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중공'의 추억
입력 2017-03-01 17:54:02 | 수정 2017-03-02 00:21:14 | 지면정보 2017-03-02 A34면
한국경제
6·25 기습 참전…한반도 유린했던 중국
북한 감싸면서 한국 '사드' 협박·조롱
추락하는 자존감, 그냥 두고봐야 하나
이학영 기획조정실장 haky@hankyung.com
북한 감싸면서 한국 '사드' 협박·조롱
추락하는 자존감, 그냥 두고봐야 하나
이학영 기획조정실장 haky@hankyung.com
![](http://img.hankyung.com/photo/201703/AA.13343282.1.jpg)
그만큼 상황이 심각했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의 기세를 몰아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갔던 미군과 한국군이 기습 참전한 중공군(정식 명칭은 인민해방군: ‘중공’을 약칭으로 삼는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의 지휘를 받는 당의 군대. 중국에는 국가가 운영하는 군대, 즉 중국군은 없다)에 허를 찔렸다. 순식간에 200㎞ 가까이 밀려 내려왔다.
세계 각국의 군사학교에서 스탈린그라드 전투(2차 대전 당시 소련군이 독일군을 궤멸)와 함께 ‘동계전투의 2대 교본’으로 꼽는 장진호 전투가 이때 벌어졌다. 1950년 11월26일 밤, 개마고원 장진호 부근에 매복해 있던 중공군 8개 사단 12만명이 개미떼처럼 미군을 덮쳤다. 10배가 넘는 중공군의 인해전술(人海戰術)에 막힌 미군은 낮엔 영하 20도, 밤엔 영하 35도까지 내려가는 혹한(酷寒) 속에서 사투를 벌였다. 1만400여명의 사상자를 낸 끝에 포위망을 뚫기까지 17일이 걸렸다. 2주 넘게 중공군을 막아내며 시간을 벌어준 덕분에 북한 주민 20만여명이 ‘흥남 철수’를 통해 남쪽으로 피란할 수 있었다.
중국은 중공군 투입으로 인해 한반도 분단과 대립을 고착화시켰다. 그런데도 어떤 형태로든 사과한 적이 없다. 그 반대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부주석 시절이던 2010년, ‘평화를 지키고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참전을 미화해 국제적 물의를 일으켰다. 서울에 관광 온 중국 참전 군인들이 “60여년 전에는 여권이 아닌, 홍기(紅旗)를 들고 서울에 왔었다”며 시시덕거리는 장면을 중국 TV에서 대놓고 방영할 정도다.
한국의 자업자득이다. 중국 측에 이 심각하고 중요한 ‘과거사’ 문제에 대한 논의를 제대로 요구한 적이 없다. 일본에 대해서만 과거사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뿐이다. 1992년 중국과 국교를 맺을 때도 그냥 넘어갔다. 중국이 알아서 사과해 줄 리 만무하다. 할 말을 못 하는 나라니, 더 우습고 만만해 보일 뿐이다.
중국이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반대하며 한국을 마음껏 겁박하고 있는 게 그 증좌다. 중공 기관지 환구시보는 ‘한국은 미국이 중시해주니 좋은가’라는, 제목부터 유치한 사설에서 “한국은 미국의 바둑알로 전락했고, 두고두고 대가를 치를 것”이라며 대놓고 조롱했다.
이학영 기획조정실장 ha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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