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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83)-②]박태준의
마지막 연설에 등장하는 잊지 못할 사람들은?2015.06.23 (화)
- <①편에서 계속>여든네 살의 황혼을 소일하는 박태준의 몸에 귀신처럼 달라붙어 계절이 두어 차례 바뀌어도 도무지 떨어질 줄 모르는 기침, 이 몹쓸 놈을 더 설치게 만들 것 같은 가을이 왔다. 한가위를 맞아 ..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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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83)-①]박정희
사진을 상위에 올려놓고 세배했던 박태준2015.06.23 (화)
- 청암(靑巖) 박태준은 생애에 여든네 번째로 맞은 여름의 한 자락을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에서 보내고 있었다. 2011년 8월, 한낮 수은주가 섭씨 25도에 닿을락말락하는 피서 휴양지. 그러나 그는 겨울철 독한 감기에 ..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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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82)-②]클린턴,
장쩌민 보다 감동적이었던 박태준 연설2015.06.19 (금)
- <①편에서 계속>2007년 6월 박태준은 세 번째로 베트남을 찾았다. 몇몇 동지들과 보름 일정으로 돌아볼 동남아, 홍콩, 중국 여행의 첫 기착지가 호찌민이었다. 베트남의 변화와 발전 양상에 대한 궁금증을 ..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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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82)-①]베트남에서
박정희의 빚을 갚고 싶었던 박태준2015.06.19 (금)
- 2010년 1월 하순, 박태준은 3박4일 계획으로 베트남 하노이를 방문했다. 그의 인생에서 네 번째 베트남 방문을 환영하듯 마침 하노이 시가지에는 ‘수도 천 년’의 경축 현수막들이 축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미..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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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81)-②]지칠대로
지친 박태준, 지병과의 싸움을 앞두다2015.06.15 (월)
- <①편에서 계속>김대중의 승리는 박태준에게 포스코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김영삼의 사람을 밀어내고 포스코의 사람을 앉힐 수 있는 힘도 주었다. 그것은 김대중 대통령이 박태준 자민련 총재에게 건네는 예의의 선물..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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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81)-①]박태준,
김대중에게 박정희 생가를 방문하게 하다2015.06.15 (월)
- 1997년 11월 하순, 대선 형편이나 경제 형편이나 긴박하게 돌아가는 그즈음의 어느 아침, 박태준은 김대중 대선 캠프의 젊은 국회의원 김민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간단하고도 분명한 용건이었다. 12월 5일에 김대중 ..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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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80)]박태준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침묵의 열변’을 토한 박지만2015.06.09 (화)
- 1997년 초여름, 박태준은 4년여 해외 유랑생활을 접고 포항으로 돌아왔다. 정치적인 상처를 입고 조국을 등져야 했던 그는 어느덧 일흔 살을 헤아렸다. 그러나 5년 전 박정희의 유택 앞에서 다짐했듯이 ‘잘사는 나라 ..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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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79)-②]박정희의
절대적인 신뢰를 매듭지은 박태준2015.06.01 (월)
- <①편에서 계속>포항제철 4기 완공을 1년여 앞두고 각하께서 졸지에 유명을 달리하셨을 때는 철강 2000만 톤 생산국의 꿈이 이렇게 끝나버리는가 절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철강입국의 유지를 받들어..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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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79)-①]박태준이
박정희의 영전에 올리는 보고2015.06.01 (월)
- 1992년 10월 2일 늦은 오후, 박태준은 한 사람의 손님처럼 광양제철소를 떠났다. ‘철강 2100만 톤 대한민국’을 완성한 그가 반드시 찾아가야 할 곳은 서울에 있었다. 종합준공식에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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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78)-②]박태준,
박정희와 노태우에 대한 상반된 감정2015.05.27 (수)
- <①편에서 계속>“이 고로의 불꽃이 국가재건, 민족중흥의 불꽃이야.”“이 불꽃을 끝까지 짊어지고 가겠습니다.”“우리는 이 불꽃을 끝까지 짊어지고 가야 해.”1973년 7월 3일 일제 식민지 배상금으로 완공..이대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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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78)-①]박정희와
약속을 완수한 박태준의 선택은?2015.05.27 (수)
