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명 | 개벽 제1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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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1921년 04월01일 |
기사제목 | 「페이엘빠하(Feuerbach)」의 「사람」論에 就하야 |
필자 | 夜雷 |
기사형태 | 논설 |
夜雷
최근 세계를 통하야 「칼·막쓰」학 등의 연구가 왕성하야감에 조차 吾人은 스스로 「페이엘빠하」(1804-1873)의 사람중심의 철학적 사상을 회상치 아니치 못하게 되엇다. 其故는 「막쓰」 及 「엔켈쓰」 등의 학설의 背柱의 대부분이 「페이엘빠하」의 사상을 受한바 多하엿슴으로써라. 이에 딸아 吾人은 「페이엘빠하」의 사상이 근대 소위 문화적 해방적 생활상에 얼마나 大한 영향이 有할지를 窺知할수 잇다.
玆에 吾人이 「페이엘빠하」의 사상을 들어 一言코저 하는 바는 그의 학설 중- 가장 힘잇고 중요한 사람적 철학개념을 그의 宗敎觀上으로부터 그 大義를 一言코저하는 바이엇다. 그리하야 나로써 그의 학설을 특히 독자에게 소개코저하는 所以는 그의 인생관이 實로 해방의 途程에 立한 우리에게 多大한 裨益이 有하리라 자신함이니 독자- 幸히 此論을 芭離의 邊物로 思치 아니하시면 是- 筆者의 본의에 在한 哀情을 諒解하엿다 할진저.
「페이엘빠하」는 獨逸사람이니 彼는 저명한 형법학자 「안젤임, 페이엘빠하」의 第四子이엇다. 氏의 학업의 經歷은 「하이멜불이」에서 神學의 履修로부터 後에 首都伯林에 赴하야 彼유명한 「헤켈」의 제자가 되엇다. 그리하야 彼의 사상중심이 신학으로부터 철학, 神으로부터 이성에 옴기기는 師되는 「헤켈」의 講演이 그에게 위대한 영향을 及케 하엿다.
彼는 처음에 其師 「헤켈」의 사상을 그대로 引受한 點이 잇섯스나 後에는 점차 그의 연구가 深하여감에 조차 듸디어 「헤켈」을 반대하고 독립적 철학을 건설함에 至하엿다. 그의 저서중 「근세철학사」 1833年, 「헤켈의 반대」 1835年, 「라이뿌닛쓰철학의 說旨發展의 批判」 1837年, <34> 「톨꾸-트의 관념론비판」 1838年 等은 다가티 정신의 독립자주를 力唱하고 물질은 의식적 본질의 현상에 불과하며 又 관념의 복합에 不外하다 하며 정신은 실재의 最深의 根底를 가진 者로 從하야 감각은 이차적인데 정신이라하는 중심적 太陽으로부터 出來하야 세계를 照하는 者라 云함과 如함은 다가티 그의 사변적 관념론의 躍動이라 하겟다.
然한데 彼는 1830年代의 말경으로부터 그의 사상은 第3次로 전향되엇다. 彼는 이미 내적으로던지 외적으로던지 「헤켈」을 이탈하얏다. 그리하야 此 전향을 현저히 외적으로 규정한 者는 彼가 도회생활을 버리고 멀리 「불꾸별이」라하는 시골로 옴겻다. 彼는 그곳에서 도회의 학구생활로부터 離하야 자연을 友하는 생활로 들어갓다. 彼는 此에서 자연을 親炙할만한 事,추상과 사변에 「사람」을 盲啞케한다 主唱하얏다. 그리하야 彼는 처음으로 伯林의 國家哲學이 안중에 撤한 沙塵을 자연의 泉에 말미어 깨끗히 洗濯하엿다.
彼는 此 외적 推移와 共히 更히 내면에서 一層 깁히 「헤켈」철학을 轉回케한 者는 실재를 把捉함에 至하야 汎理論에 대립한 感覺論, 自然論의 唱道 等이엇나니 彼는 일럿스되 참으로 실재에 關한 학문적 확신을 엇고저함에는 吾人은 먼저 감각적 事爲에 종사치 아니함이 不可하나니 其故는 감각적 성질이 진정 吾人의 본질됨으로써라. 진리와 실재와 감성은 원래 동일 한 것이다. 감성은 곳 진리이며 실재이다. 그리하야 우리는 자연의 영역에서는 진리의 인식에 도달함을 可得하나 철학적 세계에 在하야는 此를 求得키 불가능할 것이라 하엿다.
1
이 點에서 「페이엘빠하」와의 철학은 경험적으로 구체적 실재, 卽 감각적 실재 그것이라 할 것이며, 그리하야 감각적 지식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온사람이엇다. 그런데 그 所謂 사람은 개념적 이상적의 「사람」이 아니오 육체적 현실적 사람이니 즉 此 육체적 사람이 일체의 척도가 된다 하는 것이엇다. 彼는 謂하되 진실하고 不可疑의 실재, 이성의 주체는 單히 此 「사람」그 者뿐인데 자아는 實로 이성이 사유하는 것이 아니오 사람 그 者의 사유하는 것이엇다. 「사람」은 가장 실재의 실재이엇다.
