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인문학 ① [송 복 | 연세대 명예교수] | ||
Ⅰ. 리더십의 원류(源流): 왜 인문학인가?
가. 원류 · 인문학 - 인문학은 리더십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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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의 원류는 인문학이다. 리더십의 기원과 발전은 인문학에서 시작된다. 흔히들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혹은 경영학, 법학 등을 그 원류로 생각하지만, 이 사회과학 학문들의 연구 대상인 정치, 경제, 사회, 경영관리, 법규제 등은 리더십의 1차적이며 시원적(始原的)인 관계대상은 아니다. 리더십이 만들어지는 근본, 리더십이 존립하는 바탕은 역사와 철학, 문학으로 이루어지는 인문학이다. 인문학은 인간의 내면세계를 다루는 학문이다. 아니, 다루기 이전 그 내면세계에 뿌리를 둔 학문이다. 인간의 본성, 본능, 본마음, 본정신, 본 사상, 본 욕구, 본 욕망, 거기서 만들어지는 본 행동이 인문학의 뿌리며 줄기다. 인문학은 모두 인간 내면세계의 이 본(本), 심연(深淵)과도 같이 깊고 깊은데 자리하고 있는 이 내면세계의 본을 보고 본을 캐고 그 본을 사람들에게 내 보이는 학문이다. 그 본은 기본이고 기초다. 그래서 인문학을 기초학문이라고 한다. 우리가 매일 같이 맞닥뜨리는 정치현상이나 경제, 사회현상은 모두 우리의 외면세계의 일들이다. 내 몸 안이 아니라 내 몸 밖에서 일어난 사건들이다. 법과 제도, 규범, 규제며 규칙, 조직 관리며 경영, 더 넓게는 지배와 복종은 모두 외면세계의 일을 다스리는 행동방식이며 다양한 행위양식들이다. 이것은 모두 ‘네가 지금 어떤 마음가짐을 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네가 지금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느냐’에 초점이 주어져 있다. ‘네 속이 검으냐 희냐’가 아니라, 밖으로 드러난 너의 행동이 ‘이러냐 저러냐’를 문제 삼고 있다. 인간의 내·외면 세계가 이같이 확연히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광물의 광맥처럼 땅속에 깊이 박혀있는 것은 내면세계, 밖으로 캐내어 나온 것은 외면세계와 같이 요연(瞭然)하게 인간의 내·외면이 구분되는 것도 아니고, 구분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학문도 그와 같이 인간의 내·외면 세계를 확실히 구분해서 어느 학문은 내면세계, 어느 학문은 외면세계를 연구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인문학도 여타 학문처럼 인간의 외면 세계를 연구하고, 다른 학문도 인문학처럼 내면세계를 꼭 같이 연구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인문학은 인간의 내면세계를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외면세계를 다루고, 다른 학문들 또한 외면 세계를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내면세계를 다룬다. 학문이 그와 같이 분류되어 있는 한 중심적으로 다루는 세계가 그와 같이 나누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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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시작은 리더십이다. 문제의 핵심도 리더십이다. 리더십을 말하면서 인문학을 먼저 말한 것은 인문학이 다른 학문보다 인간 내면세계를 더 집중적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인간 내면세계야 말로 인간 그 자체이고 인간 삶의 본디 모습이다. 인문학이 ‘리더십의 원류, 리더십의 시작’이라 한 것은 바로 이 인간의 내면세계 때문이다. 정치, 경제, 사회, 법, 경영으로 처음부터 나아가지 않고 이 인문학으로 시작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리더십은 사람들의 내면세계에서 출발해서 외면세계로 나아간다. 겉으로 보기에는 리더십은 외면세계가 주관계대상이고, 내면세계는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 숨겨져 드러나지 않는 것만큼 내면세계는 부차적이다. 오직 외면에 나타난 인간의 행동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통제하느냐, 그래서 어떻게 ‘효과적’으로 목적을 달성하고 목표에 이르느냐의 문제로 보인다. 그러나 그러한 외면적 통제, 그러한 외면적 성과는 언제나 한계가 있다. 그 한계는 바로 리더십의 한계다. 리더십의 발휘가 지극히 제한된다는 것이다. 그 한계의 극복이 내면세계의 성찰이고 내면세계로의 귀의(歸依)다. 리더십은 기본적으로 인간내면세계의 작동이다. 내면세계는 자동차의 내연기관(內燃機關)이다. 내연기관에서 자동차를 움직이는 동력이 나온다. 리더는 사람들의 내면세계로 들어가, 내면세계의 동력인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야 한다. 그 마음을 잡아야 그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마음을 움직이는 것만 아니라 내면세계의 지향(志向)인 정신도 함께 일깨울 수 있다. 인간의 내면세계는 복잡하다. 마음이 움직이면 뜻이 인다. 뜻이 일어나면 그 뜻을 굳혀야 한다. 정신을 일깨우면 뜻이 굳어진다. 이른바 강한 의지다. 기어이 이루어내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 그것은 오로지 내면세계의 작동에서 나온다. 