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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7 14:26
1960년대 주한미국대사관 문정관 그레고리 핸더슨, 국보급 포함 도자기 143점 미국 반출
1970년대 하비브 대사, 외교 전문에서 “버거 당시 대사가 핸더슨 유물수집 막으려 했다” 언급
핸더슨, 군사정부와 갈등으로 떠났지만 유물반출은 합리화할 수 없어
1970년대 하비브 대사, 외교 전문에서 “버거 당시 대사가 핸더슨 유물수집 막으려 했다” 언급
핸더슨, 군사정부와 갈등으로 떠났지만 유물반출은 합리화할 수 없어
- 그레고리 핸더슨이 한국에서 밀반출한 국보급 도자기.
그레고리 핸더슨은 1948년부터 1950년까지, 그리고 1958년부터 1963년 초까지 주미한국대사관에서 문화아타세[CULTURAL ATTACHE]와 정치담당[POLITAL OFFICIAL] 등을 지낸 인물로 청자상감운학문매병 등 국보급 고려청자를 포함해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도자기를 최소한 143점 이상 미국으로 밀반출했습니다.
그는 도자기 외에도 고서화 등을 다수 밀반출해 자신의 집을 한국박물관처럼 꾸몄고 1969년 오하이오대학에서 '그레고리 핸더슨 콜렉션: 한국의 도자기'라는 전시회를 열고 143점의 도자기를 선보였으며, 1988년 그가 사망한 뒤 그의 부인이 143점의 도자기를 하버드대 박물관에 기증, 현재 하버드대가 이 유물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 1974년 6월 18일자 경향신문 7면에 보도된 그레고리 핸더슨 밀반출 문화재 회수운동.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당시 주한미국대사관은 국무부와 비밀전문을 주고 받으며 이 문제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했으며, 이 과정에서 1960년대 초 사무엘 버거 주한미국대사가 함께 근무하던 그레고리 핸더슨의 한국유물 수집에 대해 큰 우려를 표명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필립 하비브 주한미국대사가 1974년 6월 19일 오전 10시 22분 미국 국무부로 보낸 '그레고리 핸더슨 컬렉션의 반환'이라는 제목의 비밀전문에 따르면 한국언론들이 핸더슨 케이스를 계속 보도하고 있다며 언론보도내용과 이선근 회장과의 면담내용 등을 보고했습니다.
- 필립 하비브 주한미국대사가 미 국무부에 보낸 비밀전문.
이처럼 버거 대사가 핸더슨의 한국유물수집을 저지하려 했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이는 버거 대사조차도 핸더슨이 수집하는 유물이 한국의 문화재임을 인식한 것은 물론 이로 인해 한미간에 심각한 문제가 일으킬 수 있는 범법행위였음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핸더슨과 친밀한 김씨에게 그같은 행위를 중단시키라고 요청했던 것입니다
김씨는 또 핸더슨이 주한미국대사관에서 축출된 것은 대사관 내부 문제 때문이라고 들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하비브 대사는 이 말은 헨더슨의 출발, 즉 미국으로 돌아간 것이 비정상이었기 때문에 공식적인 수출절차[통관절차]를 밟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의미한다고 풀이했습니다.
사실 그레고리 핸더슨은 1963년 3월 27일 돌연 한국을 떠났으며 그는 신병치료차 미국으로 간다고 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는 것이 1963년 4월 3일 경향신문의 보도였습니다. 그레고리 핸더슨은 주한미국대사관 내 대표적인 반(反)박정희 인사였으며 핸더슨이 떠나기 전 박정희가 군정연장을 발표했다가 철회하는 등 한미 간에 긴장이 고조됐었습니다. 또 미국이 군정에 반대해 배에 실린 원조물자를 하역하지 않고 있다는 이영희 합동통신기자의 기사도 이즈음 보도됐고 그 소스로 핸더슨이 언급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설사 한미간 갈등으로 핸더슨이 추방형식으로 미국으로 쫓겨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의 한국유물 밀반출을 합리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 필립 하비브 주한미국대사가 미 국무부에 보낸 비밀전문.
