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 語學

장 폴 사르트르

이강기 2015. 10. 21. 11:33
 원문출처 : 아버지 대신 실존주의를 믿고, 계약결혼으로 平生의 사랑을 얻은 남자
 원문링크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8/10/2013081000001.html
입력 : 2013.08.10 03:00 | 수정 : 2013.08.10 10:19

 

[불멸의 저자들] 장 폴 사르트르

부친 일찍 잃고 외가에서 보낸 유년기
존재가 우연의 결과라는 생각에 빠져 철학서 쓰려다가 소설로 바꾸고 '데뷔'
카뮈 등 친구들과는 불화로 결별했지만 戀人 보부아르와는 죽을때까지 함께해

1980년 4월 15일 장 폴 사르트르의 죽음이 알려지자 파리 시민 수만 명이 자발적으로 거리에 나와 운구 행렬에 참여했다. 파리에서 한 작가를 추모하기 위해 이념과 세대를 초월하고 인산인해를 이룬 것은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그는 인간이 처한 현실에 대한 근원적 문제를 성찰한 마지막 철학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보편적 문제를 개별적 인간의 운명에 적용한 문학작품을 써낸 작가이며 모든 형태의 전체주의를 비판한 극좌 활동가이기도 했다. 전후 사르트르가 주도한 실존주의는 강단 철학에만 머물지 않고 말투와 옷차림과 유행가에 이르기까지 깊고 넓은 태풍을 일으켰다.

사르트르는 저서 '집안의 천치'에서 "삶이란 유년기에 갖은 양념을 친 것"이라고 했다. 미처 양념이 배지 않았던 그의 떡잎은 자서전 '말'에 상술됐다. 1905년 6월 21일 파리에서 태어난 그는 이듬해에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함께 외갓집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아버지의 부재는 "책 속에서 태어나 책 속에서 죽을 것"이란 고백처럼 일찌감치 작가가 되기로 작정한 사르트르에게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


	장 폴 사르트르 사진

'노인 하나, 여자 둘 사이에서 홀로' 유년기를 보낸 그는 "복종하는 법을 배우지 않았기에 남에게 복종을 요구하지 않았다." 어떤 권위나 제도에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를 가장 소중한 가치로 삼았던 그였지만 과연 자신의 존재가 필연에 따른 것인지 고민한다. 앞뒤가 꽉 짜인 필연의 세계는 영화에서나 가능할 뿐, 현실은 우연으로 점철되고 심지어 우리의 존재 자체가 우연성의 결과란 생각은 "본질적인 것은 우연이다"는 로캉탱의 독백으로 요약된다. 후설의 영향을 받아 철학서를 구상하다가 시몬 드 보부아르의 충고에 따라 소설로 개작된 '구토' 덕분에 사르트르는 1938년 소설가란 명칭을 얻는다.

1939년 2차 세계대전에 동원되었다가 이듬해에 포로로 잡힌 그는 수용소에서 하이데거를 읽고 존재론 집필을 구상한다. 1941년에 석방되고 2년간 각고 끝에 얻은 열매가 1943년 출간한 '존재와 무'이다. 즉자, 대자, 자기기만과 같은 개념을 동원한 이 난해한 철학서는 인간은 미래를 향해 끊임없이 자신을 던지는 행위를 통해 자기 본질을 구축해야 하지만 결국 그런 시도는 물거품으로 돌아가리란 비관적 진단으로 마무리된다.

전후 사르트르는 "전쟁에서 나는 참여를 배웠다"거나 "문학은 바나나와 마찬가지로 방금 딴 것이 유효하다"는 발언으로 상황에 입각한 참여문학을 내세운다. 1945년 10월 무책임한 사상으로 젊은이를 타락시킨다는 세간의 비난을 반박하기 위한 강연에서 "실존주의자가 상상하는 인간이란 정의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는 나중에야 비로소 무엇이며, 스스로 만들어내는 그 무엇이 될 것입니다"라고 한다.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는 유명한 경구와 더불어 마흔 살의 사르트르는 세계적 유명 인사로 부상한다.

그는 아롱, 메를로퐁티, 시몬 드 보부아르와 함께 '현대'를 창간했고 다양한 분야와 관련된 그의 글은 '상황' 열 권으로 묶인다. 그중 2권에 해당하는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시는 언어에 복무하고 산문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문제적 경구를 남긴다. 1960년대 새롭게 대두한 구조주의 때문에 점차 그늘로 밀린 실존주의를 그는 프로이트와 마르크스로 보완한다. 인간의 자유가 실천적 타성태와 물질적 희소성에 의해 제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분석한 것이 1960년에 발표한 '변증법적 이성 비판'이다.

카뮈, 메를로퐁티, 아롱과 같은 친구는 끝내 불화와 결별의 절차를 밟았지만 시몬 드 보부아르는 평생 그의 곁을 지켰다. 스물세 살의 남자와 스물한 살의 여자는 기묘한 계약을 맺는다. 상대방을 필연적 사랑으로 여기지만 미래에 생길 우연적 사랑을 서로 인정하며 그 내용을 낱낱이 고백하자는 것이다. 일부일처제를 인간을 얽매는 사슬로 여긴 두 사람은 상식적으로 얼핏 수긍하기 어려운 실험을 실천했다. 제각기 교수 자격시험을 통과한 뒤 강단과 문단에서 활동했던 이들은 제자, 동료와 아슬아슬한 곡예를 감행했다. 갈등과 위기를 극복한 시몬 드 보부아르는 동반자의 임종을 지켰고 훗날 그의 곁에 묻혔다. 다만, 무덤 속에 들어간 그녀의 손가락에는 미국 애인이 건네준 반지가 끼여 있었다. 독일 점령 기간 사르트르의 행적이나 두 사람의 사랑에 관련된 문서와 증언이 서서히 공개되면서 호사가의 관심을 끌지만 두 사람이 쌓아올린 업적과 삶에 큰 흠집을 내진 못할 것이다.


	구토 표지 사진

[사르트르, 더 알고 싶다면]

문학부터 철학·평론까지 多作
입문자에겐 '구토' '벽' '말' 추천

사르트르의 저서는 철학, 문학, 평론으로 거칠게 나눌 수 있다. 철학은 '존재와 무', '변증법적 이성비판',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상상계', '사르트르의 상상력', 문학은 '구토<사진>', '자유의 길', '벽', '말', 평론으로 '문학이란 무엇인가', '시대의 초상', '지식인을 위한 변명' 등이 번역되었다. 연구서로는 '문학을 찾아서'(정명환), '사르트르의 문학적 세계'(김치수, 김현).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박정자), '존재와 무-자유를 향한 실존적 탐색'(변광배), '집안의 천치-사르트르의 플로베르론'(지영래), 정명환이 주도하는 연구회가 펴낸 '사르트르와 20세기', '실존과 참여'가 있다.

일반 독자에겐 '구토', '벽', '말', 그리고 정명환과 변광배의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