원래- 「헤켈」의 철학은 사상 즉 실재라 하며서 일면 사상과 실재를 분리하야 사상을 주체로 하고 실재를 객체로 보스나 「페이엘빠하」는 실재와 사상을 全히 合致케 하엿스며 그리하야 그 합치의 요점은 「사람」을<35> 그 根底에 置하게 되엇다. 사람을 此 합치의 주체로 하고 領解하는 時에서 겨우 그 의의와 진리를 有한 者라고 하엿다. 如斯히 사람에게 모든 根底를 置하고 사고할 時는 그에서 처음으로 사상과 실재 又는 객관과의 대립은 스스로 互相 消散한다 하엿다. 何者오 「사람」이라 하는 중에 다 사상과 실재의 합치를 與하여슴으로써이다. 「사람」은 사람을 外하고 別로 의지, 자유, 법률, 종교, 절대 등을 說할만한 根底가 업다. 「사람」이야말로 자유, 자아, 절대의 존재 本據이엇다. 「사람」이 항상 객관적으로 칭호하고 표명하는 모든 대상은 필경컨대 彼 「사람」 스스로의 본질을 표현함에 不外하다. 즉 이하에 述코저 하는 神이라 稱하는 그 者도 또한 사람의 최고의 力, 최고의 본질, 달이 말하면 최고의 감정, 최고의 사유로 평가하는 者에 대한 명칭에 不外한 것이엇다.
그리하야 吾 이외의 他 事物 존재의 확실성은 吾 이외 他의 「사람」의 존재로부터 처음으로 그를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럼으로 대상의 개념은 本始的 개념에 不外한 것이다. 吾는 汝에게 의존하고 汝는 吾에게 의존하나니 汝가 無하면 吾가 無한 것이엇다. 즉 실재의 개념은 「全사람」을 근거로 한 者인데 單한 감각뿐이 아니오 감정 즉 愛에 근거하야 발생하는 것이다. 此에서 인식론의 基礎는 대개 愛에 存한 것을 知케 된다 하엿다.
如斯히 감각 及 감정은 吾 이외의 대상의 존재에 대하야 例하면 友人의 존재에 대하야 眞의 본체론적 證據를 供給하는 것이다. 우리는 他의 「사람」을 의식함에 由하야 처음으로 세계를 의식하는 第一步에 立케 되는 것이다. 즉 세계의 의식은 汝에게 의존하엿나니 汝와 「他의 사람」이 吾와 세계와의 間에 紐帶가 되어잇는 것이다. 그리하야 他我의 존재가 확실함에 말미어 更一層 一般 環境의 존재를 誘導하야 오게 되는 것이다. 즉 환경은 감정적에서 확실한 者이오 직접 知覺에 基하며 사유에 由하는 者- 아니엇다. 如斯히 되어야 우리가 「사람」 及 그 육체의 중에서 파악한 것이 직접 실재에 歸케 되는 것이다. 그럼으로 吾는 진실한 본질이니라. 何者오 吾는 감정적 본질임으로 육체는 吾의 본질에 속하고 又 육체가 吾의 본질 그것이엇다. 그리하야 공간은 單한 현상의 형식 사유의 법칙이 아니오 본질의 조건 존재의 법칙이니라. 此中에 吾가 존재함은 참으로 生躍하는 본질이 최초 記號이니라. 此處에 吾가 존재하고 其處에 汝가 존재하야 서로 外存한 故로 兩者는 合一 함이 업시 쌍방에 존재를 可得하는 것이다. 시간도 또한 同樣으로 單한 지각의 형식이 아니오 생활의 형식, 생활의 조건이니 何等의 相互變起運動,<36> 관계, 발전이 업는 處에는 何等 生活, 何等 自然이 無하니라.
二
이상은 「페이얼빠하」 철학의 사람주의의 槪意를 一言하엿거니와 그러나 彼의 사람주의의 철학은 그 종교론에 進하야 가장 明瞭凱切한 표명을 보게되엇다. 순서상 먼저 「사람」性 본질에 관한 彼의 관찰을 一言하면 사람性의 본질을 특히 일반 동물과 대비하야 규정할 만한 者는 무엇이냐 曰 「의식」, 특히 엄밀한 의미에서 在한 의식이엇다. 엄밀한 의미인 의식이라 함은 사람의 種屬 及사람 본연의 성질이 사유의 대상됨을 可得하는 者에뿐 存한 者이니 즉 單히 「사람」뿐이 此 의미의 의식을 가진 것이엇다. 그리하야 此 의식 즉 種屬을 사유의 대상으로 함을 可得함이 이곳 「사람」이 학문의 능력을 가지게 된 所以엇다. 즉 學이라 함은 필경 種屬의 認知라 하겟다. 此에 反하야 他 동물은 彼 자신은 個體로 의식하나 一種屬으로의 의식은 가지지 못하엿다. 동물은 一重의 생활 뿐으로 내적 생활과 외적 생활이 一임에 대하야 사람은 二重의 생활을 위하야 내적 又 외적 面面의 생활을 하는 것이며 그리하야 그 내적 생활이라함은 사람의 개인적이 아닌 일반적 성질에 관계를 가진 생활이엇다. 他 동물에 在하야는 어떠한 외적 되는 他의 개체가 업고는 그 種屬과 관계하는 동작을 하지 못하나 「사람」에 至하야는 他의 개인과 관계가 업슬지라도 능히 種屬을 사유함을 可得하나니 즉 「사람」은 彼 자신이 동시에 種屬이엇다. 요컨대 「사람」의 의식은 사람의 種屬 사람의 본질적 성질이 사람의 개인성과 가티 그 사유의 대상이 되어 잇는 것이엇다.