- 박태준이 박정희와 약속한 ‘철강 2000만 톤 시대’를 완전히 실현한 때는 1992년 10월 2일, 박정희가 세상을 떠난 지 13년 만이었다. 생전의 박정희가 박태준에게 마지막 선물로 안겨준 제2제철소를 연산 120..이대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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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77)-②]홀연
박정희가 서거했다는 소식에 박태준은 두문불출2015.05.18 (월)
- (①편에서 계속)6‧25전쟁 발발 전에 간신히 숙군(肅軍)의 사선(死線)을 빠져나온 박정희, 그의 전도(前途)가 암울하기 짝이 없었던 그때부터 그의 생이 비극으로 마감된 그날까지 언제나 한결같고 허물없는 술친구로 지..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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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77)-①]홀연
박정희가 서거했다는 소식에 박태준은 두문불출2015.05.18 (월)
- 1979년 10월 26일 박태준은 여느 날처럼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 아침 8시 30분 임원간담회의 주재로 시작한 빡빡한 일정 중에 특별한 일은 특강이었다. 그는 제철연수원에 강사로 가서 포스코 중간간부들에게 ‘자주..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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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76)]박태준의
가슴에 박힌 박정희의 마지막 말, “나는 여기까지”2015.05.13 (수)
- 1979년 7월 초순, 장안의 화제는 2박3일 방한 일정을 마치고 7월 1일 서울을 떠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의 정상회담이었다. 인권 문제, 주한미군철수 문제를 놓고 양국 수뇌가 심하게 얼굴을 붉혔..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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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75) 상]박정희,
김대중 납치 사건 일으킨 이후락에게 재떨이 던지다2015.05.06 (수)
- 1979년 1월 31일,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오랜만에 불을 밝힌 포항시 효자동 포스코 영빈관 ‘백록대’는 훤하게 밝았다. 대통령의 고향에서 실어온 막걸리가 동이 나야만 두 사람은 자리를 작파하려는가. 박정..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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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75) 하]박정희,
김대중 납치 사건 일으킨 이후락에게 재떨이 던지다2015.05.06 (수)
- (상편에서 계속) 전면적인 중단, 일본정부의 대한(對韓) 경협중단은 말 그대로 전면적인 것이었다. 설비구매나 기술협력에서 일본철강업계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박태준의 포스코도 예외로 두지 않는다고 못을 박았다..이대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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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74)]박정희,
“태준이 약속은 신용장 같은 거지.”2015.04.29 (수)
- 1979년 1월 31일 저녁, 박정희가 포항으로 내려왔다. 명목은 다음날로 잡힌 ‘포철 4기(850만 톤 체제) 종합착공식 참석’이었다. 그러나 진짜 목적은 공장 순시가 아니었다. 오늘 밤에 막걸리 한잔 하자. 이것..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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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73)-②]박태준이
'올해의 인물'에 선정된 이유2015.04.20 (월)
- <①편에서 계속> 3기 종합준공식이 끝난 1978년 세모, 일본기술단이 보따리를 꾸려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제철기술의 식민지를 극복하기 위해 해외연수와 기술개발에 과감히 투자해온 포스코가 기술독립의 ..이대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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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73)-①]박정희
"나 배웅할 필요 없어. 외국 손님 접대에 바쁠텐데..."2015.04.20 (월)
- 1978년 12월 8일 오후 3시, 3고로 주상에서 ‘포항제철 3기 설비 종합준공식’이 열렸다. 대통령, 상공부 장관, 건설부 장관을 비롯한 내외 귀빈 300여 명이 참석했다. 박정희는 “1984년까지 우리나라가 철..이대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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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72)]박
사장님, 중국에 납치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2015.04.13 (월)
- 제2제철소 실수요자 결정에 대해 박정희가 사실상 ‘박태준의 포철’로 결정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박태준은 청와대 헬기에 올랐다. 앞 헬기엔 대통령, 비서실장, 경제수석, 포철 사장이 탑승하고 뒤 헬기엔 포스코의 ..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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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71)-②]덩샤오핑은
일본 제철소를 찾아가고...2015.04.07 (화)
