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12.21 07:36, 조선일보
"개만도 못한 인간쓰레기…" 장성택 판결문으로 본 북한의 언어 오염, 왜 이지경이 됐나
정권 지탱위한 '感性 독재'
일환
수령에 대한 충성과 적에 대한 증오심… 극단적 찬미와 극단적 쌍욕·저주 쏟아내
계급투쟁 부추기려 표현 더
거칠어져
1967년 김일성의 교시에 뿌리
"전투적 화법 사용하라" 지시 이후 北 전역 공식적 언어 오염되기
시작
부시-불망나니·라이스-암캐…
멍든 얼굴로 끌려나오는 장성택 사진을 보고 한 외국인이 "북한은 살벌하고 미개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은 한국인이 느낀 또
다른 북한의 살벌함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개만도 못한 추악한 인간쓰레기 장성택은…." 욕설인지 판결문인지 헷갈리는 조선중앙TV 아나운서의 고함을 실컷 듣고 한숨 돌리려는 순간, "갈기갈기 찢어서 역사의 오물장에 내동댕이쳐야 한다"는 평양시민의 반응이 쏟아진다. 단어 하나하나에 머리가 난타당하는 느낌이다.
박용옥(71) 전 평안남도 지사는 "이북 출신이지만 이질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예전엔 지금처럼 말이 험하지 않았는데 반세기 동안 바뀐 것 같다"는 것이다.
20세기 한국의 미문(美文)을 상징하는 소설가 이광수와 시인 김소월은 각각 평북 정주와 평북 구성 출신이다. 그런데 어쩌다 저 지경이 됐을까.
뉴포커스 장진성 대표(1994년부터 2년 동안 조선중앙방송 기자로 근무)는 '물리적 독재'와 함께 북한 정권을 지탱하는 '감성(感性) 독재'라는 개념을 전했다. "감성 독재의 핵심은 수령에 대한 극도의 충성과 적들에 대한 극도의 증오심을 말한다. 충성 경쟁과 증오 경쟁이 '극단의 찬미'와 '극단의 저주'라는 두 형식으로 뒤엉켜 나오는 것이다."
"개만도 못한 추악한 인간쓰레기 장성택은…." 욕설인지 판결문인지 헷갈리는 조선중앙TV 아나운서의 고함을 실컷 듣고 한숨 돌리려는 순간, "갈기갈기 찢어서 역사의 오물장에 내동댕이쳐야 한다"는 평양시민의 반응이 쏟아진다. 단어 하나하나에 머리가 난타당하는 느낌이다.
박용옥(71) 전 평안남도 지사는 "이북 출신이지만 이질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예전엔 지금처럼 말이 험하지 않았는데 반세기 동안 바뀐 것 같다"는 것이다.
20세기 한국의 미문(美文)을 상징하는 소설가 이광수와 시인 김소월은 각각 평북 정주와 평북 구성 출신이다. 그런데 어쩌다 저 지경이 됐을까.
뉴포커스 장진성 대표(1994년부터 2년 동안 조선중앙방송 기자로 근무)는 '물리적 독재'와 함께 북한 정권을 지탱하는 '감성(感性) 독재'라는 개념을 전했다. "감성 독재의 핵심은 수령에 대한 극도의 충성과 적들에 대한 극도의 증오심을 말한다. 충성 경쟁과 증오 경쟁이 '극단의 찬미'와 '극단의 저주'라는 두 형식으로 뒤엉켜 나오는 것이다."
북한의 '욕 폭탄'은 산 자와 죽은 자, 강자와 약자를 가리지 않는다. 국경도 상관없다. 쌍욕과 저주가 기본이지만, 때론 실소(失笑)가 나오는 조롱과 현란한 수식도 섞는다. 착탄(着彈) 목표는 한 곳. '북한과 수령을 욕보이는 자들'이다.
가장 최근 북한발(發) '말 폭탄'의 과녁은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박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탈북 주민의 정착을 도와야 한다"고 말하자, 18일 북한의 대남 선전 인터넷 매체 우리민족끼리는 "이런 걸 두고 돌미륵도 앙천대소할 나발이라고 한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지난달 30일 정홍원 총리가 들은 욕설과 비교하면 극히 양질이다. 조선이 일제와 맺은 강화도조약의 강제성에 대해 정 총리가 국회에서 "역사학자들이 판단할 문제"라고 답하자,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렇게 논평했다. "친일 매국의 사생아, 현해탄을 건너가 군국주의 미치광이들의 발바닥이나 핥아줘라."
그보다 열흘 전 류길재 통일부 장관도 "한국이 통일을 주도해야 한다"고 말했다가, 한소리 들었다. "까마귀 꿩 잡아먹을 생각 같은 허황하고 시대착오적인 발상(북한의 해외 홍보용 주간지 통일신보)."
