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際

이슬람, 과연 호전적인가?

이강기 2015. 9. 8. 18:23

이슬람, 과연 호전적인가?

 

 

 

 

근거지 빼앗은 서구사회에 뿌리깊은 원한…
사막의 고된 삶과 이분법적 사고도 '강경' 이미지로

미국 뉴욕과 워싱턴의 주요 건물을 강타한 상상을 뛰어넘는 이번 테러 대참사는 그 이유가 어디에 있건 인류의 불행이고 현대문명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폭력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인적·물적 손실에다 심리적 공황까지 겪은 미국은 사우디 아라비아 출신의 테러리스트 오사마 빈 라덴과 그 지지자들을 이번 사건의 주동자 내지 배후세력이라 결론 짓고, 그가 은신해 있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대규모 보복 공격을 천명하면서 전군에 대한 공격 준비령을 내렸다. 부시 대통령 또한 국민을 상대로 “이번 싸움이 빨리 끝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의 인내가 필요하고, 싸움이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의 결의가 필요하다”는 말과 함께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이번 싸움을 꼭 승리로 이끌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밝혔다. 이제 빈 라덴의 추종자들과 아프가니스탄은 미국의 공격 과녁으로부터 벗어나기 힘들게 됐다.

 

미국이 주장하듯 빈 라덴 측이 이번 테러의 장본인이라고 한다면 그들 역시 이 정도의 보복은 각오했을 터. 그렇다면 그들은 과연 무엇을 얻고자 미국의 심장부를 공격했던 것일까?

 

잘 알려진 대로 빈 라덴과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세력은 이슬람 원리주의에 투철한 이슬람주의자들이다. 미국은 물론 유럽까지 싸잡아 적대시하며, 이제 와선 이같은 끔찍한 폭력사태까지 일으켰다. 그리고 그의 야만적인 행동으로 인해 이슬람권 또한 한동안 ‘폭력집단’이란 오명을 벗기 힘들게 됐다.

 

하긴 이번 테러사건이 아니더라도 이슬람권에 대한 서구사회의 인식은 그리 좋지 않은 게 사실이었다. 호전적·야만적이란 수준에 머물렀으니까.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 이래 아랍인 내지 이슬람주의자들에 의해 저질러진 테러사건은 셀 수도 없을 정도인데다, 그때마다 피해자는 서구 아니면 그들이 편드는 이스라엘 측이었기 때문이다.

 

문명 아닌 이해(利害)관계의 충돌

 

그들 역시 테러의 희생자이기도 한 이슬람 측에서도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명분과 이유는 분명히 갖고 있다. 2000년 전 팔레스타인 땅에서 유태인들을 내쫓고, 그리하여 유럽의 이곳저곳을 전전하던 유태인들을 박해하고도 해결되지 않자 이제는 골치 아프다며 끝내 팔레스타인으로 귀환시켜 조상 전래의 땅에서 평화롭게 살던 자신들을 내쫓게 만든 자는 다름아닌 유럽인들이었고, 이스라엘 건국을 도와주고 팔레스타인 분할안을 UN총회에서 통과시킨 데 이어, 팔레비 왕을 도와 이란을 서구화하고 이슬람을 홀대하려 했던 것은 다름아닌 미국이었다고 보고 있으니까. 그래서 팔레비 왕정을 쓰러뜨리고 새로 세운 나라가 바로 이란이슬람공화국이었다. 지금과 같은 중동의 국경선을 그어 쿠웨이트와 이라크가 싸우게 만든 것은 유럽 열강이었으며, 아프가니스탄에 지금과 같은 탈레반 세력이 들어서게 된 데에는 구 소련과 미국의 공이 크다고 믿고 있다. 이러한 반미, 반서구 감정은 걸프전을 계기로 확대 재생산됐다. 이런 이유로 일부 이슬람권 국가들이 서구에 반감을 갖게 됐고 급기야 일부 극단적인 테러집단이 서구문명권의 대표주자인 미국, 그것도 심장부를 향해 무력 공격하는 사태를 저지르기에 이른 것이다. 여기에는 분명 서구의 자업자득적인 측면이 있다.