- (상편에서 계속) 박태준은 가슴의 응어리 같은 논리들을 꺼냈다. 대통령이 귀를 기울이자 비서들은 듣고만 있었다. 간간이 대화가 섞인 가운데 정연하게 전개해 나간 그의 긴 주장은 《조선일보》 선우휘 주필과 대담에서 처..이대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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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71)-①]박정희,
박태준에게 마지막 선물을 안겨주다2015.04.07 (화)
- 1978년 10월 초순, 청와대에서 월간 경제장관회의가 열렸다. 부총리, 재무부 장관, 상공부 장관, 건설부 장관 등 경제부처 각료와 대통령 비서실장, 경제수석비서관이 한자리에 모였다.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제2제철..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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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70)]정주영의
현대와 박태준의 포철이 벌인 제2제철소 쟁탈전<下>2015.03.26 (목)
- 박태준이 포철 3기 공기단축을 위한 ‘건설비상’을 선포하고 종합 카운트다운 체제에 돌입하여 영일만에 다시 전투 같은 날들이 이어지는 1978년 6월 중순, 포스코는 ‘제2제철소 1기 설비 사업계획서’를 상공부에 제출..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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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69)]정주영의
현대와 박태준의 포철이 벌인 제2제철소 쟁탈전<中>2015.03.17 (화)
- 1978년 4월 1일 포스코는 창립 10주년을 맞이했다. 박정희가 선물을 보내왔다. ‘鐵鋼은 國力’이라는 친필 휘호였다. 포스코 창립 10주년. 박태준은 누구보다 가슴이 벅찼다. 그는 기념사에서 솔직한 속내를 굳이 ..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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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68)]정주영의
현대와 박태준의 포철이 벌인 제2제철소 쟁탈전<上>2015.03.13 (금)
- 1978년, 무오년(戊午年) 새해가 밝았다. 포스코 창업 10주년의 해. 박태준은 신년사에서 자신감 넘치는 새 비전을 제시했다. “10년 전 오직 젊음과 정열, 사명감만으로 뭉쳐 우리나라 철강공업의 밑거름이 되기로 ..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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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67)]부실공사를
폭파한 박태준이 ‘가난뱅이국가’ 딱지도 떼버리다2015.03.09 (월)
- ‘발전주의 국가’가 주도하여 압축성장하는 한국경제에 아주 좋은 보약이 되었던 1970년대 중후반의 ‘중동 특수’. 빈곤을 떨쳐내고 일어서려는 한국인에게 고맙게도 달러를 보태주는 그것이 1977년 여름의 영일만 건설현..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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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66)]제강사고를
극복한 박태준에게 이병철이 찾아오다2015.03.04 (수)
- 포스코 사장 박태준이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었으랴. 1974년 6월 29일 준공을 앞둔 포항제철소 주물선공장에서 육영수 여사와 따뜻하게 나누었던 작별인사가 다시는 만나지 못할 영원한 작별이 될 줄이야…. 그해 8월..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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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65)]가택수색을
당한 박태준이 박정희에게 사표를 내는데2015.03.02 (월)
- 1974년 6월 28일 대통령 가족이 포항을 찾았다. 그날 오전에 박정희는 울산의 현대조선소 1차 준공식 및 26만 톤짜리 유조선 두 척의 명명식(命名式)에 참석했다. 한국 중공업사의 이정표를 세우는 그 자리에서, ..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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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64)]박태준에게
내리 세 번씩이나 패퇴한 아이젠버그가…2015.02.26 (목)
- 아이젠버그는 영일만에서 아리가를 솎아내기 위해 신속하고 기민하게 움직였다. 그의 사업 거점이 일본이니 그럴 만한 능력과 인맥을 거머쥔 인물이었다. 다만, 박태준이 그의 발을 따라잡고 손을 묶을 수 있는가? 이게 관건..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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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63)]박태준에게
물 먹은 아이젠버그의 첫 음모2015.02.23 (월)
-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한국 정․재계가 괴상(怪商)이라 부르기도 했던 아이젠버그가 어떤 인물인가? 아이젠버그는 한국 제철산업과의 관련만 봐도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대한중공업공사 평로 ..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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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62)]박태준에게
‘기적’이란 말을 선물하는 박정희2015.02.16 (월)
- “정말 믿어도 되는 거야?”식민지배상금으로 세운 용광로, 그 국가재건과 민족중흥의 불꽃을 끝까지 짊어지겠다고 박정희 앞에서 다짐했던 박태준이 그의 전화를 받았다. 1974년 1월 중순이었다.“지금 포철 보고서를 보고..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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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61)]박태준을
