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문명의 흥망은 인간의
선택에 달렸다 재레드 다이아몬드, 강주헌 옮김, 『문명의
붕괴』(김영사, 2005)
[安秉稷 | 서울대 교수,
서양사학] |
人類
歷史에는 오랫동안 번성하며 창의적인 문명을 발전시킨 사회가 급속하게 종말을 맞고 사라진 사례가 드물지 않다. 12세기 중엽 캄보디아 북서부
앙코르 지역에 장대한 사원을 세운 크메르 왕국도 그 가운데 하나다. 15세기 멸망과 함께 앙코르와트 사원의 유적조차 정글에 묻힌 채 수세기 동안
잊혀졌던 이 왕국의 몰락 원인은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역사가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의 궁금증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수수께끼는 앙코르
왕국에 그치지 않는다. 태평양 東端의 孤島 이스터 섬에 정착한 폴리네시아인의 거석 문명, 미국 뉴멕시코 주 북서부 차코 캐니언을 무대로 한
아메리카 인디언의 아나사지 문명, 멕시코 유카탄 반도와 중앙아메리카 밀림 지대의 마야 문명, 그린란드 남서 해안을 개척한 바이킹의 식민지 문명
역시 한동안 전성기를 구가하다 갑작스럽게 소멸한 불가사의에 속한다.
『문명의 붕괴』는 이처럼 불가사의한 문명 붕괴의 사례를 대상으로
‘과거의 위대한 문명 사회가 몰락한 까닭은 무엇이며, 그들의 운명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하는 물음을 던지고 있다. 이 물음에
답하기란 대단히 어려워 보인다. 그린란드의 바이킹을 제외하고는 붕괴된 문명 사회가 문자 기록을 거의 남기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인 UCLA 대학 지리학 교수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는 동식물과 쓰레기의 화석, 나이테 등 생태고고학의 갖가지 자료를
활용함으로써 이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는 이런 고고학적 정보를 바탕으로 베일에 싸인 문명 붕괴의 원인과 과정에 대해 일관된 답을
제시한다. 이스터 섬의 폴리네시아인, 차코 캐니언의 아메리카 인디언, 온두라스 서부 코판 지역의 마야인, 그린란드의 바이킹 정착민들이 문명의
정점에서 급속하게 쇠멸의 운명을 맞았던 현상은 궁극적으로 그들이 문명을 발전시키며 초래한 環境 破壞에 공통적으로 기인한다는 것이다. 즉, 삼림과
초지 등 자연 서식지의 파괴, 토양의 침식, 동식물 자원의 남획 등이 인구 증가와 맞물려 가용 자원의 고갈을 가져왔고, 이것이 다시 전쟁과 내란
등 주민의 분열과 충돌에 의한 문명 사회의 붕괴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처럼 저자는 문명의 붕괴와 인간에 의한 환경 훼손 사이에
밀접한 關聯性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주장이 문명의 존속 여부가 단순히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는 환경결정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아울러 역설한다. 실제로 저자는 문명의 붕괴 현상을 설명하면서 문명 사회에 의한 환경 파괴 외에도 기후 변화, 적대적
이웃의 존재, 외부 세계의 우호적 지원, 환경 문제에 대한 문명 사회의 대응 등 여러 가지 복합적 요인을 고려한다. 나아가 그는 이 복합적 요인
가운데에서도 인간에 의한 환경 훼손 그 자체가 아니라 그에 대한 인간의 대응을 문명의 붕괴 여부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變數로 꼽고 있다. 달리
표현하면 모든 문명 사회가 환경 파괴에 의해 필연적으로 붕괴하는 것은 아니며 문명의 붕괴는 한 사회의 선택 결과라는 것이다.
저자는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 정착민의 비교를 통해 이를 예증한다. 저자에 따르면 그린란드 정착민의 운명은 환경 파괴에 대한 그들의
대처방식에 의해 결정되었다. 그린란드의 바이킹 후손들은 기독교도이자 유럽인으로서의 자기정체성에 집착했고, 그 때문에 異敎徒인 이누이트족에게서
파괴된 환경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법을 배우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린란드의 정착민이 생존에 위협이 될 만큼 심각하게 훼손된 환경에서도
변화를 거부하는 보수적인 태도로 파국을 맞았다면 아이슬란드의 정착민은 달랐다. 그들은 정착지가 거의 불모의 땅이 될 정도의 극심한 환경 위기를
경험한 뒤 삼림을 조성하고 가축의 방목을 제한하며 수산 자원의 남획을 방지하는 등 갖은 노력을 통해 취약한 환경에서도 생존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린란드의 이누이트족과 아이슬란드인은 혹독한 환경에서도 인간 사회가 존속할 수 있음을 증명해 보임으로써 환경 문제에 대해
希望의 메시지를 전해 준다. 그 점에서 저자가 환경 문제의 해결에 실패한 사례 못지않게 성공한 사례에도 주목하는 것은 당연하다. 저자가 주목하는
성공 사례는 상호 대조적인 두 유형으로 나눠진다. 그 하나는 오스트레일리아 북부의 뉴기니 섬과 남서태평양의 작은 섬 티코피아의 사례처럼 환경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주로 ‘아래로부터’, 즉 일반 주민에게서 나타나는 경우다. 뉴기니 고원지대 주민은 수직적 배수로를 포함한 일련의
營農법과 계획적인 造林을 통해 토양의 비옥도를 유지함과 동시에 목재와 연료 문제를 해결했고, 아울러 인구 증가를 억제함으로써 무려 7,000년
동안 지속 가능한 농경을 유지해 왔다. 티코피아의 주민 역시 육상·수상 자원을 세밀하게 관리하여 지속적으로 식량을 확보했으며, 피임, 낙태,
자살 등 다양한 인구조절 방법을 통해 작은 섬의 인구 과밀 현상을 막았다.