 

이슬람 측의 적의와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세계의 경찰이라 자처하는 미국은 어떤 일방을 편드는 태도를 버리고 모두를 감싸안을 수 있는 포용력을 보여야 한다는 주장은 그래서 설득력을 갖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테러 사건과 그에 따른 미국의 대규모 보복 행위를 두고 서구와 이슬람권간의 문명 충돌로 보는 것은 온당치 않다. 이슬람 전체가 서구에 적대적인 입장을 보이는 것도 아닌데다 문명이란 이름 하에 단결을 외치다 보면(불행하게도 지금 바로 이런 현상이 양측에서 나타나고 있다) 서로의 감정을 자극할 수도 있고 그게 자칫 더 큰 불행한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그들간의 대결 내지 충돌은 문명 차원의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이해관계의 대결이고 충돌이기 때문이다. 서구가 이스라엘을 편드는 것은 국가 이익이란 차원에서이지 문명 차원의 대동단결은 아닌 것이다. 그들이 언제부터 유태인과 자리를 같이 했던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무슬림(이슬람교도)들도 팔레스타인으로의 대규모 귀환이 있기 전까지는 유태인들과 사이좋게 지냈다. 이는 그 동안의 역사가 증명하는 바이다.

 

탈냉전시대의 분쟁 양상을 단순한 도식으로 설명하는 새무얼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은 오리엔탈리즘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으로, 우리로서는 주의를 요한다. 왜냐하면 누구 못지 않게 이익 지향적인 서구가 자신의 이익 지향성을 은폐할 목적으로 ‘문명’이란 고상한 이름을 내걸곤 하기 때문이다. 갈등의 실질적 원인이 되는 이익구조란 삶의 총체적인 방식으로서의 문명을 떠받치는 하부구조이긴 하나 문명 그 자체는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문명충돌론을 제대로 볼 필요가 있다.

 

아무튼 서구사회는 이슬람권을 호전적으로 본다. 심지어 야만적이라고까지 말한다. 거기에는 당연히 나름의 근거가 있다. 그것은 일상에서, 그것도 같은 무슬림들 사이에서 거리낌없이 저질러지고 있는 폭력 때문인데,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순결과 피의 순수성을 지킨다며 남녀를 구별하고 또 모든 성인 여성들에게 차도르의 착용을 의무화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들의 성기 일부를 절단하는 할례를 강제한다. 그래야만 딴 생각을 먹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불행하게도 그 과정에서 많은 여성들이 죽거나 평생 고통을 안고 살아야 하는 장애를 입기도 한다. 또 만약 순결을 잃게 되는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그녀의 오빠나 아버지는 가문의 명예를 지킨다며 당사자를 처단하는 이른바 ‘명예살인’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으며, 남의 여자를 건드리면 그 남자의 손목을 사정없이 잘라버리는 일 또한 자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교도의 눈에 섬뜩하게 보이는 것은 이것만은 아니다. 성지순례차 메카를 다녀온 사람은 지고한 성(聖)의 세계를 보았기에 더 이상 볼 것이 없다며 눈을 찔러 스스로 맹인이 되기도 하며, 매년 한달 동안은 ‘라마단’이라 부르는 주간(晝間) 금식을 빠짐없이 지킨다. 식사를 할 수 있는 해질녘이 되면 허기에 지친 나머지 신경이 날카로워져 남과 다투는 일도, 몸을 가누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도 코란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는 이유 하나로 매년 그같은 고통을 감내한다.

 

서구와 다른 생각과 삶의 방식 고집

 

이슬람은 유태교와 같이 사막의 종교이다. 메마른 사막은 말할 것도 없이 결핍의 공간이다. 그래서 그곳 사람들은 인내심을 키워야 하고 투쟁 능력과 교섭 능력 또한 길러야 한다. 이는 생존을 위한 막다른 선택이기에 타 문화권에서 호전적이라고 말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슬람권이 호전적이 된 이유를 수긍할 수 있다고 해서 여성할례와 명예살인까지 그렇게 볼 수는 없다. 인권과 생명의 가치를 무시하는 것은 인간적 도리가 아닐 뿐 아니라 심히 야만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슬람이 외부 세계에 호전적으로 비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적과 친구를 분명히 가르는 이분법적 사고다. 그들은 세계를 사리아(Sharia), 즉 이슬람의 율법이 미치는 곳을 ‘다르 알 이슬람(Dar al Islam)’, 그렇지 않은 곳을 ‘다르 알 하르브(Dar al Harb)’라 부르며, 후자를 전자에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지하드’라 부르는 이러한 자기희생 노력을 서구에선 성전(聖戰)이라 번역하여 이슬람이 호전적임을 증명하는 물증으로 삼곤 한다.