3번이나 호명한 박정희, "우리는 민족중흥의 이 불꽃을 짊어져야 해"2015.02.09
(월)
- 박태준은 아침에 몸을 깨끗이 씻었다. 아들의 성공을 빌기 위해 정한수를 뜨러 나가는 어머니의 심정으로 숙소를 나섰다. 형산강 다리를 건넜다. 어느새 말간 해가 한 발 남짓 올라와 있었다. 영일만 바다에는 눈부신 아침..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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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60)]첫
출선을 준비하며 속을 태우는 박태준2015.02.05 (목)
- 영일만 모래벌판에 최초 공장이 완공됐다. 1972년 7월 4일 오전 11시, 포철 1기의 22개 공장 중 제일 먼저 ‘중후판공장 준공식’이 열렸다. 외자 2430만 달러와 내자 24억 원을 투입한 공장 건설에서 ‘공..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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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59)]“현장의
나는 전쟁터 소대장”이라 외치는 박태준의 철저한 현장제일주의2015.02.03 (화)
- “명령은 5%고 확인과 감독이 95%다.” 군대 지휘관 박정희의 원칙이었다. 포항제철 건설 현장의 박태준에게 그것은 강철 같은 원칙으로 끊임없이 작동하고 있었다. 1972년 봄날의 나른한 한낮. 박태준은 제강공장 건..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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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58)]일본과
동등한 조건으로 원료공급계약을 체결하고 열연비상을 걸다.2015.01.28 (수)
- 1968년 4월 1일 ‘정부기관이 지배주주인 상법상 주식회사’로 포스코가 태어난 그때, 포스코와 지배주주(한국)는 자금(자본)이 없고 기술이 없고 경험이 없었다. 그래서 무(無)에서 출발한 포스코라 불리며, 그래서 ..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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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57)]정치자금
거절하며 “중통령”이라 불러달라는 박태준2015.01.23 (금)
- 1971년 새해 영일만에는 거대한 철골 구조물이 우후죽순처럼 솟아올랐다. 바깥세상은 온통 대통령선거에 관심이 쏠리는 중이었다. 3선 개헌을 통과시킨 박정희가 확고부동한 공화당 후보로 정해져 있었고, 신민당은 김영삼‧..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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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56)]처음
받아본 '뒷돈'을 박태준은 정작 다른 곳에 썼다는데···2015.01.21 (수)
- 1970년의 박정희는 국내의 거센 저항을 받는 가운데 워싱턴과 껄끄러워지고 있었다. 김지하 시인의 ‘5적 필화’ 사건이 일어나고, 닉슨이 주한미군 철수를 발표했다. 베트남전쟁은 종점으로 가고 있었다. 박정희의 시각에..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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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55)]박태준의
철판과 정주영의 배가 만나는 순간2015.01.19 (월)
- 1970년 4월 1일 오후 3시. 영일만 모래벌판에서 천둥 같은 폭발음과 함께 오색찬란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지반을 다지기 위해 항타기로 파일을 두들겨 박는 굉음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1961년부터 박정희가 꿈꿔..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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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54)]박태준
"실패하면 우리 모두 우향우 해서 영일만에 빠져죽어야 합니다"2015.01.16 (금)
- 1970년과 1970년대의 개막을 한꺼번에 알리는 붉은 햇덩이가 영일만 수평선 위로 얼굴을 내밀었다. 쇳물, 바로 그 빛깔이었다. 한국 산업화 역사에서 1970년 새해에 기록할 쾌거는 마침내 종합제철 건설의 막을 올..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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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53)]박태준에게
"뭐든 배워오면 국가를 위해 쓰일 날이 온다"고 했던 박정희2015.01.12 (월)
- 아카자와 쇼이치가 인솔한 일본조사단이 포항을 다녀간 1969년 9월 중순, 박태준은 포스코 내에 ‘건설기획조정위원회’를 구성했다. 이 조직은 설계 및 공정 기획, 시공업체와 계약업무 조정, 예산 통제, 설비구매 기획..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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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52)]포항제철을
찾은 일본조사단의 아카자와가 박태준에게 받은 인상은?2015.01.06 (화)
- 1969년 9월 17일 포항종합제철 건설 타당성 조사를 위한 일본조사단(단장 아카자와 쇼이치)이 김포공항에 내렸다. 서울 거리가 한창 소란스러운 날이었다. 9월 14일(일요일) 새벽 2시 30분, 이효상 국회의장이 ..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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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51)]박태준의
발품에 감동한 나카소네 전 일본 총리2015.01.02 (금)