更히 如斯한 엄밀한 의미에 在한 의식은 그 본래 성질에서 무한됨이 그 특징이며 그리하야 우리가 無限 그것을 의식함은 의식의 무한을 의식함에 不外한 것이다. 又 무한 그것의 의식에서는 의식하는 주체가 그 대상적으로 彼 스스로의 성질상 무한을 가지게 되엇다. 그리하야 종교는 일반적으로 표명되는 無限者의 의식이엇다. 故로 종교는 彼 스스로의 무한적 성질상으로 가지고 잇는 의식에 不外하다. 此에서 종교의 유무는 「사람」과 他 동물의 본연의 차이를 示한 者이니 즉 종교는 사람의 特有인데 사람 자기의 성질에 就하야 가지고 잇는 의식됨에 不外한 것이다.
如斯히 「사람」性의 특질은 자기로서 무한을 사유하는 의식을 가젓슴으로 이에 말미어 사람과 동물과의 內面的 <37> 相異한 구별이 나게 되는 것이다. 이에서 又 종교를 缺한 他동물과 종교를 有한 사람의 根底적 차별을 알 것이다. 然하면 次에 사람性을 搆成한 요소는 무엇이냐 하면 그는 理知와 의지와 감정 그것 뿐이엇다. 즉 此 三者가 「사람」에게 속하야 사유하며 意欲하며 애호하는 것이니 그것이 사람으로의 절대적 성질이며 又 그 존재의 根底를 成한 것이다. 사람은 此 三者를 所有로한 者- 아니오 此 三者가 사람의 성질을 조성한 요소이엇다.
사람은 대상이 업고는 딸아서 아모것도 업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그 대상에서 目的 실현이라 하는 유일의 주요한 동작을 가지엇다. 그러나 그 所謂 대상이란 者는 彼自己 스스로가 객관화된 성질에 不外한 것이다. 만일 一의 대상이 동일 종족의 각개에 공통됨에 불구하고 그가 種種 相異한 상태로 現한다하면 그는 개인상태의 변형한 者- 즉 彼자신의 성질의 相異로부터 生한 것이겟다. 恰然히 태양이 諸遊星에 대한 공통과 대상이엇스나 그러나 태양은 水星과 金星 등의 諸星에 대하야는 지구와 相異한 조건을 들고 잇는 대상이니 즉 諸遊星은 동일의 태양을 대상으로 함에 불구하고 그 본질에 就하야는 각각 스스로의 태양을 가짐과 如한 形便이엇다. 필경 遊星과 태양의 관계는 그 遊星과 그 遊星 자신의 성질의 관계에 歸着될 것이다. 同樣으로 사람은 彼스스로가 사유한 대상에서 자기를 知케 되는 것이다. 즉 대상의 의식은 자기의 의식이엇다. 우리는 대상에 의하야 사람을 알며 대상에서 彼의 성질이 明瞭케 되며 그리하야 此대상은 彼의 표명한 성질이며 彼의 眞客觀我이엇다.
如斯히 사람에 在하야 절대적 되는 者는 彼스스로의 성질이니 故로 대상의 力은 彼스스로의 성질의 力이엇다. 감정의 대상의 力은 감정의 力이 그 자신이며 理知의 대상의 力은 理知 그 자신의 力이며 又 의지의 대상의 力은 의지 그 자신의 力이엇다. 例하면 음악에 의하야 감동되는 것은 감정에 의한 者로 음향 중의 요소는 감정에 말미어 자어내는 것이니 즉 감정은 감정을 전하는 者로 그 자신의 성질에 의하야서뿐 働作하는 것이다. 의지의 境遇 知力의 境遇도 또한 此와 동일하다. 그리하야 의식은 그 스스로가 대상되는 사물의 중에 성립하야 의식된 사물을 離하야 존재한 者가 아니엇다. 又 의식은 자기 스스로의 완전한 자기증명, 자기확정, 自己自愛인데 완전한 성질의 특징을 成한 것이엇다.