마음을 움직이고, 정신을 일깨우고, 뜻을 일으키고, 강한 의지를 갖게 하는 것, 그것은 개인에게는 개인의 몫이지만, 집단이나 조직에서는 리더의 몫이다. 나는 내가 주체가 되어 나를 움직이지만, 나를 포함한 인간들의 무리에서는 리더가 이 무리의 움직임을 주도한다. 어떤 집단이든 집단으로서 구실을 하려면 그 집단이 달성하려는 특정 목적이 있어야 한다. 물론 높은 이상도 있고 장래의 나 혹은 우리를 비추는 비전(vision)도 있어야 한다. 그 집단에 속한 개인들이 모두 공통적으로 이 모두를 꼭 실현해야 하겠다는 공동의지를 갖게 하는 것, 그것은 오직 리더의 몫이다. 집단의 개인들이 어쨌든 이 공동의지를 갖는다면 이는 전적으로 리더가 주도해서 그 집단에 속한 사람들의 내면세계를 작동시킨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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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리더에 의한 집단내 사람들의 내면세계 작동에는 두 가지가 있다. 인간 내면세계의 복잡성만큼 이중성이 있다. 우리의 내면세계는 하나이지만 거기에는 각기 서로 다른 두 가지의 성질이 있다. 하나는 리더의 지위와 강한 권력이 만들어내는 우리 내면세계의 작동이고, 다른 하나는 리더의 감응력(感應力, empathy), 감정이입이 만들어내는 우리 내면세계의 작동이다. 리더의 권력과 감응력에 의한 내면세계의 작동 방식은 결과적으로 인문학과 여타 학문의 구분도 되고, 리더십 원류(源流, original)와 방류(傍流, collateral)의 구분도 된다. 리더가 강한 권력을 가질 때, 그 강한 권력의 힘이 사람들의 내면세계를 자동차 내연기관처럼 작동시킬 수 있다. 강한 권력의 힘으로 얼마든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정신을 일깨우고 뜻을 일으키고 굳은 의지를 갖게 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다른 집단, 다른 나라들 보다 빨리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정해진 목표에 보다 빨리 이르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오래가지 못한다. 연료가 떨어지면 자동차가 멈추듯, 리더의 권력이 쇠퇴하면 리더가 지금까지 이끌어 온 사람들의 내면세계도 작동을 멈춘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들 내면세계를 지속적으로, 그것도 강한 동력을 일으키며 역동적으로 움직이게 하는가. 그것은 복잡한 내면세계의 또 다른 면인 리더의 감응력이다. 더 정확히는 리더가 이끄는 사람들의 내면을 리더가 울림으로써 나온다. 사람들이 여간해서는 내보이지 않는 내면세계의 안면, 그것은 심연(深淵)이다. 깊고 깊은 땅 속에 뻗어있는 광맥, 깊고 깊은 물속에 침잠 해있는 용들의 세계, 그처럼 사람들의 내면세계 저 넘어 깊은 곳에는 사람들의 속마음이라는 것이 있다. 그 속마음이 움직여야 지속적인 동력이 나온다. 생기(生氣) 넘치는 ‘공동의지’가 만들어져야 그 공동의지는 지속된다. 이 속 마음을 끊거나 바꾸지 않고 계속 밖으로 분출 - 내솟게 하는 것, 그것이 리더의 감응력이다. 이 리더의 감응력은 따르는 사람들의 마음을 자발성으로, 그리고 그 감정을 희열(喜悅)로 가득 차게 한다. 이 경우 그 집단이 내는 힘은 그 집단을 이루는 사람들의 수를 하나하나 세어서 합친 단순한 산술합산이 아니다. 한단위의 힘을 내는 열 사람이 그 힘을 합치면 열 단위의 힘이 나오는 것이 힘의 단순 산술합산이다, 그리고 그 수가 증대하면서 힘도 함께 증대해 가는 것이 힘의 산술급수적(算術級數的, arithmetic series) 증가이다. 그러나 리더의 감응력에서 나오는 힘은 전혀 다른 상황을 야기한다. 리더의 마음, 리더의 정신, 리더의 정서 그리고 리더의 희망과 욕구, 비전, 이상이 모두 집단사람들의 내면세계에 이입(empathize) 됨으로써 일어나는 힘, 바로 이 리더의 감응력에서 생성되는 힘은 이제까지 보던 세계, 겪었던 상황과는 전혀 다른 힘의 세계를 노정한다. 그것은 마치 종교의 영적 믿음이 가져오는 힘, 혹은 역사상 이런 저런 카리스마들이 일으키는 힘처럼 엄청난 부피와 무게, 엄청난 질량의 힘을 만들어낸다. 그 힘은 산술급수적으로 증대하는 힘이 아니라 기하급수적(幾何級數的, geometric series)으로, 혹은 지수상승적(指數上昇的, exponential)으로 증대하는 힘이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는 유명한 명제가 여기서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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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리더의 감응력이 바로 인문학이다. 아니 인문학이 그 감응력의 원산지이다. 리더십의 원료와 리더십이라는 제품을 생산해내는 본산지다. 인문학 속에 담긴 원형의 내면세계, 그 원형의 내면세계를 구성하고 재구성해서 또 다른 또 하나의 내면세계를 펼쳐내는 것이 인문학이다. 그 인문학에 외면세계는 없는가? 안의 세계가 있다면 응당 바깥 세계도 있다. 그 바깥 세계도 인문학에선 유위(有爲)일 수가 없다. 마치 아이들이 “제가 나고 자란 땅의 말로 / 재잘거리듯이 / 제나라 말로 나눈 사랑의 말속에 / (아이들이) 잉태되듯이 / 자란 동네 아침공기와 저녁연기 밴 말 / 온갖 감정과 문명이 밴 말 속에서 / (아이들이) 자라듯이” 인문학은 바깥 세계에 대해서도 무위(無爲)처럼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유위(有爲)가 없어도 온 몸과 온 맘을 달구어 일어나는 감동이 있고, 풀무질 하듯 기운이 마구 솟아오르는 감흥이 있고 그리고 불꽃처럼 뜨겁게 타오르는 열정이 있다. 그 감동, 그 감흥, 그 열정을 불러내는 것이 인문학이다. 그래서 인문학이 리더십의 원류이며, 그 원류는 리더십 감응력의 원류이며 원산지이다.
