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시진핑(習近平) 체제 하에서 중국이 추구하고 있는
국가목표와 세계전략은 무엇인가? 최근 변화하고 있는 중국의 대외정책은 동북아 지역질서와 한반도 안정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가? 이에 대해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이제 중국의 강대국 부상은 더 이상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 되고 있다. 중국은 GDP 규모 면에서 2010년 일본을 추월하고 미국과 함께 세계최대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군사력 면에서도
2013년 중국의 국방예산은 1,190억 달러로서 4년 연속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자리를 굳혀가고 있으며, 항공모함의 도입과 제5세대 전투기
개발, 그리고 우주 및 사이버 영역에서의 능력을 강화함으로써 군사대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역사적으로 신흥 강대국의 부상은 매번 패권전쟁을
야기하고 국제질서의 불안정을 초래했다는 점에서 주변국들은 중국의 부상이 야기할 지역 불안정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동아시아에서는 중국과 미국의 전략적 경쟁, 그리고 중국과 일본 간의 대립과 충돌이 그 어느 때보다도 격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북아 지역과 한반도는 불길하게도 이들 강대국들 간의 경쟁과 대립이 첨예화되는 중심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필자는 우선 중국의 세계전략을 전망하고, 최근
중국의 대외정책 변화가 지역과 한반도에 주는 시사점을 분석하도록 한다. 그리고 시진핑 등장 이후 중국 공산당의 한반도 정책 변화를 살펴보고
한국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제시하도록 한다.
Ⅱ.
시진핑 체제 하 중국의 세계전략
1. 국가목표 :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19세기 서구 열강들의 침탈 이후로 중국의 국가목표는 부강한 나라, 즉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이룸으로써 강대국의 지위를 되찾는 것이었다. 마오쩌둥(毛澤東)은 1961년 네팔 국왕과의 회담에서 중국은 아직 가난한
나라이므로 향후 서구 국가들의 수준에 도달하는데 100년이 걸리더라도 잘하는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덩샤오핑(登小平)은 1984년 중국의
현대화 목표를 제시하면서 2050년경에 이르러 모든 국민이 편안한 태평성대를 누리는 ‘다퉁(大同)’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쩌민(江澤民)은 2002년 11월 제16차 당 대회에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中華民族的偉大復興)’이라는 포부를 밝혔으며, 2004년
후진타오(胡錦濤)는 화평발전(和平發展)론을 제기하여 중국이 평화롭게 강대국으로 부상해야 한다는 목표를 재확인한 바 있다.
제5세대 지도자인 시진핑은 국가주석으로서 2013년 3월 17일 제12기
전국인민대표대회(全國人民代表大會) 폐막연설을 통해 중국 인민의 꿈, 즉 ‘중국몽(中國夢)’을 강조했다. 여기에서 ‘중국몽’이란 대내적으로
“전면적 소강사회(小康社会)를 건설하고 부강하고 조화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함으로써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대외적으로는
중국이 주도적으로 지역안정을 도모하고 주변국의 경제발전과 공동발전을 촉진하며, 나아가 중국이 평화롭게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볼 때
‘중국몽’은 제5세대 지도부에서 야심차게 제시한 시진핑 버전의 ‘대국굴기(大國崛起)’에 다름 아니다.
시진핑은 이전의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지난 200년
동안 중국인들이 꿈꿔온 하나의 이상(理想), 즉 ‘중화민족의 부흥’이라는 국가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토대를 다지는 데 매진할 것이다. 중국은
2050년에 이르러 ‘중등 선진국’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그 중간단계로서 2020년까지 ‘전면적 소강사회’를 실현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따라서 2022년까지 집권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진핑으로서는 자신의 재임기간을 중국의 강대국 부상을 위한 도약을 마련하는 ‘전략적 기회의
시기(戰略期遇期)’로 간주하고 있다.
2. 세계전략 변화 : 도광양회에서 주동작위로?
