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고싶은 글

이것만 고치면 한국은 21세기에 선진국이 될 수 있다 - 駐韓 외국인들의 우정 어린 비판과 충고

이강기 2015. 9. 26. 16:08
千年末·世紀末의 반성- 駐韓 외국인들의 우정 어린 비판과 충고 : 이것만 고치면 한국은 21세기에 선진국이 될 수 있다
 

天皇과 日王
 한국의 지식인과 언론은 守舊的 내셔널리즘에서 벗어날 것인가
 
  구로다 가쓰히로(黑田 勝弘)(1941년 일본 오사카 출생. 교토(京都)大 경제학부 졸업. 1980~1989년 교도통신.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겸 논설위원)
 
  일본의 국가원수인 「天皇(천황)」을 한국 언론은 「日王(일왕)」으로 호칭하고 있다. 한국정부는 이전부터 외교문서 등 공식적으로는 天皇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왔는데, 金大中 대통령이 작년 일본방문을 앞두고 『상대 나라의 호칭을 존중하는 것이 국제관례다』고 하여, 한국정부는 天皇이라는 호칭의 사용을 새삼 확인하였다.
 
  그 결과, 동아일보와 KBS를 비롯한 일부 언론은 「천황」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게 된 반면에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신문, MBC 등 많은 미디어는 여전히 「일왕」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요컨대, 대부분의 여론이 아직 「천황」이라는 호칭 사용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같은 한자문화권인 중국, 대만, 홍콩의 미디어는 모두 「天皇」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영어권이나 독일에서도 「Emperor」나 「Kaiser」라고 표기하며, 「King」이라는 표기는 하지 않는다.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한국 언론만이 상대방의 정식 호칭을 무시하고 자신들이 만든 호칭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국제적으로 아주 특이한 현상으로, 한국은 국제적으로 특이한 존재라 할 수 있다. 왜 이런 기묘한 현상이 생겨났는가 하면, 한국 여론의 일본에 대한 감정, 즉 反日(반일)감정의 탓이다. 이는 한국 여론의 對日(대일) 감정이 국제적으로 이렇게까지 특이하다는 것이다.
 
  필자가 여기서 이 문제를 꺼낸 것은 한국인의 국제의식에 대해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20세기 1백년의 韓日역사를 돌이켜보면, 한국에 있어서 天皇에 대한 호칭의 흐름은 대략 日王, 天皇, 日皇, 日王의 順(순)으로 변화되어 왔다. 두번째의 天皇은 일본통치시대(日帝時代)에 강요로 인해 사용된 것으로 그 이외에는 「天」을 사용하는 것을 강하게 거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중국문화권에 있어서는 「天」은 한국어의 「하나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세상을 지배하는 신과 같은 존재를 의미한다. 중국에는 「天帝」나 「天子」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런 절대적 존재를 의미하는 「天」이라는 문자를 중국이 아닌 일본이 사용하는 것에 한국은 예전부터 강한 거부감을 표시해온 것이다.
 
  또 「皇」도 마찬가지이다. 중국문화권에 있어서 「황제」는 중국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한국이나 일본을 비롯해 주변의 여러 나라, 여러 민족은 모두 「王」이어야 한다. 이것이 중국지배 아래 동아시아 지역의 국제질서였다.
 
  옛날 이 지역에서 지배자인 중국은 문명이 발달한 「華」인 반면에, 주변의 민족은 문명이 未(미)발달한 야만인이라는 의미로 「夷」라 하여, 19세기 이전 중국을 중심으로 한 이 지역의 국제질서를 「華夷秩序(화이질서)」라 한다. 이 「華夷秩序圈」에 있어서 「皇」은 중국에만 허용될 뿐, 일본이나 다른 민족은 사용해서는 안되었다.
 
 
  19세기 華夷 질서를 고집하는 한국
 
 
  그러나 일본은 섬나라인 탓인지, 그다지 이 지역의 국제질서의식이 강하지 않아, 이미 8세기경부터 스스로 王을 마음대로 「天皇」으로 호칭해 왔다. 이 부분이 중국문명에 대한 일본과 한국의 거리감의 차이로, 19세기 이후 서구근대화에의 대응에도 미묘한 영향을 초래했다고 생각하지만, 여기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 생략하기로 한다.
 
  한국에서는 해방 후, 「日皇」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했는데, 「皇」이 남은 것은 일제시대의 흔적이었을까. 언론에서는 1980년대 후반까지 거의가 「日皇」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왔는데, 이것이 1989년을 기점으로 일제히 「日王」으로 바뀐다.
 
  그 계기는 1989년 昭和(소화) 천황(히로히토 천황)의 사망에 관한 보도와 관련해, 한국 언론계에서는 『일제시대도 아닌데 왜 「일황」이라 부르는가, 「일왕」으로 하면 되지 않는가』라는 주장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한국 언론은 「皇」을 「王」으로 격하시켜, 일제히 「일왕」으로 불리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19세기 이야기가 아니다. 21세기를 눈앞에 둔 20세기 말의 이야기이다. 金大中정부가 정부로서 「天皇」을 정식 호칭으로 부르겠다는 견해를 再(재)확인했을 때, 한국언론에서는 여러 가지 贊反(찬반) 토론이 있었다. 이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것이 朝鮮日報 1998년 5월15일자 「이규태 코너」였다.
 
  이 기사는 중화문화권에 있어서 지배자의 호칭 문제를 역사적으로 해설한 뒤, 「對日(대일)감정은 제쳐두고라도 이와 같은 역사적 관행, 즉 皇과 王은 服屬(복속), 사대주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일왕이라고 호칭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 논리는 아주 흥미롭다. 19세기 또는 그 이전의 중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질서 즉 「華夷秩序」 체제하에 있어서 「황」과 「왕」의 종속관계를 현대까지 그대로 연결시켜, 한국으로서는 「천황」이라고 부를 수 없다는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중국 중심의 「華夷秩序」의 붕괴는 오래된 일로, 중국에는 「天子」도 「皇帝」도 존재하지 않는다. 더욱이 한국에도 「왕」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이 공화국을 선택한 이래 반세기가 흘렀다. 한국은 이미 君主制(군주제)나 王政(왕정)이 아니다. 한국을 둘러싼 국제환경도 예전과 같은 「화이질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일본과의 관계에서는 아직도 「화이질서」 의식이 나온다. 한국의 지식인이나 한국 언론은 아직도 19세기적 국제질서 의식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한국에 있어서 역사적으로 「皇이냐 王이냐」의 문제는 아주 흥미롭다. 역사적으로 볼 때 한국은 외교적으로 「皇」을 거부해, 두 번이나 망국의 괴로움을 당했다. 하나는 19세기 후반에 있어서 일본과의 관계로, 일본이 메이지(明治)혁명에 의해 근대국가로서 출발했을 때, 한국(朝鮮朝廷)은 일본의 신정부가 국교정상화를 위해 보내온 외교문서에 「皇」이라는 문자로 인해 이를 거부했다. 이후, 일본에서는 소위 「征韓論(정한론)」이 일어 한국은 일본에 의해 開國(개국)을 강요당하고 그 후의 경과를 생략하면 결과적으로 한국은 일제지배라는 망국의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丙子胡亂의 배경
 
 
  일본의 메이지혁명은 한국의 이웃에 강력하고 큰 군사력을 지닌 근대국가가 등장했다는 주변 국제정세의 격변을 의미했다. 이것이 「皇」이라는 외교문서로 한국에 다가왔는데, 한국은 「화이질서」의식 속에서 「皇」은 인정할 수 없다고 해, 이를 거부했다. 상징적으로 말하자면, 이 대응이 망국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와 같은 일이 17세기에도 있었다. 중국에서 淸나라가 明나라를 쳐부수고 중국에 새로운 왕조를 건국하려 했을 때, 조선조정은 淸이 보내온 외교문서에 자기들의 왕을 황제로 칭했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淸은 만주의 女眞族(여진족)이 만든 소위 오랑캐였기 때문에 조선은 그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결과, 조선은 병자호란에 의해 淸의 무력침공을 받아 삼전도의 굴욕을 맛보게 된다. 중국대륙에 明 대신에 淸이라는 새로운 세력이 등장했다는 주변 국제정세의 격변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漢族(한족)의 明의 권위를 고수하는 예부터의 「화이질서」에 구애받았기 때문에 침략당한 것이다.
 
  20세기 말인 지금, 한국은 또 皇에 구애되고 있는 것이다. 이 시대에 한국이 주변국의 皇을 거부한다고 해서 전쟁이 일어나거나, 지배를 당하는 일은 없다. 그러나 지난 過去史(과거사)의 교훈은 그 시대의 국제감각을 묻고 있는 것이다. 종래의 질서의식에 집착함으로써 주변정세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고, 커다란 국익에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 역사가 주는 교훈이다.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한국을 둘러싼 주변정세는 또다시 격변해가고 있다. 皇을 거부하는 한국인의 의식, 즉 19세기 이전의 華夷的(화이적) 내셔널리즘으로 과연 이 국제정세에 따라갈 수 있을까. 게다가 이번은 17세기나 19세기의 경우와 달리, 정부(김대중 정권)는 국제관례와 주변국(일본)과의 우호 및 관계강화를 이유로 皇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言論(여론)이 이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17세기나 19세기에는 여론(언론)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현대는 여론이 나라를 움직이고,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여론시대이다. 이런 시대에 여론(언론)이 守舊的인 내셔널리즘에 구애되어서는 나라의 장래가 어떻게 될까.
 
  이건 여담이지만, 한국 언론이 「皇이냐 王이냐」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이 어쩌면 넌센스일지도 모르겠다. 漢字를 배척하는 현대 한국에 있어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皇과 王의 차이를 잘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한자를 배척하면서 한편으로는 19세기적인 옛 中國支配圈(중국지배권)의 질서의식에 집착한다는 것은 하나의 불가사의이다.
 
  20세기에 있어서 한국 이미지는 무엇보다도 그 선명하고도 강렬한 내셔널리즘(民族主義)이다. 일본은 20세기 내내 한국인의 내셔널리즘으로 고민해 왔다. 그만큼 일본인에 있어서 그 내셔널리즘의 행방은 최대의 관심사이다. 21세기에 한국내셔널리즘 즉, 反日(반일)감정은 변화할 것인가, 아닐 것인가.
 
 
  「脫 反日 선언」
 
 
  金大中 대통령은 작년 이후, 괄목할 만한 발언을 반복했다. 우선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서 訪日(방일) 때에 한일공동선언이 발표된 후에 『일본과의 과거는 청산되었다』고 말하고, 더욱이 IMF 사태 이후, 국제화 노선을 추진하면서 『이제 (편협한) 민족주의 시대는 끝났다』고 강조해왔다. 이는 21세기를 향한 「脫(탈) 민족주의 선언」이며 「탈 反日선언」이다. 金大中 대통령은 명확히 한국내셔널리즘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과거 1백년, 내셔널리즘으로 물든 한국에 있어서, 내셔널리즘 포기와도 같은 이 선언은 또 하나의 혁명(?)이다. 일본을 비롯해 세계는 그 행방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택시운전사는 어느 나라에도 정보통으로, 유능한 사회평론가다. 특히 외국인에게 있어서는 시민의 소리를 대변하는 귀중한 정보원의 하나로, 필자도 그 은혜를 입고 있다. 그 택시 운전사로부터 요즘 잇달아 비슷한 이야기를 듣고 한국사회가 변화하겠구나 하고 느낀 적이 있다.
 