나. 인문학의 최고 수혜자 - 스티브 잡스가 인문학에서 찾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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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알의 모래에서 우주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서울에서 ‘인문학의 위기’가 한창 경고음을 내고 있을 때, 〈애플〉의 스티브 잡스(Steve Jobs)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무구(無垢)의 노래」를 읊조리고 있었다. 그는 이 시를 암송하고 암송하며 창조하고 혁신했다. 혁신하고 창조하며 또 이 시를 암송했다. 스티브 잡스가 누구인가. IT의 상징이고 이 시대 최고 신기(神器)의 창시자다. 세계 사람들은 자기 나라 수상이나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잡스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한국인에게는 이상하게 들리는 그 이름도 세계 사람들에게는 애칭처럼 다정하고 친근하게 불린다. 『맹자(孟子)』에 “만물개비어아(萬物皆備於我)”라는 구절이 있다. 우주만물이 내 작은 몸 안에 모두 갖추어져 있다는 말이다. 내 몸을 자세히 보라. 그 안에 무한의 우주가 있다. 우주가 만들어내는 무한의 이치가 모두 그 속에 있다. 멀리까지 가서 딴 것에서 구하려 하지 말라. 바로 나, 내 몸과 마음, 그 속과 밖을 더 자세히 더 면밀히 더 열심히 보라. 우주에 비하면 너무나 작은 바로 거기에 우주가 있다고 맹자가 말하듯, 잡스도 그 작은 모래알에서 우주를 보았다. 윌리엄 블레이크가 노래한 그 한 알의 모래, 거기서 우주를 찾았다. 그것이 가능한 일이며 될법한 소리인가? 시인의 감각이 다르고 시관(時觀)이 다르고 직관이 다르다 해서 시인은 비유도 조작할 수 있는가? 모래를 우주로, 우주를 모래로 동일시할 수 있는 그런 권리가 시인에게는 있는가? 우주는 크고 광활하다. 우주는 무한이다. 모래는 작다. 작은 것 중에서도 또 작은, 그 중에서도 모래는 더 미세하다. 미세한 것은 미세 먼지처럼 날아간다. 모래는 유한(有限)이다. 그 유한은 곧 사라진다. 유한의 모래와 무한의 우주는 비교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시인이 아닌 일반 우리들의 상식이고 우리들의 분별지(分別智)다. 세상에 태어나 지금까지 배워온 우리들 모든 일상의 가르침이고 생각이고 지식이다. 그 상식, 그 분별지 그 패러다임, 그 주류이론을 벗어나면 모래는 우주의 다른 한 극단이다. 거대 우주가 한 극단이라면 미세 모래는 또 다른 한 극단이다. 한 극단은 다른 극단을 비춘다. 한 극단을 보면 다른 극단이 보인다. 모래는 보이는 극단이고 우주는 안 보이는 극단이다. 그래서 보이는 한 알의 모래에서 안 보이는 무한의 우주를 본다. 모래를 보고 모래를 감지하면 광대무변한 우주가 나타난다. 모래를 알면 우주를 알고, 우주를 알려면 모래가 먼저 보여야 한다.
2 우주를 찾는 사람들은 천국도 함께 찾는다. 천국이 보이는가? 누가 천국에 가 보았는가? 천국에서의 삶을 어떻게 아는가. 그 천국이 바로 거기, 모래위에 핀 들꽃에 있다. 오로지 무위 천연 그대로의 꽃, 그 순수 무구, 사람의 손때라곤 묻지 않은, 인공이라고는 가해지지 않은 천의무봉(天衣無縫)의 그 들꽃, 그 들꽃에서 무심히 보기만 했던 이제까지의 그 일상의 들꽃, 그 들꽃과는 다른 유별난 희열을 느껴 보았는가. 천국은 이제 내가 느낀 바로 그 들판의 모래 위에 핀 그 들꽃이다. 그 들꽃은 땅위에 있다. 하늘나라가 아니라 땅위에 피는 꽃이다. 그 땅위의 꽃에서 하늘나라의 삶을 느끼고 보고, 실제처럼 하늘나라의 삶을 체험하고 만끽한다면 그 세계는 지금까지의 내가 살며 아웅다웅 다투던 그 세계가 아니다. 같은 공기 같은 물을 숨 쉬며 마시는데도 전혀 다른 세계를 보는 것이다. 그 전혀 다른 세계의 감지, 그 다른 세계에로의 눈뜸, 그 눈 밝힘이 곧 창조다. 같은 들꽃에서 전혀 다른 들꽃을 보는 것, 그것이 창조의 시작이다. 그런데 그 흔하디흔한 들꽃, 그 지천으로 핀 그 들꽃에서 지금까지 나는 무얼 보았는가? 내게는 그저 무심코 보았을 뿐인, 한갓 들꽃뿐이지 않았는가. 누가 뭐라 해도 윌리엄 블레이크가 노래하고, 잡스가 암송한 그 꽃이 아닌, 그 곳에 늘 피어있는 범상의 그 꽃일 따름이었다. 그래서 나는 창조와는 관계없는, 창조와는 늘 동떨어져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일상으로 보던 그 꽃에서 나와는 전혀 다른 「천국」이라는 세계를 본 그 시인의 영혼, 그 시인의 노래가 인문학이다. 그 인문학을 알고, 그 시인의 노래를 영혼으로 암송한 잡스야말로 인문학의 발견자이고 인문학의 체득자(體得者)이다. 그리고 인문학의 최대 수혜자이다. 잡스의 암송은 계속된다. 3
그대 손바닥 안에 무한의 공간을 쥐고 찰나(刹那)의 순간에 영원의 시간을 잡는다.