덩샤오핑 이후 중국은 대외적으로
‘도광양회(韜光養晦)’라는 전략을 채택했다. 이는 중국이 강대국으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한동안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르는 전략’을
추구해야 한다는 덩샤오핑의 방침에서 비롯되었다. 이에 따라 과거 중국의 지도자들은 개혁개방을 통해 부강한 중국을 건설하기 위해 매진했고, 따라서
경제발전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자국의 이익을 내세우기보다는 주변지역의 안정을 도모하는데 주력했다. 그 예로 중국은 1990년대 초부터
러시아, 중앙아시아 3개국, 그리고 베트남 등 주변국들과 내륙국경분쟁을 적극적으로 해결하고 국가관계를 개선했으며, 조어도(釣魚島) 및 남사군도
등 해양영토분쟁에 대해서는 논쟁을 보류하고 공동개발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2012년 제18차 당 대회 이후 등장한
시진핑 체제 하에서 중국의 세계전략에는 뚜렷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도광양회’ 전략이 ‘주동작위(主動作爲)’ 전략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것이다. ‘주동작위’란 앞으로 대외정책에서 해야 할 일을 주도적으로 해야 한다는 의미로 2014년 초 중국 외교부에서 발행하는
주간지인 『世界知識(세계지식)』에서 새롭게 제시한 개념이다.
이는 중국이 과거 수동적 전략에서 적극적 전략으로
전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이전까지 주권을 보호하는데 주안을 둔 최소한의 전략에서 이제는 다양한 일련의 이익을 확보하는 최대한의 전략으로,
그리고 지역 현안과 관련하여 분쟁을 미루는 전략에 머물지 않고 핵심이익에 관한 한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쟁취하는 전략으로 전환하고 있다. 지금까지
중국이 주어진 상황에 ‘대처하는(coping)’ 전략을 추구했다면, 지금부터는 보다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가는(shaping)’ 전략을 추구할
것임을 알 수 있다.
중국의 대외정책 변화를 보여주는 가장 단적인 예가 바로 ‘핵심이익’이라는
용어이다. 중국은 2004년 이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대만을 지칭했으나 2008년에는 티베트와 신장을 이 범주에 포함시켰다. 그리고
2009년 이후에는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해양영토문제도 이러한 핵심이익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중국이 2011년 9월 제시한 3개의
핵심이익으로는, 첫째로 국가주권, 독립, 영토보전, 그리고 대만독립 저지를 통해 국가통일을 추구하는 것, 둘째로 중국공산당 영도 하 중국특색
사회주의제도를 견지하고 국가정치안정을 유지하는 것, 그리고 셋째로는 유리한 국제환경을 창출하고 평화발전 노선을 견지하여 전략적으로 기회의 시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이는 곧
주권, 안보, 경제발전 이익을 의미하는 것이라 하겠다.
중국의 핵심이익 추구와 주변지역 안정은 동전의 양면이다. 자국의 이익을
내세울수록 주변국과의 갈등과 대립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중국은 경제발전을 위한 유리한 조건을 창출하기 위해 주변지역의 안정을
유지하는데 주력해 왔다. 그러나 최근 중국은 핵심이익 수호를 강조하면서 남중국해에서 베트남과 필리핀과의 영유권 분쟁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하고
있으며, 동중국해에서 일본과 조어도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시진핑은 2003년 1월 당 중앙 정치국 제3차 집단학습을 통해 “우리는
평화발전의 길을 고수하되 결코 핵심이익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고 언급했으며, 7월 제8차 집단학습에서는 “정당한 권익을 포기해서는 안 되며 국가
핵심이익을 희생시키는 것은 더더욱 안 된다”며 국익수호 결의를 분명히 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중국은 경제발전을 위한 주변지역
안정을 강조하면서 자국의 ‘이익’에 대한 목소리를 낮추었으나, 이제는 적극적으로 자국의 이익을 제기하고 확보하려는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이
주변국과의 갈등과 충돌로 인해 야기될 지역 불안정을 어느 정도 감수하고라도 핵심이익을 확보하려는 데에는 무엇보다도 강대국 부상에 대한 자신감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우선 미국이 10년 넘게 치르고 있는 대테러전쟁과 2008년 세계금융위기의 여파로 재정적 압력을 받으면서
‘지친 거인(weary giant)’의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여기에 미국 및 일본을 비롯한 주변국들의 대중국 견제가 중국의
경제발전 및 강대국 부상에 더 이상 결정적인 변수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Ⅲ.