  모두 필자가 일본인이라는 것을 알고 그쪽에서 말을 걸어왔다. 한 사람은 30대 남자로 일본의 규슈(九州) 후쿠오카(福岡)에 있는 수산회사에서 1년간 트럭운전사를 한 적이 있다며, 한국과 일본의 교통질서를 비교해가며 열심히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한국이 일본에 지배된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면서 『과거사에 대해서의 반성은 일본보다 우리들이 해야 마땅하다』고 강조하는 것이었다.
 
  또 한 사람은 50대 모범택시 운전사였는데, 역시 교통질서 이야기로 시작해 과거사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져, 결론은 『일본에 사죄나 반성을 추구해서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일본이 사죄하고 반성한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잘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가 잘 되기 위해서는 왜 일본에 당했는가를 우리 스스로가 반성하는 것이 먼저가 아니냐』고 열변을 토하는 것이었다.
 
  이런 경우, 일본 사람은 대답하기 곤란하다. 필자는 『그렇다고 해서 일본인으로서 그래, 그랬다고 말할 수도 없지 않은가. 과연 그런 생각도 있네요』 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한국 생활 20년인 필자는,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과거에도 들은 적이 있다. 韓日간에 지금까지 일본 정치가의 妄言(망언)으로 외교문제가 된 「일제시대에 일본은 좋은 일도 했다」는 이야기 등, 한국인의 私的인 대화에서는 많이 들어왔다. 이번 택시 운전사의 이야기도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수일간 같은 이야기를 잇달아 들어서인지 신선한 느낌이었다.
 
 
  克日보다는 克己
 
 
  IMF 사태는 또 하나, 시장경제주의라는 새로운 발상에 의해 한국인의 의식에 국제화를 강요하고 있다. 이는 경제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세계적 경쟁시대의 도래를 의미하는데, 문제를 他人(타인)이나 他國(타국)의 탓으로 돌리려는 안이한 자세는 이제 통용되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인의 反日 감정에 대해서 필자는 다음과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다. 하나의 가설로서 실은 이것은 일본을 향한 것이기보다는 한국인 자신을 위해 필요한, 한국 스스로를 향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인의 反日 감정이라는 것은 일본을 항상 의식하고, 비판·비난하면서 일본에 대해 경계와 경쟁심을 불태우기 때문이다. 과거, 한국현대사 속에는 많은 反日운동으로, 민족주의 감정이 타오르는 일이 많았는데, 그 고조된 反日 민족주의 감정의 수습은 언제나 克日이라는 구호였다.
 
  1980년대 초반, 韓日(한일)관계를 흔들어 놓은 역사교과서 파동이 있었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기술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한국측에서 일본 비난의 여론이 폭발한 사건으로, 1980년대의 최대 反日운동이었다. 당시, 어느 신문은 일면 社說(사설)에서 다음과 같이 실었다.
 
  「교과서 문제에 관한 우리 국민의 여론은 실로 오랜만에 경험하게 된 國論統一(국론통일)의 현장이었다. 국가적 大事(대사)를 둘러싸고 한순간에 단결하는 국민성이, 우리 국민 속에 잠재하고 있음을 보여준 아주 기쁜 장면이었다」
 
  지금은 보통명사로서 자주 사용되는 克日이라는 단어는 실은 이 교과서 사건 때 처음으로 등장한 것인데 필자는 교과서문제의 수습단계에서 克日을 둘러싼 한국 지식인의 인상적인 발언을 지금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여류작가인 정연희씨는 조선일보 좌담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克日 운동이라는 단어를 들은 뒤부터 계속 기분이 개운치 않다. 해방 후 수십년이 지났는데, 아직 우리들의 의식을 긴장시키는 것에 일본이라는 자극이 필요하단 말인가. 克日이라는 단어에는 일본을 의식하지 않으면 안되고 그들을 무엇인가의 기준이나 목표인 것처럼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강요당하는 느낌이 든다. 일본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은 오히려 일본에 얽매인다는 점에 있어서, 克日보다는 스스로에 이기는 克己(극기)를 우선해야 하지 않을까」
 
  일본의 어느 보수파 지식인이 최근, 일본의 한 잡지에서 「일본이 한국에 대한 최대의 기여는 戰前(日帝時代)에 걸쳐 근대화의 기초를 이룬 것이나 戰後(解放後)의 ODA(경제원조) 등이 아닌 과거(反日?)라는 유산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福田和也氏)고 비꼬는 논평을 썼는데, 끊임없이 일본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한국인에 있어서 反日 감정은 스스로의 아이덴티티(정체성)를 확인하기 위한 필수적인 수단인지도 모른다.
 
  이는 극단적으로 말하면, 일본이 없으면 한국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논리가 된다. 진정한 내셔널리스트(애국자)라면, 이런 점에 대해 참을 수 없는 불만과 불쾌감을 느낄 것이다.
 
 
  과거 복귀냐, 미래로 나가느냐
 
 
  한국인의 反日감정은 주로 과거사에 관한 일이다. 反日 감정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는 과거에서의 離脫(이탈)이 필요하다. 그리고 과거에서의 離脫이란, 의식에 있어서의 일본이탈을 의미하는데, 과거사에 대한 집착이 계속된다면, 한국 내셔널리즘은 아직 「일본」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이 된다. 이래서는 의식에 있어서의 일본 의존에서 탈출할 수 없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 볼 때,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金大中대통령의 脫 민족주의선언 그리고 脫 반일선언에는 역사적인 의의가 있다. 反日 내셔널리즘에서 1백년을 보낸 민족주의 국가 한국의 지도자가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한국 및 한국인 만들기로써 自己否定(자기부정) 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한국인은 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한국에서는 20세기의 마무리로 IMF 사태를 맞았다. 金大中 대통령의 脫 민족주의선언은 그 속에서 행해졌지만, IMF 사태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한국 및 한국인은 급속하게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한국은 지금, 금융위기 극복만으로 IMF 정신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한국인은 IMF 國難(국난)의 구호 속에서 오로지 인내해 왔지만, 지금은 누구도 인내하지 않는다. 與野(여야)의 당리당략에 의한 극한 대립이나 언론의 무책임한 센세이셔널(煽動的) 보도 등 모든 것이 IMF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으로부터 자기비판이나 인내, 협조, 상호배려 그리고 국가의식 등은 이제 사라지고 있는 듯 모두가 자기반성이 아닌 他人비난에 열을 올리고 있다.
 
  IMF 사태 아래에서 忍耐를 발휘한 한국인은 가짜였던 것처럼 본래의(?) 한국인으로 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韓日관계로 말하자면, 한국인이 본래의 모습으로 복귀하고 있다면, 反日 내셔널리즘도 다시 혹시 옛날과 같이 돌아올지도 모르겠다.
 
  韓日간에는 일단은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라는 약간의 제동장치가 있지만, 혹시 앞으로 金大中 대통령의 지도력이 저하하기 시작할 경우, 그 「민족주의 시대는 끝났다」는 선언도 끝날지 모른다.
 
  金大中 대통령의 「脫 반일선언」은, 21세기에 향해서 한국인의 의식을 반일(反日)없이 아이덴티티(정체성)를 확인할 수 있도록 「일본탈피」시키는 것과 동시에 한국을 새로운 일본과의 협력관계로 이끌려는 어려운 선택이다. 이 선택의 결말을 끝까지 주시하고자 한다.●
 
  ++++++++++++++++++++++++++++++++++++++++++++++++++++++++++++++++++++++
 
  토익·토플 고득점자들이 말을 못해 쩔쩔매는 英語 교육은 바뀌어야 한다
 
  데이비드 로저스(시사영어사 수석 디렉터, 1953년 호주 시드니 출생. 호주 타스마니아大 졸업. 1991년부터 한국 근무) 
  
  「한국 英語의 미스터리」
 
  이제 한국에서 英語(영어)는 문화의 한 부분이다. 지하철, 거리, 레스토랑, 어디에 가든 한국어와 영어가 나란히 쓰여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영어 교육 프로그램이 넘쳐나고, 어느 집이든 책장에 영어 학습교재가 한두 권 이상 자리잡고 있다.
 
  이처럼 영어 학습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때때로 학생들은 영어를 효율적으로 습득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느낀다. 이같은 어려움은 전통적인 한국의 영어 교육 방식에서 나온 것이다. 敎師(교사) 혼자서만 알고 학생들은 수동적으로 지식을 받아들이는 엄격한 수업 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결국 학생들에게 어휘나 문장 구조만을 기계적으로 암기하게 하는 수업방식이 문제인 것이다.
 
  사실 한국의 대부분의 학생들은 상당한 어휘력과 문법 실력을 갖추고 있지만, 이 지식을 일상 생활의 실제 커뮤니케이션에 적용하는 데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학생들의 학습 목표인 것 같다. 학습을 하는 이유가 말을 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시험을 잘 치르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21세 이상 성인의 경우 토익(TOEIC) 또는 토플(TOEFL) 시험에 응시해 본 경험이 적어도 한 번 이상은 되는 것 같다. 이들은 아주 의욕적으로 학습에 뛰어든다. 여러 시간 강의를 듣고 또 여러 시간 혼자서 복습하고, 심지어 개인 교사까지 두는 경우도 보았다. 그들은 정말 열심히 암기하고, 정리하고, 필요한 영어 지식을 얻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
 
  그러나 이렇게 습득한 지식이 실제 말하는 것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 같다. 이같은 「한국 英語의 미스터리」 때문에 당황하는 외국인 영어 강사들이 적지 않다. 왜냐하면 토익 점수가 엄청나게 높은 사람이 영어를 제대로 못해 쩔쩔매거나 부끄러워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영어 교육이 오늘의 지구촌 시대에 제 역할을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물론 영어 교육이 공식적인 시험의 결과를 무시해도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보다는 한국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외국 기업과의 교류를 넓히기 위해서는 비즈니스에 필요한 실제 의사소통 능력이 시험 점수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말이다.
 
