귀국해 70년 사망했다.
이충형 기자, 사진=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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