- 박태준은 도리없이 또다시 김포공항으로 달려갔다. 오직 ‘일응’이라는 두 글자의 일본어(한자)를 빼기 위하여. 그러나 그것이 ‘마라톤 같은 장정’이 될 것이라는 예상까지는 하지 못하고 있었다. 박태준은 도쿄에 닿기 바..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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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50)]기술협약서
한장 위해 일본 철강업계에 3번이나 머리를 조아린 박태준2014.12.31 (수)
- 8월 22일 일본철강연맹은 이나야마 회장의 주선으로 ‘한국제철소건설협력위원회’를 구성했다. 일본 철강회사들과 종합상사들로 구성한 이 위원회는 설계‧건설의 기술지원과 기자재 선정의 협력을 위한 조직이었다. 이날 일본정..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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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49)]종합제철소
자금조달의 마지막 난관을 넘다2014.12.29 (월)
- 1969년 8월 15일, 아이치 외무상이 한국 광복절을 축하하듯 기자회견을 통해 외무성 대장성 통산성 관계자들이 여러 차례 합동회의를 한 결과 대일청구권자금 전용에 대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검토가 이루어졌고 22일 일..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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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48)]박태준
"일본을 이기려면..."2014.12.26 (금)
- 8월의 도쿄는 서울보다 뜨거웠다. 박태준은 맨 먼저 야스오카를 찾아간다. 포철에 대해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언약도 해주고 서신도 보내준 이나야마를 또다시 찾아가는 이번 길에도 박철언, 야기 노부오와 함께 야스오카의..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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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47)]박태준이
3선 개헌 서명을 거부하자 박정희는...2014.12.22 (월)
- 한국 정부가 KISA에 휘둘리고 있어서 포스코는 착공 시기조차 예측할 수 없었던 1969년 4월, 국내 정치적 상황은 갈등과 혼란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해 1월 여당(공화당)이 박정희의 3선을 허용하는 개헌을 검토한..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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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46)]최후의
카드를 꺼내든 박정희2014.12.16 (화)
- 1969년 4월의 IECOK 파리 총회가 포항종합제철 건설 차관 제공에 대해 ‘불가’를 결정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경제성이 결여되었다, 둘째는 한국의 외채 증가로 상환 능력이 없다. 박태준은 첫째 이유에 분..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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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45)]박정희와
대화를 끝까지 발설않고 지킨 박태준2014.12.11 (목)
- 대일청구권자금의 포철 전용에 대한 오원철의 회고도 짚어봐야 한다.1928년에 태어난 오원철은 1957년 시발자동차 공장장을 지낸 경력이 보여주듯 엔지니어 출신으로 1961년 국가재건최고회의 기획조사위원회 조사과장을 ..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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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44)]폭설에도
비행기 타고 협상하러 미국간 박태준2014.12.05 (금)
- 1969년 2월 박태준이 하와이에서 대일청구권자금 여분을 포항제철 1기 건설비로 전용하자는 아이디어에 착안했고, 박정희가 그것을 재가했다. 이를 포스코는 ‘하와이 구상의 실현’이라고 한다. ‘하와이 구상’이라는 명명..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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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43)]박정희가
대일청구권 자금의 포철 전용 구상을 비밀에 붙인 이유2014.12.03 (수)
- 대일청구권자금의 포항종합제철 건설비 전용, 1969년 2월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에서 구원의 밧줄처럼 거머쥔 박태준의 착안에 대한 박정희의 승인과 재가. 뒷날에 포스코 사람들은 ‘하와이 구상’이라 명명한다. 그것은 한..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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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42)]미국
자금줄이 막힌 박태준에게 번뜩 떠오른 기발한 생각2014.12.01 (월)
- 박태준은 포이에게 심야 결례의 이해부터 구했다. 포이는 기분이 상한 표정은 아니었다. 한국어 바이블에 등장하는 단어를 빌리자면 ‘젊고 가난한’ 한국인 사장을 ‘긍휼히’ 여기는 것 같았다. “박 사장님, 하고 싶은 ..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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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41)]일본
정부 "포철 건설 말고 일본 제품 사가라"2014.11.28 (금)
- 박태준은 미국 피츠버그로 가기 위해 서울을 출발했다. 그날은 1969년 1월 31일이었다. 폭설에 덮인 김포공항. 간신히 확보한 활주로가 있어 대한항공은 뜬다고 했다. 경제팀 관료로는 정문도 경제기획원 차관보, 포스..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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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40)]건설차관