 
  다른 나라의 좋은 모델 도입해야
 
 
  효과적인 영어 교육을 위해서는 지금보다 교육 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초등학생의 평균 영어 수업시간은 주 2~3회 1시간 수업으로 되어 있다. 이 정도 시간으로는 학생들이 새로 배운 지식을 활용할 수가 없다. 한참 만에 수업을 받게 되면 그전에 배운 내용은 이미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서도 수학이나 국어와 같은 수준으로 영어 수업이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또 학업 성취도를 높이기 위해 교과 과정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중요한 두 가지 요소가 있다. 창의성과 참여가 바로 그것이다.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창의력이 있는 학생이 더 많은 것을 배운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서 비판적 사고를 끌어낼 수 있는 새로운 교육 테크닉을 활용해야 한다. 지식의 단순한 나열만으로는 오늘의 세계에서 절대 생존할 수 없다. 지금까지 불러야만 대답을 하던 학생들에게 스스로 교육 방식에 도전하도록 격려해 주어야 한다. 창조성과 참여에 의해서만 학생들은 성공에 필요한 기술을 습득할 수 있다.
 
  다행히 새로운 세대의 교육자들에 의해 한국의 학생들은 새로운 형태의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교육 방식이 변화되어 기존 방식과 다른 새로운 영어 교육이 시도되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은 회화와 문법을 균형 있게 활용하도록 배운다. 사설학원에서는 시험에서 고득점을 받을 수 있는 능력과 실제 일상생활에서의 언어 사용능력 간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10~15명으로 구성된 소규모 학급에서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참여하고 말한다.
 
  여기서 교사는 지식만 많은 전문가가 아니라 학생들로 하여금 질문하고, 또 스스로 쓰고 말하는 방법을 찾아내도록 격려해주는 조언자가 된다. 교사는 학생들이 올바로 학습할 수 있도록 방향만 잡아주면 되는 것이다. 제대로만 되면 이런 교육 방식은 많은 장점이 있다. 학생들은 어휘력과 청취력을 향상시킬 뿐 아니라 새로운 표현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도 있다.
 
  공립학교의 교사들도 이러한 교육방식을 참고해야 할 것이다. 바라건대 앞으로는 좋은 직업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개개인의 성장과 세계의 인식을 넓히기 위한 수단으로 영어 학습이 진행되고, 강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교육에서 경쟁력을 얻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 교육 모델의 좋은 요소들을 도입해 결합해야 한다. 학급 규모는 점차 줄여나가고, 적극적인 학습과 창의력 배양을 위해 다양한 수업 방식을 활용해야 한다. 앞으로 세계 시장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는 학생들을 방관자로 내버려두지 않는 교육 시스템을 더 개발해야 한다. 그래야만 학생들은 단순한 영어 지식이 아니라 그것을 실제 생활에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
 
  한국 기업은 평생직장 개념과 권위·溫情主義를 버려야 한다
 
  스튜어트 솔로몬(메트라이프생명 전무, 1949년 미국 출생. 뉴욕주 시라큐스大 졸업. 한국외환은행 뉴욕지점 근무. 1989년 코오롱-메트 근무) 
  
  
  정직, 투명성 그리고 책임감
 
  한국은 IMF 위기를 겪고난 뒤 사회 각 부문에서 많은 변화를 맞고 있다. 기업 문화도 예외가 아니다. 기업 임원이나 교수, 경영 컨설턴트 사이에 성공한 기업과 실패한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 문화를 연구하는 붐이 일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제너럴 일렉트릭(GE)社는 대표적인 본보기이다. 최고경영자인 잭 웰치 회장이 지난 20년간 어떻게 GE를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변모시켰는지를 소개하는 著書(저서)들이 잇달아 출판됐다. GE의 변화 과정은 기업 문화에 대해 최고경영자나 임원들의 책임이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21세기를 앞둔 시점에서 한국의 기업 문화는 어떤 점을 고쳐야 할 것인가. 필자는 한국외환은행 뉴욕지점과 한국에 있는 韓美(한미) 합작회사, 그리고 한국 內 1백% 미국 기업 등 다양한 형태의 기업에서 20년 넘게 근무했다. 이 때문에 한국기업과 미국 기업의 차이를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는 편에 속한다.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한국 기업문화의 고쳐야 할 점에 대해 몇 가지 지적하고자 한다.
 
  먼저, 변화를 과감하게 수용하라는 것이다. 조직 내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불가피하고 필수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특히 성공적이지 못한 기업일수록 변화는 매우 시급하다. 또 우수한 회사라도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남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변화가 필요하다.
 
  특히 한국 기업들이 21세기를 맞아 바꿔야 할 점으로는 평생직장 개념을 비롯, 직장 내 溫情主義(온정주의), 개인적 친분관계, 승진과 보수의 절대적 기준이었던 年功序列(연공서열) 등을 들 수 있다. IMF 경제위기 이후 많은 기업들이 연봉제 도입을 통해 전통적인 기업 문화의 변화를 꾀하고 있으나, 아직은 미흡한 수준이다.
 
  앞으로는 회사의 수익을 위한 성과와 공헌도가 승진이나 보수를 결정하는 중심 잣대가 되어야 한다. 또다른 변화 대상으로는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한국에는 유능한 여성 인력이 유능한 남자들 숫자만큼 있다는 사실을 한국의 기업들이 인식해야 한다.
 
  두 번째로 정직, 투명성, 그리고 책임감을 들 수 있다. 이는 21세기형 성공 기업에게 있어 반드시 요구되는 문화이다. 예를 들어 회사 일을 하면서 어떤 문제가 생기면 이를 감추려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즉시 공개하여 문제 해결을 함에 있어 필요한 회사의 지원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모르겠다』라고 답하는 걸 겁내지 말아야 한다. 이 답은 틀린 대답을 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또 접대비나 사업상 회사가 지불해야 하는 경비는 절대 개인의 돈으로 간주되어서는 안된다. 이와 반대로 개인이 지불한 경비 중 규정상 회사에 요구해야 할 돈이라면 아무리 적은 금액이라도 청구해야 한다.『뭐, 이까짓 거』하면서 자기 주머니에서 지불하면 이 또한 정직과 투명성의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들이 잇달아 연봉제 등 인센티브 중심의 보수체계로 전환해 가고 있는데, 개인의 성과를 판단하는 잣대와 年俸(연봉) 지급 기준은 반드시 공정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직원들은 이러한 작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반드시 정직하고 투명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인센티브 효과보다는 역효과를 초래하게 된다.
 
 
  상사를 거스르지 못하는 기업 文化
 
 
  기업이 영업행위를 함에 있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러한 행위들은 반드시 부적절한 관행을 야기시켜 결국에는 직원과 회사 명성에 큰 손해를 끼칠 수 있다. 목표와 이를 위한 수단은 양자가 동등한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상사가 듣기 원하는 말만 함으로써 그를 만족시키려 하는 기업 문화도 변화의 대상이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회사를 위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과감하게 말해야 한다. 만일 회사 직원이 실제로 자신이 느낀 점을(그것이 심지어 회사정책을 거스르는 것일지라도) 솔직히 표현했다면, 그 직원은 회사를 혁신하는 데 일조한 셈이다.
 
  또 기업의 경영진들도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처럼 회사 내에서의 자유로운 의견 표현을 지지해야 한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은 결코 미덕이 아니다.
 
  사소한 부분이지만 고쳐야 할 게 또 있다. 한국의 기업에 근무하면서 여러 차례 목격한 것 중 하나다. 상사가 점심시간을 불과 몇 분 앞두고 자신의 직원에게 일상적인 점심 제의를 하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흔히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제의를 받은 상당수 직원들이 이미 잡아놓은 점심 약속을 취소한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직장 상사라 할지라도 자기 직원과 점심 또는 저녁 식사를 할 경우 사전에 스케줄을 잡아야 한다. 이러한 원칙은 회의 시간을 정할 때도 마찬가지다. 사전에 미리 정한 뒤 이를 지키도록 해야 한다. 거꾸로 부하 직원의 경우 한국의 관습상 매우 힘든 일이겠지만, 약속이 있는데도 상사와의 점심 때문에 先約(선약)을 깨는 건 잘못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
 
  ++++++++++++++++++++++++++++++++++++++++++++++++++++++++++++++++++++++
 
  규율을 위반한 조급증은 참혹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曹 世 功(중국 經濟日報 서울지국장, 1946년 중국 출생. 북경大 동방어문학부 졸업. 1980~1992년 중국국제 관계연구소 근무. 1993년부터 서울 근무)
  
  
  빨리빨리 증후군
 
  한국에서 6년을 보내면서 필자는 韓(한)민족이 우수한 민족이란 말이 결코 虛張聲勢(허장성세)가 아니라는 사실을 체험했다. 특히 韓민족의 분투 정신과 뜻을 세우면 반드시 이루는 고집, 낙천성과 불굴의 정신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바로 이런 민족성과 민족 정신에 따라, 한국은 貧窮落後(빈궁낙후)한 농업국에서 신흥 공업국으로 뛰어올랐고,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또한 한국은 단기간에 성공적으로 空前(공전)의 금융위기에서 벗어났으며, 다시 도약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동시에 韓민족은 개성이 뚜렷한 민족으로, 두드러진 장점은 있지만 결점도 발견할 수 있다. 성격이 급하고, 일을 완성하는 데 서두는 것이다.
 
  일상 생활중에도 수시로 한국인의 조급증을 느낄 수 있다.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때 음식이 조금만 늦게 나오면, 누군가 일어나 항의한다. 도로에서 차를 몰다보면, 항상 分秒(분초)를 다퉈가며 정지신호를 무시하는 일을 목격할 수 있다. 어떤 운전사는 심지어 중앙선을 무단으로 넘어 방향을 바꿔, 보는 이에게 땀이 나도록 한다. 경제도 작게는 건축현장에서 工期(공기)를 당기는 것이나, 크게는 정부가 OECD 가입을 서두는 것까지 한국인의 조급증을 반영한다.
 
  남북관계와 통일문제에도 한국인은 서둘며 참지 못한다.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독일 통일에 고무돼 1994년 金日成(김일성) 사망 후 많은 한국 사람들이 마치 남북 군사분계선이 곧 무너질 것처럼 기다렸다. 당시 다수의 저명한 학자와 연구기관은 북한정권이 늦어도 3∼5년, 이르면 1∼2년 안에 붕괴할 것이란 예측을 내놓았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북한이 반년도 안돼 무너진다고 예언까지 했다. 정부도 『북한은 고장난 비행기처럼 곧 공중에서 떨어져 폭파할 것』이라며 『준비를 잘 해야 통일을 금방 맞을 수 있다』고 흥분했다. 하지만 이런 「早期(조기) 통일론」은 통일 조급증을 범한 것이란 사실이 입증됐다.
 
  「속전속결」을 전부 나쁘다 할 수는 없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朝夕(조석)을 다투고 走馬加鞭(주마가편)하며 적극적으로 나아가는 것은 고무해야 한다. 하지만 공중도덕과 공중이익을 해치거나, 객관적 규율을 어기는 「속전속결」은 당연히 제재하고 포기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대중의 전체 이익과 국가와 민족의 장래 이익을 크게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빨리빨리」 病(병)의 악영향은 엄청나다. 한국의 교통사고율은 세계 수위를 다투고, 매년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1만명을 넘는다. 교통사고로 인한 직접 손실은 2조원에 가깝다. 조사에 따르면 상당히 많은 사고는 과속과 추월 때문에 일어난다. 규정을 위반해가며 서둘다 막대한 생명과 재산 손실을 낳는다.
 
