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12.27 - 인천항에서 출발해 부산항에 도착한 피난민들은 그래도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겠지
1951.1.5 - 1.4후퇴 피난민들의 행렬
1951.1.4 - 한강 나루터에서 건너야 할 강을 바라보며 수심에 잠겨있을 피난민들
1951.1.6 - 수원역에서 남행열차를 기다리는 피난민들
1951.1.5 -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고 미군 부대에 몰려온 노무자들
1951.1.4 - 무개화차에 몰린 피난민들~ 무사히 갈 수나 있을려나
1951.1.5 - 서울. 꽁꽁언 한강을 피난민들이 조심조심 건너고 있다
1950.8.11 - 그해 여름 피난민들의 잠시 쉬어갈 움막
1950.8.15 - 피난민 행렬
1950.8.23 - 머리엔 이고, 등엔 업고, 앞에는 붙잡고...고단한 피난길~
1950.8.15 - 마산부근. 피난민들이 배를 기다리고 있다. 어디 조용한 섬이라도 있으려나~
1950.9.27 - 경인가도에서 국군 수복을 환영하는 사람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북한군이 내려 왔을 때는 또 다른 깃발을 흔들어야 했던 불쌍한 백성들이여!
1950.12.14 - 셔울역. 남행 피난민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11. 전사자 모습
12. 9보병연대 병사들과 M26 탱크가
북한군의 낙동강 도강에 대비히고
있다
13. 북한군포로의 모습, 그는 전쟁 포로라는
판을 목에 걸고 유엔법에
따라 관리되었다
14. 해병대를 태운 상륙정이 인천 해변으로 향하고 있다
15. 4척의 상륙정으로부터 병력과 장비가 내려지고 있다
16. 사다리를 싣고 인천 상륙을 위해 상륙정에 승선한 해병들
17. 인천의 관문인 을미도에서 북한군을 소탕 중인 해병대
18. 해병들이 사다리를 이용해 인천 해안에 상륙하고 있다.
이 공격은 신속했으며 부상자는 놀랄 정도로
적었다
19. 상륙 작전중 인천 해안을 살피는 맥아더 사령관
20. 어린 소녀가 길가에 앉아 울고 있다.
미해병과 한국 해병이 인천에
상륙한 직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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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는 전쟁 중 폐허로 변한 도시의
모습과
한국군·미군의 전투 모습 등이 다양한 형로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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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4 보병연대가 전선으로 이동하고
있다.
2. 철조망을 싣고 대구역을 출발하는 화물 열차.
3. 부상병이 의무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4. 북한군의 박격포 공격으로 부상 당한
병사가
부산으로 이동하는 열차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5. 대구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연설을 듣기 위해 군중이 모여 있다
6. 해군 병사들이 배 난간에 기대어 쉬고 있다
7. 3개의 BD-100A와 BD-96을 제임스가 조작하고 있다
8. 상륙후 부두에서 쉬고 있는 미군 병사들
9. 전투가 소강 상태일 때 무전병이
신문을 보며 음식을 먹고
있다
10. 새로 도착한 미 해병 대원들이 전선으로 이동하기 전의 모습
북한 남침전쟁에 뛰어든 유일한 여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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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보다 군복이 어울리는
여자"
퓰리처상에 빛나는 美女 종군기자의 불나비
같은
생애
<한국전쟁 취재 당시 히긴스 기자는 30세였으나 여대생 같이 애띤
모습이다.>
<1951년 출판된 히긴스 기자의 책 "한국전쟁". 필자는 이 책을
인터넷을 통해 구입했는데 표지 카버는 낡아서 너덜너덜했다.>
<한국전선에서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 장군과 인터뷰하는 당찬 여기자 히긴스>
<낙동강 전선에서 미육군 27연대장 마이캘리스 대령을 인터뷰하는 히긴스
기자>
<워싱턴의 알링턴 국립묘지에 있는 히긴스
기자의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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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룡 특무대장과 홍성기 감독. 1950. 11월, 방첩대(CIC)본부에서 기록영화를 촬영할 당시 홍성기
감독이 사전 연출지시를 하는 장면이다. 16mm 필름으로 제작한 한국 최초의 컬러 극영화인 `여성일기'를 비롯해 `별아 내 가슴에', `춘향전'
등을 연출한 홍 감독은 여배우 김지미의 첫남편으로 잘 알려져 있다.연합
한국군의 유재흥 소장. 1951. 1.22일 촬영. 한국전 당시 육군참모차장을
지냈으며 71∼73년 국방장관을 지냈다
한국전 당시 젊은 모습의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 육군본부 정보국 차장으로 재직하던 1951년의
모습
신병들을 모아놓고 연설하는 김백일 소장. 육군 1제군단장인 김 소장은 유엔군의 반격과 함께 가장 먼저 38선을 돌파, 혜산까지
북상했으며 12월 흥남철수작전 때 10만명의 피난민 수송을 지휘했다. 1951년 3월 비행기 추락으로 순직했다.
이곳에 가시면 6.25 남침전쟁 사진 전시회를 보실수 있습니다
http://www.uriminzokiri.com/contents/625/gallery.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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