하지만 북한 전문가들은 전 정권과 비교하면 아직 '실력'이 드러나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이명박 정부 말기인 작년 4월 북한의 국영통신인 조선중앙통신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새끼 식초 채먹은 것 같은 잔뜩 찌푸린 상판대기로 쥐 똥 같은 소리만 줴쳐대는 저 리명박이놈"이란 극언을 쏟아부었다. '채먹다'는 '훔쳐먹다', '줴쳐대다'는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다'란 뜻이다. 그 밑에서 일하던 현인택 통일부 장관도 덩달아 "쥐굴에서 대가리를 내민 박멸의 대상"이란 욕을 얻어먹었다.
북한의 '욕 폭탄'이 사방팔방으로 뛴 것은 2000년대 중반이다. 2005년 4월 조선중앙통신은 미국 조지 부시 대통령에 대해 "인간의 초보적인 체모조차 못 갖춘 불망나니에 도덕적 미숙아"라고 악담을 쏟았고, 한 달 뒤 평양방송은 함께 일하던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에 대해 "암탉이 홰를 치니 백악관에 망조가 들었다. 범 무서운 바닷가 암캐처럼 캥캥 짖어댄다"고 공격했다. 라이스 장관은 그 무렵 북한으로부터 '불검둥이'란 인종차별 발언까지 들었다.
라이스 장관이 암탉에 비견되는 바람에 '수탉' 신세를 면치 못한 남자들도 있다. 라이스를 공격하던 평양방송은 분이 덜 풀렸는지 라이스의 당시 경쟁자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에 대해 "서로 물어뜯을 내기를 하는 것이 승냥이들의 생존 방식이지만 암탉과 수탉이 물어뜯을 내기를 하는 것은 난생 처음 보는 희귀한 일"이라고 논평했다.
일본 정치가들도 사정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05년 8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일본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추진하다가 실패하자, 평양방송은 "오뉴월의 개꿈 같은 망상에 사로잡혀 계속 분수없이 놀아댄다면 더 큰 수치와 망신만 당하게 될 것"이라고 힐난했다. 2009년 5월 아소 다로 총리가 북한 미사일 문제를 거론했을 땐, 노동신문과 내각 기관지인 민주조선이 함께 "창피를 모르는 정치 시녀, 만화 애호가(아소 총리는 실제로 만화광이다)의 망측한 추태"라는 논평을 내놓았다.
해외 언론은 북한의 이런 막말을 번역하는데 애를 먹는다. 2009년 7월 평양방송은 북한을 10대 청소년에 비교한 당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에 대해 "(넌) 장마당 할머니"라고 공격했다. 미국 CNN 방송이 고심 끝에 번역한 문장은 'a pensioner going shopping'. 직역을 하면 '쇼핑하러 가는 연금 수령자'란 뜻이었다.
때론 뜻밖의 대상에게 욕설을 퍼붓는 경우도 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했다가 욕을 먹은 새누리당 출신 손수조와 이준석씨가 그런 경우다. 지난 12일 우리민족끼리는 이들을 "골받이(머리로 힘껏 받는다는 뜻) 잘하는 새끼 염소"에 비유한 뒤 "제 몸값 올려보려고 어르신들의 수염을 잡아 흔들고 귀 뺨을 친 모양"이라고 비난했다. 20년을 거슬러 올라간 1993년엔 공로명 당시 주일대사가 북한을 비판했다가, "미꾸라지 국을 먹고 용트림한다"는 조롱을 들었다.
◇계급투쟁이 언어를 오염
서울대 언어학과 권재일 교수(겨레말큰사전 2기 위원장)는 "어느 시대든 비속어와 막말은 있었지만, 북한은 정치 색채를 띠고 점점 표현이 거칠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적 이유 때문에 사적인 언어가 공적인 매체나 공적인 사람을 통해 표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하수 연세대 국문과 교수도 북한의 언어가 험해진 것은 '계급투쟁'이란 정치적 요소가 개입돼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국·미국·일본 정치가를 쌍욕으로 비난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국제관계를 계급투쟁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는 "1960년대 이전 북한 문학을 보면 계급투쟁이 아닌 것은 비교적 유순하다. 평범하고 오히려 맨송맨송하다"고 말했다.
북한의 공적 언어가 오염되기 시작한 시점에 대해, 장해성 북한망명센터 이사장(탈북자)은 '전투적 화법을 사용하라'는 김일성 교시가 나온 1967년을 들었다.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탈북자)는 "북한이 극단적으로 나가기 시작한 것은 김정일 집권 말기인 듯하다"며 "최고 지도자의 인격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