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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前대통령 딸이 이럴수 있나… 추징법때 죽을 생각” - 이순자여사 인터뷰기

이강기 2017. 3. 24. 22:55
“박정희 前대통령 딸이 이럴수 있나… 추징법때 죽을 생각”

홍수영 기자

입력 2017-03-24 03:00:00 수정 2017-03-24 16:07:58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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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낸 전두환 前대통령 부인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 여사가 22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동아일보-채널A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 여사(78)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청와대에서 나온 1988년 2월 이후 약 30년 만이다. 동아일보-채널A는 자서전 ‘당신은 외롭지 않다’를 출간한 그를 22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인터뷰했다. 회색 투피스 정장 차림에 알이 굵은 진주 목걸이를 하고 나온 그는 건강해 보였다. 2시간이 넘는 인터뷰 내내 다리를 가지런히 모으고 허리를 세운 꼿꼿한 자세를 유지했다. “마지막 인터뷰를 한 지 30년도 넘어 떨린다”고 했지만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이야기를 죽 이어갔다.

인터뷰가 진행된 접견실은 5공화국의 ‘흔적’으로 가득했다. 한쪽 벽면 전체는 전 전 대통령의 취임사를 담은 대형 액자로 채워졌고, 반대쪽 벽에는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부부,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 교황 요한 바오로2세와 찍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

책장에도 그 시절의 사진들이 곳곳에 놓여 있었다. 그는 “역사 속에서 당사자들의 얘기를 분명하게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자서전 발간 취지를 밝혔다. 이날 인터뷰에선 12·12쿠데타와 5·18민주화운동 진압 등에 대한 질문도 이뤄졌지만 이 여사의 답변은 사실 확인이 필요한 일방적 주장일 수 있어 기사에는 담지 않았다.》
  
○인터뷰=강수진 편집국 부국장 
  
―전 전 대통령은 자서전 보고 뭐라고 하던가. 

“‘아따, 기억력 좋다’고 하더라. 원래 상중하권으로 했는데 출판사 하는 아들(큰아들 전재국 씨)이 ‘어휴, 어머니 남의 얘기 다 보려면 지겨우니까 좀 줄이세요’라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대통령께서 탄핵되고 탄핵 문제로 수개월간 나라가 혼란에 빠지게 돼 안타깝다. 여성 대통령으로서 성공적으로 임기를 마쳤으면 했는데 잘잘못을 떠나 아쉽다.” 

―2013년 ‘전두환 추징법’을 추진한 것에 대해 “어떻게 박정희의 딸이 우리한테 이럴 수 있나”라고 책에 썼던데….  

“우리가 존경하고 모셨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따님이 그렇게 했다는 것에 너무 충격을 받았다. 나는 진짜 죽으려고 했다. 이렇게 몰면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런 보복 심리도 있었다. 둘째 아들의 이혼한 전처 집까지 가서 돈 될 만한 것을 다 가져갔다. 가져간 것까지는 괜찮지만 그게 비자금과 관계있는 건지 실사는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노역장 유치 중인) 둘째 아들 면회는 자주 가나. 

“한 번 갔다. 자주 못 간다. 눈치 보이고 하니까.”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는 전 전 대통령이 혼자서 찾았는데 일부러 안 간 건가.

“빈소 같은 데는 보통 남자만 가지 않나? 평상시 부부 동반해서 모임 했던 것도 아니니까. 감정 표현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서전과 인터뷰 도중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한 서운함이 언뜻언뜻 보였다. 반면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호의적이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우리가 제일 편안하게 살았던 것 같다. 매 분기 전직 대통령을 청와대로 불러주셨다. 얘기를 전할 수 있는 언로를 터주시고. 우리 집 양반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어떤 말씀을 하셨나. 

“전직 대통령 모였을 때 전 전 대통령이 계셔서 분위기가 좋았다든가, 자식들을 잘 키운 것 같다든가. 전 전 대통령은 남자답다는 얘기를 했다고도 들었다.”

―이희호 여사에 대해 존경한다고 했다.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도 설, 추석 그이 생일, 내 생일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난하고 장뇌삼을 보내주시는데 꼭 사인을 한 편지를 주신다. 전직 대통령 부인으로 본받을 점이라고 생각한다.” 

―김옥숙 여사에 대한 서운한 마음을 책에 썼던데….


“그 대목은 백담사 갔을 때가 서운한 게 클라이맥스였으니 그렇게 썼고, 지금은 그런 것도 없다. 최근에도 (김옥숙 여사가) 다녀갔다.” 

