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고싶은 글

대한민국, 이상한 성직자의 시대

이강기 2015. 11. 1. 13:26
대한민국, 이상한 성직자의 시대

송정숙 글라라 

  2007년 벽두에 우리는 졸지에 박멸(撲滅)되어 버려야 할 한 무더기의 바이러스 신세로 전락되고 말았다. 그것도 다름 아닌 성스런 분장(扮裝)을 한 성직자에 의해서다.
 
  세상이 바뀐 뒤에 대학을 접수하는 관선 이사로, 동료 성직자가 참으로 놀라운 헌신으로 벌이는 하느님의 사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온갖 무고한 혐의를 걸어 봉사 행동을 결박하는 일에 앞장을 서고 ―무고 당한 그 성직자는 여러 해에 걸쳐 법정에 세워지는 수모를 신의 뜻으로 알고 견딘 끝에 마침내 무혐의 판결을 받았다.― 있는 그렁 성직자다.
 
  그 성직자는 좌파 정권이 어렵사리 거머쥔 정권을 오래 오래 유지하기 위해 출발부터 언론의 입을 강제로 재갈 물리려는 의도에 앞장서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 일의 일환으로 자신이 주임 신부로 성직 업무를 하고 있는 성당에서 느닷없이 신도들을 향해 『J일보를 읽는 사람은 일어서 보라.』는 말을 한 적도 있다. 그 말을 들은 신도들은 겁을 먹었던지 한사람도 기립을 하지 않는 촌극도 벌인 그런 성직자다.
 
  그가 마침내 좌파 정권이 권세를 차지한 몇 주년을 즐기는 자리에서 그들이 떠받들어 앉힌 수장―그는 국민의 70%가 자격이 없다고 등을 돌린 대통령이다.―의 곁에 앉아 국민을 『남아 있는 보수 우익 바이러스 무리를 소탕해야 우리의 최종 목적이 달성되는 것』임을 오만한 어조로 강조하며 그 많은 국민을 박멸해야 할 박테리아로 몰았다.
 
  그가 성직자 복장을 한 채 색출해내려고 하는「J일보 독자」나, 북한 핵을 용서하면 우리의 발 밑이 무너져 내리는 위기를 당면할 것을 걱정스러워하고, 경제가 뒷걸음질 쳐서 성장잠재력까지 다 갉아먹는 것에 걱정이 되어 목이 터지게 외치는 우국의 세력을 그는 박멸해야 할 바이러스로 거침없이 몰아버린 것이다.
 
  비록 카톨릭 신도가 아니라도, 로만 컬러로 목을 감싸고 검은 수단을 걸친 신부를 보면 사람들은 공연히 마음이 긴장된다. 신을 대행하는 권능을 부여받은 그들 성직자의 말을 어기면 ―그것이 종교적 성질의 것이 아닐지라도―신의 심판을 받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 같은 것을 마음으로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워낙은 자비롭고 관대하며 「7번씩 70번이라도 용서하라」시는 하느님 말씀을 적어도 그들만은 지킬 것으로 믿고 따르는 대상이 신부고, 그 자리를 상징하는 코스튬이 신부 복장이다.
 
  그런 신뢰와 자비의 상징이 성직자인데 그가 국민의 70%가 넘는 사람들을 서슴없이 박멸대상으로 몰아버리는 정치적 적개심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그런 발언이 있은 후 필자는 평소에 카톨릭을 다소 냉소적인 눈으로 보던 친지에게서 신랄한 추궁을 당했다.
 『당신네 카톨릭은, 종교정신과 너무도 배치되는 반목과 편향된 이념의 편에 서서 예사로 국민 대다수를 병균 옮기는 바이러스쯤으로 모욕하는 신부를 어떻게 그렇게 용인하고 있는가? 그런 것을 그냥 그렇게 두고 보는 것은 당신네 종교와 좌파 이념이 부합되기 때문인 것이냐?』라고.
 
  그는 또 이런 말도 했다. 현대의 성자 같은 노력으로 꽃동네 봉사를 이룩해 온 신부가 모함을 받아 수년 동안을 법정에 끌려 다니며 있지도 않는 죄목으로 사기꾼이 되어버릴 뻔한 일이 있는데 그 성자 같은 성직자를 모함하는 일에, 우리를 병균 바이러스로 몰아버린 바로 그 성직자의 힘이 작용했다는 것을 알고 있느냐고. 그 일은 알려진 일이라고 대답했더니 그 비신자인 친지는 이런 내막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꽃동네 신부와 그는 원래 가까운 동료였다. 사회참여가 활발한 동료 신부가 시민단체 일에 참여하며 바쁘게 내달을 때 교통사고로 사람을 상하기에 이른 적이 있었다. 그럴 때 꽃동네 신부는 너무 걱정스러워서 여러 곳에 간곡한 청을 넣어서 그런 허물로 동료 신부가 부자유스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솔선했던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동료를 짓지도 않은 죄목으로 묶어 엄청나게 번져가고 있는 복지사업을 방해한 사실까지 아느냐는 것이었다. 그것은 물론 필자도 몰랐던 일이다. 이 비 카톨릭인 친지가 거품을 물며 공격하는 일을 필자는 하릴없이 감당해야 했다.
 
