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 韓.日 關係

조선통신사 기록관이 본 18세기 초의 일본, 일본인

이강기 2015. 9. 23. 22:32
조선통신사 기록관이 본 18세기 초의 일본, 일본인

趙甲濟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 시대 조선은 열두 차례에 걸쳐 조선통신사를 에토(지금의 도쿄)에 있던 幕府로 보냈다. 외교사절일 뿐 아니라 문화사절단이기도 했다. 조선통신사에 끼였던 기록관이 남긴 일본에 대한 관찰기를 지금 읽어보면 흥미롭다. 1719년 德川吉宗(도쿠가와요시무네)이 막부의 최고 실력자인 장군직에 오른 것을 축하하기 위해 일본에 파견되었던 조선통신사 일행에 製述官(제술관. 기록자)으로 동행했던 申維翰이 [海游錄]을 남겼다. 이 책을 읽으면 요사이 일본사회와 비교하게 되어 더욱 재미 있다.
 
  申維翰은 일본사회가 무사들에 의해 잘 통제되어 보통사람들이 매사에 아주 절도 있고 성실하게 임하는 것을 극구 칭송한다. 그는, 조선 통신사가 탄 배를 마중나온 일본 배가 날렵하게 바다를 헤쳐가면서 인도하는 모습을 기록하면서 느려터진 조선 선원들과 비교하고 있다.
  그는 일본사회가 兵農工商의 계급사회라고 보았다. 士農工商의 조선조 사회와 다른 점은 일본이 무사, 즉 兵에 의하여 지배되는 사회인 데 반해 조선조는 글을 아는 선비나 양반에 의해 통치된다는 점이다. 申씨는 특히 일본사회에서 유학자의 신분이 극히 낮은 데 유의하고 있다.
  <兵(무사)은 안일하면서도 여유가 있고, 商은 부유하지만 세법이 무겁다. 工은 기술이 뛰어나지만 제품값이 너무 싸다. 농민들은 고생하지만 租稅 이외엔 다른 부역이 없다>
 
  申維翰은, 비록 칼을 찬 무사가 지배하는 일본사회이지만 형식적인 계급차별은 조선조 정도는 아니라고 보았다. 하지만 명분이 정해지면 상하가 단결하여 일을 정연하게 처리하는 것에 감탄하고 있다. 요약하면 이렇다.
  <太守(藩主. 大名)는 평범하고 다소 못나 보였지만 그 부하들은 태수의 명령을 받아 행하는 데 조금도 빈틈과 소홀함이 없었다. 부하를 불렀을 때 그에 응대하는 것이 메아리와 같고 일을 하는 데 전력을 다하며 보초 서고 차를 끓여오는 데 조금도 헛점이 없다>
 
  申제술관은 보통 일본인이 보여준 질서정연함에 놀란다. 특히 조선통신사가 지나가는 거리로 몰려나와 구경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에 감탄하고 있다.
  <구경꾼들은 길 양쪽으로 갈라서 앉아 있는데 키가 작은 사람은 앞줄에, 큰 사람은 뒷줄에 앉는다. 차례대로 대열을 이루고 누구 하나 소란을 피우고 이탈하는 이가 없이 엄숙했다. 한 사람도 길을 넘는 자가 없었다>
  申제술관은 서민들의 이런 질서가 兵이 군법으로 다스리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일본사람들이 총명하고 문자를 많이 알며 특히 출판이 왕성한 데 놀란다. 요사이 일본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일본인의 독서열에 감탄하는 것과 같다.
  <그들은 대체로 총명하고 말을 잘 하는데 筆談을 해보면 奇言美談을 인용한 표현이 많다. 이 나라의 서적은 조선에서 가져온 것이 100이라면 중국의 남경으로부터 가져온 것이 천을 헤아린다. 고금의 異書나 百家의 문집이 출판된 양을 본다면 조선의 10배 이상이다.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보니 書物을 먹는 紙魚처럼, 사람이 글자를 먹은 것처럼 보고 생각하는 안목이 밝다. 古事를 논하고 평하는 소견도 的確하기 짝이 없다>
 
  申維翰은 '오사카에서 서적 출판이 왕성한 것은 일대 장관이다'고 평하면서 특히 [退溪集]을 읽고 공부하고 또 궁금해하는 일본사람들이 많다고 소개한다.
  <그들이 묻는 항목을 보면 退溪集과 관련한 것이 가장 많다. '도산서원은 무슨 군에 속합니까' '선생의 후손은 몇명이며 무슨 직책을 맡고 있습니까' '선생은 생전에 무엇을 좋아했습니까'라고 묻는 것을 다 적을 수가 없을 정도이다>
  申維翰은 조선통신사 일행이 에토로 가는 旅路에서 목격했던 주점의 청결성도 기록하였다.
  <주점의 여자종업원들은 반드시 화장을 하고 깨끗한 복장을 하며 그릇도 청결하다. 倭의 풍습은 그릇이 불결해도 먹지 않고, 주인을 보고 누추하다고 생각하면 먹지 않는다>
  그는 또 일본인들이 상당히 개방적이고 남녀간에 서스럼이 없다고 썼다.
  <여자들은 외국인한테도 손을 흔들고, 웃고 말하는 소리가 낭랑하며, 넓은 노상에서 남녀가 머리와 뺨을 만져도 조금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申제술관의 기록을 정리하면 18세기 초 일본인과 일본인사회는 이러하다.
 
  1. 사람들이 책을 많이 내고 많이 읽는다.
  2. 외국문물을 배우고 외국인에게 묻는다.
  3. 군사문화의 지배로 해서 사람들의 행동이 절도가 있으며 능률적이다.
  4. 깨끗하고 서비스 정신에 투철하다.
  5. 남녀간 차별이 심하지 않다.
 
  이상의 일본인 특징은 요사이 일본을 여행하는 한국인의 눈에 비치는일본인의 모습이기도 하다. 당시 일본인과 일본사회가 선진적인 면이 있었고 이런 바탕에서 명치유신이 가능했으리라는 것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민족성이란 것이 하루아침에 생기고 바뀌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게 한다. 요사이 일본에서는 도쿠가와 막부 시대의 약300년에 걸친 평화가 오늘의 번영을 만든 기초가 되었다고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이런 통계도 있다. 일본의 일간신문 구독수는 총5300만부로서 인구가 두 배인 미국의 5520만부와 거의 같다. 요미우리 신문은 발행부수가 1010만부이다. 미국의 USA TODAY는 230만부이다. USA TODAY 발행인인 알 뉴하스는 일본신문이 뉴스를 공정하게 보도하고 교양있는 표현을 쓰며 독자들을 예우하는 면에서 미국신문보다 낫고 이것이 일본신문의 성공비결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신문이 일본신문의 공정하고 겸손한 자세를 배우라고 충고했다. 申제술관의 기록에 따르면 일본인들은 이미 에토시대에도 출판과 독서를 많이 했다는 것이다. 이런 독서의 전통 위에 일본의 신문이 서 있다. 일본신문들은 1면 광고는 반드시 책광고로 메운다.
 
 
  그리스 로마 기독교 문화계통의 서구 열강을 빼고 後發 근대화 국가중에서 선진국에 진입한 非서구 나라는 지난 200년간 일본 하나뿐이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교양과 생산력의 축적이 장기간에 걸쳐 이뤄져 있었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일류국민이 일류국가를 만든다. 일류국민이란 애국심, 교양, 전문성을 두루 갖춘 생산성과 창조성과 규율이 강한 사람들이다.(2012. 6. 24, 조갑제 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