자서전에는 1987년 대선에서 노태우 대통령의 당선이 확정된 후 두 부부끼리 만난 축하 자리에서 김옥숙 여사가 싸늘하게 “민정당이 얼마나 인기가 없던지 하마터면 떨어질 뻔했다”고 말해 놀랐다고 썼다. 그는 ‘40년 지기’ 노태우 전 대통령 내외를 ‘애증관계’라고 표현했다.  

“두 분이 바둑이라도 두고 다시 친구가 되면 얼마나 좋나. 그러나 편찮으셔서 우리가 간들 아나, 온들 아나. 속상하다. 어휴,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이야.(웃음)”

―사치스럽고 나서기 좋아하는 대통령 부인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그땐 코디니 뭐니 그런 것도 없었다. 소장 아내 하다가 마흔두 살에 갑자기 청와대 들어가 힘들어 6개월 사이 6kg이나 빠졌다. 너무 말라서 양장을 하면 대통령 부인 같지 않아 한복을 입었는데 하필 그때 컬러TV가 나와 너무 화려하게 보였다.”

―당의(唐衣)도 입었던 모습이 기억난다. 

“전문가 말 듣다 망한 케이스다. 미국에 나갈 때 이화여대 의상학과 교수한테 의뢰했더니 당의를 입으라고 해서…. 내 돈 내고 산 옷인데 아까워서 계속 입었더니 하루는 김경원 비서실장이 ‘영부인님, 그 옷 입으시니 일어날 때 뒤가 구겨지니까 안 입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했다. ‘아, 말이 많구나’ 싶어 그 다음부터 안 입었다.”

자서전에는 전두환 정권을 흔든 장영자 사건도 언급했다. “당시 미안해서 별거까지 생각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내가 장영자 사건을 알아보라고 했는데 거꾸로 피해를 봤다. 그 사건 이후로 별의별 악성 소문이 다 돌았다. 내가 장영자와 빨간 바지를 입고 빨간 모자 쓰고 강남 부동산을 보러 다닌다고 하고. 전 전 대통령과 별거까지 생각했다. 민심도 좀 안정되고 경제도 목표치에 가고 있는데 엉뚱한 데서 발목을 잡으니 내가 남편 볼 낯이 있었겠느냐.”

내란죄로 금고 이상의 실형이 확정된 사람은 전직 대통령이라도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없다. 전 전 대통령은 이후 사면·복권됐지만 이에 대한 규정이 없고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사후 국가장(葬)이 치러지면 안장 자격이 주어진다.  

―국립묘지 안장에 대해선 아직 국민적 저항이 있다.

“사후에 어디로 가느냐 생각하는 것 자체가 우리에겐 사치다. 옹졸해서 안장을 해주지 않는다면 달리 방법은 없다. 그 양반은 ‘만약에 그렇게 되면 나를 화장해서 이북이 보이는 곳에 뿌려 달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과거 ‘전두환 표창장’을 받았다고 해 논란이 됐는데….

“그이가 대통령 되기 전의 일이고. 표창 받은 사람은 그 당시 뭐든 잘했기 때문에 전 아무개가 아니라 국가로부터 받은 거다. 그걸 가지고 전 아무개가 줬으니까 집어던져야 한다는 것은 편협한 생각 아닌가.” 

이 여사의 자서전에 이어 4월 초에는 ‘전두환 회고록’이 출간될 예정이다. 1200여 쪽 3권 분량의 이 책이 나오면 이들 내외는 다시 한 번 논란의 중심에 설 것으로 보인다.

―전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 12·12쿠데타와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부분도 담기나.


“물론이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자세하고 솔직하게 썼다. 그이가 (퇴임 이후) 30년 동안 공식적으로 말한 적이 전혀 없다. 그 책이 나가면 오해가 다 풀릴 것이다.”
   
▼ 자서전에 어떤 내용 담았나 ▼ 

12·12사태, 6·29선언 등 현대사 핵심사건 언급… 출판사 운영 장남이 줄이라고해서 719쪽
  
이순자 여사의 자서전은 총 23장, 719쪽의 방대한 분량이다. 이 여사는 자서전에서 전 전 대통령을 ‘그이’나 ‘그분’으로 지칭했다. 연애 시절 전 전 대통령이 ‘절교 선언’을 했던 일화도 자세히 소개했다. 박봉인 초급 장교 신분에 결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순자는 앞날이 창창한 사람이야. 나같이 무능한 사람 말고 좋은 사람 만나라”고 했다. 이 여사는 이를 ‘절절한 사랑 고백’으로 받아들여 운명을 맡겼다고 적었다.