중국의 대미전략 및 대일전략
1. 대미전략 : 신형대국관계 설정과 A2/AD전략
미국은 2012년 ‘신 국방전략 지침(New
Defense Strategy Guideline)’에서 중동지역에서의 대테러전쟁을 마무리하고 아태지역에 대한 개입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군사적으로는 ‘전략적 재균형(strategic rebalance)’ 정책을 통해 중동지역의 군사력을 아태지역으로 전환하여
재배치하면서 이 지역의 동맹국 및 우방국들과 안보관계를 강화하고, 경제적으로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을 추진하면서 중국을 견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미국은 이러한 정책이 중국에 대한 봉쇄를 추구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으나, 중국은 미국의 ‘아시아 회귀(return to Asia)’가 외교, 군사, 경제적으로 자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은 ‘신형대국관계’ 구축과 미국
해군이 중국 근해에 접근하는 것을 거부하는 ‘반접근 및 지역거부(anti-access/area denial)’라는 두 가지 양면적인 전략으로
맞서고 있다. 먼저 중국의 ‘신형대국관계’ 주장은 전에 없이 매우 능동적인 전략이다. 이전의 중국은 평화로운 강대국 부상을 위해 자세를 낮추고
미국과의 갈등이나 충돌을 피하려 했지만, 시진핑 시대의 중국은 보다 적극적으로 상황을 돌파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3년 6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 서니랜드(Snnylands)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은 오바마에게 강대국 간 충돌과 대결로 점철된 구형대국관계에서 벗어나
‘신형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를 구축하자고 제의했다. 그가 언급한 신형대국관계는 양국 간 “충돌과 대립을 피하고(不衝突/不對抗),
상호존중하며(相互尊重), 윈-윈(win-win)의 공동번영을 모색하는 것(合作共瀛)”을 핵심 내용으로 한다.
신형대국관계를 구축하자는 시진핑의 제의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첫째는 미국과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중국의 평화로운 강대국 부상을 모색한다는 것이다. 즉, 미국의 아시아 회귀로 인해
압력을 받고 있는 중국이 최대한의 전략적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과의 갈등을 최소화하고 ‘중국위협론’을 희석시키고자 한 것이다. 이는 중국이
아직은 미국을 필적할 수 있는 ‘강대국’으로서의 파워가 부족다고 인식한데 따른 선택이다.
둘째는 미국에 대해 중국의 핵심이익을 인정하고
존중하라는 것이다. 중국은 미국이 대만에 무기를 판매하고 동중국해 및 남중국해 영토분쟁에 개입하는 것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시진핑은 양국관계가
전향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불신의 골을 메울 필요가 있으며, 양국 간의 신뢰구축은 서로의 핵심이익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데에서 출발한다고 보고 있다.
셋째로 중국이 ‘윈-윈’ 협력을 강조한 것은 이제
강대국으로서 국제사회에서 경제적 차원을 넘어 다른 분야로까지 관심영역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이 지금까지 경제발전을 위해 다른 분야에서의
목소리를 가급적 낮추었다면, 이제는 국제정치적으로 중요한 안보 현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입장을 표명하겠다는 것이다. 후진타오 시대 미국으로부터
G2 국가로서 그에 걸맞은 역할을 요구받았을 때 스스로를 개발도상국이라고 주장하며 강대국 지위를 고사하던 중국이 이제 스스로를 ‘대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두 번째 전략은 A2/AD(Anti-Access/Area
Denial․ 반접근/ 지역거부) 전략이다. A2/AD 전략은 중국이 신속하게 군사목표를 탈취하고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미국의 지원전력이
대만이나 남중국해 지역에 전개되는 것을 저지하거나 지연시켜 시간을 버는 전략이다. 미국은 2010년 4년 주기 국방검토보고서(QDR)에서 중국의
A2/AD 능력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미군이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가령 남사군도나 대만해협 유사시 중국은 상대국가에
군사적 공격을 가하는 동안 미국의 군사력 투사를 저지하기 위해 일본에 위치한 미군기지와 활주로를 미사일로 타격하여 미 해공군의 즉각적인 출동을
방해할 수 있다. 또한 우주공간에 배치된 미 군사위성을 파괴하여 C4ISR(Command, Control, Communications,
Computers, Intelligence, Surveillance and Reconnaissance, 지휘·통제·통신·컴퓨터·정보·감시·정찰)
체계를 마비시키고 미국의 전쟁수행 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그리고 남사군도나 대만으로 접근하는 미 군사력에 대해서는 잠수함, 구축함,
최신전투기를 동원하여 순차적으로 저지하되, 미 항모에 대해서는 대함 탄도미사일 ‘DF(同風)-21D’를 사용하여 직접 타격하고 격침시킬 수
있다.
