社會

성공신화 박은주 전 김영사 사장에게 일어난 일!

이강기 2015. 11. 3. 17:31

 

[여성조선] 성공신화 박은주 전 김영사 사장에게 일어난 일!

 

입력 : 2015.08.29 23:48

경영권 분쟁, 종교집단?

그동안 소문으로만 떠돌던 김영사의 미스터리가 터졌다.

박은주 전 사장이 김강유 전 회장을 상대로 배임, 횡령, 사기 혐의로 고발을 하고 언론 인터뷰도 감행했다. 베스트셀러 기록을 남기며 출판계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던 그녀의 진실 고백이 충격적이다. 출판사 김영사는 어떤 곳인지, 그 안의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인지, 그동안 그들에게 일어난 일을 취재했다.

 

국내에서 으뜸가는 출판사가 있다. 회사의 규모나 매출액, 나오는 책 모두가 최고를 의심치 않는 곳이다. 지금은 어떤지 상세한 내막을 알지 못하나 아마도 여전히 수위를 달리고 있을 것이다. 불교 관련 출판물을 내던 작은 출판사로 시작한 곳이다. 전문적인 불교 출판사임을 내세우지는 않았지만, 초창기 그곳에서 냈던 책 가운데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좋은 책들이 많다.

주목받지 못하던 아주 작은 출판사가 어느 날 한국 제일이 되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대략 십오륙 년 전의 일이다.

그 출판사의 창업주는 금강경을 수지 독송하는 이다. 집에서나 일을 할 때나 틈만 있으면 금강경을 읽었다. 어느 날 저녁 직원들이 야근을 하고 있을 때 당신이 먼저 퇴근을 하게 됐다. 편집과 교열에 바쁜 직원들을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누군가의 책상 앞에 잠시 서 있다가 아무 말 없이 회사를 나섰다.

그 책상의 주인은 연차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여직원이다. 책상 위에는 사장이 놓아둔 금강경 한 권이 남아 있었다.

“경전을 보자마자 저는 무엇을 하라는 것인지 알았습니다. 한마디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제 책상 앞에 잠시 서 있다가 경을 놓고 나가시는 모습을 보았을 뿐입니다. 책상 위에 놓인 금강경 한 권이 모든 이야기를 제게 전했습니다.”

그때부터 금강경을 읽기 시작했다. 읽어보라는 이야기를 듣지는 않았지만 읽고 또 읽었다. 몇 달 후 직원회의가 있을 때 전체 직원 앞에서 창업주는 폭탄선언을 하게 된다.

“내년 오늘부터 편집부의 저 여직원이 이 회사의 사장이다.”

아무런 상의도 없이 일개 평사원을 일 년 후 사장으로 임명한다고 선언한 것이다. 회사가 술렁거렸다. 창업주는 아무런 말을 더 하지 않았다. 다만 그 일 년 동안 자신이 평생 회사를 경영하며 경험한 내용을 노트에 적어갔다. 판단과 결정의 상황이 오면 어떤 원칙으로 행해야할 것인지만을 제시했다.

꼭 일 년 후 그 여직원이 출판사의 사장이 되었다. 오직 경영노트 한 권만을 전해 받았을 뿐이다. 그리고 몇 년 후 국내 최고의 출판사가 됐다.
―<행복한 사람들>(김천, 하얀연꽃) 중 발췌


한국의 대표 사찰인 승보종찰 송광사 사보에 연재했던 ‘김천 칼럼’의 원고를 묶어서 낸 책 <행복한 사람들>의 한 부분이다. 텍스트 속 등장하는 남과 여는 김영사 김강유 회장과 박은주 전 사장. 불교에 깊은 관심이 있었던 박 전 사장은 김영사 입사 직후부터 불교 지도자로 명망 높은 백성욱 박사의 제자였던 김 회장을 통해서 금강경을 배웠고,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시작했다.