  한국에 주재하는 최근 몇년 동안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등 일련의 대형사고가 일어나 귀중한 인명과 막대한 재산 손실을 입었다. 동시에 사고 빈발로 한국은 「사고 공화국」이란 오명을 뒤집어 써서 국가명예에 손상을 입었다. 건축사고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이익을 위해 덮어놓고 서둘고, 품질을 고려하지 않는 게 공통적인 병폐다.
 
 
  한국 경제개발과 중국의 大躍進 운동
 
 
  조급증 원인에 대해서는 민족과 문화, 역사, 심리 각 방면에서 연구검토를 거쳐야 할 것이다. 나는 경제 건설상의 조급증은 경제가 낙후한 민족이 초고속 발전모델을 채택할 때 발생하기 쉬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貧窮落後한 상태를 빨리 벗어나, 신속하게 선진국에 진입한다는 목표를 실현하려면, 자연히 「압축형」 발전전략을 채택해 수년 혹은 십수년 안에 남들이 수십년간 걸어온 길을 가야 한다. 그 때문에 빨리 공을 세우고, 이익을 추구하거나 「唯意志論(유의지론)」이 생기기 쉽다. 이런 면에서 1990년대에 조기에 선진국이 되겠다던 한국이나 1950년대 大躍進(대약진) 시기 15년 안에 영국을 뛰어넘겠다던 중국 사례는 조금도 다를 게 없다. 한국의 「하면 된다」는 신념과 중국의 「마음을 크게 먹으면 못할 일이 없다」는 구호는 같은 뜻이다. 중국의 大躍進 운동이 사회 생산력에 끼친 파괴적 효과는 수십년 후인 오늘에도 심각하다. 참통한 교훈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현실을 초월하거나 객관적인 규율을 위배하면서 서두는 것은 주관적 예상과 상반된 결과를 낳을 수 있고, 심지어 객관적 규제라는 징벌을 받을 수 있다』
 
  인류는 21세기 문턱에 진입하려 하고 있다. 새로운 세기에는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과학기술이 날로 진보하는 세기다. 지난 세기 유행했고 효과를 발휘했던 「수량, 규모중심」 성장 모델은 「품질, 효율 중심」 발전 모델로 대치될 것이다. 전통적인 공업 경제는 지식 경제에 자리를 내주게 된다. 발전 속도는 여전히 중요시하겠지만, 효율적인 속도만이 경쟁실패와 도태를 막을 수 있다.
 
  엄준한 도전에 직면해, 중국과 한국 양국은 모두 냉정하게 반성하면서 과감하게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발전전략과 모델을 바꿔야 한다. 조급증은 물론 각종 시대요구에 뒤진 전통과 관습을 버리고, 진취적인 투지와 세밀한 과학적 태도를 결합해 새로운 미래를 쟁취해야 한다.●
 
  ++++++++++++++++++++++++++++++++++++++++++++++++++++++++++++++++++++++
 
  結果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과정을 重視해야 한다
 
  미치가미 히사시(道上 尙史)(국제관계 평론가, 1958년 오사카 출생. 동경大 법학부, 美 하버드大 졸업)
  
  
  지역대립
 
  영국에서도 옛 왕국에 따른 지역대립이 있다. 支持(지지)하는 정당에 차이가 있으며 국제경기에도 별도의 팀을 구성한다. 1850년대의 일본에 사쓰마와 초슈라는 유력번(지역단위)이 있었다. 사쓰마 무사는 짚신에다 「초슈」라고 쓰고는 하루종일 밟고 다녔다. 이 정도로 서로 미워하고 무력충돌도 했었다.
 
  그러나 양측은 손을 잡았다. 서구열강의 압도적인 압력 속에서 에도 幕府(막부)로서는 나라를 지킬 수 없다는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작은 다툼을 계속하면 보다 큰 적에게 패배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東西(동서) 지역대립은 결코 특수한 것이 아니다. 극복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한국 전체의 발전을 가로막는 「보다 큰 적」을 깨닫는가 아닌가가 문제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을 중시하라

  유행의 첨단을 간다는 재즈 바에 일본인을 안내했다. 화장실은 코가 돌아갈 정도의 악취가 풍겼다. 표면만을 치장하는 발상에 나는 외국인이면서도 부끄러웠다. 집 근처에서 맨홀 공사를 하고 있었다. 아무런 표식도 없다. 소년이 그 속에 빠져버렸다. 다행히도 부상은 없었다. 소년도, 주위 사람도 웃고 있었다. 나는 눈을 의심했다. 어째서 웃는가?
 
  눈에 보이지 않는 과정은 重視(중시)하지 않는다. 결과가 좋으면 모든 것이 괜찮다. 효율은 높을 것이다. 그러나 희생도 있었다. 건물의 붕괴, 화재나 수해만이 아니다. 사회의 깊은 곳에 커다란 손실이 쌓여 있다. 한 단계씩 절차를 밟아 가는 방식은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이제 인간을 존중하고 풍성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방향으로 전환할 시기이다.
 
  동아시아협력

  日本(일본)은 아시아를 경원하여 왔다. 한국의 아시아주의는 조금 조잡하다. 「아시아는 하나, 외모가 닮아 있으므로 서로 이해할 수 있다」는 빗나간 발상이 있다. 「서양은 물질 면에서 능가했지만 욕망소비 문명이며, 도덕적으로는 뒤떨어진다」, 「아시아는 약하고 가난하지만 아름답고 순수하다」는 믿음이 있는 듯하다. 이는 건전하지도 바르지도 않다.
 
  東아시아의 협력은 대폭 강화해야 한다. 특히 가치관을 공유하는 韓日(한일)은 마주보는 것뿐만 아니라 공통된 시선을 밖으로 돌려야 한다. 그러나 아시아의 다양성, 유럽과의 기본적인 차이를 전제로 해야만 내용이 있는 아시아협력이 가능하다.
 
  일본관
  심포지엄에서 어느 학자가 말하길, 『일본은 우리가 만족할 수 있게 역사관을 고치지 않는 한, 국가, 국기를 허용할 수 없다. 문화교류도 기만이다』고 했다. 내가 반론하기 앞서서 학생이 지적했다.
 
  『국기, 국가는 어느 나라에게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느 외국이 우리 생각대로 해주지 않는다고 해서 국기를 갖지 말라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통하지 않는다』
 
  옛날과 같은 편견은 상당히 개선되었지만 日本의 韓國觀(한국관)에도 문제가 많다. 한국은 어떤가?
 
  한국의 중고생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일본의 국명은 대일본제국, 면적은 한국의 2배(정답은 4배)라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 국사에서 위안부 문제 부분을 강화해야 된다는 한국학자도 『고대에는 문화를 가르쳐주었다, 근대에는 침략을 당했다』는 것뿐인 비뚤어진 日本 교육이다. 이래서는 도저히 현대 日本을 이해할 수 없다. 만화나 노래는 알아도 청소년의 일본 이해수준은 매우 낮다』고 한숨을 지었다.
 
  『객관적으로 日本을 파악하는 것이 국익상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못했다. 日本을 검게 그리지 않으면 안심할 수 없었다.
 
  日本은 한국보다 훨씬 활발한 국제활동을 하고 있다. 자신의 좁은 시야에서 보이는 日本만이 日本은 아니다』는 학자도 있다. 1986년 서울대에서 들은 교수의 말이 떠오른다.
 
  『우리가 日本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우리는 실제로는 日本을 잘 모르고 있다는 것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한국인은 제로섬적인 사고가 강하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스포츠가 아니다. 日本에 불리한 것은 한국에도 좋지 않으며 日本의 이익은 한국의 이익이라는 플러스섬인 경우가 훨씬 많다.
 
  21세기는 韓日이 협력하여 아시아, 나아가서는 세계를 위하여 공헌해야 할 시기이다.●
 
  ++++++++++++++++++++++++++++++++++++++++++++++++++++++++++++++++++++++
 
  체면과 권위주의는 한국 발전에 큰 걸림돌이다
  
  하일 (미국명 로버트 할리)(1958년생. 미국 브리검영대 법학·웨스트 버지니아 주립大 법학 박사. 1997년 한국 귀화,국제변호사 겸 방송인)
  
 
    
  기분에 좌우되는 사람들
 
  한국에서 국제 변호사로 근무하게 된 지 벌써 14년이나 되었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이 나라의 풍습과 문화 등을 하나도 몰랐었다. 그래서 미국 사람들이 한국 사회에 대해 쓴 책을 몇 권 사서 열심히 읽었다. 그중 하나가 40년간 한국에서 생활한 미국 의사가 쓴 책이었다. 제목은 「이해할 수 있는 동양인(The Scrutinable Oriental)」이었다. 제목을 부연설명하면 서양에서는 동양 사람들의 사고 방식과 문화를 무턱대고 이해하기 힘든 것으로 여기고 있으나, 이 책의 저자는 달랐다. 열심히 이해하려고 노력만 하면 동양 사람들(특히 한국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가장 신기했던 내용이 「기분」 혹은 「체면」이라는 단어와 문화였다. 한국인들은 기분을 중요하게 여기고, 매사 기분 상하지 않게 사람들을 대한다는 이야기였다. 외국인들도 항상 「기분」을 알아야 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된다는 충고도 있었다. 그런데 실제 생활을 하다보면 좀 다르다. 대부분의 미국 사람들이 「기분」에 대해 잘 모르고, 솔직하고 숨김없이 말하고 행동하는 문화에 익숙해 있어, 한국 사람들을 종종 기분 상하게 한다는 것이다.
 
  필자가 하고 싶은 얘기는 한국 사람들이 외국인의 그런 행동이나 말에 전혀 기분 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그런 데서 「체면」을 잃었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한국에서는 체면(Face)이라는 것이 너무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필자가 겪은 일이다. 한 친구가 다른 사람들과 행사를 계획하고 있었는데 나에게 특별 출연을 요청해왔다. 요청을 받아들이고,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그날 방송 일이 예정보다 너무 늦게 끝나는 바람에 참석을 못하게 됐다. 그렇잖아도 참석이 힘들 것 같아 행사 전부터 여러 번 전화로 못 갈지도 모른다고 말했는데 무조건 꼭 와야 된다는 것이었다. 끝내 참석 못하게 됐다. 그 친구는 마침내 다른 사람들한테 「체면」을 잃었다고 생각하게 됐고, 지금까지 필자와 만나지 않고 있다. 미국에선 「체면」이라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그 친구가 만약 미국인이었다면 『에이, 할 수 없지. 나중에 보자』고 했을 것이다.
 