손바닥으로 얼마나 큰 것을 잡을 수 있는가. 손바닥은 손바닥 크기만 한 것만 넣을 수 있다. 손바닥의 물리적 공간은 너무 작고 너무 좁다. 손바닥이 잡을 수 있는 것은 무한이 아니라 유한이다. 그것도 극히 한정된 유한이다. 그 유한으로 무한을 잡는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유한과 무한은 같이 존재할 수가 없다. 무한 속에 유한이 없고, 유한 속에 무한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생각을 달리하면 손바닥은 그 안에 무엇이든지 넣을 수 있다. ‘어떻게’ 넣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넣느냐를 생각해 보라. ‘어떻게’를 의심하면 무한의 공간은 손바닥 속에 들어갈 수가 없다. 하지만 ‘무엇을’를 궁구(窮究)하면 무한의 공간도 쉽게, 쉽게 손바닥 속으로 들어온다. ‘어떻게’가 실물의 세계라면, ‘무엇을’은 상상의 세계다. 실물과 상상 – 하나는 눈에 보이는 세계이고, 하나는 논에 보이지 않는 세계이다. 하나는 이치로 따지는 것이고, 하나는 이치를 넘어서는 것이다. 무한의 공간은 반드시 무한에 위치한다. 하지만 무한에 위치한다고 그 무한이 반드시 무한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무한이 자리한 위치와 무한이라는 공간의 존재는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무한공간이라는 ‘위치’는 멀리 멀리 나아가 잡을 수 없지만, 무한공간이라는 ‘존재’는 내 손바닥 안으로 들어와 나는 얼마든지 그 무한공간을 쥘 수 있다. 그 무한공간을 내 손바닥으로 쥐는 한, 내 손바닥은 무한공간이다. 아니 그 무한공간은 바로 내 손바닥이다. 앞의 ‘어떻게’와 그 ‘무엇이’, 그리고 그 뒤의 ‘이치로 따질 수 있는 것’과 그 ‘이치를 넘어서는 것’, 거기에 인문학의 요체가 있고, 거기에 비(非)인문학적 사고와 인문학적 사고의 차이가 있다. 손바닥 안과 무한 공간의 다름만큼 찰나와 영원도 다르다. 찰나는 순간이다. 눈 깜짝할 새 보다 더 짧은 순간이다. 영원은 영겁(永劫)이다. 일겁(一劫)은 천지가 한번 열리고 또 다음 열릴 때까지다. 영겁은 그 겁이 영원히 계속되는 영원이다. 그 영원을 찰나로 잡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찰나로 영원을 잡을 수 있다면 그 찰나는 영원이고, 그 영원은 찰나로 바뀐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냐. 아니 그 가능을 어떻게 생각할 수 있느냐이다. 찰나와 영원, 그것은 극과 극이 아니다. 그 어떤 극이든 극과 극은 비교가 되고 비교할 수가 있다. 그러나 찰나와 영원, 설혹 비교할 수 있다 해도 비교의 실체가 없고, 비교의 결과도, 비교의 흔적도 남지 않는다. 찰나와 영원은 그렇게 서로 다른 것이다. 그렇게 함께 생각하고 그렇게 한 묶음으로 사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찰나로 영원을 잡는다’고 말하는가. 무슨 힘으로, 무슨 권능으로 찰나의 순간에 영원의 시간을 앉힐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가. 혹은 찰나를 영원으로, 영원을 찰나로 바꿀 수 있다고 읊조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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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 돈오(頓悟)라는 것이 있다. 돈각(頓覺)이라고도 한다. 갑자기 깨닫는 것이다. 수련을 통해서가 아니라 바로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다. 찰나에서 영원을 보는 것, 영원도 찰나에 불과 하다는 것, 그것을 홀연히 깨닫는 것, 그 깨달음에 갑자기 이르는 것, 그것이 윌리엄 브레이크의 노래이고 스티브 잡스의 암송이다. 손바닥 안이나 무한의 공간이나, 찰나의 순간이나 영원의 시간이나 모두 같다는 그 홀연한 깨달음, 그 깨달음에서 스티브 잡스의 창조의 기운이 번쩍 솟아 오른 것이다. 창조에는 명시된 개념이 없다. 창조에서 명확한 개념을 찾는다면 그것은 창조가 아니다. 지금 ‘창조경제’에 개념이 없다고 말하는 것, 구체(具體)를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 그것은 너무나 바른 지적이고 정직한 목소리다. 창조는 돈오다. 그 돈오를 어떻게 설명하느냐, 설명에는 반드시 시작이 있고 과정이 있고 결론이 있다. 그래서 개념이 형성된다. 설명은 개념을 만드는 경로다. 그러나 돈오에는 그것이 없다. 그런 개념화 과정이 있을 수 없다. 어떻게 순간으로 영원을 잡느냐, 어떻게 영원을 찰나로 만드느냐, 거기에는 설명이 있을 수 없다. 그것은 설명을 요하지 않는다. 설명하면 찰나만 남고 영원은 없다. 혹은 영원만 있고 찰나는 사라진다. “모든 순간이 다 꽃봉오리인 것을/ 내 하기에 따라 모든 순간이 다 피어나는 꽃봉오리 인 것을”이라는 시구가 있다. 한 순간에 피는 그 꽃봉오리, 그 꽃봉오리가 영원으로 이어진다. 순간에 핀 그 꽃봉오리에 영겁이 있다. 그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대로의 돈오일 뿐이다. 그것이 잡스의 인문학이다. 잡스가 그것을 알아낸 것이다. 거기에 잡스의 창조가 있고, 잡스의 애플이 있다.
