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만 놀리는 수사학에서 공동체 위한 인문교육으로 | ||||
고전교육을 생각한다_ 로마의 古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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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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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학기부터는 교육정보를 강화하고 독자 간의 소통창구를 원활하게 꾸려갈 계획으로 ‘고전교육을 생각한다’를 릴레이 기고로 싣습니다. 고전을 어떻게 읽고 가르칠 것인지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탁견을 기다립니다. editor@kyosu.net 혹은 cheetah@kyosu.net으로 보내주십시오.
먼저, 로마 학교의 실태를 소개하자. 로마에서 교육을 담당한 교사는 대개 그리스에서 붙잡혀 온 노예들이었다. 그들은 엄격하고 체계적인 문법 교육을 담당했다. 특히 외국어인 그리스를 교육해야 했기에 문법의 정확성을 강조했다. 또한 모국인 라틴어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라틴어 문법을 정확하게 말하고 쓰는 것이 강조됐다. 이런 사정으로 말미암아, 로마의 학교 교육은 어학 능력의 습득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이런 상황 탓에 로마의 교육은 기능적이면서 정확한 문법 지식의 습득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런 방식은 자유인의 양성을 지향했던 그리스의 파이데이아(paideia) 이념과는 애당초 거리가 먼 것이었다. 사실, 돈과 생존을 위해서 교육에 종사했던 노예 출신의 문법교사에게서 파이데이아의 이념을 요구하는 것은 쉽지 않을 일이었다. 또한 여기에는 학생들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문법 학교 사이에서 벌어졌던 치열한 경쟁도 한 몫 단단히 거들었다. 이런 경쟁은 특히 노예 출신 문법교사들의 생존과도 맞물려 있었기에, 자신들이 운영하는 학교의 교육 방식과 내용을 체계화와 전문화하도록 촉발했다.
뻔뻔한 기술 훈련소로 변질된 수사학 학교 일련의 이런 전문화 과정은 문법 발전을 위해서는 의미 있는 것이었지만, 교육의 측면에서는 많은 사회적 문제를 일으켰다. 이것들은 오늘날 한국의 사교육이 일으키는 문제들과 거의 유사할 정도 일치한다. 이는, 문법교사 세르비우스(기원전 120년- 60년)에 대한 이야기에서 쉽게 확인된다. 세르비우스는 장인 스틸로의 저술을 자신의 저작인 양 盜作하려 들었다가 발각된 사람이었다. (중략) 이후 문법에 대한 호의와 관심이 높아져 갔는데, 아주 저명한 인사들도 자신들이 몸소 문법에 대해 뭔가를 저술하는 것을 결코 꺼려하지 않았다. (문법을 배우려는 학생들로) 가득한 문법학교가 20곳이 넘게 성업했던 시기가 로마에 있었다고 전한다. 문법 선생들의 몸값과 강의료도 천정부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로마의 문법학자들> 제4장 사정은 수사학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오늘날 한국의 ‘로스쿨’에 해당하는 수사학 학교가 로마에 처음 설립된 해는 기원전 93년이었다. 학교는 설립하자마자 큰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학교는 설립 초기부터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그래서 학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게 된다. 이유인 즉 “라틴어로 진행된 수사학 강의는 사람을 만드는 교육 혹은 인간이 되게 하는데 가치 있는 학식”(<연설가에 대해> 제3권 94장)을 가르치지 않고, 단지 혀의 훈련을 통해 뻔뻔함만 키우는 기술만을 가르치기 때문이었다. 결국 기원전 92년에 학교는 폐교 명령을 받는다. 명령자는 키케로의 스승인 크랏수스였다. 본인 스스로도 뛰어난 변호사였고, 변호사를 양성하던 학문인 수사학을 옹호한 학자였기에, 폐해가 크긴 컸나 보다. 이런 극단적인 조치의 배경에는 당시 수사학 학교의 교육 방식이 어린 학생들의 내면을 메마르게 하고, 나아가 로마 공화국의 미래를 위태롭게 할 것이라는 판단이 자리잡고 있었다. 당시 수사학 학교에 몰려들었던 학생들은 오로지 혀 놀림으로 큰 돈을 벌 수 있는 변호사 되는 일에만 관심을 쏟아 부었기에 말이다. 이런 상황은 로마 공화국과 로마의 공동체 정신을 무너뜨리고 어린 학생들의 영혼을 말살하는 결과로 이어졌고, 이는 로마 역사에서 실제로 입증됐다. 실제로 교육은 황폐화됐고, 로마 공화국은 몰락했기에. 이와 같은 로마의 교육 현실에 대해 가장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 이는 키케로다. 예컨대, 그는 문법학, 논리학, 수사학과 같은 개별 학문들에 대한 학문 체계를 가르치고 배운다 해서, 과연 사람의 인간성이 선해지고, 공동체가 번성할 수 있는지, 결론적으로 인문 교육이 충실하고 풍부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가령, 수사학의 발견, 배치, 표현, 기억, 전달과 개념들을 안다고 해서 말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혹은 의당 사회적으로 의분을 느껴야 하는 상황에서 이론적으로 “분노란 마음의 격동 혹은 복수를 통해서 자신의 화를 치료하고 보상하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정의내릴 줄 안다 해서, 사람이 분노를 무엇인지를 모른다 해서 사람이 화를 내지 않은 것이 아니고, 더 나아가 사람이 진정으로 분노의 의미를 알고 있고 그 분노에 따른 실천을 수행하는 것은 아니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이런 생각은 2000년이 지난 오늘에도 대학에서 교양교육을 담당하는 이에게도 나름 의미 있는 생각거리이리라. ‘아는 것’과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 다른 문제일 수도 있기에. 한마디로, 지식 전달이 아닌, ‘사람을 기르는 교육(humanitas)’이라는 관점으로 교육을 바라보는 시선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한데, 구체적인 실천 방안으로 그가 제안한 것은 약간 허무하다. 너무 간단하기에. 그냥 책이나 많이 읽히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정작 다른 데에 있었다. 실은 읽힐 만한 라틴어로 저술된 책이 전혀 없었다. 별 수 없이 그가 선택한 일은 책의 저술과 그리스 고전의 번역이었다. 그가 저술에 헌신했던 이유는, 어쩌면, 그 자신이 책 읽기의 최대 수혜자였기 때문이다. 이는 “신체의 고통과 죽음과 추방의 위험까지도 대수롭지 않게” 보도록 만든 힘의 원천이 문법학, 수사학, 논리학이 제공하는 도구적인 지식이 아니라 실은 ‘책 읽기’였다는 게 연설의 마지막 주장에서 확인된다(<아르키아스 연설> 12장).
‘책 읽기’, 독립된 교육방법으로 떼어내 보자 이런 고민을 통해서 책 읽기는 교육의 중요한 방법으로 자리매김 된다. 그러나 책 읽기 자체가 교육의 한 방법으로 자리잡는 과정에 대해서는 본격적으로 논의된 적은 없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그렇다. 어쩌면, 소위 ‘고전’ 논쟁으로 대체됐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교육 방법은 물론 교육 내용의 관점에서 문법학, 논리학, 수사학과 동급의 차원에서 책 읽기 문제를 고찰해 볼 필요가 있겠다. 실은 키케로 자신도 이 문제를 명시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았다. 책 읽기가 로마에서 교육의 중요한 방법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키케로의 시대가 아니었기에. 여기까지가 소위 ‘고전(classica) 중심의 책 읽기’가 당시 교육의 중심 과목이었던 말하기를 밀어내고, 대신에 그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하던 시절의 학교 풍경에 대한 이야기다.
안재원 서울대
HK연구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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