 
  주고받는 文化를 만들어야 한다
 
 
  「체면」 문화 외에도 꼭 짚고 싶은 것이 바로 권위주의 문화이다. 사실 권위주의 보다도 「원업맨십」(One-Upmanship:앞서고 싶은 행동 혹은 우월감)이 문제인 것 같다. 역시 필자가 경험한 일이다. 몇년 전 한국의 한 대기업이 미국에 있는 꽤 유명한 전기 광고판 회사와 계약을 맺으려고 했다. 필자는 그 미국 회사를 돕고 있었다. 한국 쪽에서 먼저 계약서를 만들어 미국 회사에 보냈다.
 
  미국 회사가 계약서를 보고 수정해 다시 한국 회사에 보냈다. 그런데 한국 회사가 수정한 부분을 거의 다 삭제한 뒤 당초의 원본 계약서를 되돌려 보냈다. 이런 식으로 계약서를 주고 받다가 끝내 계약을 못하게 되었다.
 
  당시 미국 회사는 한국 회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계약 조항 몇 개를 받아들이고, 대신 자기 이익을 위해 또다른 몇 개를 수정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 회사가 미국 쪽 수정 내용을 하나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끝내 계약이 틀어졌다. 서양인들은 평등한 입장에서 협정을 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평등하지 않으면 협정은 깨져버린다.
 
  이처럼 한국 사람들이 받는 것만 좋아하고 주는 것을 기피하는 태도를 많이 보았다. 로열티도 그런 예에 속한다. 한국 사람들은 외국 회사의 이름이나 기술을 사용하면 당연히 로열티를 줘야 하는데 이를 기분 나쁘게 여긴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 어떤 협정을 맺을 때엔 권위주의나「원업맨십」을 앞세워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마지막으로 「한국화」에 대해 언급하고 싶다. 몇년 전에 미국의 유명한 제과 회사가 한국의 회사와 체인을 만들려고 했다. 마침내 체인을 만들게 되었는데 한국에 들어온 빵의 맛이 변한 것이다. 미국 회사가 알아 보니 한국 파트너社(사)가 체인점을 운영하면서 빵을 미국 본점 방식을 따르지 않고 한국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바꿔버린 것이었다.
 
  미국 회사의 생각은 빵 맛은 세계적으로 똑같아야 된다는 것이었고, 한국 회사는 달랐던 것이다. 결국엔 미국 회사가 解約(해약)을 한 뒤 한국 시장에서 철수해버렸다. 국제화시대에 무턱대고 한국 것만 고집하면 손해를 볼 수 있다는 걸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필자는 한국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사랑하지 않으면 귀화를 안 했을 것이다. 한국도 틀림없이 세계에서 대단한 나라가 될 수 있다. 몇 가지만 고치면 가능하다.●
 
  ++++++++++++++++++++++++++++++++++++++++++++++++++++++++++++++++++++++
 
  기성세대에 도전하고 반대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미칼샤프란스키(이스라엘 정부관광국 서울사무소 조정관, 1969년 生. 이스라엘 헤브루大 경제학 및 동아시아학과 졸업. 1996년부터 서울 근무)
  
  
  寸志는 사라져야
 
 
  한국은 매력적인 나라이다. 나는 그 사실을 한국에 오기 전 이스라엘에 있을 때부터 알았고, 한국에서 3년간 살면서 그런 생각이 더욱 굳어졌다.
 
  몇몇 한국인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태인과 한민족 간에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 말하는데, 실제로도 그렇다. 양국은 2차대전 후 再(재)탄생했고, 독립을 위해 오랜 기간 투쟁하면서 많은 것이 파괴되고 보살펴 주어야 할 많은 난민이 발생했으며, 두 민족은 위기 극복을 위한 근면성과 결단력뿐 아니라 교육에 대한 열정, 평화와 자유를 향한 열망을 갖고 있다.
 
  처음 한국에 와서 소스라치게 놀란 것 중 하나는 한국인들이 자녀 교육을 위해 많은 시간 정력 돈을 들여가며 교육의 중요성을 그토록 심각하게 논한다는 점이다. 처음 와서 며칠 동안(아직도 그렇게 느끼지만)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는 부모와 교사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과외수업을 받고 늦은 밤 귀가하는 어린 중고생들을 본 것이다.
 
  외교관인 내 남편은 수업을 맡은 한국 학교에서 『이스라엘 학생들도 시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고 있다. 14~16세 어린 학생들이 그런 질문을 한다는 것이 나는 너무 안쓰럽다. 누구도 교육의 중요성을 의심하진 않지만, 학부모로서 우리 자신에게 자문해야 할 두 가지 질문이 있다.
 
  첫째, 교육시스템이 일종의 악순환을 만들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어린 학생들은 배우느라고 늘상 바쁘고, 학교에 왔을 때는 피곤에 절어 집중할 수 없으며, 다른 학생들에게 뒤떨어지지 않으려고 과외수업을 필요로 한다.
 
  두 번째 질문은 이 청소년들이 마치 그나이 또래에는 달리 걱정할 게 없는 것처럼 정신적 부담을 주는 것이 정당한가 하는, 인도적 측면이다. 하루당 시간으로 본다면, 많은 학부모들은 학생들이 공부(학교+과외+숙제)에 쏟는 시간이 매우 부지런한 회사 직원들의 노동시간에 맞먹는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
 
  덧붙인다면, 한국 내 많은 곳에서 자행되는 체벌처럼 건강한 교육 환경을 만드는 데 도움되지 않는 몇 가지 요소들이 있다. 사견이지만, 체벌은 다른 처벌 수단, 예를 들면 문제 학생을 방과 후 남겨 두거나 일정기간 정학시킨 뒤 「정학은 방학(휴가)이 아니다」란 점을 깨우칠 수 있도록 하는 방법보다 효과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학생이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도록 처벌을 가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전문적인」 말썽꾼이 아니라면 아무리 온건한 체벌이라도 학교에 대한 적대감을 키우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물론 교내 폭력과 무질서를 참을 사람은 없으나, 처벌은 사안에 따라 달라야 하고 교육적 가치를 고려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왜」를 가르치는 敎育
 
 
  처음 한국에 와서 놀란 또다른 이슈는 학부형들이 학교 교사에게 주는 악명높은 「寸志(촌지)」 문제다.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야기시킬 뿐 아니라, 공정성과 위신을 해치는 이 방법을 좋아하는 학부모들이 없다는 점에서 촌지 관행은 없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예를 들어, 학부모가 촌지를 주지 않으면 교사는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고, 학부모가 경제위기로 실직했거나, 촌지를 주고 싶어도 못 줄 형편이라면 학부모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학부모가 촌지를 주지 않거나 줄 수 없을 경우 교사는 학생에게 나쁜 점수를 주어야 하는가?
 
  촌지 시스템은 학부모를 교사들의 손 안에 갇힌 실질적 인질로 만든다. 나는 최근 이런 관행이 없어져야 한다는 목소리를 들었고, 교사들의 자발적인 반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촌지 관행이 완전히 없어져야만 한국의 교사들이 21세기 한국을 이끌 지도자적 역할을 자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쾌적하고 교육적인 환경은 물론 학생들의 성공에 필수적이지만, 학생들이 교육제도로부터 어떤 혜택을 얻고 더 중요한 것은 교육 방법으로부터 무엇을 얻는가를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해야만 한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이 유태式(식) 교육 원칙을 도입했으면 한다.
 
  유태인 교육의 본질은 한 마디로 의문부호가 뒤따르는 「왜」로 요약된다. 아이들과 학생들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사물) 뒤에 무엇이 있고 모든 사건의 이유, 동기, 인과과정을 캐낼 수 있도록 가능한 많은 질문을 할 것을 주문받는다.
 
  즉 일상생활의 아주 사소한 일부터 우주에 대한 질문에 이르기까지, 학부모 교사 교수가 갖고 있는 지식에 반대하고 도전하는 과정이다. 나는 대부분 한국 부모들이 자녀들을 지식을 좇는 과정에만 몰입하도록 부추긴다고 확신한다.
 
  교육이란 단순한 가르침이나 교실 내 컴퓨터 수를 뜻하는 것이 아니고, 정확히 말하면 가르침(Teaching)과 교육(Educating) 간의 차이에 큰 의미가 있다. 한국 교사와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스스로 커나갈 보다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면, 개개인에게나 국가 사회전체가 보다 나은 사회, 번영된 국가를 건설하는 혜택을 누릴 것이다.●
 
  ++++++++++++++++++++++++++++++++++++++++++++++++++++++++++++++++++++++
 
  고급 옷 걸친 女大生 개성도 主見도 없는 추종 패션
 
  이다 도시 방송인(1969년 프랑스 노르망디 출생. 르아브르대 언어 및 경영학 석사. 1992년 연세대 불어과 강사. 1996년 한국 국적 취득. TV 리포터와 패널로 활약중)
  
  
  한국인이 프랑스 사치품의 주요 고객
 
  한국이 세계의 수출 강국이 된 지도 오래 됐고 없는 물건이 없을 정도로 물질적으로 풍요한 나라가 됐는데 아직도 사람들의 구매 욕구가 다른 나라에 비해 큰 것 같다.
 
  구매력이 크면 당연히 경제에도 도움이 되는 점이 많지만 문제는 분별 있는 구매를 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는 것이다. 프랑스를 사치스런 나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 프랑스인들은 사치스런 귀족 문화에 반발하여 혁명을 일으킨 나라이다.
 
  개인이 어떻게 살든지 간에 간섭하지 않고 존중해 주려고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최고급 상표의 디자이너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은 아주 드물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고급 상표의 대부분의 고객은 프랑스인이라기보다는 외국인들이라고 한다. 한국도 그런 외국 손님 중에 아주 중요한 고객으로 꼽힌다고 한다. 자신의 스타일과 직업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옷을 선택하지 않고, 무조건 고급 상표만 고집하는 사람을 「패션 빅팀(Fashion Victim)」이라고 놀린다.
 
  내가 가장 놀란 것 중의 하나가 한국에 왔을 때 프랑스 고급 상표의 옷과 액세서리로 치장한 대학생들을 보았을 때였다. 학생이 왜, 그리고 무슨 돈으로 저런 비싼 것을 지니고 다닐 수 있단 말인가라는 의문을 오랫동안 가진 적이 있었다. 그리고 후에 학생들의 부모들이 돈을 줬다는 사실도 난 수긍이 안 되는 부분이었다.
 
  물론 자식이 예뻐서 좋은 것을 많이 해 주고 싶지만 이런 일은 유럽에선 아주 드문 일이다. 주말이면 백화점에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걸 보면서 외환 위기 때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은 아주 소수의, 어딘가에 따로 살고 있는 한국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행을 보면서 잘 맞는 옷들을 시장에서 알뜰하게 구입해서 입고 다니는 여자들도 있지만 많은 여자들이 각자 몸도 다르고 개성도 다른데도 불구하고 유행만 생기면 다들 같은 옷들을 입는다. 텔레비전 같은 데서 연예인들이 입고 나온 옷이나 액세서리 같은 것들이 일반에게 유행이 되는 일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어느 나라나 연예인들이 입어서 화제가 되면서 그 패션을 따라 가는 일들이 조금씩 있지만 한국처럼 이런 반짝 유행이 빨리 그리고 넓게 퍼지는 일을 본 적이 없다.
 