우리가 理知, 감정, 의지 등 일반 사람의 성질에 就하야 此를 有限的이라 규정코저함은 是-妄斷이 아니면 誤謬이엇다. 우리는 일개인으로 자기를 유한이라 感知하나<38> 然이나 그는 사람이 그 종속의 무한무궁을 감정사유의 대상으로 하고 인지하기 위하야 자기의 유한을 의식함에 불과한 것이다. 즉 「사람」은 그 자신에서 유한한 者-아니오 寧히 그 자신에서 무한하야 무궁성의 神을 자기의 중에 포용함에 불구하고 다못 우리가 자기의 유한을 語함은 자기 이상의 他의 존재를 인지하는 故에 不外하다. 만일 우리가 우리로서 유한적 者라 하면 그 유한적인 이성사유의 중에 무한무궁이라는 者가 現할 까닭이엇다. 他동물의 眼他동물의 성질은 그 욕구이상에 達치 못하나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성질이 그 소질에서 이미 무한의 의식을 포용하엿고 무한의 神을 達通한 것이엇다. 詩人이 자기의 作을 스스로 惡詩라 自嫌함은 그 知力성질의 무한한 故인데 자기의 作詩를 完美라 하는 者에 비하야 멀리 그 지력성질의 무한정임을 표시한 것이엇다.
如斯히 汝가 無窮者를 사유한다하면 이는 汝의 사유의 力이 무궁함을 確知할 것이며 又 無窮者를 感한다하면 이는 汝의 감정의 力이 무궁함을 確知할 것이다. 理知의 대상은 그 자신에서 객관화한 理知이며 감정의 대상은 그 자신에서 객관화한 감정이니라. 그럼으로 일반 사유, 감정, 의지의 대상은 각각 그 스스로의 성질의 중에 存한 객관적 표명에 不外한 것이다. 즉「사람」性의 주관적 표명인 동시에 또 그의 객관적 표명이 되는 것이다. 故로 「사람」은 그 眞의 성질을 초월키 불능한 것이다. 「사람」은 상상에 말미어 他의 所謂 고급의 개개물을 인지하나 然이나 그 인지는 결코 彼의 종속, 彼의 성질을 攏脫한 인지는 아닐 것이다. 「사람」이 他 개개물에 與한바 실재조건되는 적극적 究竟의 賓辭는 常히 彼스스로의 성질에서 描出한 결정, 혹은 性狀에 不外하겟다.
3
如斯히 이미 「사람」性의 본질을 知하면 즉 사람이 가지고 잇는 一切의 대상이 다가티 자기의식의 동작에 귀착된다하면 종교적 대상에 就하야도 또한 同樣의 記述에 귀착할 것이다. 즉 이상 주체와 객체의 관계가 일반적이라 주장한 것을 종교에 就하야도 또한 同樣의 관계에 귀착케 될 것이엇다.
感官知覺에 在하야는 대상의 의식을 자아의 의식과 구별함을 可得할지나 종교에 在하야는 대상의 의식과 자기의 의식은 全히 일치한 것이니 즉 感官적 대상과 종교적 대상을 비교하면 感官적 대상은 사람의 外方에 在하되 종교적 대상은 사람의 內部에 在한 것이다. 그리고 後者는 우리에게 가장 친밀한 대상이엇다. 聖「화꾸쓰덴」은<39> 말하엿스되 「神은 감성적 구상적 者-보다도 一層 우리에게 접근한 것이며 보다 이상의 관계를 가진 者니 故로 우리는 一層 此를 知케 易한 것이라」하엿나니 感官의 대상은 雜多하나 종교의 대상은 선택한 대상이엇다. 즉 가장 優勝하며 且 최고의 존재이엇나니 그는 實로 神的과 非神的가치와 비가치의 판별을 예상한 者이엇다. 그러나 此境遇에 在하야도 어떤 주체의 대상은 그 사람 스스로의 성질이 객관적으로 된 者에 不外하다 云한 命題를 사용케 되나니 즉 사람의 사상 及 성향이 旣히 그러케 됨과가티 「사람」의 대상되는 神도 또한 同樣일 것이다. 즉 사람이 가진 가치를 사람의 神도 가짐에 불과하다. 神의 의식은 자기의 의식, 神의 인식은 자기의 인식이엇다」 그럼으로 어떤 일개인과 그 일개인의 神은 일치가 되나니 神은 필경 사람의 표현한 자아, 又 표현한 내적 성질이엇다.
