出版, 冊, 讀書

책과 계몽은 혁명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이강기 2015. 9. 7. 14:40
책과 계몽은 혁명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책과 계몽은 혁명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서적사회학자 로제 샤르티에

  •  

프랑스의 서적사회학자 로제 샤르티에(Roger Chartier)는『사생활의 역사 3― 르네상스부터 계몽주의까지』(이영림 옮김, 새물결, 2002) 1부 ‘근대성의 상징들’에 실린 「글의 관행들」에서 묵독에 주목한다.

독서의 역사에서 소리 내어 읽는 것은 잠자코 눈으로 읽는 것보다 앞선다. 어렵게 말하면, 음독(音讀)은 묵독(?讀)에 선행(先行)한다. 프랑스의 서적사회학자 로제 샤르티에(Roger Chartier)는『사생활의 역사 3― 르네상스부터 계몽주의까지』(이영림 옮김, 새물결, 2002) 1부 ‘근대성의 상징들’에 실린 「글의 관행들」에서 묵독에 주목한다.

16~18세기 서양에서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글을 읽을 수 있게 되면서 새로운 독서형태들이 나타나는데, 이 중 가장 독창적인 것은 공동체를 벗어나 은밀한 곳에서 이뤄지는 나만의 독서였다. 또 이러한 독서형태의 개인화는 근대문화가 이룩한 주요 변화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이런 변화를 가능하게 한 조건은 무엇이었는지 샤르티에의 설명을 듣자.

“무엇보다 먼저 새로운 능력을 갖추어야만 했다. 그것은 텍스트를 크거나 작은 목소리로 낭독할 필요 없이 읽을 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도서관이나 다른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소와 같은 집단적인 공간에서 글을 읽을 경우, 글을 읽는 이는 이런 독서 방식에 의하지 않고는 공동체의 통제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또한 오직 이런 독서 방식을 통해 읽는 이는 자신이 읽은 것을 즉각 내면화시킬 수 있었다.”

묵독은 그런 방법을 터득한 독자에게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펼쳐 보인다. 묵독은 첫째, 지적인 작업을 급격히 변모시켰고, 지적인 작업을 개인의 내면적인 행위로 만들었다. 둘째, 개인적인 신앙심과 사적인 경건성을 더욱 진작했으며, 몇몇 사람에게는 성경이나 신앙서적에 대한 깊이 있는 독서를 통해 믿음을 굳건히 하는 기회를 주었다. 셋째, 과거에는 금지되었던 대담함을 허용하기도 했다. 그 결과로 이교적인 텍스트가 유통되고, 비판적 사상이 표현되었으며, 외설서적이 유행한다.

샤르티에는 인쇄술의 발명을 일종의 ‘혁명’으로 볼 수 있다고 하면서도 이에 대해 유보적이다. “인쇄술의 발명이 지적이고 감정적인 변화까지도 초래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읽혀진 글이 필사본이건 혹은 인쇄물이건 이에 관계없이 인간 내면의 변화는 글을 읽는 새로운 방식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묵독이 더 많은 사람들, 적어도 엘리트층에게 보급되고 나아가 개인의 경험과 사회성의 중심이 되면서 책은 새롭게 형성된 사생활의 동반자라는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서가를 가질 만한 여유를 지닌 사람들에게 그곳은 매운 훌륭한 은둔처이자 서재 그리고 명상의 공간이었다.”

이러한 사례의 하나로 샤르티에는 몽테뉴를 든다. “몽테뉴의 서재는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이자 은둔자에게는 여러 가지 능력을 부여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 능력이란 식솔과 하인들에 대한 지배권이자, 시야에 펼쳐진 자연을 관찰하는 조망권이자, 책 속에 담긴 지식을 한눈에 파악하는 직감력이다.

다섯 권으로 된 『사생활의 역사』 시리즈의 책임 편집자는 프랑스의 중세사학자 조르주 뒤비와 심성사를 근본적으로 혁신한 필립 아리에스다. 샤르티에는 르네상스에서 계몽주의까지의 시기를 다룬 3권의 편집을 맡았다.

로제 샤르티에와 이탈리아의 그리스 고문서학자 굴리엘모 카발로가 엮은 『읽는다는 것의 역사』(이종삼 옮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06)는 책의 형식과 그것을 읽는 방식이 시대마다 다르다는 점을 바탕에 깔고 있다. “책 형태의 변화와 독서습관의 변화는 마땅히 서로 보조를 맞춰 진행되었다.”

또한 “어떤 국가에서도, 어떤 언어나 문화 단위지역에서도 독서실행은 본질적으로 그 지역의 역사진행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머리말에서 두 사람은 “텍스트는 독서를 원활하게 해주는 지지기반이 변화할 때마다 새로운 의미와 다양한 지위가 부여된다고 정의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독서는 또한 특정한 행위와 공간 및 습관 속에서 구체화된 실천이라 할 수 있다. 독서를 인류학적 불변사항으로 간주하고 그 구체적인 양식을 부정하는 현상학적 접근과는 거리를 두어야 하며, 독자공동체, 독서전통, 독서법에 대한 특유의 여러 조건을 분명히 확인하여야 한다.”