  옷뿐만이 아니라 호출기, 특히 핸드폰(제일 신기하다!), 술, 전자 제품, 자동차등 외국 회사들이 보기엔 한국 시장은 천국처럼 비친다. 까다로운 유럽 소비자들하곤 거리가 멀다.
 
 
  옛것을 아끼는 文化가 없다
 
 
  중고나 DIY(Do It Yourself) 제품, 전통적인 디자인, 이런 것들이 별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현대적이고 비싼 것들이 많이 팔려 나가고 있다고 한다. 한국인들은 지난 고유의 것을 너무 빨리 박물관에 갖다 놓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내 주위에 놓고 아끼고 감상하고 싶어하는 유럽인들하고 아주 다른 점이다.
 
  다들 남하고 비교해서 새롭고 신기한 것을 가진 사람을 보면 그 이상으로, 또는 최소한 같은 수준으로 하고 싶은 감정들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자기도 충분히 가지고 있는데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말처럼 자꾸 비교하는 것 같고 기업들도 그런 점을 이용하는 것 같다.
 
  광고를 보면 「누구 집에는 있는데 댁에도 하나 들여 놓으시죠」라는 식이다.
 
  유럽 사람들에겐 생소한 점들이다. 아마 누구한테도 남들이 이렇게 하는데 당신도 이런 걸 가지거나 따라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라고 하면 분명한 유럽인의 대답은 「노!」이다.
 
  남의 스타일에 신경을 안 쓰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는 유럽인들과 수많은 규칙과 제도에서 살아 온 한국인과는 남을 의식하는 정도의 차이가 큰 것 같다.
 
  서양에서는 개성 있고 남다른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한국인들은 다른 사람과 다른 자신의 모습을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같이 보인다. 어떤 학교를 나왔나, 어떻게 과외를 시킬까, 주택의 실내장식, 어떤 집에서 살아야 하는가, 어떤 차를 가져야 하는가, 직장을 보는 기준 등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생각이 너무 심하지 않나 싶다.
 
  끝으로 생활의 주변에서 몇 가지 느낀 것은 우리 주위가 너무 시끄럽지 않냐는 것이다.
 
  공공 장소, 식당, 유원지, 어디를 가도 기계음, 사람 소리, 음악 소리, 이런 것들이 너무 소음도가 높다고 생각한다. 모두들 자신이 먼저 소리를 낮추고 세상을 돌아보면 이 세상이 편안하고 조용하면서도 얼마든지 질서 있고 효율적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그 밖에도 가정마다 쓰레기 처리를 정말 깨끗하게 하고, 자신의 집과 거리, 마을이 전에 비해 많이 깨끗해진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자신의 생활 구역을 조금만 벗어나도 이런 것들을 쉽게 잊어 버리는 것 같다. 산이나 강, 바다 이런 자연으로 나갈 때는 특히 더 한 것 같다. 그 넓은 들과 산, 강가에 조금 버리면 어떠냐는 생각인지, 아니면 버려진 것을 보고도 줍거나 치울 엄두가 안 나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름다운 자연을 보존하는 것에 무관심한 것처럼 보인다.●
 
  ++++++++++++++++++++++++++++++++++++++++++++++++++++++++++++++++++++++
 
  아이들에게 너무 관대한 어른
 
  버나드 브렌더(웨스틴조선 호텔 총지배인, 1945년 독일 출생. 하와이大 호텔경영학.1991년 서울 쉐라톤 워커힐 부총지배인 역임)
  
  
  會長 보고 숨는 직원
 
  쉐라톤 워커힐 호텔의 부총지배인이 되어 한국에 갓 부임했을 때인 1992년에 겪은 일이다. 아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서울 시내 한 대기업 본사가 있는 빌딩을 방문했다. 그 회사 직원으로 짐작되는 회사원 3명과 함께 엘리베이터 앞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해 안에서 누군가가 내렸을 때 정말 기이한 일을 목격했다.
 
  나와 함께 서 있던 3명의 회사원들이 엘리베이터 안의 그 누군가를 보자마자 어찌할 바를 모르며 허둥대다 끝내는 급히 몸을 숨기는 걸 보았던 것이다. 순간 나도 그들처럼 해야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덩달아 몸둘 바를 몰라 했었다. 친구를 만나 자초지종을 얘기했더니 틀림없이 그 사람은 그 회사 회장이었을 것이라고 알려줬다. 그러고보니 그 회장은 몇 사람의 경호를 받고 있었다.
 
  이런 일은 내 조국인 독일에서는 물론이고, 호텔 일 때문에 3대륙 9개국을 돌아다녀봤지만 보지 못한 장면이다. 독일에서는 아무리 회장이라도 서로 이런 식으로 대하지 않는다. 아무리 말단 직원이라도 회사 안에서 회장을 만나면 사람 對(대) 사람으로 당당하게 지나친다. 물론 인사는 한다. 회장도 전혀 아랫사람 앞이라고 해서 거드름을 피우지 않는다. 한국의 이런 문화가 회사內(내) 상하간 대화나 의사소통을 단절시키는 요인이 아닌가 여겨진다.
 
  한국 생활 초창기에 느낀 또 하나의 이질적인 경험은 여성 문제였다. 호텔에 매니저 자리가 공석이 돼 누군가를 승진시키기로 돼 있었다. 나는 여러 후보의 인사 자료를 놓고 업무 능력을 검토한 끝에 적격자를 한 사람 찾았다. 그런데 당시 그 호텔의 여러 한국인 임원들이 내가 추천한 사람에 대해 우려의 뜻을 전해왔다.
 
  이유인즉, 내가 고른 사람이 여자인데 나중에 결혼하면 어떻게 하느냐, 결혼해서 또 임신하고 출산하면 어떻게 하느냐면서 여자는 그 자리에 좀 곤란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유럽에서는 여성을 이런 식으로 차별했다가는 사실 큰일난다. 모든 사람들이 남녀는 능력면에서 같고, 또 그 능력에 따라 대우받아야 한다는 걸 하나의 상식이나 문화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 한국에서는 승진인사 때 능력보다는 남녀 여부를 먼저 보고, 性(성)을 구분한다는 사실을 보면서 남성중심 문화가 얼마나 뿌리깊은지 느낄 수 있었다. 21세기엔 모든 나라가 국제 무대로 뛰어들어 경쟁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여성 차별은 불공정한 무역 장벽 못지 않은 장벽이다. 지금은 그때보다는 많이 나아졌고, 또 변하고 있는 중이지만 남성중심 문화는 여전한 것 같다. 시급히 고쳐야 할 문화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아이들한테 너무 관대
 
 
  서울의 호텔에 근무하면서 느낀 한국 사람들의 매너와 관련된 몇 가지 경험도 사소하지만 고쳤으면 하는 대목이 있다. 한국 사람들은 아이들한테 너무 관대하다. 한번은 호텔에 아이가 뛰어들어오면서 회전문에 손이 끼인 적이 있었다. 이 아이는 부모에 앞서 혼자 먼저 뛰어들어오다 손이 끼인 것이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자칫 큰일날 뻔한 사고였다. 그때 부모들의 가슴이 무척 아팠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그 사고 직후 부모의 반응이 매우 실망스런 것이었다. 무턱대고 호텔 쪽을 나무라는 것이다. 안전 시설이 허술하다는 둥 다시는 이 호텔에 오지 않겠다는 둥 하면서 호텔을 비난했다. 사실 호텔 같은 공공장소에 갈 때는 아이들이 부모의 통제 아래 움직여야 한다. 어른들에겐 안전한 물건이나 시설이 아이에겐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와 관련한 일은 호텔內 식당, 특히 부페에서 지금도 자주 일어난다. 아이들이 온 식당을 휘젓고 뛰어다니는 일이다. 무엇보다 부페엔 포크나 접시 같은 자칫 아이들에게 흉기가 될 만한 물건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기 때문에 사고로 이어지기 쉽다. 음식을 먹으면서 크게 소리내는 것도 사소하지만 고쳐야 할 국제 에티켓이다. 한국 식당에서 한국 사람끼리라면 그것이 문화이기 때문에 용인될 수 있다. 나도 1991년부터 한국에 8년 동안 살면서 한국식 생활방식이 많이 몸에 배었다. 한국에 갓 왔을 때 본 충격적인 장면도 이제는 이해가 되고, 스스로 한국식의 행동을 할 때도 많다.
 
  그러나 한국을 처음 방문하는 외국인들은(한국인이 외국을 방문할 때도 마찬가지지만) 그들의 기준이 있다. 그 기준으로 볼 때 한국 사람들이 당연한 문화(앞에 열거한 몇 가지 잘못된 문화들)라고 여기고 있는 것들에 대해 내가 경험한 똑같은 강도의 충격을 받을 것이다. 세계적인 기준에 비춰봤을 때 좋지 않은 문화, 혹은 관습이라고 여겨지는 부분은 고쳐야 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한국에 있으면서 생긴 버릇 하나를 이야기하면서 얘기를 끝맺고자 한다. 서울의 큰 빌딩의 지하에 있는 커피숍이나 레스토랑에 갈 때는 반드시 비상문과 비상 통로를 확인하는 버릇이다. 비상문과 비상통로가 없거나, 있더라도 표시가 눈에 띄지 않는 빌딩일 경우 되도록 들어가지 않는다. 얼마 전 인천에서 수많은 어린 학생들의 목숨을 앗아간 화재사고가 나기 전부터 생긴 버릇이다.●
 
  ++++++++++++++++++++++++++++++++++++++++++++++++++++++++++++++++++++++
 
  정치인부터 民主를 실천해야
 
  락스미 나카르미(아시아위크 한국지국장, 1952년生. 1980년부터 한국에서 근무. 비즈니스위크 서울지국장 역임)
  
  
  5백년 전과 똑같은 정치행태
 
  요즘 사람들을 만나보면 내년 總選(총선)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한국에서 20년 넘게 살아 온 나는 한국인들의 이런 관심이 큰 대수가 아니라고 믿고 있다. 왜냐하면 한국인들은 그토록 학수고대하던 선거기간이 닥치는 순간, 「정치란 더럽다」 「생각하기조차 싫다」며 선거를 잊으려 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檀君(단군)까지는 안 가더라도 조선조 5백년을 살펴보면 사람들이 혐오하는 오늘의 한국 정치와 그때의 정치문화와 별 차이가 없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외국인이 건방지게 어떻게 아느냐고 따지고 싶은 분도 많겠지만, 만인의 공감을 얻는 텔레비전 드라마 「용의 눈물」이나 「王과 妃」를 본 소감이라 말한다면 필자를 비난할 수만은 없을 줄 안다. 드라마가 사실이라면 당시 왕은 측근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왕에게 보고하는 측근(신하)들은 국가보다 개인의 이익을 앞세운 사람들이었다.
 
