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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의 남자

이강기 2015. 9. 27. 16:54
  • 여왕의 남자

  • 조선일보

입력 : 2015.09.09 03:00 | 수정 : 2015.09.09 08:46

[68년간 그녀의 그림자로… 강한 엘리자베스 2세 몇미터 뒤엔, 늘 '외조의 王' 필립 있었다]

-오늘밤 지나면 바뀌는 역사
엘리자베스 2세 최장 영국王, 남편 필립公도 최장 배우자

-그리스서 추방된 왕족 출신
18세때 여왕 처음 만나 "내가 해야할 일은 여왕 실망시키지 않는 것"
"자식에게 姓 물려줄수 없는 유일한 남자가 바로 나" 한탄
때론 다른 여성과 스캔들도

68년간 원만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결혼 생활의 대부분인 63년을 '여왕의 남자'로 살아야 한다면 말할 것도 없다. 현지시각 9일 오후 5시 30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89)는 고조할머니 빅토리아 여왕의 통치 기간인 2만3226일 16시간 30분(63년 7개월 2일) 기록을 넘기고 역대 영국 군주 가운데 재임 기간이 가장 긴 통치자로 등극한다. 7일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가장 오래 집권한 왕의 배우자이자, 왕의 배우자로서 역대 최장기(63년) 기록을 세운 필립 공(94)에 대해 집중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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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 캐리커처 보고 미소 씩~ - 엘리자베스 2세의 남편 필립 공이 자신의 아내 캐리커처 옆에 서서 빙그레 미소짓고 있다. 필립공은 63년간‘여왕의 남편’으로 변함없이 엘리자베스 2세의 곁을 지켜왔지만, 공식 석상에선 늘 여왕보다 몇 발짝 뒤에서 따라와야 했다. /Getty Images 멀티비츠
엘리자베스 2세는 열세 살 소녀 시절, 아버지 조지 6세와 함께 영국 해군 사관학교를 방문했을 때 학교 안내를 해 준 다섯 살 연상의 사관학교 후보생 필립 공을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 그리스·덴마크 왕족인 필립 공의 가족은 1924년 그리스 왕정이 폐지되자 고국 그리스에서 추방됐다. 이후 필립 공은 영국·프랑스 등에서 교육받았고 영국 해군 장교가 되려는 꿈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릴리벳'이란 애칭으로 불리던 엘리자베스 공주와 만나 1947년 결혼식을 올리고, 영국인으로 귀화하면서 인생 행로는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1952년 조지 6세가 사망하자, '릴리벳'은 아버지 뒤를 이어 엘리자베스 2세로 등극했다. 1939년 해군에 입대해 최고 사관후보생으로 선발되기도 했던 필립 공이 전역한 것은 그 무렵이었다. 아내에게 폐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필립 공은 "내가 해야 할 일은 첫 번째, 두 번째 그리고 마지막도 결코 여왕을 실망시키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왼쪽부터)데이트 - 1952년 무렵 필립공과 아직 여왕이 되기 전인 엘리자베스 공주가 나란히 팔짱을 끼고 영국 햄프셔 브로드랜드 숲길을 산책하고 있다. 결혼식 - 1947년 11월 20일 결혼식장에 들어서는 신부 엘리자베스 공주와 신랑 필립공. 여행 - 1982년 여왕 부부가 1978년 영연방으로부터 독립한 솔로몬 제도에서 공식 석상에서 볼 수 없는 캐주얼한 옷차림을 하고 여유로운 한때를 즐기고 있다. 시간은 흘러… - 결혼 60주년을 맞은 2007년 여왕 부부가 즉위 전 데이트를 즐겼던 영국 햄프셔 브로드랜드 숲길을 다시 찾았다. 50여년 전 젊은 시절 외양은 사라졌지만, 다정해 보이는 모습은 그대로다.
(왼쪽부터)데이트 - 1952년 무렵 필립공과 아직 여왕이 되기 전인 엘리자베스 공주가 나란히 팔짱을 끼고 영국 햄프셔 브로드랜드 숲길을 산책하고 있다. 결혼식 - 1947년 11월 20일 결혼식장에 들어서는 신부 엘리자베스 공주와 신랑 필립공. 여행 - 1982년 여왕 부부가 1978년 영연방으로부터 독립한 솔로몬 제도에서 공식 석상에서 볼 수 없는 캐주얼한 옷차림을 하고 여유로운 한때를 즐기고 있다. 시간은 흘러… - 결혼 60주년을 맞은 2007년 여왕 부부가 즉위 전 데이트를 즐겼던 영국 햄프셔 브로드랜드 숲길을 다시 찾았다. 50여년 전 젊은 시절 외양은 사라졌지만, 다정해 보이는 모습은 그대로다. /영국왕실 사이트·데일리메일
 