무릇 사람은 자기에게 가장 强히 인상된 者가 神적 존재의 인격화로 나타나는 것이니 즉 종교는 세계에 就하야 一切를 그 대상으로 포장하고 世界 及 사람에게 在한 의식이외에 何物도 此에 가진바-업다. 종교의 대상은 사람이 사람 자기를 대상으로 한 者-됨에 不外하다. 그리하야 종교의 흥미는 그 대상에 사람이 사람 자기와 異한 者를 感함에 任하다 할지나 그러나 또 그 대상은 神이 사람적 속성을 가젓다 하는 점에서 更히 大한 興味를 感케 되는 것이니 만일 神이 사람과는 별개적인 성질을 가젓다 할 것 가트면 神의 實在非實在는 사람에 대하야 何等의 의의가 업슬 것이다. 우리는 종교에 의하야 만족을 구함은 사실이다. 그러나 만일 神이 사람과 別種의 존재라 할 것가트면 우리는 如何히 神에게서 만족을 구하며 평화를 어더낼 수 잇스랴. 모든 것의 존재는 다못 그 자신의 요소, 그 자신의 성질조건에서 뿐 평화를 경험하는 것이며 從하야 사람이 神에게서 평화를 圖得코저 함은 사람이 神의 대상으로부터 彼의 眞성질에 도달코저 함으로써-라
만일 「사람」이 인격자이 아닌 神을 사유한다하면 그 神은 우리의 悟性의 객관적 성질일 것이다. 純粹, 완전한 神的 성질은 悟性되는 자기의 의식이니 悟性이라 함은 중성적되는 純粹 非情적된 叡智의 光이엇다. 悟性은 또 種屬과 관계를 가진 力인데 心情은 특수의 사정, 개개의 「사람」을 표현함에 대하야 悟性은 일반적 사정, 보편을 표현하는 者 곳 초인간적, 換言하면 인간성의 초인간적 力이라 하겟다. 此 悟性에 말미어 사람은 자기로부터 또 자기의 주관적 존재로부터 자기를 추상적 되게하는 <40>力을 가지고 잇다. 神으로의 神, 곳 유한적 사람적, 현상적이 아닌 者로의 神은 독특히 그 悟性에 사유의 대상이 된 時에서 나타나는 것이엇다. 此 境遇에서 神은 비육체적 비형질적인 추상적 소극적 존재이엇다. 神은 오즉 추상에 말미어 知케 되나니 곳 대상에 의하야 知케 되는 것이엇다. 何者오 神은 다못 사유력의 객관적 성질에 不外함으로써이다. 神으로의 神, 別言하면 純粹思惟的存在, 理知의 대상으로의 신은 如斯히 究極에 在하야는 그 자신에 대상된 理性에 不外하다. 형이상적 존재로의 神은 그 자신에 만족한 叡智이다. 逆言하면 그 자신을 절대적 존재라고 사유한 叡智가 곳 形而上的 존재로의 神이엇다. 從하야 神에 대한 形而上的 賓辭는 그것이 사유, 叡智, 悟性에 속한 者이라 인정된 時에서 겨우 眞의 설명어가 될 것이다. 필경 「神의 척도는 汝의 悟性의 척도이며 神을 유한이라함은 汝의 悟性이 유한함으로써며 神을 무한이라함은 汝의 悟性이 무한함으로써이겟다.
그러나 이상에 述한 종교에 在한 神의 의식은 「사람」자기의 의식을 가르친 것이라 함은 종교적 人人에 在하야는 此가 理解되지 못하고 寧히 此 兩者의 일치성에 대한 盲目無知가 종교의 기본적 특성이 되어잇다. 然하면 「종교는 사람 자기의식의 최초 또는 간접의 형상이라」하는 것이 表相에 適한 語이라 하겟다. 종교가 常히 사람종족의 歷史에 在하야서던지 또 개인의 歷程에 在하야서던지 철학보다 선행하는 것은 此 사실의 由來에 因한 것이니 사람은 먼저 자기의 성질을 자기이외의 者로 보며 恰然히 또 他에서 賦興된 자와가티 생각하나니 是小兒가 자기의 성질을 자기의 外에 것으로 봄과 가티 종교는 人性이 小兒적 상태에 잇슬 時의 悟性이엇다. 초기의 종교에 在하야는 사람은 자기 스스로에게 객관성을 與하얏슬뿐으로 아즉 대상을 자기 스스로의 성질로 승인함에 至치 못하겟다. 사람이 자연생활시대에 在한 間은 그 神을 單한 自然神 곳 자연력의 인격화한 者이엇섯다. 彼等 초기의 사람은 종교의 대상을 外에 擬化하야가지고 此를 彼等 스스로의 中에서 出케할 능력이 결핍되엇던 것이다. 후기에 及하야 종교는 점차 그 진보한 계단을 취함에 至하니 神人의 대립은 사람 자기의 성질과 사람의 대립을 만족히 함에 至하엿다. 필경 「종교에 在한 일체의 진보는 보다 深奧히 진입하는 자기의 인식에 不外하나니 如斯히 종교의 대상은 그 본질에서 사람 성질의 표현에 불과한 것이엇다.
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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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少하야도 基督敎는 사람이 彼자신의 성질(곳 그 주관적 성질)에 대한 관계이엇다. 그러나 此 관계는 그 성질을 彼 자신으로부터 관찰된 者이엇다. 故로 神적 존재는 「사람」적 존재에 不外하다. 혹은 寧히 淨化된 「사람」의 성질 개개인의 한계로부터 자유되게 하며 객관적 되게하는 「사람」의 성질에 不外하다. 곳 자기를 他와 異한 존재로 생각하며 尊敬하는者에 不外하다. 故로 神的 성질의 全屬性은 사람 성질의 속성이엇다. 종교의 내용 본질은 사람이 자기로부터 분리한 곳에 잇는 것이다. 곳 사람이 神을 자기의 對偶로 하고 자기의 전방에 置한 것에 不外하겟다. 그리하야 神은 무한, 사람은 유한의 존재라 하엿고 神은 完全 사람은 불완전, 神은 全能 사람은 弱少, 神은 永恒 사람은 暫有, 神은 神聖 사람은 罪惡의 者라 하엿다. 그러나 此 對偶는 그 본질에서 사람과 그 성질과의 相異에 不外한 것이다. 만일 神的 성질이 사람적 성질과 진실로 相異한 자이면 兩者의 分離는 生키 불가능할 것이다. 何者오 分離는 그 성질에서 一이며 또는 一됨을 得할 만한 間에 在하야서뿐 존재한 것임으로써라. 仍하야 사람이 神과 分離한 것이라고 感하는 성질은 彼스스로에 本有生得일 것이엇다.
