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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드는 장인, 책바치 정신이 현암사의 밑심”

이강기 2015. 11. 10. 21:48

“책 만드는 장인, 책바치 정신이 현암사의 밑심”

한겨레신문

등록 :2015-11-10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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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미현 대표
조미현 대표
‘3대째 출판 가업’ 현암사 조미현 대표


‘70년 책바치, 100년을 향해 나아갑니다.’

1945년 해방과 함께 태어나 ‘해방 70돌의 동갑내기’가 된 출판사. 현암사 조미현(45) 대표가 창업 70돌을 맞아 내건 캐치프레이즈다. 책바치란 책 만드는 사람. 한땀 한땀 공들여 신 짓는 이가 갖바치라면,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시대의 공기와 사상과 정성을 담아 책 만드는 이가 책바치다. 현암사를 창업한 현암 조상원(1913~2000)은 “나는 바치의 철학, 장인의 정신으로 책을 만든다”고 했다. 9일 서울 마포구 동교로 현암사 사옥에서 만난, 창업자의 손녀인 조 대표가 전한 말이다.

서양명저시리즈로 50년대 문고판 붐
장길산 등 대형 베스트셀러 ‘반석’
70돌 맞아 13일부터 책 전시회
“고전의 다리 되는 책 펴낼 것”

해방공간에 출몰한 출판사는 수도 없었으나 지금껏 한국 출판의 한 버팀목으로 건재한 곳은 흔치 않다. 그 밑심을 조 대표는 “1950~60년대 서울 삼청동 집을 출판사 겸 인쇄소 삼아 가내수공업처럼 고모들이 집자(활판인쇄 시절 글자를 찾아 모음)를 하여 책을 만들고,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며 다른 데 눈 돌리지 않았던” 조부 현암의 출판 정신에서 찾았다. 조 대표는 1972~2008년 아버지 조근태(1942~2010)에 이어 2009년부터 출판사 살림을 맡아왔다. 말하자면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셈이다.

현암사는 45년 시사종합지 <건국공론>을 내는 건국공론사로 출발하여 51년 현암사로 이름을 바꾼 이래 한국 출판의 한 영역을 일궈 왔다. 그간 낸 책은 2500종에 이른다. 54년 <셰익스피어 이야기>를 첫 권 삼은 서양 명저 시리즈인 현암문고는 50년대 말 문고판 붐에 한몫했다. 71년엔 16권짜리 <대세계사 전집>을 발간했으며, 73년엔 <한국인>, <한국학>을 첫 두 권 삼은 현암신서 시리즈를 펼쳐 98년까지 25년간 총 91권을 냈다.

안동림의 '장자'(1998). 현암사 제공
안동림의 '장자'(1998). 현암사 제공
현암사를 대중들에게 널리 알린 책은 뭐니 뭐니 해도 70~80년대 황석영의 <장길산>(전 10권·1976~84)과 <어둠의 자식들>(1980), <꼬방동네 사람들>(1981) 같은 대형 베스트셀러다. 90년대엔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것’ 시리즈를 기획해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꽃 백가지>를 비롯해 90권을 냈다. 70살 현암사의 청장년기를 재정적으로 지탱해준 것은 <법전>(대한민국 법령집) 출판이다. “한국 법전의 역사는 현암사 법전의 역사”라고 조 대표는 말했다. 1959년 일본 법전에서 탈피한 첫 ‘국산’ 법전은 나오자마자 동나 4000환짜리가 6000환에 암거래되는 촌극도 벌어졌다. “안동림의 <장자>(1998), 오강남의 <도덕경>(1995), 요스테인 고르데르의 <소피의 세계>(1994) 같은 책은 십수년째 독자와 호흡하며 지금도 매년 각기 3000~5000부가 나가는 스테디셀러”라고 했다.

조 대표는 “인류의 고전들을 대중에게 이어주는 책,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어 고전의 다리가 되는 책을 펴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나’를 떠받치는 힘, ‘나’를 생각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은 오직 책이고 종이책”이라고 했다. “출판은 모든 문화의 밑받침이요, 모든 인생의 밑거름이다”라고 했던 현암의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현암사는 13~30일 경기 파주출판도시 지혜의숲 이벤트홀에서 ‘현암사 70년, 책을 말하다’를 주제로 한 전시회를 연다. 1960년대 박경리의 <김약국의 딸들>을 포함해 다수의 책들이 초판본으로 관람객을 맞는다. <건국공론> 창간을 축하한 김구, 이승만, 신익희의 휘호를 볼 수 있으며 책평론가 장동석(14일), 동화작가 이상권(21일), 문학평론가 로쟈(28일)의 강연도 펼쳐진다.

글 허미경 선임기자 carmen@hani.co.kr

사진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