둘 사이에는 금강경을 사이에 둔 신뢰가 있었다. 김 회장은 아무런 연고도 없는 30대 초반의 그녀에게 지분과 경영권 모두를 물려주는 파격 인사까지 감행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파격적으로 발령이 난 박 전 사장은 이후 김영사를 최고의 출판사로 이끌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정의란 무엇인가>, <안철수의 생각> 등 제목만 들어도 알 만한 굵직한 베스트셀러가 박 전 사장의 손에서 만들어졌다. 자본의 논리를 벗어난 듯한 행보. 출판사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완벽하고도 아름다운 동화 같은 이야기가 완성되는 것 같았다.

김영사에서 어떤 일이?

박 전 사장은 출판계 미다스의 손이었다. 매출이 1억원에 불과하던 김영사의 규모를 5백억원이 넘는 회사로 키웠다. 한때 연봉을 8억원이나 받으면서 신화 같은 존재가 됐다. 한국출판인회의 회장 등 출판계에서 굵직한 자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녀는 뼛속까지 출판인이었다.

잘나가는 여성 리더였던 그녀가 지난 2014년 갑자기 잠적을 했다. 돌연 사장직을 내놓은 그녀를 두고 출판계에서는 의문의 사퇴, 신흥종교 관련설, 횡령 의혹, 내연남 소문 등 다양한 추측이 난무했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일명 김영사 미스터리의 주인공이 됐다.

그러던 그녀가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잠적 1년 2개월 만에 입을 연 셈이다. 그런데 그 말들이 놀라워 세상이 발칵 뒤집어졌다. 김강유 회장과 법적인 소송까지 제기한 그녀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을 모두 쏟아냈다.

인터뷰 중 그녀는 금강경 스승이자 본인을 출판계 미다스의 손으로 만들어준 장본인인 김 회장에게 ‘사이비 교주’라는 표현을 썼다. 용인에 있는 법당에서 숙식을 하며 지냈고, 한 달 수입은 한 달에 20만원에 불과했다고 한다. 20년간 번 돈 28억원을 모두 바치고 13가지 배임 횡령 리스트와 주식 포기 각서, 가회동 사옥 재산 포기 각서에 서명도 강요받았다고 했다. 박 전 사장의 인터뷰에 따르면 두 사람의 관계는 2003년 김 회장의 사생활 문제로 금이 가기 시작했고, 이후 김 회장이 형님 회사를 지원하라고 해 수십억원을 쏟아부었다가 손을 떼라고 조언하는 과정에서 마찰이 시작됐다고 밝혔다. 유령처럼 떠돌던 각종 설이 마치 각본이라도 짠 듯 모두 수면 위로 올라왔다.

김강유 회장은 이를 두고 “종교가 아닌 공부모임이어서 사이비종교 교주로 취급하는 것은 터무니없고, 20년간의 법당생활에 대해서도 박 전 사장이 자발적으로 들어와서 수행하다가 제 발로 나간 것이다”라고 반박하고 있다. 내연녀의 존재에 대해서도 부인했다.

현재 두 사람의 소송은 가열하게 진행 중이다. 박은주 전 사장은 횡령, 배임으로 3백50억원을 빼돌렸다고 김 회장을 고소했다. 김 회장이 2007년부터 공공연히 경영에 개입해 매달 1천만원의 비자금과 운전기사 비용, 카드대금 등 자금을 유용하고 본인 소유의 주식 등 재산을 가로챘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출판인회의 회장에서 물러난 뒤 대외 접촉을 끊었던 그가 직접 소송전에 나설 결심을 굳히게 된 계기는 회사와 일부 임직원들 사이의 소송 전개에서 기인했다. 박 전 사장은 “김 회장 측이 일부 직원을 상대로 제기한 횡령 혐의 고소사건이 지난 4월 무혐의 판결을 받자 나에게도 협박 문자를 보내 직원들의 횡령 혐의를 벗도록 도와주었으니 항고해서 문제 삼을 것이라고 압박해왔다”며 “이대로 묵과하면 회사도 직원들도 물러설 땅이 없으리란 판단에 늦었지만 정면 대응을 결심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은 박은주 전 사장에게 맞고소를 걸어놓은 상태다.

출판계뿐 아니라 일반 대중들도 충격을 받았다. 금강경으로 아름답게 시작된 두 사람의 관계는 지금 출판계 최대의 스캔들로 진흙탕 속에 빠져버렸다.


