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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인종차별

이강기 2017. 4. 5. 08:21

[만물상] 한국인의 인종차별


입력 : 2017.04.05 03:11

오바마가 하와이에 사는 백인 외조부모 밑에서 청소년기를 보냈을 때다. 어느 날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흑인을 만났는데 그놈이 언제 내 머리를 후려칠지 몰라 떨었어요." 소년 오바마는 "주먹으로 명치를 맞은 것처럼 아팠다"고 뒷날 고백했다. 그러나 외가는 흑인 손자를 명문 학교에 보내며 정성껏 키웠다. 오바마는 "나를 위해 희생한 외할머니를 누구보다 사랑한다"고 했다.

▶4~5년 전 가수 싸이가 부른 '강남스타일'이 크게 유행했다. 뮤직비디오에 나와 춤을 추던 여덟 살 소년이 '리틀 싸이'로 불리며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아이 엄마가 동남아인이라는 게 알려지자 고약한 댓글이 돌았다. '열등 인종 잡종' '뿌리부터 쓰레기' '다문화 ××'…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들이다. 아이와 부모가 받았을 상처를 생각하면 억장이 눌린다. 인종을 구분 지어 깎아내리는 말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만물상] 한국인의 인종차별
▶2013년 5월 미국 워싱턴포스트 신문에 '인종차별 세계지도'가 실렸다. '다른 인종과 이웃으로 살고 싶지 않다'고 대답한 비율을 7등급으로 나눴다. 미국·영국·호주 같은 나라가 외국인을 품는 관용도가 높았고, 한국은 끝에서 두 번째 등급에 속했다. 중국·일본이 우리보다 외국인에 개방적인 사회로 나타났다. 이 신문은 "잘 살고 교육 수준도 높은 한국에서 3분의 1 넘는 국민이 외국인과 이웃하길 싫어한다"고 했다.

▶며칠 전 부산 대형 마트에서 콜롬비아인 M씨가 봉변을 당했다. 주차장에서 차에 치일 뻔한 아이 어머니에게 "제대로 보호하지 않으면 어떡하느냐"고 한 게 화근이었다. 곁에 있던 아이 할아버지가 나섰다. "재수 없는 ××"라고 욕하고 M씨를 바닥에 넘어뜨렸다. 신고받고 온 경찰은 한 술 더 떴다. 인종차별 언행을 자제하도록 해 달라고 하자 경찰은 "깜둥이라고 부른 것도 아닌데…"라고 얼버무렸다고 한다. M씨는 이 일을 SNS에 올리고 '한국에서는 다른 사람을 도와주려고 하지 마라'고 썼다.

▶우리 땅에 사는 외국인이 200만명을 넘었고, 다문화 학생은 10만명에 이른다. 한국인 700만명이 나라 밖에 나가 살고 있다. 우리는 해외 에 이민 가거나 입양된 한국인이 국제기구 수장(首長)이 되고 한 나라 장관이 된 뉴스에 열광한다. 그런데 우리 안의 외국인에는 배타적이다. 우리가 인종차별한다고 욕하는 서양 백인 나라보다 더한다. 어떤 피부색에는 굽히고 다른 피부색에는 오만하기도 하다. 아이들 미술 크레용에서 '살색'이란 표현이 사라진 게 15년 전이다. 제도만 고친다고 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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