무릇 속성도 업스며 賓辭를 不有한 것은 사람에 대하야 何等의 의의가 업게 될 것이다. 곳 그는 우리에게 대하야 존재치 아니함과 동일케 될 것이다. 只今 우리가 神으로부터 그 성질을 取去하면 神은 사람에게 대하야 아모것도 업슴과 동일케 되고 말 것이다. 참으로 종교적 信者가 되어서는 神은 無성질의 者라 칭함을 可得치 못할 것이니 何者오 神은 그 사람에 대하야는 적극적 존재임으로써라. 그럼으로 神을 定意치 못할 것이라 하며 또는 不可知라 함은 근대 不信心의 산물인데 神의 성질을 不可知라 함은 종교를 부인하는 무신론자에 불과할 것이다. 또 神이 종교적 사람에 在하야 神되기 위함에는 사람적의 속성 賓辭를 가지지 아니하야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리하야 사람의 성질이 다수한 특수성을 가짐과 가티 神의 屬性賓辭도 또한 무수잡다한 것이다. 神의 賓辭에 就하야는 이를 二에 논아볼 수 잇나니 곳 其一은 일반적 賓辭이며 其二는 인격적 賓辭이엇다. 일반적 賓辭라 함은 형이상학적의 者를 指함인데 是等은 다돗 종교의 외면적 지점됨에 止하고 종교의 眞의 특이성을 示한 者는 아니엇다. 그리하야 종교의 본질을 形作한 것은 第二의 인격적 賓辭이니 例하면 神으로써 사람의 父, 道德的 立法者, 神聖者라 함과 如한 것이엇다.
필경 神의 성질은 근본에서 사람의 성질이며 또는 種屬의<42> 성질의 顯現에 不外한 것이다. 그리고 사람에 在하야 자기존재적 최고실재가 곳 사람에게 在한 神이엇다. 만일 神이 鳥類에게 表顯될 時는 그 神은 羽翼을 가진 실재가 될 바게 업다. 何者오 鳥類는 羽翼을 有한 者 이상에게 受惠함을 不知할 것임으로 써라. 그럼으로 「汝가 神적 속성으로 愛를 信하는 것은 汝가 汝 자신을 自愛하는 故이며 汝가 神은 智慧仁慈의 者라 信하는 것은 汝가 汝자신의 中에서 仁慈智慧이상의 勝者를 不知하는 故이며 汝가 神은 존재한 것인 故로 神은 주체이라고 信함은 汝 자신이 존재한 故로 余자신이 주체된 故임으로써니라. 如斯히 사람은 사람적 사유로부터 神의 존재와 성질과 同形的으로 생각함에 不外하며 그리하야 神의 존재와 그 성질의 관계에 在하야는 주체의 존재확실에뿐 의존할 것이오 주체와 賓辭의 구별은 오즉 존재와 본질의 差됨에 불과하며 從하야 성질을 부정함은 본체를 부정하는 것이니 사람으로부터 만일 그 속성을 抽去하면 그 주체가 無함과 如히 전지전능의 神에 관한 賓辭도 神의 주체를 言表한 者에 不外하니라.
또 神의 실재의 확실성은 다못 神의 성질의 확실성에 뿐 의존하엿슴이요 그 자신 직접이 확실한 者는 아니니 基督敎徒에 在하야는 基督敎의 神뿐의 존재가 확실하고 又 他敎徒에 대하야는 他敎徒의 神뿐의 존재가 확실하다 信케 되나니 즉 彼等은 자기의 奉하는 성질이외에 神을 認키 不可得함으로써라. 필경 神의 賓辭의 실재가 神의 주체의 실재에 대한 유일의 증거이엇다. 神의 賓辭라 함은 그 본질에서 사람 자기의 성질의 顯現에 不外하니 更히 요약하면 종교의 본질은 사람의 본질, 종교의 내용은 사람의 내용, 神은 즉 사람의 객관적 投影이며 從하야 종교의 역사, 神의 역사는 사람의 역사에 不外하겟다.
