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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4일 미국 《타임》지는 아시아판 표지인물로 문재인 대통령을 올렸다. |
새 정권이 당면할 더욱 큰 문제는 국내적인 문제보다는 국제 문제가 될 것이다. 대한민국은 무역액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로 계산해서 얻는 국제 의존도가 100%에 이르는 완전한 국제의존형 경제체제를 가진 나라이다. 국가안보 문제 역시 거의 전적으로 국제정치 환경에 의해 영향받는 나라다. 우리 국민 상당수가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과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인식하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다. 한국의 대중 수출품은 70% 정도가 중간재인 부품으로, 중국은 한국이 수출한 부품을 완성품으로 만들어 미국에 내다 판다. 한국과 중국이 진짜 경제 전쟁을 한다면 갑(甲)의 위치에 있는 것은 우리지 중국이 아니다.
중국의 무역 흑자가 5000억 달러 정도인데, 그중 대미흑자가 3600억 달러 이상이다. 미국이 중국 상품을 사주지 않으면 중국 경제는 멈추고 한국의 대중 수출도 결정적 타격을 받게 된다. 겉으로는 미국보다 중국이 한국 경제에 더 중요한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미국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역대 정권들과 미국
한국의 신정부는 미국이 상대적으로 덜 선호했던 정부라고 말할 수 있다. 두 나라 다 민주주의 국가여서 정권교체는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미국에 보수 우파적인 정권이 들어서고 한국에는 좌파 정권이 수립되었을 때, 혹은 그 역의 상황일 때 양국 관계에 심각한 갈등과 마찰이 야기될 수 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상상 가능하며 경험적으로 증명된 바이다.
진보적인 카터 대통령과 보수적인 박정희 대통령 시절 한미동맹은 파탄 직전에 이르렀다. 진보적인 클린턴 대통령 재임 시절(1993~2001) 임기를 시작한 김대중 대통령(1997년 2월~2003년 2월)은 임기 초반 미국과 양호한 관계 아래 햇볕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지만 2001년 보수주의자 부시가 집권한 후 여러 면에서 한미관계는 순탄치 못했다. 2003년 노무현 정부는 2008년 2월 임기가 끝날 무렵까지 지속적으로 미국의 부시 정권과 ‘맞짱’을 떠야만 했던 형국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 말년, 한미관계를 회복했고 오바마 대통령과도 특별한 갈등이 없는 상황을 보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내 정치적으로는 보수를 지향했지만 대북정책과 대외정책에서는 보수적이라고 볼 수 없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분쟁회피형, 전략적 인내형 지도자였던 덕택에 박근혜의 친중(親中)정책 때문에 속은 상했을지 모르지만 겉으로 노골적인 불만을 표현하지는 않았다. 보다 사적인 자리에서는 미국의 고위급 외교관들이 격하게 박근혜의 대외정책을 비난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었다.
2017년 1월 20일 미국에는 레이건 대통령 이후 가장 보수적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했고, 5월 9일 한국에서는 여러 면에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보다 더욱 진보적인 정책을 추구할 것을 목표로 하는 문재인 정권이 성립되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한미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천천히 진행되는 쿠바 미사일 위기’
트럼프는 선거기간 중 미국 우선주의를 강력히 표방했으며 그 결과 적극적 개입정책보다는 최근 미국에서 다시 각광을 받기 시작한 고립주의를 지향하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여겨졌었다. 그러나 트럼프가 임기를 시작한 직후부터 국제정치 문제, 특히 안보 문제에 당면하게 되었다.
취임 후 불과 3주밖에 지나지 않은 올 2월 12일 북한은 마치 트럼프를 시험해 보기나 하려는 듯 미사일 발사 실험을 단행했던 것이다. 2월 13일 트럼프는 북한이야말로 “크고 큰 문제다(big big problem)” 그리고 북한 문제에 “매우 강력하게(very strongly)”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미국과 북한 간에는 고도의 긴장이 지속되고 있으며 긴장은 북한이 핵을 폐기하지 않는 한 지속될 것이다. 미국과 북한 사이의 긴장은 궁극적으로 한편이 무릎을 꿇어야 종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천천히 진행되는 쿠바 미사일 위기(Cuban Missile Crisis in Slow Motion)” 라고도 불린다.