  필자가 한국에 머문 지난 20년 동안 全·盧·金·金 이렇게 네 분의 대통령이 있었다. 하지만 필자는 정치 문화가 달라졌다고 생각지 않는다.
 
  요즘 언급되는 「언론장악」 문건 사건만 봐도 과연 대통령이 정확한 보고를 받고 있는 것인지, 주변 인사가 대통령의 입맛에 맞게 보고하는지 알 도리가 없다. 중앙일보 사건, 옷 로비 사건, 파업유도 사건…. 정치권이 이런 큰 사건을 다루는 과정을 살펴보면 외국인이지만 아쉬운 점이 참 많다. 가장 큰 아쉬움은 도대체 이런 큰 사건들 치고 한 건도 제대로 수습하고 매듭지은 채 넘어간 적이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국민들에게는 불신만 더 키운 채 덮어버리고 가는 경우가 많다.
 
  그런 아쉬운 점을 들라면 또 있다. IMF이후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정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정책들은 정부에서 나왔겠지만 정치인들이 찬반토론을 한 적이 거의 없다는 점도 필자를 아쉽게 한다. 오직 밀어붙이기 식이다. 국회란 찬반 토론장이어야 하는데 한국의 국회는 서로를 비난하는 장소가 되어 있다. 미국은 하원 상원 소위원회가 있어 사건 당사자들을 불러 놓고 추궁해서 진실을 밝히려 노력한다.
 
  원하는 사람에게는 발언권도 있다. 하지만 미국의 제도를 가장 많이 도입한 것으로 보이는 대한민국의 국회에서 토론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필자에겐 없다. 토론 없는 정치가 과연 정치라 할 수 있을까.
 
  정치학자들은 정치를 대략 세 가지로 말한다. 「대립의 예술」, 「전술의 예술」, 「합의의 예술」. 그런데 한국 정치에서 이 세 가지는 모두 상실되어 있다. 왜 그럴까. 세 가지 원인을 들고 싶다.
 
 
  세월이 해결할 문제
 
 
  첫째, 한국의 정치는 철학이 아닌 감정에서 출발한다. 둘째, 전문지식으로 무장되어야 대립하고 전술적인 합의를 만들어 갈 수 있는데 이것이 부족하다. 셋째, 보스 중심의 黨(당) 정치 문화도 하나의 원인이다. 黨員(당원)은 무조건 黨論(당론)을 따르게 되어 있는 것이 문제다. 그런데 黨論은 누가 만들까. 과거에 자주 등장했던 3金, 요즘은 2金에 의해 생산된 黨論이지 않은가. 반대하고 싶어도 국회의원들은 반대할 수 없는 체제가 이런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고 본다.
 
  필자는 이 세 가지가 한국 정치의 가장 큰 장애라고 생각한다. 다가오는 21세기를 맞아 한국 정치가 선진화하려면 구조조정 과정에서 반드시 실현시켜야 할 세 가지 목표가 있다고 본다.
 
  그 첫번째는 투명한 정치의 실현이다. 밀실에서 협의하더라도 토론은 공개적으로 해야 한다. 토론하다가 상대방의 주장이 마음에 안 든다고 인신공격성 발언을 한다면 한국 정치는 머나먼 길을 값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참고 들을 수 있는 능력과, 상대방의 주장과 논리를 멋지게 반박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정치인들이 등장하려면 정당한 토론 문화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양심적인 민주정치 풍토가 시급하다. 한국에서의 민주주의는 소수를 몰아 세우는 방법에 너무 길들여져 있다. 주창하는 바가 국익 도모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기꺼이 상대 정당의 편을 들어 주는 것이 진짜 민주주의이다.
 
  세 번째는 공천제도의 수정 내지는 폐지이다. 정치는 밑에서부터 올라와야 한다. 국회의원의 공천제도는 보스에 의한 선택으로 시작되는 업 사이드 다운 방식이다. 지역구의 주민과 상관없이 黨 지도부가 국회의원을 결정하는 방식으로는 후보자의 자질을 신뢰하지 않게 된다. 신뢰받지 못하는 정치인들이 국회에서 활동할 때 국민들은 정치의 무관심을 드러낸다.
 
  필자가 이렇게 비판일변도로 글을 썼지만, 아직 한국은 희망이 있다고 본다. 적어도 16,17대 總選을 거치면서 한국 정치계는 물갈이가 될 것이다. 세월을 이길 수는 없는 법이니 작금의 현역 정치인들 상당수는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질 것이다. 그 다음엔 오늘날의 30~40代가 한국 정치를 주도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필자가 지적한 바처럼 「한국 정치는 이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을 反面敎師(반면교사)인 선배 정치인들로부터 제대로 배웠다면 한국 정치는 21세기 초반에 틀림없이 선진화되고, 한국도 선진국가가 될 것이란 확신을 한다.●
 
  ++++++++++++++++++++++++++++++++++++++++++++++++++++++++++++++++++++++
 
  생활 속의 國際語, 漢字를 잊고 있으면서 국제화라니…
 
  히라이 세이미(平井 淸實)(일본인 유학생, 1959년 일본 홋카이도 출생. 현재 서울대 국문과 대학원 재학중)
  
  
  소설 책에서 사라진 漢字
 
  나는 현재 서울대학교 국문과에서 공부하고 있는 일본인 유학생이다. 몇년 동안 한국에 살면서 많은 것을 느꼈지만, 두 가지만 얘기해 볼까 한다.
 
  첫번째는 漢字(한자)에 관련된 개인의 소감이다. 사실 일본에서 한국에 올 때 한국에 漢字가 이 정도로 안 쓰이는 줄 몰랐다. 일반 생활은 물론이고, 도로의 간판, 신문, 책 속에서 漢字가 사라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한국에 오기 전에 사실은 漢字가 좀 더 많이 쓰이고 있는 줄 알았었다. 왜냐하면 현재 일본에서 쓰고 있는 漢字는 원래 한국인 王仁(왕인) 박사에 의해 전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만큼 한국은 일본보다 漢字와 함께 해온 역사가 길고, 전통이 있는 나라로 생각해 왔다.
 
  요즘 소설 책을 몇 권 샀는데 그 책 역시 漢字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한글로만 글을 쓰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떤 학생이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漢字가 있으면 뜻 전달이 정확히 된다는 면에서 좋지만, 그렇다고 한글도 그리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아마 대부분 한국인의 견해가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한글의 우수함을 증명하는 말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漢字의 사용은 한글의 우수함을 하나도 깎아아내리지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同音異義語(동음이의어)가 많은 한국어휘의 특성상 漢字를 사용하면 의미전달을 완벽하게 하는 데 틀림없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한글로만 썼을 때 애매한 부분이 많지 않은가. 예를 들어 「주사」라는 한글 단어엔 5∼6개의 다른 뜻이 있는 데 한자로 쓰지 않으면 문맥에서 짐작으로 뜻을 파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表音文字(표음문자)」인 한글과 「表意文字(표의문자)」인 漢字를 융합시켜 조화를 잘 이룰 때 비로소 정확하고 다양하고 완벽한 문자표현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漢字를 사용하면 부수적으로 얻는 이익도 있지 않을까. 중국의 북경에서 온 유학생은 이렇게 말한다.
 
  『한국의 책들은 거의 한글로만 쓰여 있다. 漢字가 좀 더 많으면 읽을 줄 몰라도 뜻 전달은 거의 될 텐데…』
 
  요즘 국제화, 세계화 시대라고 해서 너나 없이 英語(영어), 英語 하는 것 같다. 英語만이 국제어일까. 바로 곁에, 생활 속에 있는 또 하나의 국제어 「漢字」의 존재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세월이 흘러 아무리 새 시대가 왔다고 해도 전통을 토대로 하지 않는 새 문화는 없는 법이다. 1천5백년 이상 한국인의 문화와 전통 속에 내려온 漢字가 한국인의 생활 속에서, 北韓(북한)이나 越南(월남)에서 그랬던 것처럼 사라진다면 그보다 더 큰 손해는 없을 것이다. 오는 21세기에는 漢字와 한글이 조화롭게 잘 융합하여 그 위에서 활발하고 자랑스러운 한국의 새 문화가 형성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교통 현장의 禮儀 실종
 
 
  또 하나의 문제는 운전 습관에 관한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에 살면서 접해온 한국인의 모습은 모두 친절하고 정이 많고 예의가 바르다는 걸 느꼈다. 특히 웃어른에 대한 예절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어른 앞에서는 담배를 안 피우거나 술을 받을 때 두 손으로 받는 일은 물론, 자기 부모님께 敬語(경어)를 쓰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교통현장에서 목격하는 한국인의 모습은 예의바른 한국인의 모습과 너무나 달라 당황할 때가 많았다. 나는 국제 운전면허증을 갖고 있어 가끔 운전할 때가 있다. 한국의 차들은 버스나 택시, 트럭 등 차종을 막론하고 거칠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우선은 방향지시등을 쓰지 않고 갑자기 차선을 변경하거나 左(좌)-右(우) 회전하는 차, 방향지시등을 안 쓰고 달리다가 갑자기 서는 차, 심지어는 左회전 차선에서 직진 차선으로, 아니면 직진 차선에서 左회전하려고 억지로 차선에 끼어들어 오는 차들도 있다.
 
  깜짝 놀라 급브레이크를 밟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물론 질서를 잘 지키는 운전자도 있는데 전반적으로 한국의 교통 현장에서는 아직 방향지시등 사용에 인색한 운전자들이 많다. 방향지시등을 너무나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다. 원래 방향지시등은 자기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해서 있는 것이다.
 
  자기 차가 다음에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에 대하여 상대방에게 사전에 알려주려는, 말하자면 자동차의 「언어」와 같은 것이다. 개개인의 생활에 있어서도 서로 주고 받는 말이 잘 되어야 원활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듯이 교통현장에 있어서도 자동차 간에 주고 받는 「언어」가 잘 되어야만이 보다 안전하고 건전한 교통문화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직까지 한국의 자동차 문화는 상대방의 움직임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하는, 말하자면 「예측할 수 없는」 문화이다. 교통현장에서 서로가 서로의 움직임을 예측하지 못하면 오해가 생기고, 사고가 생긴다. 방향지시등을 쓴다는 것은 작은 일 같지만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그것은 분명히 상대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의 배려에서 오는 것이라 믿는다.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친절하고 예의바른 모습을 오는 21세기 교통문화 속에서 볼 수 있으면 한다.●
 
  ++++++++++++++++++++++++++++++++++++++++++++++++++++++++++++++++++++++
 
  한국인은 위대해질 수 있다-가족主義 미덕을 살린다면…
 
  마이클 브린(메리트 버슨-마스텔러社 부사장,1952년生. 英國 에딘버러大 영문학 전공. 1986~1994년 워싱턴타임스 서울특파원. 1991~1992년 더 타임스 서울 특파원. 저서 「한국인을 말한다」)

 
 
  低신용 사회의 특징
 
  IMF 위기는 한국에 회오리바람처럼 불어닥쳐 한국 경제의 지붕을 날려버리고, 그 밑에 가려져 있던 구조적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취약성은 누구나 아는 그런 것들이다. 효과적 자본 분배가 이뤄지지 못하게 하는 금융시스템, 시장원리를 왜곡시키는 재벌구조, 능력보다는 학연과 연공서열을 중시하는 근로자 채용·운용 방식, 법 체계를 무시하는 정치권 행태 등.
 