이에 따라 “독서와 독자의 장기간에 걸친 역사는 텍스트를 이용하고 이해하며 소유하는 방법의 역사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독서의 역사는 묵묵히 눈으로 읽는 현대적인 독서법의 계보에 한정돼서는 안 되며, 무엇보다도 독서에서 잊혀진 행위와 사라진 습관을 찾아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것은 중요한 역사적 과업이기도 한데, 그 이유는 “한때는 일반적인 독서법이기도 했던 먼 옛날의 이색적인 독서 모습만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독자들 사이에서 사용되지 않는 독서법을 위해 만들어진 텍스트의 원초적인 특유한 상태를 더 명확히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샤르티에와 카발로는 이 책을 통해 “각 연대별로 서양세계의 독서실행을 변형시킨, 그리고 책과의 관계를 변형시키기 위해 그런 실행을 뛰어넘는 근본적인 변혁을 서술하려 하였다.” “이 책은 편년체와 주제별 편찬 방법을 동시에 채택하여, 고대 그리스의 묵독법 발명부터 전자혁명으로 가능해진(또는 강요된) 오늘날의 새로운 독서실행에 이르기까지 모두 13장으로 나누어 논한다.”

이 책의 집필에 참여한 역사가들의 임무는 “고전고대 이래 서양사회의 특색을 이뤄 온 독서의 여러 가지 양태를 그 다양성과 특이성을 살려 재구축하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샤르티에와 카발로는 이 책의 목표로 다음 두 가지를 설정한다. 그것은 “책의 빈번한 유통과 의미 생산을 제한하는 속박을 인지하는 일과, 독자가 자유롭게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을 개괄하는 일이다.”

샤르티에가 집필한 이 책의 10장 「독서와 ‘민중’독자― 르네상스에서 고전주의 시대까지」는 『사생활의 역사 3― 르네상스부터 계몽주의까지』의 「글의 관행들」과 역사적 시기가 겹친다. 그렇지만 판박이 글은 아니다. 주제와 소재는 비슷해도 사례는 좀 다르다. 내용도 압축하고 간추렸다.

『프랑스혁명의 문화적 기원』(백인호 옮김, 일월서각, 1998)은 지금으로선 유일하게 번역된 샤르티에의 단독저서다. 그는 자신의 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 얇은 책은 개요도 아니고 요약도 아니다. 이 책은 시론(試論)의 형태로 서술되었다. 이 책의 목적은 이 (책이 다루는) 주제에 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요약하는 것이 아니라, 아마도 정반대로, 가장 광범위하게 수용되고 있는 몇몇 가설과 명료한 원칙들과 관련하여 질문과 의문점들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것은 프랑스혁명이 계몽사상의 자식이 아니라 혁명이 계몽사상을 낳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고, 책이 혁명의 도화선이 된 게 아니라 혁명이 책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책을 ‘만든’ 것은 혁명이었으며, 그 반대가 아니다. 왜냐하면 어떤 저작들이 혁명의 기원으로 미리 계획되고 예감되었다는 의미를 부여한 것은 혁명이었기 때문이다.”

정말 그런 것 같다. 1980년대의 이른바 이념서적에 대한 당국의 탄압에서 알 수 있듯이 말이다. 군사정권의 핵심과 그 하수인들이 노린 것은 책 자체가 아니었다. 그들이 겨냥한 것은 당시의 젊은이들이 책을 읽는 방식이었다고 할 수 있다. 모여서 읽고 토론하는 그룹 독서를 목표로 삼은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념서적은 의식화 교재이기에 앞서 군사정부를 반대하는 젊은이들이 서로를 규합하여 실천하기 위해 선택한 매개였다. 그래서 거기에는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와 같은 동화가 포함되었고, 우리는 금서로 지정된 웬만한 이념도서는 어렵지 않게 구해볼 수 있었다.

샤르티에는 이 책의 결론 부분에서 이런 물음을 던진다. “프랑스혁명에 문화적 기원이 있으며, 과연 확신을 가지고 문화적 기원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러면서 이러한 종류의 견해에는 혁명과 그 기원이 인과관계에 의해 연결된 일련의 사실들에 속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고 덧붙인다.

또한 다니엘 모르네의 『프랑스혁명의 지적 기원』(곽광수 외 옮김, 일월서각, 1995)은 이러한 관점에서 서술된 것이고, 『프랑스혁명의 문화적 기원』은 모르네의 관점을 작업가설을 활용했다는 것이 샤르티에의 설명이다. 그리고 샤르티에는 “혁명기의 사건들은 독자적인 역동성을 가지고 발발하였으며, 혁명을 가능하게 만든 조건들이 전혀 없었다고 주장하는” 모르네의 첫 번째 관점보다는 그의 두 번째 관점을 따른다.

“이 관점은 혁명과 계몽주의 시대를 장기적 과정, 곧 두 시기를 포함하는 동시에 각 시기를 넘어서 확장된 장기적인 과정으로 설정하고, 동일한 목적과 기대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공유한 시기로 간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