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韓, 南北關係

“북한 특권층 자제들과 동고동락 6개월 책으로 펴내”

이강기 2015. 10. 19. 10:48

“북한 특권층 자제들과 동고동락 6개월 책으로 펴내”

 

주간동아

 

 

입력 2015-01-25 08:15:00 수정 2015-01-25 08:17:55

 

인터뷰 | ‘평양의 영어 선생님’ 저자 수키 김

 
 
 
“그곳에서의 시간은 다르게 지나가는 듯했다. 세상으로부터 차단되어 있으면 하루하루가 그 이전의 하루와 똑같다. 이런 동일성은 영혼을 갉아버려 인간을 해에 맞춰 깨어나고 어둠의 시작과 함께 잠이 드는, 단지 숨 쉬고 일하고 소비나 하는 사물쯤으로 만들어버린다. (중략) 계속 제자리를 빙글빙글 도는 작은 벌레처럼, 그 냉혹한 진공 속에서는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어떤 소식도 들어오거나 나가지 않았다.”

소설가의 예리한 눈으로 6개월간 포착한 북한의 일상이 드러났다. 재미교포 작가 수키 김(Suki Kim·44)이 펴낸 책 ‘평양의 영어 선생님’을 통해서다. 원제는 ‘Without You, There Is No Us’. ‘당신이 없으면 우리도 없다’는 뜻이다. 여기서 ‘당신’은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을 의미한다. 김씨는 2011년 7월부터 12월까지 북한 특권층 자제들이 다니는 평양과학기술대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그는 2002년 미국 뉴욕필하모닉의 방북 공연 취재 후 몇 차례 북한 땅을 밟았고, 감춰진 북한 사회의 실상을 보도해야겠다는 사명감에 영어교사로 지원했다.


끝없는 감시와 통제, 누구도 자유롭지 못했다

미국에서 유명 작가인 김씨는 2003년 ‘통역사(The Interpreter)’를 발표하고 이 작품으로 ‘경계를 넘어선 펜 문학상(PEN Beyond Margins Award)’과 ‘구스타프 마이어스 우수도서상(Gustavus Myers Outstanding Book Award)’을 받았다. 각각 민족 다양성을 뛰어나게 표현한 작품과 창조적인 인간을 구현한 작품에 수여하는 상이다. 미국에서 2014년 10월 출간한 ‘Without You, There Is No Us’는 최근 6쇄를 찍었고, 미국 인터넷 서점 아마존의 베스트셀러다. 1월 21일 그와 인터뷰를 했다.

“북한의 참혹한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어요. 사랑하는 제자들, 굶주려 죽어가는 북한 주민들의 삶이 구원되길 바랐기 때문에.”

 
김씨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체류 기간 수시로 소지품을 검사받았고 강의 내용은 물론 사적인 대화나 e메일까지 감시당할 거란 두려움에 시달렸지만, 그는 목숨을 걸고 모든 것을 기록해 USB 메모리 3개에 나눠 담았다.

김씨는 북한을 ‘극도로 폐쇄된 사회’라고 회고했다. 제일 큰 이유는 인터넷이 없다는 것. 4년 전 당시 최신식 교육기관이던 평양과학기술대도 마찬가지였다. 학생들은 국가에 의해 일부 사이트가 연결된 인트라넷(Intranet)을 인터넷이라 믿고 자랑스러워했다. 김씨는 답답했지만 인터넷에 대해 직접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제자들에게 금지된 ‘바깥 세계’였기 때문이다.

김씨는 인터넷의 개념을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방법을 택했다. 강의시간에는 일부러 애플 노트북 ‘맥북’을 갖고 들어갔다. 자신의 유학시절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를 해저열차로 오간 경험을 이야기하자 학생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 학생이 “거리가 얼마나 되냐”고 묻자 김씨가 대답했다. “340.55km. 인터넷으로 찾았어.” 학생들은 충격에 빠져 침묵했다.

“내 지식과 경험을 다 전해주고 싶은 아이들이었어요. 스무 살, 눈부신 젊음이잖아요. 하지만 제자들의 행복은 오로지 국가에 충성하는 데 있었죠. 학교에 ‘김일성학 연구실’이 있었는데 제자 6명씩 교대로 저녁부터 아침까지 밤새워 경호를 했어요. 그 연구실에 무엇이 있는지는 몰랐지만, 수령에 대한 헌신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 자체가 핵심인 듯했어요.”