물론, 중국과 미국이 직접 군사적으로 충돌할
가능성은 매우 약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중국이 이러한 A2/AD 능력을 구비할 경우, 비록 군사적으로 충돌하지 않더라도 미국이 동맹국에
제공하는 안보공약의 신뢰에 금이 가고 아태지역 내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약화된다는 사실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국 패권의 쇠퇴가 시작되는
것이다.
2. 대일전략 : 동중국해 해양권익 확보
지금까지 중국은 일본에 대해 현상을 유지하는 전략을
추구해 왔다. 중국 국민들이 갖고 있는 과거 역사에 대한 앙금, 해양영유권 분쟁, 미일동맹의 대중견제, 그리고 일본정치의 우경화와 일본
지도자들의 역사인식의 문제는 양국관계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일본과의 경제협력이 절실했기 때문에 과거
역사와 해양영토문제를 덮어두고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최근 중국의 대일전략은 2012년 9월
일본의 노다(野田佳彦) 정부가 조어도를 국유화 한 이후로 그 어는 때보다 강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조어도 분쟁이 첨예화되는 가운데 중국은 이
지역에 해경순시선과 공군정찰기를 보내 순찰을 강화하는 한편, 북해함대와 동해함대 함정을 동원하여 미야코(宮古) 해협을 지나 서태평양 일대에서
주기적으로 원해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2013년 11월에는 조어도를 포함하여 방공식별구역(ADIZ)을 선포하고 이 구역에 접근하는
미국과 일본의 군용기에 대해 대응출격을 하는 등 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시진핑 체제 하에서 중국의 해양영토분쟁 정책은 덩샤오핑 이후 중국
지도부가 견지하고 있던 ‘논쟁보류 및 공동개발((擱置爭議, 共同開發)’ 방침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해양권익을 주장하고 확보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어도 분쟁과 관련하여 중국이 강경하게 나오는
배경으로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일본 정부의 조어도 매입이라는 도발적 행동에 대한 반응이다. 중국은 해양영토 문제에 있어 최대의
피해자로 인식하고 있다. 조어도와 서사군도는 원래 중국의 영토였으나 현재 일본 및 베트남과 영유권 분쟁을 빚게 된 것은 각각 일본 및 프랑스
제국주의 침략의 산물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이 문제를 덮어두고 분쟁지역 자원을 공동으로 개발하는 정책을 추구하려
했으나 일본 정부가 조어도를 매입하여 자국 영토임을 기정사실화하려 하자 강하게 반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하나는 강대국 부상에 대한 중국의 자신감이다.
중국은 조어도 분쟁에 대해 단호히 대응하고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킴으로써 주변국으로 하여금 중국의 강대국 부상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일종의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다. 일본에 대해서는 이제 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을 더 이상 가볍게 보지 말고 조어도와 같이 주권이 걸린
사안에 대해 중국의 이익을 존중하라는 경고를 담고 있다. 미국에 대해서는 조어도가 중국의 핵심이익임을 인정하고 더 이상 간여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중국의 대미전략은 신형대국관계를
수립함으로써 평화롭게 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주권 및 해양영토와 관련한 핵심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A2/AD 능력을 강화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대일전략은 조어도를 비롯한 동중국해 해양권익을 수호하기 위해 과거 ‘논쟁보류’라는 소극적 입장에서 선회하여 외교 및 군사적 방책을 동원한
전방위 노력을 경주하는 것으로 변화하고 있다.