전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인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유치하고도 정작 개막식에 초청받지 못한 데 대한 섭섭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당시 ‘5공 청산’ 분위기 속에 노태우 전 대통령이 ‘둘도 없는 친구’를 외면했다는 것이다. 이 여사가 눈시울을 붉히자 전 전 대통령은 “집에서 TV로 보니 더 잘 보이고 아주 좋은데 뭘 그러시오”라며 다독였다고 한다.

12·12쿠데타와 5·18민주화운동, 6·29민주화선언, 군사반란 및 내란죄 재판 등 현대사의 주요 사건도 이 여사의 관점에서 적었지만 논란의 여지가 커 보인다.


최규하 전 대통령이 신군부의 강압으로 퇴진했다는 논란과 관련해 이 여사는 “오히려 최 전 대통령이 남편에게 후임이 돼 줄 것을 권유했다”고 주장했다. 또 “남편이 처음에는 고사하다가 권유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은 ‘당시 어려운 상황을 헤쳐 나갈 지도력을 갖춘 사람은 전 사령관뿐’이라는 최 전 대통령 판단의 진정성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1996년 재판 당시 이 여사가 한 스님에게 했다는 발언도 국민의 인식과 괴리가 크다. 당시 5·18 희생자 224명의 영가천도(靈駕薦度·망자의 영혼을 극락으로 인도) 기도를 올려달라고 하면서 “저희 때문에 희생된 분들은 아니지만, 아니 우리 내외도 사실 5·18사태의 억울한 희생자이지만, 그런 명분이 그 큰 슬픔 앞에서 뭐 그리 중요하겠나”라고 말했다고 했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역사 바로 세우기’에 대해선 ‘악성 정치 보복’이라고 규정하며 “YS는 노 전 대통령에게 3000여억 원의 비자금을 받아 썼다”고 적었다. 이에 대해 YS의 차남 현철 씨는 “사실관계가 의심스러워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이순자 "5·18 사건 피해자에 동병상련"…"전두환 '직선제 수용' 제안하자 노태우가 처음엔 거부"

  • 조선일보

입력 : 2017.03.24 17:34 | 수정 : 2017.03.24 18:00

/조선DB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 여사는 24일 출간한 ‘당신은 외롭지 않다’는 제목의 자서전에서 1987년 6·29선언, 전 전 대통령이 사형선고를 받은 5·18특별법 재판 과정 등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에서 느낀 소회를 밝혔다.

이 여사는 직선제 개헌을 수용한 1987년 6·29선언은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정치적 후계자이자 동지’였던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에게 먼저 제안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당시 노 대표가 직선제 개헌 수용을 거부했으나 전 전 대통령이 수용을 설득했다고 회고하면서 전 전 대통령은 “노 대표, 나를 밟고서라도 성공해라 “라는 심정이었다고 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6년 남편인 전 전 대통령이 5·18 특별법으로 기소돼 사형선고를 받은 재판 과정에서는 “나도 5·18 사건의 피해자라는 동병상련의 마음이 들었다”고 적었다.

◇ “전두환, ‘직선제 수용’ 제안에 노태우 ‘후보 사퇴하겠다’ 거부”·

이 여사는 자서전에서 1987년 6·29 선언 직전인 6월 17일 “그이(전 전 대통령)는 당시 노태우 (민정당) 대표를 조용히 집무실로 불러 ‘국민의 뜻이 직선제라면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소”라고 했으나 노 대표의 처음 반응은 분명한 거부였다”며 “노 대표가 그날 그이에게 ‘직선제 개헌을 선택할 경우, 대통령 후보직을 사퇴하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고 한다”고 썼다.

이어 “(전 전 대통령이) 이틀의 시간을 주어가며 직선제 수용의 불가피성과 직선제 선거에서도 노태우 후보가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점을 조목조목 설명해 나간 끝에 6월 19일 노 대표의 결심을 얻어낼 수 있었다”면서 “그이는 아울러 직선제를 비롯해 야당과 국민이 요구하는 모든 민주화 조치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과감한 구상을 노 대표가 책임지고 만들고 그로 인해 거둘 수 있는 모든 수확과 영광을 노 대표에게 양보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했다”고 밝혔다.

이어 “노 대표는 자신이 그러한 구상을 담은 선언을 하게 되면 그이가 크게 노해서 호통을 치며 반대하는 제스처를 보여달라고 했지만, (전 전 대통령은) 그런 일은 국민과 역사에 속임수를 쓰는 결과가 되므로 거부했다고 알려주면서 씁쓰레한 표정을 지었다”고 했다.