마치 전시(戰時) 내각을 방불케 할 정도로 장성 출신들이 주축을 이루는 트럼프의 외교안보 진용은 트럼프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을 가늠할 수 있는 모든 말을 다 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한반도 정책의 목표는 북한의 비핵화(非核化)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방치할 경우 약 3년 이내에, 즉 트럼프 행정부 1차 임기 중, 북한은 미국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장거리 핵미사일을 보유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트럼프는 이 같은 상황의 도래를 결코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사드를 서둘러 배치한 이유
미국은 북한 핵을 제거하기 위해 모든 대안을 다 가지고 있는데 지금 당장 트럼프의 미국이 가장 크게 의존하고 있는 방안은 중국의 힘을 빌려서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트럼프는 4월 21일 자신의 트윗에서 “중국은 북한의 생명줄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일도 쉽지는 않겠지만, 중국이 원한다면 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할 것이다(China is very much the economic lifeline to North Korea so, while nothing is easy, if they want to solve the North Korean problem, they will)”라고 말하며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이미 트럼프는 4월 2일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미국은 충분히 북한 문제를 혼자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4월 17일 한국을 방문했던 펜스 부통령은 중국이 해주겠지만 중국이 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동맹국들과 함께” 북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미국은 우선 한국을 공격할 수 있는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처하는 방안으로 사드(THAAD) 미사일을 배치했다.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이루어진 미국의 사드 미사일 한국 배치는, 주한미군이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에 이미 ‘노출’된 것으로 판단된 상황에서 이루어진 조치다.
이처럼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의 가장 화급한 이슈는 북한 핵을 제거하는 것이며 그 방법론은 경제적인 것과 군사적인 것으로 나누어진다. 경제적으로 미국은 우선 중국을 활용, 북한의 경제적 숨통을 끊는 것과 더불어 미국 역시 최대한 북한을 경제적으로 압박하는 것이다. 5월 초 미국 하원은 419:1로 역사상 가장 막강한 대북 경제제재 조치를 통과시켰다. 필자는 북한이 얼마 이상 더 버티기 힘들다고 보지만 이 같은 경제적 압박과 중국에 대한 의존만으로 북한 핵 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트럼프는 군사행동에 나설 것이다.
미국은 동맹국인 대한민국이 적극적으로 미국의 대북정책에 동조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 미국의 고위급 관리들은 한국의 차기 정부가 어떤 정부이든 한미 양국은 ‘철갑동맹(Ironclad Ally)’일 것이라고 누누이 강조해 왔다. 미국은 동시에 한국이 일본과의 관계를 정상화시키기를 원하고 있다. 한·미·일 3각 동맹이 정상화되어야 북한 핵 문제 해결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장 시급한 문제인 북한 핵 문제가 해결되면 자신이 더욱 중요한 문제로 인식해 온 ‘중국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것이다. 이미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을 미국의 5대 안보 위협 중 하나라고 선언했다. 미국은 한국이 미국의 세계 전략인 대중국 견제정책에도 동조해 주기를 원할 것이다.
이 문제가 동맹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한미동맹이 적용되는 지역과 이슈는 1953년 조인된 한미상호방위조약에 ‘태평양 지역(Pacific Area)에서의 안보 문제’라고 명기되어 있다. 한미동맹은 지역적으로 한반도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더 나아가 중국이 미국의 공장 6만 개를 문 닫게 했고 300만명의 미국인 일자리를 빼앗아갔다고 주장하는 트럼프는 중국을 경제적으로 압박할 것이며 이 같은 경제 문제에도 미국의 동맹국들이 동참해 주기를 원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 사람들의 대미·대중 인식
문재인 정부가 구체적인 대외정책을 발표한 상황은 아니지만, 그리고 구체적인 외교·안보정책이 나오더라도 그것이 100% 수행될 가능성이 있는 것도 물론 아니지만, 기왕 문재인 진영에서 나왔던 언급들을 정리해 보면 여러 면에서 트럼프 행정부와 조화롭기보다는 갈등적인 정책이 더 많다고 볼 수 있다.