조달 위해 미국으로 가기전 박태준이 내린 엄청난 결정2014.11.26 (수)
- 해가 바뀌었다. 1969년 새해. ‘해를 맞이하는 만’이라는 뜻의 영일만(迎日灣), 그 수평선 위로 쇳물 빛깔의 붉은 해가 힘차게 솟아올랐다. 포항종합제철 고로에서 그 태양 빛깔의 쇳물이 쏟아져 나오고 그 쇳물이 한..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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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39)]포철
건설현장을 첫 방문한 박정희 "제철소가 되기는 되는 거야?"2014.11.24 (월)
- 1968년 11월 5일 박태준은 모처럼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지난 7월 31일 KISA에 제안했던 GEP 수정 협상안이 지루한 협의를 거쳐 일괄 타결되었다는 것. 공장 일반배치의 변경에 소요되는 비용 88만5000..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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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38)]공장
건설에 앞서 은행 빚내서 좋은 사원주택부터 짓다2014.11.20 (목)
- 철거민의 이주 행렬, 수녀원과 고아원의 폭파를 지켜보는 포항시민이 포항종합제철 건설을 확신할 수밖에 없었던 1968년 여름, 실상 포스코의 미래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KISA와 일반기술계획(GEP)의 문제점들에 ..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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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37)]육영수,
포스코에 밀려나는 고아원의 이주비를 지원하다2014.11.17 (월)
- 2005년 가을이었다. 아흔한 살의 김벨라뎃다 수녀는 사십대 중반의 작가(이대환) 앞에서 저 아득한 37년 전에 포항종합제철을 위해 터전을 내줘야 했던 그때 그 희붐해진 기억을 더듬다 말고 문득 소녀 같은 미소를 머..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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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36)]포스코
부지에 '사막의 여우' 롬멜 장군의 집이 들어선 사연2014.11.14 (금)
- 1967년 여름에 이미 KISA를 ‘어중이떠중이 장사치들의 집합’이라고 의심했던 박태준. 가난한 한국정부에 차관도입이나 공장설립을 주선해온 공로를 앞세우며 KISA의 거간꾼 노릇까지 하고 있는 아이젠버그. 1968년..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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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35)]구미
철강사들이 한국에 싸구려 시설을 떠넘기려 하자 박태준은 분노하고2014.11.13
(목)
- 박태준은 진작부터 대한중석 인재들을 종합제철로 데려갈 생각을 굳히고 있었다. 한국 최고의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불확실한 쪽을 택해야 하는 그들에게 그는 힘차게 말했다. “대한민국도 이제 밥 먹고 사는 것은 별 문제가..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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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34)]박정희도
꺽지 못한 박태준의 고집2014.11.10 (월)
- 1968년 1월 21일 김신조 등 북한 특공대가 청와대 턱밑까지 잠입했다가 무고한 시민들을 희생시키는 이른바 1‧21사태가 발발했으나, 박정희는 흔들림 없이 국정을 챙기는 가운데 1월 25일 대통령령에 의거해 ‘종합..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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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33)]마침내
박태준에게 출전 명령을 내린 박정희2014.11.07 (금)
- 박정희는 장기영의 후임으로 상공부장관 박충훈을 경제기획원 부총리에 발탁했다. 박충훈은 그동안 종합제철 건설 프로젝트에도 깊숙이 관여해온 관료였다. 1967년 10월 12일 박충훈의 경제팀(한국정부)이 KISA와 종합..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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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32)]이병철이
박태준에게 준 선물2014.11.06 (목)
- 10월 3일 종합제철 기공식. 5·16 이후부터만 꼽아도 장장 6년 넘게 끌어온 종합제철소 건설 계획이 마침내 출발의 팡파르만 남겨둔 것 같았다. KISA 계획안을 검토하느라 시일을 끌어온 데다 KISA마저 느긋하게..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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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31)]"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기 한몸 희생할 수 있는 인물만이 할 수 있어. 아무 소리 말고 맡아!"2014.11.03 (월)
- KISA가 다시 약속한 ‘기본협정 체결과 착공의 7월’을 맞았다. 그러나 7월이 다 지나도 한국정부와 KISA는 기본협정조차 체결하지 못했다. 초조한 쪽은 한국정부, 특히 대통령 박정희였다. KISA와 기본협정을 체..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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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30)]제철소
부지로 포항을 염두에 둔 박정희, 반대파를 꺾기 위해...2014.10.31 (금)