하비브가 이처럼 자신있게 당시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하비브가 핸더슨과 함께 1960년대 초반 주한미국대사관 정치과에 근무했었기 때문입니다. 각종 전문을 살펴보면 주한미국대사관의 정치과의 책임자는 하비브였고 핸더슨은 그의 부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비브는 그 이후 승진을 거듭, 71년께 주한미국대사에 임명됐으며 한국국민들의 핸더슨 밀반출 유물반환 요청이 있을 때인 1974년 6월 귀임발령을 받고 8월말 귀국하게 됩니다. 공교롭게도 핸더슨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하비브가 대사로 재임 중일때 반환요청이 제기돼 하비브가 핸더슨이 한국을 떠날 때의 상황을 상세하게 보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비브가 핸더슨의 부인이 짐을 싸는 것 등을 감독했다고 밝혔지만 핸더슨의 부인 마이아 핸더슨은 서울대 미대와 홍익대 등에 출강한 조각가로 미술에 조예가 깊어 사실상 한국문화재 수입을 진두지휘했을 가능성도 큽니다.
핸더슨은 한국근무를 끝으로 사실상 불명예스럽게 국무부를 떠나 터프츠대 연구원으로서 학자의 길을 걷게 되며 해방 직후, 그리고 5·16혁명 등 한국근무시 경험을 토대로 '소용돌이의 한국정치'라는 박사논문을 써내 화제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가 밀반출한 한국유물을 보면 과연 그의 진짜 직업이 무엇인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 필립 하비브 주한미국대사가 미 국무부에 보낸 비밀전문.
하비브는 또 이 전문에서 이선근 한국문화재보호협회 회장이 6월 19일 주한미국대사관과 미 국무부에 핸더슨 케이스 관련 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주한미국부대사[DCM]에게 전화를 걸어왔다고 보고했습니다. 이때 이 회장은 문화재보호협회가 이미 2년전 설립된 민간단체로 2주전 해외밀반출 문화재 회수 운동을 펼치기로 결정했으며, 핸더슨의 유물반환을 요청한 것은 핸더슨이 스스로 자신이 143점의 한국도자기를 가지고 있다며 팜플렛을 통해 모든 증거를 제기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회장은 핸더슨이 팜플렛을 통해 자신이 소장하고 있다고 밝힌 143점의 도자기는 1962년 제정된 문화재법에 따른 문화재에 해당하는 것이며, 일부는 도저히 해외반출이 불가능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핸더슨이 국보급 한국문화재를 밀반출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핸더슨은 1963년 3월 28일 한국을 떠났고, 그가 수집한 한국 문화유물 등 짐은 그 이후 한국에서 반출됐으며, 이는 문화재법이 제정된 1962년 이후에 해당하므로 밀반출이 명백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부대사는 주한미국대사관과 미 국무부에 보내는 서한은 접수하겠지만 국무부가 어떤 조치를 취할 책임은 없음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사실 이 당시 핸더슨이 워싱턴포스트 등에 박정희의 유신체제에 반대한다는 투고를 하는가 하면 하원 외교위원회의 프레이저 위원이 개최하려던 한국-필리핀 인권청문회에 출석하려 했기 때문에 한국이 이를 견제하기 위해 핸더슨의 유물 밀반출 문제를 거론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핸더슨 자신이 1969년 2월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서 '그레고리 핸더슨 컬렉션: 한국의 도자기'라는 대규모 전시회를 열면서 팜플렛에서 밝힌 대로, 기원 후 1세기부터 19세기까지 다시 말하면 백제·고구려·신라 등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한국의 도자기 143점을 한국에서 미국으로 밀반출한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특히 5천달러 이상의 해외유물을 미국으로 반입할 때 미국 관세청으로부터 정상적으로 통관했다는 확인서를 받지 못하면 모두 밀반입에 해당합니다. 다시 말해 핸더슨은 자신이 소장한 유물을 미국으로 정상적으로 반입했다는 미국정부 확인서를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는 모두 불법입니다. 또 현재 핸더슨 컬렉션을 소유하고 있는 하버드대학 또한 이 정상반입 확인서가 없으면 장물을 불법 소지하고 있는 것이므로 세계 최고의 지성으로 일컬어지는 하버드 대학의 책임있는 조치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