II. 인문학의 위기: 자초한 위기
가. 누가 먼저 버렸는가 ―주범은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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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가 한창 「무구의 노래」를 노래하며 애플을 만들고 있을 때, 한국에서는 정반대로 인문학을 버리고 있었다. 인문학 포기와 인문학 모멸(侮蔑), 심지어는 인문학 추방과 인문학과의 사별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세기말의 갖가지 증후군(症候群)을 타고 그 진행은 가속화 되었다. 그것은 오직 실리, 소득, 이득, 재산, 부(富,) 자리만을 병적으로 챙기는 증후군이기도 하고 가치, 상상, 꿈, 이상, 창조, 보람 등에 대한 병적 허황감(虛荒感) 혹은 공허감, 심지어는 지나칠 정도의 거부감, 혐오감 등을 갖는 증후군이기도 했다. 그 증후군은 한국특유의 쏠림현상이 가세해서 심화되었다. 한쪽에서 하면 다른 쪽도 덩달아 하는, 그래서 한쪽으로만 치우쳐서 마침내 모두 함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어 헤어나지 못하는 세찬 타자지향적(他者指向的) 사회행태 —대중사회 초기에나 보던 그 쏠림 행태-가 세기 말에 되살아나서 남이 어떻게 하는가에 맞춰 획일적으로 너도 나도 따라하는, 그런 사회심리의 포로, 그런 사회심리의 먹잇감이 되고 있었다. 인사아취(人捨我取)—남이 버리면 나는 취한다. 남이 버리는 길을 나는 간다는 고고(孤高), 고매(高邁), 고답적(高踏的)인 생각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 인문학적인 사고의 독자성과 특유성, 다양성과 다원성이 죽은 상태였다. 40년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적어도 1950년대와 60년대는 그러한 인문학이 살아 있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대학마다 그런 기풍은 여전히 활발했다. 그것을 서울대학교가 제일 먼저 버리고 다른 대학들도 질세라 함께 따라 버렸다. 인문학은 이렇게 대학에서 먼저 버려졌다. 대학 내에서 가장 먼저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그러고 나서 학부모들이 동참하고 학생들이 동조했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인문학 공부를 하느니 차라리 학교에 보내지 않겠다고 했고, 마지못해 인문학과에 들어온 학생들도 인문학에는 아예 관심이 없고 다른 공부만 했다. 시 한줄 외우는 학생이 없고, 소설 읽는 학생도 귀했다. 문학은 아예 시간낭비고, 철학은 거리에서 밥 빌어먹는 거지들이나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고시(考試)와 관계없는 것, 취직시험과는 거리가 먼 것, 그것이 인문학이었다. 그래서 인문학은 필요 없는 학문이었고, 그래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필경, 유한계급(有閑階級)이거나 한량(閑良)으로 치부(置簿)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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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위기는 대학 안에서도 인문학 하는 사람들에게서 먼저 시작되었다. 인문학 하는 ‘그들’, 그들이 먼저 인문학을 무너뜨리고 인문학을 파괴했다. 그들은 인문학을 할 줄 몰랐다. 인문학이 무엇이고, 인문학을 어떻게 해야 하고, 왜 해야 하는지, 그들 스스로 알지를 못했다. 그들은 그저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직업이니까 하는 것이었다. 직업적으로 글을 쓰고, 작업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직업적으로 출근하고 퇴근하는 것이었다. 인문학은 매료(魅了)다. 인문학은 마음을 홀리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다. 인문학은 내가 먼저 매료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인문학은 그 학문에 내가 먼저 반해야한다. 내가 먼저 홀려서 혼이 빠져있어야 한다. 나는 왜 인문학을 하는가. 반했기 때문이다. 나는 왜 그 여인을 사랑하는가. 반했기 때문에 사랑한다. 거기에는 보상도 대가도 없다. 아니 보상도 대가도 생각지 않는다. 생각할 수가 없다. 오직 열정만 있고 치열함만 있을 뿐이다. 내가 내 학문에 매료되지 않는데 누가 매료되겠는가. 내가 반하지 않는데 어느 학부모가 반해서 자녀에게 그 공부하라고 하겠는가. 내가 내 학문에 열정이 없는데, 치열함이라곤 전혀 없는데, 내가 깊이, 깊이 침잠하지 않는데, 누가 이 학문을 지지해 주겠는가? 누가 나서서 나를 대변하며 나의 학문을 주창해 주겠는가. 너무도 명백히, 너무도 당연히. 삼척동자도 알 일이며 공부라고는 해본 일이 없는 촌농부도 알 일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인문학자들은 모르는가. 인문학자들은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말한다. 1960년대 이후 급속히 진행된 우리의 산업화가 우리의 인문학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오직 실용만 추구하는 산업화가 산업사회에 필요한 공학, 의학, 법학, 경영학만 요구해서 인문학이 쇠퇴하고 인문학이 죽었다고. 인문학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외부환경의 변화가 인문학의 입지를 좁히고 인문학이 설 자리를 무너뜨렸다고 입만 열면 너무도 당당히 외치지 않았는가. 그렇게 외치는 그 순간, 더 산업화되고 더 실용주의적 사고를 하는 서구나 미국, 일본에서는 왜 그토록 인문학이 성(盛)한지, 그들의 인문학이 어떻게 해서 그토록 우리 인문학을 석권하는지, 한번이라도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어떤 이들은 해외파와 국내파를 양분해서, 해외파들의 지나친 득세(得勢)로 국내파들의 학문발전이 어려워 졌다고 이유를 말하기도 한다. 우리 인문학자 절대다수, 특히 한국학과 관련된 분야 학자들의 절대다수는 안에서 공부한 사람들이어서 지난 세기의 80년대와 90년대가 그 같은 양분화의 절정기이기도 했다. 2000년대를 넘어 와서도 아직도 인문학자들의 상당수는 그 같은 나뉨의 의식이 저변에 똬리를 튼 채 남아있다. 이 모두 학문에서 가장 금기시하는 ‘남을 탓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돌이켜 보고 스스로를 채찍질 하는 자기 가책(苛責)의 가혹함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을 보라, 일본학에서 일본의 국내파는 해외파를 단연 압도하지 않는가.
3
안에서 공부하는 학자들 중 가장 대표적인 학자들을 들라면 미상불 한국사나 한국문학, 한국철학을 하는 학자들이라 할 것이다. 이들을 통 털어 ‘한국학’하는 학자들이라 한다면 이들 한국학 학자들 중 해외에서 공부한 사람들은 아주 드물다. 드물 뿐 아니라 ‘한국학’은 으레 국내에서 공부해야만 제대로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한국학의 발전을 어렵게 하는 이유일 뿐 아니라, 실은 그래서 전혀 발전이 안 된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사 하나만 보아도 1950년대 한국사학이나 60년이 지난 지금 2000년대의 한국사학이나 학문적 차이는 고사하고 일반 독자들의 시각에서, 그 내용상에서 실제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때도 국수(國粹)이고 지금도 국수이고, 그 때도 반일 대 친일이고 지금도 반일 대 친일이지 않는가. 언제나 그러하다면 그야말로 너무 고루(孤陋)하지 않는가. 세상과 너무 동떨어져 있고 보고 들은 바에 다름이 없어서 학문하는데 시야가 너무 너무 좁지 않은가. 혹은 또 다른 의미의 고루로 사상이 너무 낡고 고집이 너무 세서 변화와 발전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는 학문을 하는 것이 아닌가. 왜 그러한가. 우물 안에 있으면 우물 안 개구리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고기도 호수나 강으로 나가야 큰 고기가 된다. 바다로 나간다면 더 이를 것이 없다. 안에 있으면 그 좁은 안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 좁은 안도 실은 제대로 보지 못한다. 스스로 환히 본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안은 반드시 밖에서 보아야 본다. 안에 있으면 자기가 앉은 자리 범위를 넘어서, 맞은편의 벽도 제대로 보기 어렵다. 하물며 내 등 뒤의 벽을 어떻게 본단 말인가? 시야가 좁고 시각도 왜곡되기 때문이다. 안의 전체, 안의 규모와 안의 범위와 안의 구조와 안의 짜임새와 안의 모양, 다른 안과 다른, 그 안의 고유성, 정체성 등은 모두 밖에서 보아야 보인다. 안에 있으면 자기만의 상자에 갇혀 있는 것이다. 상자는 가로, 세로, 높이가 모두 네모꼴(四角形)이다. 사각형은 구속 속박의 상징이다. 그 사각형 속에 들어있는 사람이 죄수이다. 수인(囚人)은 탈출할 수가 없다. 더 넓은 세계로 나갈 수 없고 더 넓은 세계를 볼 수도 없다. 창의적 행동, 창조적 사고는 고사하고, 고정관념에서 조차 벗어나기 어렵다.