  치마처럼 생긴 수단 자락에 바람을 일으키며 이 정권이 내려준 각종 실속 있는 위원직들을 누리느라고 분주한 이 성직자는 평소에도 추종자를 거느리고 위풍 당당하게 나타나곤 한다. 이런 정치적 권위를 그는 상당히 즐기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 말고도 이런 권위를 누리며 추종자를 거느리고 휩쓸고 다니는 성직자가 이 정권 핵심에는 몇 사람 더 있다. 그들은 현세의 포퓰리즘적 매력에 강렬하게 이끌려 있는 것 같다. 그들을 보며 중세 이탈리아의 「사보나 로라」라는 카톨릭 수사를 생각해 보았다.
 
  중세시대, 피렌체에서 활약하던 사보나로라는, 로마에 군림해 있는 알렉산더 6세 교황의 종교적 타락과 부당한 권위에 맹렬하게 저항한 양심적인 수사(修士)였다.
 
  그는 10대의 어린 청소년을 거느리고 그의 종교적 투쟁을 시작한다. 거리를 활보하는 화려한 차림의 여인들을 습격하고 귀족이나 부자 사람들의 행차를 유린해서 장신구며 화려한 의상 따위를 뺏어서 불태우고 부자 저택에 쳐들어가 사치품은 물론 창고를 뒤져서 곡물 고기 같은 식품들을 뺏어 내온다.
 
 그리고는 그렇게 압수한 것을 누가 갖거나 나눠 먹거나 하지는 않는다. 도시의 광장에 쌓아놓고 태워버린다. 태우는 의식도 종교적으로 치른다. 악의 무리들이 쌓아놓은 재물을 신성한 양심의 신도들은 먹어서도 안 되고 써서도 안 된다는 주장이다. 귀족 부호들은 아이들을 이끌고 벌이는 이 신앙심 강한 수사가 벌이는 「운동」에 겁을 먹을 뿐 저항도 반대도 하지 못한다.
 
  가난하여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과 그런 출신의 젊은이들은 이 운동에 열광하며 참여한다. 마침내 피렌체 안의 정부조직도 사보나로라의 장중에 들어간다. 사보나로라는 이런 냉혹하도록 철저한 영혼의 구원사업을 펼치면서 그것을 늘 종교의 이름으로 거행하고 진행한다. 그래서 굶주리는 서민들도 그의 뜻에 따르며 당장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도 곡물을 태우는 일에 열심히 따른다. 언젠가 사보나로라가 마련해 줄 살기 좋은 세상의 실현을 믿으며.
 
 그는 재물과 식량을 태우는 커다란 이벤트 성 행사를 벌일 때면 으레 교회에서 엄숙하고 장엄한 종교의식을 진행한다. 검은 복색과 두건을 두른 추종의 무리들과 함께 피를 토하듯 열정적이고 정의로운 강론과 설교를 하고 장엄한 미사를 집전한 뒤에 사보나로라는 하늘을 향해 외친다.
 
 『하느님 제가 이제부터 하는 일이 신의 뜻을 어기는 잘못된 일이라면 하느님께서는 제가 저 교회문을 나설 때 천정으로부터 불칼같은 천둥과 번개를 내리소서. 그리하여 그 불벼락에 맞아 제가 그 자리에서 쓰러져 버리게 하소서. 피렌체의 모든 하느님의 자녀들이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있도록 확실하게 벌을 내리소서.』
 
  이런 내용의 기도다. 복면한 젊은이들을 행동 부대로 거느리고 폭력적으로 벌이는 개혁운동에 공포의 도시가 된 피렌체는 길에서 불이 꺼지고 암흑의 거리가 되었다. 그런 죽음 속 같은 거리에서, 그곳만은 환히 밝혀진 교회에서 하늘에 닿도록 벌이는 열정적이고 장엄한 종교의식은 운집한 시민들로 하여금 침을 삼키며 하늘을 향하게 한다. 사보나로라의 기도가 거기 계신 신에게 닿을 것이라는 믿음을 그들은 강렬하게 느끼며 지켜본다.
 
 기도 끝에 수사는 신의 심판을 기다리는 수도사다운 몸짓을 갖추고 장중한 움직임으로 교회의 문 앞에 이르러 바닥에 엎드려 다시 한번 벌을 내리시라고 외친다. 그 극적이고 엄숙한 태도는 참여한 신도들의 가슴을 졸이게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나지나 않을까 조마조마하여 숨을 죽이고 지켜본다.
 
  그러나 끝내 신의 심판은 내리지 않고 수사는 무사히 문을 나서게 된다. 그것으로써 신께서 사보나로라가 벌이는 일에 대한 신임을 보이셨다는 뜻이 되었으므로 다 같이 환호하며 사보나로라가 시키는 다음 일을 진행한다.
 