 

이런 태도는 비자 발급에서도 나타나 사우디 아라비아 같은 국가에선 친구와 자기들을 도와줄 일꾼들에게만 비자를 발급하고 구경삼아 둘러보겠다며 입국하려는 관광객이나 적대관계에 있는 자에게는 절대 발급지 않는다. 누군가를 꼭 입국시켜야 한다면 초청 형태를 취하고 후히 대접할 뿐이다. 그들이 유달리 ‘형제’란 말을 즐겨 쓰는 까닭도 이런 문화적 전통에 기인한다.

 

이렇듯 이슬람은 서구와는 다른 생각과 삶의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거기다가 이해관계 또한 충돌하다 보니 이번 같은 테러사건까지 벌어졌다.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사건을 통해 이슬람권이 자신을 한번 되돌아보고 그리하여 내부의 모순을 시정하고, 서구 또한 이슬람을 바라보는 시각을 조정하게 된다면 불행 중 다행이겠다 싶은데, 과연 그게 가능할지 지금으로서는 기대하기조차 어렵다. 21세기의 출발은 이래야 되는 걸까?

 

 

◈이슬람을 아는 12가지 코드

 

알라는 유일신… 강한 혈연집단

 

1. 사막(Sands) 이슬람의 고향은 물이 없는, 모래만이 끝없이 펼쳐지는 광활한 사막이라 자급자족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기에 인내력과 투쟁심, 교섭능력이 생존의 필수요건임. ‘오른손에 코란, 왼손에 칼’이란 말은 이런 배경 하에서 태어났다.

 

2. 알라(Allah) 무슬림이 믿는 유일한 창조자(유태교의 야훼, 기독교의 하느님과 같은 존재). 무슬림은 알라만을 유일신으로 섬기며, 그의 말씀을 지상 명령이라 받듦. 삶이 곧 종교인 까닭에 정교(政敎)일치 사회를 이룸.

 

3. 마호메트 알라의 말씀을 대신 행한 예언자(預言者)이자 사도. 이슬람 역(曆)은 그가 메카에서 메디나로 피신한 서기 622년의 ‘헤지라’로부터 기산(起算)됨. 후계자를 ‘칼리프’, 그 중 정통파를 ‘수니’, 분리파를 ‘시아’라 부름.

 

4. 코란(Al Quran) 알라의 말씀을 기록한 이슬람의 최고경전. 그 중 율법에 해당되는 ‘사리아’는 무슬림의 삶의 구석구석을 지배한다.

 

5. 모스크(Mosque) 이슬람의 예배공간. 하루 5차례 메카를 향해 기도를 올리며, 그 주위엔 기도시간을 알리기 위한 시설인 첨탑구조의 미나레트가 세워짐. 성일(聖日)인 금요일 정오 예배는 연대의식을 드높이기 위한 것으로 빠질 수 없다.

 

6. 하지(Hajj) 성지순례 의무 또는 성지순례휴가. 순례란 자기희생 정신으로 알라에 귀의하려는 노력으로, 그 최종목적지는 대개 메카의 카바신전이 됨.

 

7. 라마단(Ramamdan) 이슬람 역으로 9월 한 달간 주간금식(물 포함)·금욕 의무. 사막에서의 생존능력을 키우는 인내의 계절이자 알라의 은총에 감사하는 시간이며, 가진 자도 예외 없이 동참함으로써 강한 연대감을 과시하는 기간이기도 함.

 

8. 지하드(Jihad) 다르 알 하르브를 다르 알 이슬람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자기희생 노력.

 

9. 아랍어(Arabic) 독특한 음색으로 알라의 신비성과 특색을 잘 표현해내는 ‘신의 언어’인 아랍어로 쓰여진 코란만 정통으로 인정됨.

 

10. 부족사회 아랍사회의 기본구성 단위는 강한 혈연집단인 부족. 피의 순수성에 강한 집착을 보임. 1구성원에 대한 공격일지라도 부족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다.

 

11. 차도르(Chador) 성인여성이 외간 남자의 시선으로부터 자신의 얼굴과 신체를 가리기 위해 착용하는 천. 남성중심사회라 여성을 차별하는 요소가 많다.

 

12. 이슬람 원리주의(Islam Fundamentalism) 세속화된 이슬람사회를 코란의 정신이 지배하는 사회로 회귀시켜야 한다는 정신이자 그 운동. 이런 이유로 비타협적이며, 서구는 물론 이슬람 내 세속권력에도 적대적임.