우선 문재인 정부를 구성할 사람들의 과거 언행들은 대체적으로 북한의 핵개발 문제를 너그럽게 해석하고 있는 듯하며 북한을 적대국이라고 보기보다는 대화의 상대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월남전에서 미국이 패배했을 때 희열을 느꼈다”고 말할 정도로 미국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베트남 패망 당시 다수의 한국 국민은 희열이 아니라 공포 분위기에 싸여 있었다. 그 공포심은 미국이 한국도 포기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연원하는 것이었다.
베트남 패망 이후 40년도 더 지난 오늘, 베트남 전쟁을 다시 회고해 볼 때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열심히 싸웠는데도 불구하고 진 것은 아니다. 싸우다가 포기한 것이라고 보아야 옳다. 미국은 베트남 그 자체가 중요해서 베트남을 지원했다기보다는 베트남이 적화(赤化)될 경우 중국을 비롯한 국제 공산주의 세력이 동남아시아 전체를 지배할 것 같다는 두려움 때문에 베트남을 지원했다.
하지만 중국을 대소(對蘇)견제에 활용하기로 마음먹은 미국은 중국의 남쪽 안보위협을 덜어주기 위해 남베트남을 버리는 쪽을 택했다. 남쪽에서의 위협이 사라진 중국은 그 병력을 북쪽 소련과의 국경으로 이동시켰다. 소련과 중국이 대립하게 되면서 미국은 서유럽에서의 안보부담을 덜 수 있었다.
미국은 소련 견제라는 대전략을 위해 북베트남(즉 공산베트남)이 통일을 하는 편을 눈감아 준 것이다. 세월이 바뀌어 소련은 붕괴하고 중국의 위협이 대두하자 베트남은 중국의 팽창을 막아주는 강력하고 든든한 동맹처럼 인식되게 되었다. 강대국의 전략적 이해관계 속에서 작은 나라는 장기판의 졸과 같은 신세다.
한국의 새 정부는 미국에 대해서는 사무적으로 대하겠지만 중국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더욱 우호적인 입장을 취할 것 같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인물들이 사드를 반대하기 위해 중국까지 방문했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미국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중국의 비위를 상하게 하는 것이 우리에게 더 큰 손해가 될 것이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이 문재인 정부의 요직에 기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된다. 만약 새 정부가 사드 문제를 가지고 미국과 재협상하자고 나설 경우 상당한 긴장과 갈등이 야기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아 보인다.
새 정부는 일본에 대해서는 거의 절대적으로 반대의 입장을 취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이미 이들은 박근혜 정부 말기에 체결된 일본과의 정보공유 협정을 결단코 반대하며 위안부 협정에 대해서도 강력한 반대 입장을 취해 왔다. 새 정부의 세계관에 의하면 일본과의 안보 협력 강화는 가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대북정책에서도 미국과 마찰 빚을 듯
노무현 대통령도 언급한 바 있듯이 이들은 북한이 핵을 만드는 이유를 미국의 공격에 대한 자위적인 조치라고 해석하려 하는 경향이 높다. 결국 미국의 대북정책과 한국 신정부의 대북정책은 갈등을 노정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신정부는 또한 미국과의 동맹보다는 자주적인 방위를 강조할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전시작전 통제권을 조속히 환수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새 대통령은 이미 국회의원 시절 전시작전 통제권 환수 일자를 2020년대로 연기하기로 약속하고 귀국한 국방장관에게 “창피하지도 않으냐”며 핀잔을 줄 정도였다. 선거전을 치르는 동안 문재인 정부는 사드 배치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는 듯 변화되었지만 신정부의 사드에 대한 입장은 배치 반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드에 대한 청구서 비슷한 발언을 했을 때, 문재인 후보는 ‘다음 정부에서 사드 배치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반응했다.