- 1967년 상반기 한국에는 ‘선거 바람’이 드세게 불었다. 5월 11일 대통령선거, 6월 8일 국회의원선거. 아직은 한국의 경제관료들과 KISA가 공식적 파트너로서 함께 끌어나가는 종합제철소 건설은 드세게 불어대는 ..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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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29)]미국
주도의 한국 제철사업을 못마땅해 했던 일본2014.10.29 (수)
- 1966년 1월 한국 대통령 박정희는 미국을 공식 방문한 기회에 다시 코퍼스사 회장 포이와 만났다. 국제차관단 구성에 속도를 내달라고 부탁하는 자리였다. 포이가 적극성을 보였다. 그래서 그해 2월 2일 한국 대통령과..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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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28)]박정희가
박태준에게 내린 특명 "김기수의 주먹으로 세계를 제패하라"2014.10.22 (수)
- 미국 코퍼스사(社) 대표 포이를 비롯한 서방 몇 개국의 철강업계 백인 기업가들과 한국정부의 경제부처 관료들이 한국에 종합제철소를 건설하기 위한 문제를 놓고 기본적인 교감을 나누는 수준의 교섭을 벌이고 있던 1965년..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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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27)]이후락의
부탁으로 종합제철사업을 준비했던 신격호2014.10.20 (월)
- 1965년 가을부터 1966년 봄까지, 박태준이 박정희에게서 종합제철에 관한 특명을 받아 초보적인 활동을 전개하고 있던 그 언저리에는, 박태준 아닌 또 다른 한국인이 ‘한국의 종합제철 건설’ 프로젝트와 관련해 도쿄의..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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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26)]가족
만나러 북한 갔다가 6년간 감옥생활했던 포스코 공신 김철우2014.10.16 (목)
- 1965년 여름, 뜨거운 서울거리를 한국사회의 격렬한 갈등이 더욱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6월 22일에 조인된 ‘한일조약’이 기폭제였다. 사정없고 거침없는 흑백논리가 세워졌다. 한국과 일본의 국교 정상화를 핵심으로 ..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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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25)]"나는
고속도로, 임자는 종합제철이야"2014.10.14 (화)
- 1965년 5월 초순, 박정희는 미국 존슨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방미 장도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무렵의 어느 날, 대한중석 경영 혁신에 몰두하고 있는 박태준이 박정희의 호출을 받았다. 대통령과 대한중석 사..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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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24)]박정희,
독일 제철소장에게 "저건 짓는데 얼마듭니까?" 꼼꼼히 물어2014.10.13 (월)
- 철강은 ‘산업의 쌀’이며, 철강 없는 산업화는 없다. 이것은 대통령 이승만도 알고 있었다. 오랜 미국 망명생활에서 터득한 지식의 하나였다. 한국정부는 1955년부터 서서히 전후(戰後)의 사회적 안정을 회복하면서 산업..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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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23)]박태준에게
대한중석 사장을 맡긴 박정희의 속내2014.10.10 (금)
- 박정희는 군대 시절부터 현장을 가장 중시했던 리더로 알려져 있다. 박태준도 현장제일주의 리더십을 철저히 실행한 최고경영자였다. 그러한 그의 특질은 대한중석 사장 시절부터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경영지표의 각종 수치가 ..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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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22)]김종필이
이후락 대신 박태준을 대통령 비서실장에 앉히려 하자 이후락은2014.10.06 (월)
- 1964년 12월 초, 서독(독일) 방문을 앞둔 박정희가 박태준을 청와대로 불렀다.“대한중석을 맡아줘야겠어.”‘달러박스’ 대한중석. ‘정치’의 자리가 아니라 ‘경제’의 자리였다. 박태준은 마음을 열었다.“서독 갔다 ..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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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21)]일본
간 박태준, 6·25 덕에 사상 최고 호황 누리는 일본을 보고2014.10.01 (수)
- 일본의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한국 대통령이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라는 그 천거의 무게와 명찰에 어울리는 인품과 언행을 보여야 하는 박태준은 1964년 1월 도쿄 하네다 공항에 내렸다. 오노가 일본 중의원 의장, 내각 ..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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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20)]매국노
역할을 맡긴 박정희, 떠맡은 박태준2014.09.26 (금)