이 여사는 6월 27일 당시 전 대통령과 노 대표가 청와대 옆 안가에서 마지막 비밀회의를 했고, 이 자리에 장남 전재국씨가 배석했다고 밝혔다.

이 여사는 “‘노 대표, 나를 밟고서라도 성공해라’. 두 사람의 비밀 회동을 지켜보면서 그것이 그런 일련의 조치를 준비하는 아버지의 신념과 심정으로 이해했다며 (비밀회동에서) 돌아온 재국이 내게 했던 말”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노 대표가 일언지하에 반대했던 그 민주화 조치가 바로 노 대표의 작품이 돼 노 대표의 이름으로 선언되는 그 ‘정치적 부조리(不條理)’, 앞장을 선 사람이 뒤따라온 사람 뒤에 서야 하는 ‘역사의 배리’(背理)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했다”고 썼다.

◇“ ‘역사 바로 세우기 법정’은 ‘역사 왜곡의 굿판’”

이 여사는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6년 5·18특별법으로 기소돼 사형선고를 받은 전 전 대통령의 재판 과정에서 5·18민주화운동 피해자 가족을 보면서 ‘동병상련’의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이 여사는 “공판이 열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광주와 전남 지역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올라와 애통해 하는 5·18 피해자들과 소복을 입은 가족들을 보면서 16년간 하얗게 성에처럼 굳은 그들의 한이 내 가슴을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며 “나도 역시 남편과 자식이 소중해 가슴을 앓으며 살아온 한평생이어서 5·18 사건의 희생자가 된 남편과 자식 그리고 혈육들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야 하는 그들의 분노와 한이 얼마나 절절한지 이해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어 “그러니 그 사건의 주범이라고 오해받는 남편을 향해 (법정에서 ‘살인마’ 같은) 그런 저주를 쏟을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 여사는 “검찰과 언론에서 진실도 모르는 채 뒤집어 씌우는 너무도 억울한 누명이라 우리로서는 참 기막힌 일이었다”며 “그러나 세상을 소란에 빠뜨리며 치러지는 이 재판에서도 반드시 밝혀져야만 하는 그 필연적 진실은 드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에 나도 그들처럼 운명적으로 5·18 사건의 피해자라는 처절한 동병상련의 마음까지 드는 것이었다”고 했다.

이 여사는 “‘역사 바로 세우기 재판’은 집권야욕을 가진 그이가 12·12로 계획된 군사반란을 일으키고 집권 구상인 시국 수습 방안을 만들어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5·17조치를 하도록 한 후, 의도적으로 광주 5·18사태를 부추겨 결국 정권 탈취에 성공했다는 조작된 시나리오를 법의 이름을 빌어 ‘사실화’ 시킨 역사왜곡의 굿판같은 것이었다”며 “그이를 정치적 희생양으로 만들기 위한 가공할 사실 조작이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던 법정이었다”고 회고했다.

◇전두환, YS 조문 직전 “용서하기 어렵지만 전직 대통령 예우가 내 신념”

이여사는 지난 2015년 11월 고(故) 김영삼(YS)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정치권에서 ‘역사적 화해’라는 해석이 나왔던 전 전 대통령의 조문에 대한 뒷얘기도 소개했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의 부음을 듣고 그분은 고민하는 것 같았다”며 “납득할 수 없는 초법적인 조치로 우리 가족을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뜨린 장본인인 김 전 대통령의 빈소에 평상심을 가지고 조문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앞섰던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여사 자신은 김 전 대통령에 대해 “그분에게 가한, 우리 가족에게 가한 정치보복적 가해는 너무 악성이어서 용서나 화해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전 가족의 재산을 초헌법적인 수단으로 몰수해간 김 전 대통령의 이해할 수 없는 자기모순과 악의를 용서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이 여사에 따르면 영결식 하루 전 전 전 대통령이 검은 정장과 검은 넥타이를 준비하도록 부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보, 고인이 나와 가족에게 한 행위는 참으로 용서하기 어렵소. 나는 그 사람 때문에 7년 반 동안 대통령으로 봉직하며 국익과 국부를 위해 헌신했던 내 모든 노력과 공적이 단번에 부정당한 채 치명적인 명예 손상을 입었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문상을 가려는 것은 국민들 앞에서 지도자들이 서로 반복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고, 고인이 내게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박탈해갔다 해도, 그가 전직 대통령 신분임이 틀림없는 이상 내가 앞장서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지켜줘야 한다는 것이 내 변함없는 신념이기 때문이오.”

이 여사는 “조문을 결심한 이상 고인을 기리는 그분의 조의는 깊고 진실했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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