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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파괴는 민족청소의 서곡

이강기 2015. 9. 22. 11:54

유물 파괴는 민족청소의 서곡 

 

이슬람국가(IS), 이라크의 고대도시 약탈·파괴 일삼아 … 다음은 리비아 차례? 

 

LUCY WESTCOTT NEWSWEEK 기자

 

2015. 3. 30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북쪽으로 320㎞ 떨어진 하트라 유적지를 최근 IS가 파괴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오래된 소중한 문화재도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겐 우상을 섬기는 돌과 귀금속에 지나지 않는 듯하다.

지난 3월 8일 IS는 이라크 북부의 고대도시 코르사바드 유적지를 약탈하고 파괴했다. 코르사바드는 기원전 717년 아시리아 사르곤 2세가 도읍으로 세운 곳으로, IS가 장악한 이라크 제2의 도시 모술에서 북동쪽으로 15㎞ 떨어져 있다. ‘두르 샤르루킨’ 또는 ‘사라곤의 요새’로도 불리는 코르사바드는 수염 달린 인간의 얼굴에 날개 달린 황소 몸을 한 거대 석상 라마수(아시리아 수호신) 등 고대 석상과 부조로 유명하다.

IS는 얼마 전부터 이라크 내 여러 문화 유산의 파괴와 약탈을 일삼았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유적지 파괴는 민족청소의 서곡인 경우가 많다. 이제 리비아가 다음 표적일지 모른다는 우려가 크다.

유적지와 유물 보호를 목적으로 각국 정부와 협력하는 미국워싱턴 소재 유물연합(Antiquities Coalition)의 데보라 레어 회장은 IS의 파괴행위를 두고 “문화 박멸”이라고 개탄했다. “IS의 극단주의 견해를 따르지 않는 신앙에 대한 공격이다. 관용, 종교 자유, 표현 자유를 압살하려는 행위다.”

코르사바드를 파괴하기 며칠 전 IS는 2000년 전에 세워진 고대도시 하트라, 3000년 이상 된 고대 아시리아 도시 님루드도 폭파하고 불도저로 밀었다고 알려졌다. 지난 2월 26일엔 IS가 이라크 모술에 있는 니네베 박물관의 석상과 조각품을 깨부수는 동영상을 공개했다. 그중 일부는 6000년 이상 된 유물도 있었다. IS는 또 모술 도서관에 폭발물을 설치해 고대 시리아어 서적과 오스만 제국 서적 등을 없애기도 했다.


▎지난 2월 26일 IS가 공개한 동영상 일부. 이라크 모술의 니네베 박물관에서 라마수로 보이는 석상을 파괴하고 있다.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하트라 파괴는 IS의 사고방식과 행동 배경을 이해하는 데 일종의 전환점”이라고 말했다. “하트라는 가장 먼저 생겨난 아랍국 중 하나의 수도였다. 이슬람 문명의 가장 초기 영광을 상징하는 유적지다. 과학, 천문학, 철학, 수학이 꽃핀 곳이었다.” 특히 하트라는 ‘엄청난 부’를 포함해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의문이 많은 유적지다. 이제 IS의 유적지 훼손으로 하트라는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게 됐다.

IS는 표적이 된 조각상과 신전을 “우상”이라고 부르며 이런 파괴행위를 종교의 이름으로 정당화한다. 그러나 이슬람교 수니파의 최고 권위를 가진 코란 해석기관 알아자르에 따르면 IS의 유적지 파괴는 “세계 전체를 상대로 저지른 중대한 범죄”다. 게다가 IS는 이런 유물 중 일부를 개인 수집가에게 판매한다. 종교와 아무런 관련이 없고 오로지 전쟁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거래다.

하트라는 고대 파르티아 제국의 거대한 원형 요새 도시이자 최초의 아랍 왕국 수도였던 곳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고, 님루드도 이라크 정부가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한 상태다. 그 도시들의 유물을 파괴하는 행위는 국제형사재판소(ICC) 로마 규정에 따라 전쟁범죄로 간주될 수 있다.

유네스코는 여러 유적지에서 파괴 상황을 계속 주시하고 있지만 안전 문제 때문에 무엇이 얼마나 파손됐는지 정확히 확인할 순 없다. 보코바 사무총장은 하트라 유적지와 관련해 “더 정확한 감정이 필요하다”며 “석상 중 하나만 파괴됐거나 손상됐다고 해도 엄청난 비극”이라고 말했다.

유네스코는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이래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유적지를 보호하기 위해 각국 정부의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사망자가 늘어나면서 고대 유적지와 유물에 관심을 두는 정부는 별로 없다. 사람이 죽어가는데 유물에 관심을 쏟는다고 유네스코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보코바 사무총장은 “지금까지는 희생자와 난민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우리 메시지가 전달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제 IS의 파괴행위가 알려지면서 인명과 유적 보호가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사실이 더 잘 이해되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유물연합의 레어 회장은 “이건 사람과 석상 사이의 선택 문제가 아니다”며 “문화는 인류 정체성의 일부이며 특히 이곳은 문명의 요람”이라고 말했다.

이라크와 시리아의 다른 여러 유적지도 위협 받고 있는 상황이지만 문화유산 옹호자들은 이제 리비아가 IS의 다음 표적이 될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리비아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의 온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IS는 리비아 동북부 항구 도시 데르나에 훈련소를 세웠고, 지난 2월엔 그 부근에서 이집트 콥트교도 21명을 참수했으며, 최근에는 리비아 유전에서 일하던 외국인 9명을 납치했다. 리비아는 고대 지중해 문화의 중심지로 유적이 즐비한 곳이다. 로마 시대 유적지인 렙티스 마그나와 사브라타, 그리스 시대 유적지 키레네, ‘사막의 진주’로 불리는 가다메스 유적 등 5곳이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레어 회장은 “심히 우려된다”며 “리비아에서 위협과 불길한 소식이 들리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IS는 이제 리비아에서도 민족청소의 비극이 닥칠지 모른다.

- 번역 이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