4
『맹자』에 “觀於海者 難爲水 遊於聖人之門者 難爲言(관어해자 난위수 유어성인지문자 난위언)”이란 명구가 있다. 큰 바다를 본 사람은 감히 물을 말하지 못하고 진리의 학문에 들어가 본 사람은 말을 함부로 할 수가 없다.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넓이가 다르고 높이가 다르고 깊이가 전혀 다른, 완전히 다른 세계이기 때문이다. 내가 늘 서있던 자리, 내가 늘 보던 그 사물, 내가 늘 만나 듣던 그 사람들의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보는 것만큼만 본다. 수영장 물을 본 사람은 수영장 물 밖을 보지 못한다. 모든 물은 수영장에 담긴 그 물과 꼭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바다를 알 수가 없다. 작은 기업만 해본 사람은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기업은 다 같은 것이라는 동일시 의식을 갖는다. 규모가 그 천 배, 만 배 되는 기업의 구조를 생각할 수가 없다. 기업은 같아도 ‘조직’의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웅덩이 물이나 바다 물이나 같은 물이라도 그 ‘작용’하는 바가 전혀 다르듯이. 그래서 “讀萬卷書 行萬里路(독만권서 행만리로)”라는 말을 끊임없이 해왔다. 영국 경험론자들이 끊임없이 주창하고 실제 행동으로 옮겼던 구절이다.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의 길을 간다”는 가르침이다. 당나라 시성(詩聖) 두보(杜甫)의 시에도 나오는 이 글의 진수는 무엇인가. 안에 앉아서 만 권의 책을 읽는다. 그 안이 감옥이든 방안이든 책이 있는 한 얼마든지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읽는 곳이 안이면 역시 사각형 안이다. 그 사각형 안에서 읽음은 역시 수인처럼 탈출할 수 없고 비상(飛翔)을 할 수도 없다. 제아무리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도 안에서는 한계가 너무 뚜렷하다. 그래서 밖으로 뛰쳐나가야 한다. 나가서 만 리의 길을 걸으면서 보고 깨치고, 깨치고 보면서 내 눈의 껍질, 내 생각의 껍질을 벗겨야한다. 내 새로운 세계, 내 새로운 창조는 거기에서 시작된다.
나. 어떻게 버렸는가 - 역사
1
한국사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학자들 중, 영어로 강의 할 수 있는 학자가 몇이나 되는가. 과문의 탓이라 해도 있다면 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영어가 아니라면 일본어, 중국어로 외국인에게 한국사를 강의 할 수 있는 학자는 또 있는가? 영어, 일어, 중국어가 아니면, 사료(史料)로서의 한적(漢籍)을 자유로이 읽을 수 있는 학자는 얼마나 되는가. 그 많은 학자들 중에서 이 역시 손가락으로 꼽기도 어려울 정도라면 도대체 한국사 하는 사람들은 무슨 글, 무슨 말로써 한국사를 연구하는가? 연전(年前)에 서울대학교에서 한국사를 가르치는 저명한 학자가 하버드 대학에서 한국사를 강의한다고 크게 보도된 적이 있다. 그러나 하버드 대학에서 한국사를 듣는 학생은 한 사람도 없었다. 이유는 단 하나, 교수가 영어로 강의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외국 학생들이 무슨 재주로 한국어로 하는 한국사 강의를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불문가지로 교수가 영어로 강의할 수밖에 없고, 영어로 강의할 수 없다면 자동적으로 한국사 강의는 요란한 선전과 달리 폐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외국어로 강의하는 것은 차치하고, 외국 학회지에 나오는 연구물들은 제대로 읽을 수 있는가. 한글로 된 논문들이나 다름없이 이해할 수 있는가. 평생 책을 통해 공부해 왔기 때문에 외국어로 강의는 못한다 해도 저술이나 논문을 읽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고 자신한다면, 그 저술이나 논문들의 명시적 의미(denotation) 외에, 함축적 의미(connotation)도 파악 할 수 있는가. 「맹자」에서 말하듯 “以意逆志(이의역지)” 할 수 있는가. 글을 읽는 사람이 그 글을 쓴 작자의 원래 의도며 행간에 숨어있는 의미까지 깨칠 수 있는가. 한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 중에서 그 같은 이가 얼마나 될 것인가. 외국어에 어둡다는 것은 외부세계와 그만큼 접촉이 적다는 것이고, 그것은 상자 안의 수인, 동굴 안의 환영(幻影)처럼 바깥 세계를 모르거나 착각, 착오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시 나는 책을 통해서, 미디어를 통해서, 혹은 여행이나 안식년의 해외거주 기간 등을 통해서, 바깥세상을 알 만큼 안다고 자신해도, 그 앎은 지극히 제한된 것이다. 물론 『노자(老子)』에서처럼 “不出戶知天下(불출호지천하)”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밖에 나가지 않고도 천하를 훤히 아는, 그러나 그런 사람 수는 너무 적어서 통계적으로 의미가 없다.