 

사이비종교? 내연관계?
도대체 왜?
결국 돈 문제로 귀결된 형국이다. 그런데 이들의 이야기를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보면 수긍이 가지 않는 구석이 많다. 박 전 사장은 김영사에 입사한 이후 김 회장이 만든 법당에서 금강경을 공부하면서 수행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후 집을 떠나 법당에서 기거했다고 한다. 무려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가족과 결별했고, 벌어들인 모든 돈을 법당에 보시했다는 말이다. 그렇게 보시한 돈이 자그마치 28억원이다.

박 전 사장은 김강유 회장을 살아 있는 부처님으로 떠받들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삼배를 했고, 그의 말을 들으려면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은 채 들으라고 했다. 법당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연출을 하니, 자신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박 전 사장은 “김 회장과 공동 교주인 여성이 ‘이곳은 몸, 마음, 재산 모든 곳을 바치는 곳’이라고 해서 그대로 따랐다”는 말도 했다. 영락없는 사이비종교의 패턴이다.

일각에서는 두 사람들 두고 특별한 관계가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두 사람이 내연관계였다가 각자 다른 사람이 생겨서 관계가 깨졌다”는 분석이다. 섣부른 판단을 할 수는 없겠지만, 김 회장과 박 전 사장 사이에는 둘만이 알고 있는 20년 세월이라는 특별한 관계가 있지 않을까 싶다.


 

①경기도 용인시 마북동에 위치한 법당 입구에는 여시관이라는 레스토랑이 있다. ②김강유 회장의 아내가 운영하는 병원은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③ 김강유 회장이 스승으로 모시던 백성옥 선생의 이름을 따 백성농장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용인 법당에 가봤더니!
박은주 전 사장이 살았다는 경기도 용인의 법당을 찾았다. 기흥구 마북동에 위치한 백성농장이다. 입구를 따라 올라가니 여시관이라는 이탤리언 레스토랑이 있다. 지난 2013년에 문을 열었다. 레스토랑 옆에는 김영사에서 발행한 책들이 꽂혀 있었다. 실내가 아닌 외부에 있어서 책은 빛이 바랬고 보관 상태도 좋지 않았다. 

대중교통이 불편한 장소임에도 레스토랑에는 손님이 많았다. 인테리어, 분위기, 음식의 수준이 고급스러운 수준은 아니었지만 한적한 분위기를 즐기려는 중년층 이상의 여성 손님들이 많았다. 이곳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박 전 사장이 말하는 법당이 있다. 일하는 직원에게 법당의 존재와 그곳에 있는 사람들, 김 회장의 근황 등을 물었으나 그 어떤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본인은 일하는 시간에 출퇴근만 하기 때문에 법당에 머무는 사람을 구별할 수 없다고 한다.

길 양쪽에는 텃밭이 있다. 박 전 사장이 말한 공동체생활을 하던 공간이다. 그들이 기거하는 법당으로 가려면 언덕을 조금 더 올라가야 한다. 사람들이 살았다는 콘크리트 공간의 건물이 있었지만, 최근 언론의 집중 폭격으로 찾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입구부터 철저하게 통제를 했다. 개인 사유지라 들어올 수가 없으니 얼른 나가라고 삼엄한 경계를 했다.

관리 직원에게 최근 이슈가 되는 김 회장과 법당의 존재에 대해서 물었으나,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만 반복했다. 사진기자에게도 촬영을 강력하게 저지하는 등 일반인 출입에 대한 강한 불만을 보였다.

김 회장의 아내인 박강휘 씨를 만나기 위해서 그녀가 운영하는 병원을 찾았다. 가정의학과 전문의인 그녀가 운영하는 병원은 농원에서 300m 거리에 위치해 있다. 마당과 벽돌로 지어진 현대주택 건물에서는 인기척이 보이지 않았다. 평일인데 어떤 안내 문구도 없이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전화를 걸어도 연결이 되지 않아서, 용인의 법당 근처에는 미스터리한 기운만 돌았다.

이곳은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듯한 인상이었다. 설령 법당 안에서 누군가가 공동체생활을 하고 있다면 지나치게 폐쇄적인 생활을 하고 있으리라 짐작하게 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