Ⅳ.
중국의 한반도 전략
1. 전략기조
중국의 강대국 부상과 그에 따른 대외정책의 변화는
한반도에도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없다. 다만 현재 중국의 전략 변화가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초기의 모습임을 감안할 때
이것이 당장 우리의 안보에 민감한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시진핑 체제의 등장 이후 중국의 한반도 전략은 당분간 기존의 탄성을
유지하되, 중국이 본격적으로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10-20년 후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하게 될 것이다.
우선 중국은 한반도를 지정학 및
지전략적(地戰略的·geo-strategic)으로 자국 안보에 핵심적인 지역으로 인식하고 있다. 한반도는 중국의 수도인 베이징(北京)에 근접하여
위치하고 있으며, 중국의 동북3성과 약 1,400km의 국경을 접하고 있다. 근현대사를 통해 한반도는 청일전쟁, 러일전쟁, 중일전쟁, 한국전쟁
등을 통해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간의 많은 충돌을 야기했으며,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중국의 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중국은 한반도에
대해 다른 강대국이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가운데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현재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전략은 다음과 같은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첫째는 북한의 생존이다.
북한의 붕괴는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불안정과 중미 간의 갈등을 야기함으로써 중국의 경제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또한 한반도가
자유민주주의 이념 하에 통일되고 미국의 영향력이 강화될 경우 미국 혹은 일본과의 전략적 경쟁에서 불리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둘째는 북한의
경제개혁이다. 중국은 아슬아슬하게 북한의 생존을 확보하는 것에만 만족할 수 없으며, 북한을 개혁으로 유도하여 보다 나은 경제상황을 조성하고
체제를 안정시키려 하고 있다. 셋째, 한중관계의 유지 및 발전이다. 한국과의 관계발전은 미국으로부터의 위협을 완화하고 차단하며, 궁극적으로
한반도 전체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넷째, 한반도에 대한 지배적인 영향력을 구축하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한중관계가
한미 혹은 한일관계보다 중요하게 변화시킴으로써 중국은 한반도에 대해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러한 중국의 한반도 전략기조를 바탕으로 한중간의
현안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여기에서는 한반도 문제의 핵심적 사안이라 할 수 있는 북한 핵문제, 북한급변사태, 그리고
이어도 문제에 대해 전망하도록 한다.
2. 북한 핵문제 : ‘비핵화’에서 ‘북핵 관리’로?
북한은 2012년 4월 헌법을 개정하여 ‘핵보유국’임을 명시했다.
2013년 1월 북한 외무성은 “앞으로 조선반도 비핵화를 논의하는 대화는 없을 것”임을 밝혔다. 그리고 2월에는 중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제3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4월 최고인민회의에서는 핵전력과 경제건설 병진노선을 채택해 핵보유를 정당화하기 위한 입법화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이후로
북한은 중국과의 관계회복, 미국 및 일본과의 대화 노력, 그리고 남한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중국은 공식적으로 북한의 핵개발에 반대해 왔다.
시진핑은 2013년 6월 오바마와의 정상회담에서 북한 핵문제를 주요 의제로 다루었으며, 그에 앞선 5월 박근혜 대통령과의 회동에서도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했다. 2013년 5월 최룡해의 방중 시 시진핑의 면담과 8월 우다웨이(武大偉) 특별대표의 방북을 통해 중국은
북한에 대한 비핵화 요구를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요구했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여 일각에서는 3차 핵실험 이후 중국의 대북정책 우선순위가
‘평화(不戰)-안정(不亂)-비핵화(無核)’에서 ‘비핵화-평화-안정’ 순으로 바뀌었다는 전망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망은 아직 섣부른 것으로 보인다. 비록 중국이 ‘비핵화’를
강조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북한 정권의 붕괴와 그로 인한 내부 혼란을 용인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을 갖는 것을 원치
않으나, 북한정권이 붕괴되는 것은 더욱 원치 않는 것이다. 따라서 3차 핵실험 이후 중국이 북한을 압박하기 위해 정치적, 경제적
지원은 줄이는 등 제재에 동참하더라도 북한에 대해 핵을 포기할 정도로 강력한 수준의 제재를 가할 수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중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을 반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강한 제재만으로는 북한으로 하여금 핵을 포기하도록 유도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북한을 협상에
임하도록 하는 옳은 방법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이 6자회담 재개를 주장하는
의도는 북한의 비핵화보다는 북한 핵을 관리하는 방안을 모색하는데 있을 수 있다. 어차피 북한으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핵을 포기하도록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북한의 붕괴를 감수하면서 강압적인 제재를 가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남은 방안은 북한을 ‘준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여
북한의 핵을 관리하는 것으로, 이는 중국의 이익에 부합할 수 있다. 우선 북한의 안전을 보장함으로써 생존을 확보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북한의
대외관계 개선 및 경제개혁을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핵문제에 관한 한 중국은 더 이상 ‘해결사’가 아니라 ‘관리자’의 입장으로 돌아선
것이다.