- “박태준이 왔습니다.” 그러나 박정희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박태준이 한 번 더 고했다. 그래도 서재에 서 있는 박정희는 책을 찾는 시늉만 하고 있었다. 박태준이 스스로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1964년 1월 1..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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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19)]박태준이
살아 이정현 당선을 봤다면?2014.09.24 (수)
- 1963년 9월 15일 대통령 후보 등록 마감, 법정 선거운동 기간은 한 달, 10월 15일 투표. ‘5‧16의 2년 6개월’에 대해 국민이 심판하는 선거는 예상대로 윤보선 후보와 박정희 후보의 치열한 각축전이었다...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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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18)]국회의원
출마 안하려고 박태준은 아내에게...2014.09.16 (화)
- 1962년 12월 17일 국민투표가 ‘내각제 폐지와 대통령중심제 채택’ 개헌안을 찬성했다. 1963년은 새해 벽두부터 ‘정치의 계절’이 열릴 수밖에 없었다. 그해 8월 15일에 제3공화국 대통령 선거일을 10월 15..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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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17)]땔감
때문에 벌겋게 된 민둥산을 푸르게 만든 박태준의 묘안2014.09.15 (월)
- 1960년대, 한국 야산들은 가난한 국민에게 땔감을 대는 고마운 창고였다. 겨울에는 더욱 그랬다. 삭정이도 솔방울도 낙엽도 귀중한 ‘가정 연료’였다. 농한기에 시골의 가장(家長)들은 장작을 패서 달구지에 싣고 장터로..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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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16)]박정희,
미국 차관 못얻어 울산제철 건설에 실패한 뒤 한이 맺히고2014.09.11 (목)
- 박태준은 1961년 세밑에 유럽으로 날아갔다. 구라파통상사절단 단장이었다. 최고위원은 혼자였다. 통상도 통상이거니와 선진국 산업현장을 견학할 좋은 기회였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을 진리로 신봉하는 그의 목적의식..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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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박정희와 박태준(15)]경제개발
밑천이 없어 애가 탄 박정희, 미국-일본-서독으로...2014.09.02 (화)
- 1961년 11월 11일, 요즘 한국 젊은이들이 ‘빼빼로 데이’라 부르는 그날, 박정희가 통치자로서 최초 해외 순방에 나선다. 미국 케네디 대통령을 방문하는 길에 도쿄에 들러 일본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 총리와 만..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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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내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되면 자네에게..."2014.08.2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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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따라 대구 간 박태준, 신성일 집에서 하숙2014.08.2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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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전역 위기에 몰린 박정희가 붙잡은 구명줄2014.08.18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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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송요찬 계엄사령관에게 "부정선거의 책임을 지시라"2014.08.14 (목)
- [위대한
만남-박정희와 박태준(8)]박정희와
박태준이 부산 동백섬에서 한 사나이간 맹세2014.08.11 (월)
- 부산군수기지사령부 관사는 동래 온천장 동네였다. 이른 봄날에 박정희는 술집의 일차를 마치면 얼큰한 술기운 속에서 곧잘 자기 관사로 참모들을 몰고 갔다. 대화도 노래도 참으로 편한 장소였다. 관사로 가자, 나를 따르라..이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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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참모들에게 "박태준을 술로 뻗게 하라"2014.08.0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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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준, 가짜 고추가루 납품업자 얼굴에 권총을 겨누다2014.08.0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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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주목을 받은 박태준의 수학 실력2014.07.2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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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가 박태준에게 마패를 준 까닭2014.07.2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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