그러나 實際의 종교생활에 在하야는 우리 사람의 다수는 神의 속성을 사람的의 것이라 사유치 아니하고 神을 우리와 別로 존재하며 참으로 생활하는 인격적 실재라하나니 悟性으로 이를 論하면 본래의 「이메-치」됨에 불과하는 神의 속성이 종교적 감정에 대하야는 참으로 인격적 실재가 되어잇겟다. 此는 즉 종교가 본연으로 감정적 산물됨이며 감정이 神에 대한 器官된 所以임으로써이엇다. 그리고 종교적 생활 乃至 神學에 在하야는 神과 사람의 일치성을 부정하고 사람을 輕蔑視함이 甚하엿섯다 何故오 하면 이미 神과 사람을 대립케한 이상에는 神을 豐富케 하기 위하야 「사람」을 貧弱타 하엿스며 神을 眞如實在하기 위하야 사람을 空虛假扮한 자라 하지 아니함을 不得하게 되엇다. 그러나 如斯히 神人을 대립함에서<43> 사람의 中에서 失한 者는 神에게 귀속되엇스며 神의 中에 보존되엇나니 「사람은 자기 스스로의 中으로부터 取去한 者 及 자기 스스로의 中에 抛棄한 者를 神의 中에서 비교키 難하리만치 보다 高한 者, 보다 충실한 者로써 하야 享樂코저 함에 불과하겟다. 즉 사람은 그 평가에서 최고라 한 者를 神에 귀속케하고 神에 귀속한 者를 자기의 中에서 부정하나니 約言하면 사람은 神과 관계에 在하야 彼자신의 지식 彼자신의 사유를 부정하고 그 等의 것을 神의 中에 보류하야 둔 것이엇다. 如斯히 종교는 更히 사람의 성질로의 善을 부정하고 사람을 사악한 자라고 貶하며 神을 유일의 善한 위치에 奉供케 되엇다. 如斯히 종교의 세계에 在하야는 사람과 神을 대립케하엿다. 그러나 此 사람과 대립한 神은 사람이 자기를 객관적으로 投射케하야 도로 자기를 대립케한 者에 不外하며 從하야 神과 사람의 대립에서 사랊�은 표면적으로 하급의 者에 低下케 하엿스나 實은 此에 의하야 最高級者로 昇揚케 된 것이다. 즉 종교는 의식으로 부정한 者를 다가티 神의 中에서 무의식적으로 恢復되엇나니 故로 神의 활동은 즉 사람 자신의 활동에 不外하다.
5
如斯히 종교의 본질, 神의 본질이 獨히 사람 성질의 객관적 投影에 불과하다 하면 사람은 如何히 종교적 대상을 描할 수 有하며 又 神을 信함에 至한 것인가. 卽 종교적 신앙을 生케 하는 동기, 또는 근거가 무엇이랴. 是에 대한 省察解明에 就하야 「페이엘빠하」는 종교에 在한 사람의 실천적 흥미 及 창조적 요소를 심리학적 근거에 立하야 闡明하엿다. 彼는 이에서 종교가 근본으로 사람의 실천적 흥미에서 발생한 事, 神이 사람 심정의 願望 及 詩的 상상에서 所産한 者이라고 述하엿다.
約言하건대 종교는 본질적으로 실천적 목적 及 기초를 가진 者이엇다. 종교를 生起케한 본능은 행복에 대한 본능이엇다. 사람이 神을 信함도 單히 激動과 감정을 有한 故뿐이 아니오, 또한 행복에 대한 본능을 가진 故이며 사람이 聖福한 실재를 信하는 것은 單히 聖福의 개념을 가지고저 함이 아니오, 또한 스스로 聖福코저 하는 故이며 사람이 완전한 실재를 信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가 완전을 冀하는 故이며 사람이 不滅의 실재를 信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가 不滅을 욕구하는 故이엇다. 만일 사람이 何等욕구도 가지지 아니하엿다 하면 상상과 감정이 有할지라도 何等의 종교, 何等의 神을 信仰함에 至치 못할 것이엇다.<44>
필경컨대 종교의 신앙은 상상의 욕구, 願望에 기초하엿슬 것이다. 神은 상상력에 不外한 것이다. 즉 상상력에 由하야 객관화된 사람의 願望 及 이상이겟다. 이미 말함과가티 사람은 神의 中에서 자기의 성질을 觀照하나니 그 성질은 진실 유한적 성질이 아니오 사람의 願望과 如한 감정에 의하야 無窮化된 자기의 성질을 觀照하는 것이겟다. 종교적 신앙은 그 욕구의 만족을 求하는 心意의 자기확신이엇다. 願望이 업고는 何等의 종교도 업고 何等의 神도 업고 그리하야 又 願望이 업고는 何等의 사람도 업다. 종교에서는 願望을 상상력으로 把持하고 그리고 신앙을 此에서 충실코저 하나니 즉 종교에 在한 신앙은 사람이 願望 及 필요로부터 引導된 상상력에 不外한 것이엇다.
