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 ‘반가사유상 특별전’ 막전막후
동아일보, 2016. 5. 25
“일한 양국의 팀플레이가 불가능해 보이던 일을 가능케 만들었어요.”
오하시 가쓰아키(大橋一章·74) 와세다대 명예교수(불교미술사)는 23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한일 반가사유상 특별전을 관람하며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나라 국보 제78호 반가사유상과 일본 국보인 주구지(中宮寺) 반가사유상이 처음으로 함께 전시되기까지 4년에 걸친 양국 관계자들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이영훈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오하시 교수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했다.
2012년 5월 한국 금동불을 연구하기 위해 방한한 오하시 교수가 국립경주박물관을 찾았다. 이영훈 당시 경주박물관장은 이 자리에서 “3년 뒤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아 국보 83호 반가사유상과 일본 고류지(廣隆寺) 반가사유상을 함께 전시해 보는 게 꿈”이라고 했다. 한일 불교 문화재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오하시 교수는 이 말을 흘려듣지 않았다. 그는 박물관 문을 나서자마자 와세다대 총장 비서실에 전화를 걸었다. 그는 “당시 한일관계가 악화된 때여서 이 관장의 아이디어가 양국 간 화해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일본 내 ‘와세다대 라인’이 총동원됐다. 섭외 1순위는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 일본 정부와 사찰을 설득해 3년 안에 일을 빠르게 추진하려면 정치인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모리 전 총리가 와세다대 동문인 데다 대표적인 친한파 정치인이라는 점도 고려했다. 오하시 교수는 모리 전 총리와 친분이 두터운 오쿠시마 다카야스 전 와세다대 총장과 와라가이 도모키 학장 대리(부총장)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가마타 가오루 와세다대 현 총장도 지원사격에 나섰다. 2014년 5월 오하시 교수와 만난 모리 전 총리는 “영애 시절 박근혜 대통령을 만난 적이 있다. 전시 취지에 적극 공감한다”며 이후 적극적인 지원에 나섰다.
하지만 고류지의 불허로 특별전 개최가 위기를 맞았고, 일본 측 반가사유상이 주구지 소장품으로 변경됐다. 한국 측도 주구지 반가사유상과 어울리는 불상은 국보 83호보다는 78호라고 판단해 전시품을 바꾸기로 했다.
이제 남은 과제는 불상을 소유한 주구지를 설득하는 일. 주구지는 반가사유상이 본존불로 지금도 예배 대상이라는 이유를 들어 난색을 표시했다. 다시 와세다대 라인이 가동됐다. 주구지 주지가 전 와세다대 총장의 조카라는 점도 파고들었다. 결국 주구지는 학계와 정계 인사들의 거듭된 요청에 불상 반출을 허락했다.
전시 준비를 위한 각종 비용은 재일동포 3세로 모리 전 총리와 친분이 있는 한 사업가가 대기로 했다. 양국 국보의 해외 교차 전시를 위한 실무작업은 이영훈 관장과 오하시 교수, 이성시 와세다대 교수 등 10명의 한일 전문가로 구성된 실행위원회가 맡았다.
오하시 교수는 “각계 여러분의 도움이 없었다면 두 걸작을 한자리에서 보기는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일본 불교미술의 ‘선생님’은 역시 백제”라며 “일본 장인들이 한반도 불상을 베끼는 수준에서 벗어나 창의성이 발휘되기 시작한 시점에 주구지 반가사유상이 만들어졌다”고 평가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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