중국이 지역 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이러한 정책은
더욱 탄력을 받을 수 있다. 미국 및 일본과의 갈등과 경쟁이 심화될수록 중국은 북한의 지정학적 및 지전략적 가치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으며,
따라서 북한의 비핵화를 고수하기보다는 현 상황을 교착시키고 현상을 유지하는 전략을 취할 것이다.
3. 북한급변사태의 문제
중국은 북한이 불안정한 사태에 빠져드는 것을 원치
않는다. 북한에 급변사태가 발생하여 국제사회가 인도주의적 목적 하에 개입한다면 중국으로서는 중요한 전략적 완충지대가 상실될 수 있고 한반도
전체가 미국의 영향권 하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입장에서 북한급변사태를 맞이하는 것은 끔찍한 ‘악몽’과 다름이 없다. 따라서 중국은
이러한 상황을 상정하는 것조차 꺼려하고 있으며 이 문제에 대한 논의 자체를 회피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북한에 불안정 사태에
대비하고 있으며, 북한정권이 붕괴될 경우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북한지역에 군사적으로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의 군사적 개입은 대량탈북
난민이 만주지역으로 유입되지 않도록 통제하고 북한 내 대량살상무기(weapons of mass destruction)를 안전하게 확보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평양지역을 장악하여 친중 성향의 새로운 정권을 세우고 조기에 북한사회를 안정화시키는 데 있다. 즉, 중국은
북한에 급변사태가 발생할 경우 남한 주도의 한반도 통일보다는 북한의 회생 및 생존을 도모하는데 주력할 것이다. 중국이 한국이나 미국의 급변사태
논의 제의를 거부하고 있는 것은 한국주도의 통일, 혹은 미국 영향력 하의 한반도 문제 해결을 원치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국은 북한과 1961년 7월 체결한 동맹관계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단독개입 혹은 한미동맹에 의한 개입보다 유리한 입장에 있다. 중국은 붕괴한 북한 지도부의 요청에 의해,
혹은 동맹이라는 구실을 내세워 북한지역에 먼저 개입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유엔에서 논의될 국제사회의 인도주의적 개입 방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중국은 초기단계에서 기동력을 갖춘 신속대응부대를 투입하여 주요 도시를 장악할 수 있으며, 대규모 지상군을 동원하여 전략적
수송능력을 갖춘 해공군의 지원 하에 북한지역을 안정화시키기 위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최근 군 현대화로 군사력이 증강됨에 따라 중국은 북한
급변사태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불안정 사태를 주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4. 이어도 관할권 문제
최근 중국은 동중국해 지역에 대한
방공식별구역(Air Defense Identification Zone)을 선포했다. 여기에는 일본과 영유권 분쟁을 빚고 있는 조어도 뿐 아니라
이어도까지 포함되었으며,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12월 8일 이어도, 홍도, 마라도를 포함하여 새로운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선포하고
12월 5일 이를 발효하는 조치를 취했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ADIZ 선포가 조어도를 겨냥한
것이기 때문에 한국이 과민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나섰다. 중국이 일본을 겨냥한 조치에 대해 너무 과도하게 대응할 경우 국익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번 사건을 통해 중국이 이어도를 자국의 관할권 하에 두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냈다는 사실이다. 비록 이 문제는 수면 하에서 진행 중인 분쟁으로 아직은 조어도에 가려 잘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언제든 한중간의 현안으로
부상할 수 있다.