 
'보이지 않는 외조'를 택한 그였지만, 가정 대소사에는 여왕보다 더 세심하게 배려했다. 장남 찰스 왕세자와 고(故) 다이애나 빈의 결혼 생활이 파탄 나기 직전, 그는 다이애나 빈에게 보내는 편지 말미에 "정신이 똑바로 박힌 인간이라면, 카밀라(당시 찰스 왕세자의 내연녀, 현재는 부인)를 위해 너를 버리진 않을 게다"라고 덧붙이며 "사랑하는 (시)아버지가"라고 서명했다. 바쁜 여왕을 대신해 자녀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준 다정한 아버지이기도 했다.

그러나 여왕의 배우자 자리는 만만치 않았다. 1953년 대관식 때 필립 공은 첫 번째로 아내 앞에 무릎 꿇고 충성을 맹세한 신하였다. 공식 석상에 나타날 때면 왕실 법도에 따라 항상 여왕보다 몇 발짝 뒤에서 따랐다. 한번은 심술 난 필립 공이 일부러 천천히 걸어온 나머지, 여왕이 멈춰 서 기다린 적도 있었다. 친구들에게 "나는 이 나라에서 자식에게 성(姓)을 물려줄 수 없는 유일한 남자"라고 한탄하기도 했다.

필립 공이‘친한 친구’라고 밝힌 레이디 브라본(사진 오른쪽)과 자동차 안에서 밀회를 즐기는 모습.
필립 공이‘친한 친구’라고 밝힌 레이디 브라본(사진 오른쪽)과 자동차 안에서 밀회를 즐기는 모습.

 

 

하지만 필립 공은 여왕에게 쓴소리를 하거나 허물없이 대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고 영국 언론은 전했다. 한번은 필립 공이 여왕을 옆에 태우고 직접 차를 몰고 가던 중, 여왕이 "속도를 좀 줄이라"고 청했다. 그날따라 기분이 좋지 않았던 필립 공은 "한 번만 더 그런 얘길 하면 내려서 걸어가게 할 거요"라고 되받아쳤다. 뒤에 앉아 있던 수행원이 나중에 여왕에게 "왜 가만히 있었느냐"고 '감히' 묻자, 여왕은 "(더 얘기했으면) 그는 정말로 나를 걸어가게 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필립 공이 남편으로서 항상 여왕에게 충실했던 것은 아니다. 젊은 시절 미남으로 유명했던 필립 공은 몇 차례 여성들과 스캔들이 났다. 최근엔 그가 '친한 친구'라고 밝힌 레이디 브라본과 차 안에서 데이트 즐기는 모습이 언론에 공개되기도 했다. 필립 공에 대한 전기를 쓴 영국 작가 가일스 브랜드리스는 여왕 측근 말을 빌려 "여왕이 남편의 여성 스캔들에 관대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아버지 조지 6세는 일찌감치 딸에게 "네 남편은 뱃사람 같은 사람이야. 한 번씩 파도를 탈 때도 있을 게다"라고 충고했다. 필립 공은 68년째 여왕의 옆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들은 오는 11월 20일 결혼 68주년을 맞는다. 데일리메일은 "다소 신경질적이지만 항상 명랑한 필립 공은 여왕의 기분을 맞춰주고, 언제나 여왕을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파트너"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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