2
중요한 것은 바깥 세계에 대한 앎이 얼마나 많으냐 적으냐가 아니다. 그 앎이 얼마나 제한되어 있느냐 있지 않느냐도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학문하는 이의 마음이다. 학문을 함에 있어 그 마음이 얼마나 ‘열려 있느냐 닫혀 있느냐’이다. 요지는 학문하는 이의 ‘학문의 열림’이다. 핵심은 학문하는 이의 마음의 세계화, 글로벌 마인드다. 외국어에 능통하고 바깥 세계와 접촉이 많아 바깥 세계를 향해 물리적 창문이든 심리적 창문이든, 창문을 늘 열어놓고 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열림’이 훨씬 클 것이라는 것, 글로벌 마인드를 더 많이 가질 것이라는 것, 그것은 그 누구에게도 더 물어볼 필요가 없다. 한국사 하는 이들의 절대 다수는 바깥 세계를 잘 모른다. 심지어는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는 한 가지 외국어도 잘 못한다. 심지어는 잘 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무엇을 근거로 감히 그렇게 단언할 수 있는가. 대답은 간명하다. 두 가지 점에서다. 하나는 한국사 하는 학자들의 거개(擧皆)는 한국사 외에 다른 나라의 역사는 공부하지 않는다. 한국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도 이웃나라 역사 공부는 필수적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우리를 둘러싼 4강(四强)의 역사 즉, 일본사, 중국사, 러시아사 그리고 미국사이다. 조선의 정체(停滯)와 달리 17-18세기 도쿠가와(徳川家康) 시대의 일본은 어떻게 그렇게 발달했는가, 명치유신 훨씬 이전 이미 일본은 조선을 합병하고 중국을 점령할 정도의 국력을 갖고 있었다. 무엇이 그것을 가능케 했는가. 17세기 중반 이후 18세기 전(全)기간의 대청(大淸)제국은 오늘날의 미국과 마찬가지로 세계 최강의 국가였다. 하지만 19세기를 넘어서면서 서구와 일본의 반(半)식민지 국가로 전락했다. 그 전락과정을 적어도 60년 이상을 지켜보면서 조선은 계속 반외세 쇄국정책을 썼다. 청국의 그 무엇이 조선을 그토록 폐쇄국가로 만들었는가. 오늘날의 한국분단 70년사는 태평양 전쟁 종전(終戰) 바로 이듬해인 1946년, 김일성을 시켜 단독정부를 수립케 한 스탈린의 한반도 분단정책으로 만들어졌고, 동구(東歐)분할 정책과 같은 스탈린의 한반도 정책은 18-19세기의 제정러시아 대외정책의 속성을 그대로 따라한 것이었다. 그 러시아사를 공부하지 않으면 우리의 지난 70년 분단사도 제대로 볼 수 없다. 영국 식민지였던 미국이 불과 2백 년 동안에 어떻게 해서 오늘날 인류의 주가치(主價値)인 자유, 평등, 인권, 법치라는 보편적 가치를 세계적으로 확장시켰는가. 우리 또한 그 보편적 가치를 떠나서는 이제 살수 없게 되지 않았는가. 이같이 이웃나라들의 역사는 바로 우리 역사와 직결되어 있고, 그 이웃나라들의 역사를 제대로 연구하는 것이 바로 우리 역사, 특히 우리 현대사를 새롭게 보고 확실히 보는 첩경이다. 그러기 위해선 그 나라 언어부터 먼저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한국사 하는 사람들이 이웃나라들의 언어를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이다. 그러나 우리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3
다른 하나는 한국사 하는 학자들의 대다수는 민족주의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사고는 아직도 민족주의(nationalism)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그 민족주의 사학자들의 다수는 국수주의자(ultranationalist)들이다. 민족주의만 해도 ’아직도 그런 사상’을 하는 판에, 그것도 모자라 앞에 ‘초(超)’니, ’극단의‘ 혹은 ‘과도한’ 이라는 한정어가 붙는다면, 그 학자는 도대체 50년 전 사람들인가 1백 년 전 사람들인가. ‘우리 역사가 최고다. 우리 역사는 자랑할 것이 너무 많다. 우리는 빛나는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 역사를 만든 우리 조상들은 위대하다. 우리민족은 다른 민족들 보다 강인하고 창의성도 높다. 우리는 우리의 그런 정체성, 우리의 그런 우수성을 지켜야한다’는 자긍심(自矜心)을 갖고 그런 자존심을 간직하는 것, 그것은 참으로 좋은 것이고 바람직한 것이다. 자기 역사에 대해 그런 생각을 갖는 것, 그것은 조금도 나무랄 것이 없다. 그러나 그것만이라면, 자기 역사에 대해 오직 그 생각만 갖고 있다면, 그것은 완전히 닫힌 생각이고 닫힌 마음이다. 역사를 공부하는데 가장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 그러한 닫힌 생각, 닫힌 마음이다. 다른 나라도, 적어도 이제 막 생겨난 신생국이 아니라면 우리만큼 다 우수하고 우리만큼 다 빛나는 역사,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선진국 사람들만이 아니라 아직도 개발도상에 있는 나라 사람들, 심지어는 오지(奧地)에 있는 나라의 사람들도 그러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모두가 우수하고 그 모두에게 우리가 배우고 취할 점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이 열린 마음이고, 특히 한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깊이 간직해야할 열린 생각이다. 그들과 우리, 누가 더 우수하냐, 누가 더 좋은 역사를 가지고 있느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 차이를 비교하는 것은 좋은 공부 방법이지만, 어느 것이 낫고 못 하냐, 좋고 나쁘냐를 따지는 것은 객관적이며 과학적인 연구방법도 공부자세도 아니다. 그것은 공부를 하든 일을 하든, 그 무엇에도 도움은커녕 방해만 되고 역효과만 가져다 줄 뿐이다. 역사를 가진 모든 민족은 다 의미가 있다. 그 의미가 서로 다를 뿐이다. 그 의미는 생활양식의 다름에서 나타나고, 사고방식의 다름에서 나타나고, 행위유형의 다름에서 나타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 ‘다름’이다. 그 다름을 존중하고, 그 다름에서 우리가 갖지 못한 것, 우리가 모자라는 것, 우리가 새로이 찾고 개발해야 할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것이 열린 마음이고 열린 학문을 하는 길이다. 민족주의와 국수주의는 그 열린 마음을 닫게 하는 것이고 열린 공부, 열린 학문을 저지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가를 숙고해보면 그 대답은 자명해진다. 삼척동자(三尺童子)라도 왜 그러한가를 안다. 구태여 학교에 가서 배우지 않아도 지금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안다. 그것을 꼭 한국학 하는 사람들만이 모르고 있다고 한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
4
민족주의는 한 시대의 사상이다. 모든 시대는 그 시대 특유의 사상을 갖는다. 어떤 사상이든 그 시대 특유의 산물이다. 민족주의는 19세기 후기와 20세기 전기의 사상이다. 당시 유럽에서는 독일, 이태리 같은 후발국(後發國), 여타 지역에선 우리와 같은 약소국가들이 자기를 지켜내기 위해 고양(高揚)했던 사상이다. 특히 우리와 같이 식민지 경험을 가졌던 나라들은 민족정신을 고취(鼓吹)하고 민족심을 불러일으키고 민족의기를 불태우고 민족단합을 강화하는데 이보다 더 유용한 사상은 없었다. 우리의 지난날을 한번 돌아보라. 적어도 1960년대까지만 해도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민족주의라는 이데올로기로 우리의 가슴이 얼마나 불탔던가. ‘민족주의’라는 말만 들어도 엉엉 우는 사람들 그 때 그 시대에는 많았다.