환경 문제의 해결에 성공한 또 하나의 유형은
‘위로부터’의 대응이라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로 일본이 거론된다. 도쿠가와 시대에 접어들어 급속한 인구 증가와 경제 성장에
따라 식량 부족과 삼림 파괴의 위기가 나타나자 쇼군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 권력은 과학적인 조림과 엄격한 산림 관리, 자원의 수입과 대체 등의
방법을 통해 효과적으로 對應했다.
『문명의 붕괴』는 과거 문명의 붕괴 혹은 존속의 이야기에 이어 ‘이 책의 궁극적인 목적’, 즉
‘이런 교훈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우선 저자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지구상의 여러 문명이
환경 파괴로 인해 붕괴에 이를 수 있음을 경고한다. 그는 아프리카의 르완다, 카리브 해의 도미니카와 아이티, 중국, 오스트레일리아 등의 구체적
사례를 중심으로 삼림 파괴, 토양 침식, 대기 및 수질 오염, 기후 변화, 인구 과잉 등으로 현대 사회가 얼마나 심각한 위기 상황에 당면하고
있는지 자세하게 논의한다. 저자는 특히 르완다의 사례에 주목한다. 저자에 따르면 르완다의 사례는 환경 파괴가 한계를 넘어설 경우 맬서스적 災殃이
현실화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것으로서, 1990년대 약 100만여 명이 희생된 대량학살의 배경에는 종족 간의 갈등과 증오 외에도 환경 파괴와
과잉 인구에 의한 인구 압력이 작용했다.
이처럼 환경 파괴가 전쟁과 내란 등 문명 사회의 내부 분열과 갈등으로 이어지는 패턴은
과거와 현대 사회가 유사하다. 그러나 현대 사회가 당면한 환경 문제에는 과거와 다른 점도 있다. 그 하나는 오늘날 문명의 수준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진 만큼 그것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과 충격도 엄청나게 커졌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오늘날에는 지구상의 어떤 사회도 과거의
이스터 섬이나 마야 왕국처럼 세계의 다른 지역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홀로 붕괴할 가능성은 없다는 점이다. 훨씬 더 많은 인구와 훨씬 더
강력하면서도 파괴적인 테크놀로지, 한 사회의 문제가 전 세계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相互 關聯性 등 과거와 현대 세계 사이의 이 중요한
차이점들을 강조하는 저자는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환경론자의 경고에 이런저런 반론을 제기하는 ‘낙관주의자’를 조목조목
비판한다.
그럼에도 미래에 대한 저자의 전망은 결코 비관적이 아니다. 오히려 저자는 ‘신중한 낙관주의자’다. 문명의 붕괴는 환경
파괴가 아니라 환경 위기에 대한 인간의 대응 결과였음을 강조하는 저자는 환경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한 여러 사례에서 희망과 영감을 찾고자 한다.
즉, 과학적인 조림과 엄격한 산림 보호 정책을 시행한 도쿠가와 일본의 쇼군, 독재자였지만 신념에 찬 환경보호주의자였던 도미니카 공화국의 발라게르
대통령, 일찍부터 강력한 산아 제한 정책을 실시한 중국의 지도자에게서 통찰력을 지닌 강력한 리더십의 전례를 발견한다. 또 생태 파괴적인 돼지의
사욕을 포기한 티코피아의 주민, 토양 보호를 위해 목양을 제한하는 아이슬란드와 오스트레일리아 농민에게서는 미래를 위해 과감하게 전통을 포기하고
변화를 두려워 않는 용기를 통해 환경 재앙을 예방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한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문명의 붕괴』는 정확히 말해
‘文明’보다는 ‘環境’을 주제로 한 책이다. 그럼에도 흔히 접할 수 있는 극단적인 환경결정론자나 비관론자의 책은 아니다. 인간의 의지와 선택을
강조하는 저자의 입장은 유연하다. 그 유연함이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설파하는 저자의 논지에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힘을 실어
준다.
이 책이 호감을 주는 데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 저자의 탁월한 글 솜씨도 한 몫 한다. 과거 문명 사회에 대한
역사적 지식과 생태과학적 지식을 접목해 쉽고 흥미진진하게 서술하는 능력은 이 책이 거둔 대중적 성공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보여 준다. 우리말
번역도 유려하고 흠 잡을 데가 별로 없다. 그래선지 7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임에도 별 부담스럽지 않게 읽을 수 있다. 『문명의 붕괴』는
역사나 환경 어느 주제든 관심 있는 이에게 망설임 없이 추천할 만한 책이다.<시대정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