이어도는 수면 하에 있는 암초(暗礁)로 한중간의
해양영토 문제의 대상이 아니라 배타적 경제수역(Exclusive Economic Zone) 설정에 따라 그 귀속이 결정되는 관할권의 문제이다.
따라서 해양영토 문제에 비해 협상을 통한 해결이 상대적으로 용이할 수 있다. 다만 현재와 같이 중국이 적극적으로 해양권익을 주장하고 해군력의
활동범위를 확대하는 추세를 감안한다면 그 같은 타협은 생각처럼 쉽지 않을 수 있다. 이어도는 수중암초에 불과하지만 그 주변 지역은 경제적으로나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어도 일대에는 약 1,000억 배럴의 석유와 72억 톤의 천연가스가 매장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이어도는 중국이 북극항로를 개척하고 랴오닝(遼寧) 항모단을 전략적으로 전개하는데 중요한 해상교통로상에 위치하고 있다. 향후 이어도 문제는
한중관계를 시험할 수 있는 주요 이슈로 떠오를 전망이다.
Ⅴ.
결론
미국의 유일패권 구조 하에서 중국의 강대국 부상은
지역통합과 안정에 기여하기 보다는 불안정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더 크다. 한반도 안보에 미치는 영향도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측면이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최악의 경우 한국으로서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전략적 선택을 강요당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하고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의 문제는 장기적으로 한반도의 운명에 관련된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중국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 과거와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른바 ‘신형한중관계’라는 새로운 틀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는 한중관계를 냉전적 사고의 틀에서
탈피하여 21세기 통일한국을 지향하고, 한반도 통일 이후를 고려하여 한중관계의 발전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다. 우선 한중관계 발전을 위한 원칙으로
양국이 합의할 수 있는 선에서 주권존중의 원칙, 핵심이익 존중의 원칙, 경제적 공동발전 추구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의
핵심이익은 당연히 한반도 통일에 관한 것이며, 북한에 불안정사태가 발생할 경우 한국이 주도적으로 사태를 해결함으로써 통일을 위한 유리한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한중관계 발전을 위해서는 다양한 채널을 통한
대화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지난 22년간 한중 양국 간 정부 및 비정부 차원에서 많은 대화채널이 마련되었고, 그 결과 민감한 이슈에 대한 서로의
이해가 크게 증진된 것이 사실이다. 가령 중국은 과거와 달리 한미동맹이 중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며 적어도 한국이 중국을 압박하는데 동참할 의사가
없다고 인식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한중간 대화를 통해 거둔 큰 결실로서 향후 양국 간 안보차원의 논의를 촉진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향후 외교, 통일, 국방 등 안보관련 부처의 고위급 인사 방문이나 전략대화 등 공식적 교류를 더욱 활성화해야 하며, 이 외에 퇴역
인사들 간의 접촉이나 학술세미나 등 비공식 채널을 통한 접촉을 더욱 확대할 필요가 있다.
한 가지 중국과의 대화를 진행하면서 주의할 점은 결코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에 빠져선 안 된다는 것이다. 지난 20년 이상의 많은 접촉과 대화를 통해 한국은 중국이 변화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갖게 되었다. 즉, 한반도 평화와 관련하여 중국이 과거의 기준에서 벗어나 국제적 규범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다.
그러나 2010년 천안함 및 연평도 사태는 중국의 한반도 정책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음을 드러냈고, 한국 정부와 국민들은 커다란 실망과 분노를
느꼈다. 이는 안보문제에 관한 한 중국에 대해 많은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한국은 대중국 외교의 현실적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희망적 사고’를 갖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기대가 어긋났을 때 양국 관계를 더 크게 훼손할 뿐 아니라, 근거 없는 ‘희망’은
우리의 대중 외교원칙을 희석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한중관계는 먼 미래를 지향하되 현재 당면하고 있는 현실을 올바르게 직시하면서 차근차근
다져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