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유감
(2001년 2월3일, 에머지)
늘그막에 지기의 간청에 못 이겨 시간 잡아먹기로 소문난 콘텐츤가 뭔가를 하느라 마음은 굴뚝같은데도 그간 붓을 들 수 없었는데, 오늘 마침 담배 얘기가 나왔으니 내 열일 다 제쳐놓고 한마디하고 지나가지 않을 수가 없다.
담배를 두고 그간 벼라 별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많더니, 마침내 대통령까지 한 말씀하신 모양이다. 전에 클린턴도 담배에 대해 공자님 같은 언설을 늘어놓은 것으로 기억하는데, 대통령까지 된 사람들이 남의 일이라고 어찌 그렇게 쉬운 말을 할 수 있나 싶다. 옛날에 한번이라도 골초가 돼 본 사람이라면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누가 담배를 끊기 싫어서 안 끊나. 가격을 올리면 담배인구가 줄어들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인데, 착각도 유만부동이다. 담배를 피워본 사람이면 알 수 있듯이 가격이 오르면 처음에 잠시 주춤하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상례인 것이다. 가격으로 줄이자는 발상은 중벌로서 범죄를 줄이자는 발상과 진배없는 단세포적이고 무지막지한 발상이다. 교도소에서 담배 한 갑에 수십만원에 거래된다는 기사를 읽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만 교도소 안에서 노다지라도 캐고 있어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담배끊기에 대해 쉽게 말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마음을 쉽게 말하는 사람이며 나아가 인간의 자유나 권리를 쉽게 취급하는 사람일 것이다.
담배라! 담배 얘기만 나오면 오만가지 추억이 몰려오고 진한 감회에 젖어든다. 유년시절 머슴들 흉내를 낸답시고 고만고만한 것들이 모여 대나무로 곰방대를 만들어 진달래 마른 잎사귀(그 시절엔 그토록 담배가 귀했다)로 뻐끔 담배를 피우다 어른들에게 들켜 "뼈가 녹는다"는 일장의 건강에 관한 훈시와 함께 혼쭐이 나던 일, 학교시절의 갖가지 에피소드, '샛별', '孔雀'에서 시작하여 '白洋', 최초의 필터담배 '아리랑', 전매청의 농간으로 생긴 "빽담배"(예컨대 커피를 몇 잔 팔아줘야 다방 마담으로부터 살 수 있는 담배도 있었다), 그리고 해외 나들이가 시작되면서부터는 그 포장에 매력을 느껴 덜렁 피우기 시작한 필터에 금테 두른 xxxx(바로 조금 전까지 알고있던 이름이 갑자기 생각이 안 난다. 이 또한 담배 탓일까?)에서 '로스만'으로, 다시 '555'로 점점 순한 것을 찾던 일, 우선 여행 가방에 담배 한 박스를 사 넣어 놓으면, 마치 주부가 쌀 몇 가마니와 연탄 500여장쯤 들여놓은 것처럼 마음이 푸근하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70년대만 해도, 외국의 장거리 버스에서도 쉽게 담배 피우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우리 나라 버스 좌석에 잿털이가 없어진 것도 그렇게 오래 전 일이 아니다. 지하철역에서도 처음에 끽연이 허용됐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새 이렇게나 세상이 변해버렸나! 본래 남의 말 듣고 호들갑 잘 떨기로 소문난 사람들이긴 하지만, 담배 피우는 사람들을 야만인 취급하는데 울화통이 터져 영 못 참겠다. 담배에 대해선 그토록 '과학적인 분석'이라며 미주알 고주알 해독을 들춰내 질겁을 하면서, 우리들이 먹는 '독약을 듬뿍 친' 음식, 우리들이 마시는 '독소가 듬뿍 든' 공기에는 왜 그렇게 태평스러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저러나 나도 담배가 싫긴 마찬가지다. 올 겨울엔 유난히 춥기도 하여 벌벌 떨면서 베란다에 나가 피우고 있노라면 이게 무슨 미친 짓인가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아침에 일어나 식전에 한 대 피우고 나면 머리가 핑 돌아갈 때도 있다. 그리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담배냄새에 채취까지 섞여 고약한 냄새로 변하는 바람에 공공의 장소에서 여간 신경이 안 쓰이는 것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마누라부터도 냄새 난다며 구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담배를 못 끊고 있다. 누구는 금연계획을 잘 세우기도 하고 또 그걸 파기하기도 잘 하더라만 나는 그래 본 적도 없다. 자월님처럼 나도, 누가 건강을 위한 금연 얘기를 하면, "담배로 인한 건강피해 보다는 안 피워 스트레스 받는 건강피해가 더 크다."며 스스로 위안한다.
후기
그러나 담배를 끊은지가 벌써 5년이 넘었다. - 2017년 어느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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