  이러한 취약점들은 低(저)신용 사회의 전형적 특징들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박사가 지적했듯이 신용은 경제 행위의 근간이 되는 요소다. 高(고)신용 국가들에선 전혀 모르는 남남들끼리도 함께 사업을 벌이고 훌륭하게 성공을 일궈낸다. 하지만 低신용 국가들에선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低신용 국가들의 기업은 가족중심 소규모 경영을 지향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패턴이다. 사업에 관한 한 가족만이 서로 믿을 수 있는 구성원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나라에서 대규모 회사가 필요할 때는 늘상 국영기업으로 운영되게 마련이다.
 
  이런 기준으로 볼 때 독일은 高신용 국가의 전형인 반면, 이탈리아와 중국은 低신용 국가로 분류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은 후쿠야마 말을 빌자면, 奇異(기이)한 존재다. 대형 私(사)기업들이 경영되고 있어 표면적으로는 高신용 국가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低신용 비즈니스 문화를 갖고 있다.
 
  한국인들은 자신의 가족 또는 동문회나 고향 등 가족처럼 여길 수 있는 그룹들 출신이 아닌 사람은 믿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이같은 현상은 취약한 리더십으로 인해 금세기 후반에 접어들기 전까지 국가라는 인식을 정립하지 못한 오랜 역사적 경험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으로 정치 지도자들과 정부 관료들은 윤리로 잘 무장한 것으로 얘기됐다. 그러나 실제로는 非(비)윤리적으로 행동해 왔다. 그들은 法(법)을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적용돼야 하는 객관적 기준으로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약자들을 착취하는 무기로 삼았다. 그 결과 오늘날까지 한국인들은 法을 준수하려 하지 않으며, 法을 집행하는 사람들을 존경하지 않는다. 法이 약한 나라에선 정치권력이 法을 대신해 통제수단으로 자리잡게 마련이다. 그런 사회에선 사람들이 서로 신용하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러한 低신용 문화 아래 朴正熙(박정희) 前(전) 대통령이 한국경제 中興(중흥)을 도모하고 나섰을 때, 타이완식 모델을 따라 소규모 가족중심 비즈니스 창업을 장려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朴 前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 생각은 달랐다. 일본과 일본의 국가적 재벌 육성정책을 경험하면서 장차 일본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한국도 나름의 재벌을 형성해 나가야 할 것으로 보았다. 朴 前 대통령은 이후 몇몇 뛰어난 기업인들을 지원하기 시작했으며, 이들을 국가 건설의 토대로 삼았다. 그 열쇠는 금융부문을 정부가 관장토록 하는 것이었다. 금융기관들은 정부가 선호하는 소수 대형 재벌들에게 대출지원을 하도록 명령을 받았다.
 
  朴 前 대통령은 현대적 선진국가 건설을 단호히 결심하고, 은행이나 기업 근로자들에게 국가건설 과업을 위해 자신들의 이익을 희생토록 강요했다. 이것이 「주식회사 한국」의 근본 현실이었다. 한국은 자유로운 자본국가로 비쳐졌지만, 사실상은 거대한 국영재벌과도 같았다.
 
 
  이탈리아型 경제와 비슷
 
 
  『한국은 高신용 사회가 돼야 한다』고 말하기는 쉬울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한국이 선진경제로 살아남는 것은 한국의 진정한 문화를 반영하는 비즈니스 구조를 발전시키는 능력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해서 한국인들이 한 가족이나 同鄕(동향) 출신, 선후배가 아닌 사람을 믿지 못한다면, 조직 내에서 가장 창조적이고 경영수완이 뛰어난 사람들을 선택해 사업을 꾸려나가게 하라는 것이다.
 
  비즈니스가 활성화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초래해온 경제시스템의 취약점들을 정비해야 한다. 그리고 점차적으로 통제하고 지도하던 자리에서, 봉사하는 위치로 물러나야 한다. 정부가 민간인에게 보다 많은 자유를 부여하고 통제역할을 축소한다면, 더욱 자연스러운 한국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低신용 문화로 볼 때 한국은 이탈리아와 비슷하다. 이탈리아는 세계 선진경제국 중 하나로, 특히 패션, 가구, 포도주, 관광, 자동차 등의 산업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하지만 변화가 극심한 정부, 부정부패, 관료적 형식주의, 난폭한 운전관행 등 低신용 문화의 모든 증세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 이탈리아는 강한 경제를 이어가고 있다.
 
  보다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한국에도 부정부패나 나쁜 운전습관, 거친 정치 등이 있다. 유교적·사회공학적 마인드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혼란은 「도덕적 해이」이며, 반드시 피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된다. 나는 이 때문에 정부가 통제역할에서 물러나기가 어려워지고, 사람들도 정부가 통제를 계속해주기를 원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모두들 한국이 이탈리아처럼 될 것을 우려한다. 한국이 독일처럼 될 가능성도 있다. 독일이 힘과 효율성을 갖고 있다면, 이탈리아는 창의성과 열정, 역동성에서 매력적인 나라다.
 
  한국이 이탈리아처럼 경제적 역동성을 갖든지, 아니면 독일처럼 되기를 원한다면 취약점들을 개선하지 않으면 안된다. IMF로 인해 이미 한국의 취약점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한국에선 이미 국제사회가 놀랄 정도의 빠른 속도로 많은 변화가 이뤄졌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비효율적이고 불공정한 시스템을 개혁하는 수준까지 깊숙이 진행되지 못할 것이고 한국은 장차 또다른 금융 회오리에 휩쓸리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한국인들의 낮은 신용도에 기인하고 있는 이러한 우려들을 불식시켜야 한다. 가장 극명한 예가 계속되고 있는 부정부패다.
 
 
  다 나쁘다는 사고방식 버려야
 
 
  다음과 같은 사실을 고려해 보라. 인천의 화재 참사 같은 재난이 발생했을 때, 그 원인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가장 먼저 무슨 생각이 드는가. 소유주들이 소방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상납해오지 않았을까, 건물주가 사람보다 돈에 더 신경을 썼지 않았을까, 기자들이 제대로 취재도 안된 부실한 보도를 함으로써 경찰은 나름대로 뭔가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사람들을 구속시키는 것은 아닐까. 누가 범죄를 저질렀든, 전문적 결함으로 사건이 발생했든 아니든 맨 처음 드는 생각들이다. 기본적인 불신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불신은 곧 정당화된다. 어차피 法이 무시되는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정치권력은 法보다 강하다. 한 번은 청와대 관리를 만나러 간 적이 있었는데, 그가 시간보다 늦게 나타났다. 그는 사과하면서 부친의 집이 그날 아침 강도를 당해서 그랬노라고 해명했다. 내가 『아버님께서 경찰에 신고하셨느냐』고 물었다. 그는 대답했다.
 
  『아니오. 저에게 전화하셨습니다. 경찰서에 다녀오느라고 늦었습니다』
 
  그는 부연해 설명했다.
 
  『한국 사람들은 경찰이 범인을 잡는 데 총력을 기울이거나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가 청와대에 근무하고 있다는 영향력은 경찰로 하여금 해당 사건을 심각하게 여기게 만들었을 것이다.
 
  다른 한국인들을 만났을 때 이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경찰이 용의자 한 명을 잡아들여 해당 사건 범인임을 자백하도록 두들겨 팼을 것이고, 경찰은 청와대에 자신들이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음을 보여줬을 것이다』
 
  이것은 사실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한국인들이 이런 불신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불신은 사회 각계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를 특징짓게 된다. 거의 모든 직업이 불신의 대상이 된다. 의사는 제약회사에서 뇌물을 받을 것으로, 교수들은 학부형들로부터 촌지를 받을 것으로 의심받는 식이다. 財界(재계)에도 뿌리 깊은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 일반인들은 세무공무원이나 정부 회계감사관들이 당연히 뇌물을 받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어떤 회사가 모종의 입찰에서 낙찰을 받을 경우, 언제나 불법적 로비나 더러운 전술이 게재됐을 것이라는 의혹이 꼬리를 문다.
 
  지난 10여년간 꾸준한 계몽 덕분에 사회 각 분야가 과거보다 훨씬 깨끗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불신은 아직도 남아있고, 非理(비리)가 터져나올 때마다 다시 커져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부패문제도 여전하다. 신뢰성을 두지 않는 방식으로 처리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새로운 접근방식, 국민들을 믿는 방식으로 국민들에게 접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국가 지도자들이 한국민의 위대성을 분명히 인식시키고, 국민들을 불신과 불안에서 해방시켜줘야 한다. 역대 모든 정권이 부패하고 非민주적이었다는 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변호사 의사 정치인 교사 기업가 등 모든 직업인들이 자신의 직무에 충실하며 긍정적 태도를 가질 수 있도록 고무시켜줘야 한다. 현재의 反(반)부패운동은 누구나 다 나쁘다는 사고방식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과거를 용서한다는 의지를 갖고 법과 규제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선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수년 전엔 正常(정상)으로 받아들여지던 문제로 처벌을 가해선 안된다.
 
 
  위대성의 自覺
 
 
  새로운 태도가 수년 전부터 기능 정지상태에 빠진 금융계·업계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는 디딤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잘 운용만 된다면 이러한 변화는 경제적 부흥과 한국인의 창의성을 최대한 살리는 새로운 스타일의 한국 건설로 이어질 것이다.
 
  필자는 한국이 21세기의 가장 위대한 국가 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데 추호의 의심도 없다. 이 나라에는 한국인들보다 외국인들이 보다 명확히 認知(인지)하는 위대성이 있다. 미국의 위대함이 일반 국민들의 기독교적 장점과 자유에서 비롯됐다면, 한국의 위대함은 가족 내 미덕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는 자녀들을 그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고, 자녀들의 효도로 보상을 받는다. 이러한 家族愛(가족애) 에너지가 위대함을 향한 공동체적 의지로 발현돼 왔고, 이것이 한국을 세계무대 중앙에 서게 하는 힘이 되고 있다.
 
  미래 잠재력의 새로운 심벌이 박세리 선수다. 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성골퍼 중 한 사람으로 성장했다. 어떠한 연줄이나 뇌물에 의한 것이 아니었고, 오직 고된 노력과 자질 연마의 결과였다. 그러한 상징들이 「한국인(Korean)」의 우수성을 묘사하는 別稱(별칭)이 될 것이고, 한국인들은 점차 자신감을 회복하면서 자신들의 시스템과 동포들에 대한 신뢰도가 훨씬 높아졌음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월간조선 1999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