지금도 그러한가? 지금 지구상에서 제대로 된 나라치고 ‘민족’, ‘민족주의’를 말하고 외치는 나라가 있는가? 민족주의에서 으레 내세우는, ‘우리 민족끼리’를 외치고 있는 나라가 여전히 존재하는가. 있다면 유일하게 북한이고, 또 있다면 한국 내에서 그들을 추종하는 세력들이고, 또 있다면 미상불(未嘗不) 한국사하는 학자들 중 상당수를 점하는 사람들이다. 우리 국민의 절대다수는 절대로 ‘우리 민족끼리’를 말하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배우지도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말하지 않는다. 그것을 가르치고 외치는 사람이 아직도 없는 것이 아님에도, 절대다수의 국민들은 거기에 귀를 기우리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이 ‘우리 민족의 살길’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의식적으로 은연중 그리고 경험으로 그것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우리민족을 살리고 우리민족을 지키는 길이 민족주의며 ‘우리 민족끼리’가 아니라 그 민족주의, ‘우리 민족끼리’를 초극해서, 세계의 다른 나라, 다른 사람들 속으로 뚫고 들어가, 그들의 세계관 그들의 물질관을 수용하며, 그들의 사회구조와 산업체계 안에서 공급과 수요를 창출해내는 것, 그 길이 바로 우리가 살 길이고 우리를 지키는 길이란 것을 치열했던 해외 경험을 통해 알아냈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대성취(大成就)는 바로 그렇게 해서 이루어낸 것이다. 2차 대전 이후의 신생국들, 140여 개국이 넘는 그 나라들 중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반성취(同伴成就)한 나라, 그리고 유일하게 ‘선진국 진입 성공’이라는 신화를 쓰고 있는 나라, 그것은 더 이상 ‘우리 민족끼리’라는 ‘우물 안 개구리’ 행태며 사고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60년대 이래 해외로 뻗어나가며 지구촌 곳곳을 누비면서 체득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열렬했던 민족주의를 극복하고 이겨내서 더 넓은 세계로 도약해 나간 우리 국민들이야 말로 드물게 우수한 사람들로 칭찬 받아 마땅하다.
5
하지만 북한은 다르다. 북한이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 민족끼리’ 뿐이다. 지난 세기, 60년대 이래 북한이 성취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들은 일제가 만들어준 공장, 일제가 남겨준 철도와 도로, 일제 강점기의 그 산업수준 그 사회수준을 넘지 못한 채, 일제시대의 우물 안에서 그 우물 안의 개구리로 여전히 살고 있다. 그 시대 그 우물 안에서 외쳤던 구호가 ‘우리 민족끼리’이고, 그 ‘우리 민족끼리’에서 자동적으로 만들어진 프레임이 ‘친일 대 반일’이다. 그 60년 전의 구호, 그 60년 전의 프레임을 여전히 걸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친일 대 반일’의 프레임은 한국사 연구자들에서 보듯이 너무 고루(固陋)하고 고루(孤陋)한 것이다. 너무 낡아서 발전의 가능성이 없어진 것이고, 너무 세상과 동떨어져 변통의 여지가 사라진 것이다. 그것은 곧 우리 삶의 지향, 삶의 가치, 국가발전에 역류(逆流)하는 것이고 역기능(逆機能)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죽을 수밖에 없다. 그 수명이 다했다. 생명이 다한 것은 어떤 수를 써도 살아날 수가 없다. 죽은 것은 빨리 땅속에 파묻을수록 좋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 민족끼리’라는 북한식 비명이고 ‘친일 대 반일’이라는 북한식 파당(派黨)구분의 프레임이며, 그 추종 세력들의 맹종형(盲從形) 역사심리이다. 그래서 자기와 다른 소리를 내는 교과서에 대해 “테러리스트 김구, 깡패 유관순”이라는 기상천외의 허황된 괴담까지 만든다. 제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생명이 다한 것은 역사에서 사라진다. 마지막 기름 한 방울에 매달려 등잔 불꽃이 다시 살아나기를 제아무리 고대해도 최후의 순간은 어김없이 다가온다, 누구보다 한국사 하는 사람들이 왜 한국사가 그렇게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는지, 그래서 다른 나라 사람들의 자국 역사연구보다 한국사 연구가 왜 탈바꿈하지 못하는지, 어째서 한국사연구의 지평이 그렇게 좁고 그렇게 낡은지, 이 모두 한국사 연구자들이 스스로 자초한 것이란 사실을 뼈저리게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국민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한국사 연구, 그것은 오로지 한국사 연구자들의 책임이다. 쇠퇴와 위기는 안에서 먼저 오는 것이지 밖에서 먼저 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한국사 연구자들은 밖을 먼저 탓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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