茲에서 奇蹟의 본질도 알게 되는 것이다. 즉 奇蹟은 초자연적 願望의 실현이니 勿論 상상의 上에 在한 실현이겟다. 危急을 感하며 곤란에 遭遇한 時- 사람은 災禍를 免코저 하는 곳에서 奇蹟이 起하나니. 古代의 神學은 奇蹟을 자연의 질서에 대한 神의 全能의 동작이라 설명하엿다. 그러나 그 神의 全能의 力이라 함은 사람의 願望의 力, 상상의 力에 不外하다. 奇蹟은 常히 奇蹟에 관한 신앙에 追隨하는 바 되나니 此 신앙이 곳 奇蹟의 기원이 되는 것이다. 만일 상상의 力이 消衰하야 神이 何等의 奇蹟을 施키 不得하면 종교적 觀照가 此에 止하고 信神의 心도 此에 斷함에 至하나니 何者오 神은 신앙에 根底하엿고 願望과 상상에 기초하얏슴으로 此를 信하는 者의 심정적 주관 이외에는 존재치 아니함으로써라. 요컨대 神의 신앙과 奇蹟의 신앙은 一이며 又 인격적 神은 神의 사람적 성질이 실천적 물적으로 표현된 것에 不外하다. 신은 신 스스로의 때문에 인격화한 것이 아니오 사람의 종교적 감정에 存한 필요 요구가 起神의 원인이엇섯다. 故로 인격신은 필경 신화한 사람의 표현에 불과하다. 그리하야 神이 사람에게 降下하엿슴은 사람이 神에 高揚할 필연적 先行이엇다. 神은 「사람」이니라. 사람은 사람의 中에서 彼자신을 示하기 전에 사람은 旣히 神의 中에 所在하엿스며 又 彼스스로가 神이엇더니라.
祈禱에서 更히 종교의 사람적 본질과 실천적 흥미는 一層 명료히 此를 察知키 가능하나니 祈禱에 在하야서는 願望의 경계를 잡아늘이어 행복의 추구를 하게 되엇다. 此에서 우리는 神이 사람의 悲嘆 요구의 關與者라 하엿스며 又 우리의 愁訴를 聽取하는 것이라 하엿다. 神은 사람을 愛하나니 愛는 同情이 업는 곳에 存치 아니하며 그리하야 同情은 同一 성질됨을 예상케 되는 것이다. 즉 祈禱는<45> 인격적 神의 관념과 同히 神과 사람의 성질 일치를 표명한 것이다. 神은 人을 愛하는 것이요, 그리하야 그 神의 愛는 객관화된 사람의 愛에 不外한 것이다. 其督敎에 在한 인격적 神 祈念 是等 전제에는 神에게 사람적 성질이 보존되어잇다. 神은 사람을 사랑한다. 神과 人은 父子로써 표현되엇다. 곳 사람성에 대한 諸關係가 神에서 또한 제거치 아니하엿슴을 엿볼수 잇게 되엇다.
供犧祭祈도 또한 同樣으로 사람의 願望의 發露에 不外하다. 供犧祭祈의 근거는 歸依의 감정, 罪業의 悔恨에 잇다. 그 목적하는 바는 効驗의 享受-확보이엇다. 또 供犧祭祈는 종교의 본질을 示함과 共히 神과 우리의 願望을 相關係케 하는 방법이엇다. 基督敎가 종교의 사람적 本望을 示케 한것은 言을 不俟할지라. 基督은 주관적의 全能者이며 全히 심리의 願望의 실체이니 그 인격신의 개념은 神의 사람적 성질의 폭로이며 三位一體의 秘鑰은 사람의 사회생활에서 吾와 汝와 관계의 中에 볼 수 잇는 것이다. 基督敎의 神이 사람성질의 완전되며 또 醇正된 객관화됨과가티 基督敎의 천국은 全혀 願望의 충실하는 場所임을 의미하는 것이엇다. 우리는 종교의 신앙에서 자기의 恒久를 願望하나니 換言하면 만일 「사람」이 當初부터 不死永生한다하면 何等의 종교도 업슬 것이엇다. 우리는 神의 신앙에서 不滅을 희망하나니 不滅을 부정함은 是神을 부정함과 한가지라. 곳 靈魂不滅說은 종교 최종의 敎義이며 최후 願望을 表言한 遺言狀이엇다.
7
如斯히 彼는 神의 초세계적 초자연적 초사람적 성질을 그 기초되는 사람성의 中에 還元케 하엿다. 彼가 종교를 分析하며 음미하는 道程에 在하야 종교의 初程이나 中程이나 또 終程을 勿論하고 다가티 「사람」적 이엇섯다. 사람은 그 최고 실재되는 그 神을 사람 자기의 中에 두고 보게 되엇다. 일개인으로의 彼자신의 中에 둔 者- 아니오 彼의 본질적 성질 또는 彼의 종속의 中에 두게 된 것이다. 개인은 種屬의 표현이 아니요 오즉 個人과 種屬과의 차이를 의론하는 것이다. 그리하야 此 차이의 感中에 종교의 根底가 橫亘하엿다. 사람이 자기 이상의 것에 歸服코저 하는 것은 是 필경 자기의 성질의 완전한 典型을 願望함에 不外하다.
또 종교의 본연한 입장은 실천적 또는 주관적 者이며 종교의 목적은 사람의 安祥, 救濟, 究極의 慶福이라 하는 실제적 근거가 闡明되엇다. 旣히 屢屢繰返함과 如히 神이 사람 성질의 표현이라 하면 우리는 종교의 본질적 기초를 사람으로부터 떠나 上 或은 外에 求함이 不可하다. 곳 종교 본연의 確地는 필연으로 此를 우리 스스로의 中에서 發現할 밧게 업다.<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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