  이런 일을 보고 받은 로마에서는 여러 가지 길로 이 수사를 로마로 불러 교회재판에 회부하려하지만 그 때마다 사보나로라는 다시 자신이 로마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일에 대한 신의 계시와 심판을 구하며 번번이 교회 문 아래 엎드린다. 그리고 신임의「허락」을 받았다. 그리고는 당당하게 작은 도시국가 피렌체를 그의 뜻대로 만들어간다.
 
  그러다가 일은 뜻밖의 방향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종파가 다른 수도원 쪽의 수사들이 도전을 해온 것이다.
  라이벌 종파의 수사들은 사보나로라가 그렇게 신의 허락을 받는 것이라면 자신들이 제안하는 방법으로 신의 뜻을 확인하는 의식을 벌이자는 것이었다. 그들이 제안한 의식인즉 피렌체 광장에 격식 갖춘 화형(火刑) 장치를 해놓고 사보나로라가 그 위에 앉아 하느님의 의지를 시험해보라는 것이었다. 사보나로라가 불에 타지 않도록 하느님이 구해주시는지를 시험하자는 것이다.
 
 사보나로라가 먼저 그 시험에서 신의 구원을 받는다면 당신의 모든 일이 신의 허락을 받은 일임을 인정하고 같은 화형의식을 우리도 따르겠다는 것이다. 이 무서운 제안에 대하여 사보나로라는, 「그런 신을 시험하는 일은 할 수 없다」고 말하지 못했다. 그는 이미 스스로가 신을 시험하는 일을 수없이 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욱 난처한 일은 그를 따르며 그의 단호하고도 강경한 정치적 개혁을 함께 해온 그의 추종자들에게서 생겼다. 라이벌 종파가 걸어온 도전을 받아들이라는 요구를 하는 것이었다. 그 많은 시험에서 사보나로라를 구원하고 지원해온 하느님이 다른 종파의 이 건방진 도전에 대해 반드시 신께서는 응답이 있으실 것이니 빨리 그 도전장을 받아 들여서 「우리의 수사님 사보나로라」가 「하느님의 대리인임을 증명하라」는 것이었다. 나무의 높이는 어떻게 쌓고 관전하는 사람들은 어디에 어떻게 앉아 있고 누가 함께 사보나로라를 시험장까지 안동해 가는가까지를 정하는 일을 추종자들은 일사분란하게 진행했다. 사보나로라는 이 일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마침내 시험을 실시하려는 날 놀랍게도 비가 내렸다.
 
  그러자 사보나로라는 운집한 군중에게 말했다. 『이것으로 신의 뜻은 알았다. 신께서는 이런 시험을 하지 말라는 뜻으로 비를 내리신 것이다.』라고 선언하고 이 살기(殺氣)어린 시험을 멈추기로 했다. 그렇게 그가 교회의 사제관으로 돌아가자 어제까지 그를 그처럼 따르며 ale던 군중은 분노에 차서 폭도로 변했다.
 
 『안된다. 사보나로라는 불의 시험에 응하라. 의식을 위해 쌓아놓은 저 장작더미 위로 올라가 하느님께 기도하고 시험에 응하라.』하고 외쳤다. 그래도 듣지 않자 그들은 사제관에 칩거한 사보나로라를 향하여 『이 사기꾼아 빨리 나와라. 이제까지 우리에게 해온 일은 다 거짓이었지. 이 거짓말쟁이야…』하고 외치며 폭거를 벌이고 마침내는 그를 물리력으로 끌어냈다. 그 분기 탱천하여 이성을 잃어버린 군중에 의해 사보나로라는 결국은 시험대 위에 올려졌다. 화형의 장치인 나무에는 불이 붙었고 사보나로라는 분사당했다.
 
  새로운 좌파 정권이 생겨나면 서민이 잘 살게 해주고 잘사는 사람들 것을 빼앗아다가라도 평등한 분배의 사회를 이룩해 줄 것이라고 그들 편을 들며 수단 자락을 휘날려온 「친 참여 정권」편에서 세속적인 권위를 휘두른 종교지도자들을 향해 『우리가 속았다』고 보상을 요구하는 어리석은 국민이 생겨나지는 않을지 모르겠다. 자비의 하느님을 대신하여 신과 인간 사이를 연결하는 일 대신 많은 국민을 박멸해 버릴 바이러스로 몰아버리는 일조차 서슴치 않는 성직자를, 그들이 조종해 온 포퓰리즘의 주인공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과거사를 가지고 살기등등한 보복과 편가르기를 하는 일을 실천하도록 서슬 퍼런 칼날을 휘두르는 인민 재판식 의식에 성직자 복장을 유감없이 활용하는 종교지도자를 사람들은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사람들의 그런 생각쯤은 그들이 생각하는 정치적 성취를 위해서는 별로 거리낄 것이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비신자를 포함한 많은 이 나라 사람들이 지닌 카톨릭을 향한 의문은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