‘우리는 우리 식대로 살자.’ 김씨가 북한에서 가장 자주 들은 구호였다. 하지만 그는 미국을 대하는 북한의 태도가 이중적이었다고 말했다.

“북한은 미국을 증오하는 한편 동경하고 있어요. 말버러 라이트 담배를 소지하면 명예롭게 생각하는 것이 그 예죠.”

그의 제자들도 그랬다. 북한이 세계에서 가장 우월한 국가라고 인식하면서도 김씨에게 “선생의 모교인 컬럼비아대 출신 유명인은 누구냐”고 물어 김씨가 “오바마 대통령”이라고 답하자 기가 죽은 표정을 했다.

학생들은 휴대전화를 쓰거나 가족과 면회를 할 수도 없었다. 외부와 차단된 환경에서 엄격한 엘리트 양성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짝을 지어 다니는 친구들조차 서로를 감시하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고 자신을 지배하는 체제와 거짓 선전에 의문을 품지 않는 아이들. 그들은 세계 다른 나라의 또래보다 순진하고 무지했다. 그러면서도 김씨가 조금씩 들려주는 세상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어느 날 한 학생이 국회는 무엇인지, 권력은 대통령과 국민 중 어느 쪽에서 나오는지를 물었다. 김씨는 자신이 알려주는 ‘열린 세계’가 아이들의 내부를 움직이고 있음을 느꼈다. 제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김씨는 잠시 울먹였다.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죠. ‘이 끔찍한 국가를 떠나라. 너희의 수령을 떠나라.’ 하지만 그 말은 그들에게 죽음을 의미하기에 할 수 없었어요. 북한이 언젠가 변혁되기를 바라지만, 혁명 주체가 제 학생들은 아니길 바라요. 모두 내 자식 같았고 지금도 사랑하는 아이들이에요. 어디서든 안전하게 살기를 바랄 뿐이죠. 다시 만날 수 없으니까요.”



한국인의 통일에 대한 모순된 인식 지적


통일에 대한 김씨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했다. 그에게는 6·25전쟁 당시 열일곱 나이에 북한으로 끌려간 외삼촌이 있다.

“저는 반드시 통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진 않아요. 하지만 통일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이 모순된 건 문제예요. 한국인 대다수가 ‘통일을 원하지만 내 세대에서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이건 무책임한 태도 아닌가요. 저는 집안사람 중에 이산가족이 있기에 전쟁을 겪은 세대의 상실감을 알아요. 통일을 원한다면 말만 하지 말고 노력했으면 좋겠어요.”

김씨는 한국 내 북한 인권 이슈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유엔에서 북한 인권문제를 다루는데도 정작 한국은 관심이 없어 보여요. 한국은 경제적으로 부유하지만 정말 건강한(healthy) 사회가 되려면 같은 민족의 현실을 모른 척하면 안 되죠. 그런데 한국에서 북한 인권은 정치 논쟁의 도구로만 희생되는 것 같아요.”

그는 북한 사회를 찬양한 혐의로 추방당한 재미교포 신은미 씨의 주장에 대해 “신씨가 누군지, 어떤 책을 썼는지 잘 모른다. 다만 북한이 살기 좋은 복지국가라는 주장에는 확실히 반대한다”고 했다. 평양과학기술대 측은 김씨가 책을 낸 것을 비난했다. ‘당신의 책은 당신의 동료와 학생들을 위험에 빠뜨렸다’고. 하지만 김씨는 책을 씀으로써 북한 사회를 인간화(humanize)하는 데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다고 믿는다.

 
“신체와 정신의 자유가 금지된 사회, 원하는 대로 꿈꿀 수 없는 사회는 인간 세상이 아니잖아요. 제 책이 북한의 실제 모습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곳에서 감수한 삶이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김씨는 1월 31일 오후 4시 서울 중구 순화동 중앙문화센터에서 독자들과 만날 예정이다. 이 행사는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문화활동 모임 서울북앤드컬처클럽(Seoul Book · Culture Club)이 주관한다.

김지현 객원기자 koreanazale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