(권삼윤 ㆍ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이희수 한양대 교수

 

 

"이스라엘에의 반감(反感)이 배후 미국에 직결 라덴은 일부 과격분자들의 우상일 뿐"

 

한양대 국제문화대학 인문학부 문화인류학과 이희수(李熙秀ㆍ48) 교수는 터키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슬람 전문가. 그는 전화 인터뷰를 통해 이슬람 입장에서 이번 사태를 분석했다.

 

-이번 미국에 대한 테러 사태로 사람들은 '이슬람은 역시 폭력적'이라고 할텐데.

 

"이슬람은 아랍권보다 아시아에 더 많이 집중돼 있다. 70%가 아시아에, 나머지 30%만 아랍에 있다. 중동분쟁의 경우 팔레스타인 지역을 둘러싼 민족적 이해관계가 문제의 핵심인데 분쟁 당사자가 이슬람을 믿고 있기 때문에 이슬람이 굉장히 호전적이고 분쟁적으로 보인다.

 

이슬람은 중세 최고의 문명과 과학으로 인류에 기여했고 오스만제국(帝國)이 멸망할 때까지 세계사의 주류였는데 그 이후 소외되고 망각됐다. 2차 대전 이후 반대되는 이해 당사자인 미국의 창(窓)을 통해 이슬람을 바라보게 됐다."

 

-이번 사태가 벌어지자 팔레스타인이나 이라크 등에선 주민들이 박수를 치며 축제 분위기였다. 대량 살상이 벌어졌는데 박수치는 것이 이슬람 정신인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겪는 역사적인 고통에 모든 이슬람권이 심정적으로 동조하고 있다. 그 상황에서 미국이 가해자인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두둔하기 때문에 이스라엘에 대한 반감(反感)이 배후세력인 미국에 직결되고 있다. 이슬람의 대다수 국민들은 평화적 방식의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을 바란다. 문제는 이스라엘이 평화 이행을 늦추면서 국제사회가 합의한 대로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위한 자치공간을 주지 않으니까 극단적인 세력들이 미국에 대항하는 직접 행동으로 나온 것이다. 미국에 대한 행동지침으로 지하드(聖戰)를 표면에 내세운다. 일부 과격세력이 이슬람을 표면에 내세우는 바람에 이슬람의 폭력 이미지가 커지고 있다. 하마스, 이슬라믹 지하드, 헤즈볼라 등의 극단세력들은 아랍에서도 매우 제한된 지역에 거주하며 동조세력이 없다. 그들이 대중적 지지를 받아 집권할 가능성도 없다.

 

미국 테러사건을 본 아랍인들은 그 테러 자체가 옳다고 해서 박수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백주(白晝) 대낮에 미사일과 전폭기를 동원해 비무장 민간인을 학살하는 이스라엘과 미국도 테러를 저지른 것이다. 바로 국가 테러다."

 

-이슬람 입장에서 가장 바람직한 중동문제 해결책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기들이 거주하던 땅에 유럽에서 버림받은 유태인을 위한 이스라엘이 건국되어 원래 살던 지역에서 쫓겨나 난민이 되었다. 그렇다고 지금 세계가 국가로 승인한 이스라엘을 무력으로 없앨 수는 없으니 그것을 기정 사실화하는 조건으로 지난 67년 이스라엘이 빼앗은 땅의 일부에 팔레스타인 난민을 위한 터전을 만들어주자는 것이 지난 93년 오슬로협정이다. 그것만 제대로 지키면 된다."

 

-테러리스트인 오사마 빈 라덴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극렬파라지만 그를 내심 환영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는데.

 

"라덴은 이슬람권에서 전혀 평가를 못받는다. 라덴은 일부 과격분자의 우상이다. 3000명 정도의 동조 세력이 있다지만 그것도 의문이다. 자금을 대주기 때문에 일시적인 연대가 이뤄졌을 것이다. 평화 무드가 정착되면 하루 아침에 무너질 세력들이다. 유일하게 은신 가능한 국가가 탈레반이 지배하는 아프가니스탄이다. 라덴은 반미(反美) 극단주의자로 영웅시되지만 이슬람 전체의 양식있는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최홍섭 주간조선기자 hschoi@chosun.com)


2001.9.27 /167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