선거기간 중 북한부터 먼저 방문할 것이라고 언급했다가 다시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부터 방문할 것이라고 고쳐 말하기는 했지만 문재인 정부의 진면목은 사드 배치 반대, 중국과의 우호, 일본 반대, 북한과의 협상 추구, 개성공단 재개 등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과 여러 면에서 정면 배치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북한과의 대화, 개성공단 2000만 평으로 확대 등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정책들은 ‘북한과의 대화는 실패했다’고 보며 중국에 ‘북한의 경제적 숨통을 끊을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미국의 입장과 정면충돌을 야기할 수 있는 뇌관이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북한 핵 문제가 해결되기 이전 문재인 정부가 개성공단 재개를 들고나올 경우 미국은 이를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한국이 앞장서서 파기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대처할 것이다.
반미적 태도에 한계 있을 듯
한국과 같이 국제정치상 강대국이 되어보지 못한 국가들에는 대단히 애달픈 일이지만 국제정치의 주인공들은 강대국들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된 후, 이전의 반미주의자적 태도를 바꾸었다. 미국을 방문했을 당시 ‘한국전쟁에서 미국이 대한민국을 구해주지 않았다면 본인은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과 FTA를 체결했고 비록 전투부대는 아니었지만 영국군에 버금가는 대 병력을 이라크에 파병하기도 했었다.
취임할 당시 상당히 반미적인 입장을 취했던 노무현 정부의 정책들은 대체적으로 보았을 때 미국이 원하는 궤도에서 별로 이탈하지 않았다. 아마 이탈할 수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선거전 당시 문재인 캠프를 자문하던 학자가 미국을 방문해서 문 후보는 반미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하고 다녔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문재인 정부도 미국과의 충돌보다는 당당함을 유지하는 범위에서 적응하게 될 것이다.
미국은 셰일석유로 인해 경기가 되살아나고 있으며 미래를 이끄는 제4차 산업혁명을 거의 전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중이다. 아시아와 유럽의 경기가 침잠하고 있음에도 미국은 홀로 경기가 양호한 상황이다.
미국의 아시아 정책의 종점은 북한이 아니라 중국일 것이라는 사실도 차기 한국 정부가 대외정책을 세울 때 면밀히 관찰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북한 핵의 궁극적 목적이 북한이 주도하는 한반도 통일일진대 북한이 핵을 스스로, 더욱이 평화적으로 내려놓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어떤 경우라도 대한민국이 북한 핵과 ‘더불어’ 살 수는 없다라는 현실 인식도 중요하다. 북한이 목숨을 걸고 개발하려는 핵을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너무나 위험하고 천진스런 생각이 될지 모른다.
한국의 효용
미국은 우리를 결코 가벼이 보지 않을 것이라는 타성도 트럼프 시대에는 더 이상 맞지 않는 생각이다. 고립주의와 더불어 미국 제일주의의 기치를 내건 미국은 한반도의 가치를 중국을 잘 견제할 수 있느냐의 여부로 판단한다. 중국이 강해지는 한, 그래서 미국이 중국을 강하게 봉쇄할 필요가 있는 한 미국은 한반도를 소중하게 여길 가치가 있다고 볼 것이다.
미국의 대가들이 중국의 힘이 약해지면, 그래서 미국에 대한 패권 도전국이 될 수 없다고 판단되면 미국은 한반도에서 철수할 것이라는 냉혹한 현실을 이해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에는 중국과 잘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물들이 있을 것이다. ‘중국은 한국이 중국에 굽신거리는 한에서만 잘해 줄 것’이라는 역사적 사실과 국제정치학적 현실을 이해해야 한다.
어떤 나라라도 궁극적으로 독자적인 안보 능력을 갖추어야 하겠지만 지금 당장의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현재 세계의 유일 패권국이며 앞으로 오랜 기간 그럴 것이다. 새 정부에 미국의 힘을 잘 활용해서 우리가 원하는 대전략, 즉 대한민국이 주도하는 자유민주주의 평화통일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열심히 강구할 것을 부탁드린다.⊙
중국의 무역 흑자가 5000억 달러 정도인데, 그중 대미흑자가 3600억 달러 이상이다. 미국이 중국 상품을 사주지 않으면 중국 경제는 멈추고 한국의 대중 수출도 결정적 타격을 받게 된다. 겉으로는 미국보다 중국이 한국 경제에 더 중요한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미국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역대 정권들과 미국
한국의 신정부는 미국이 상대적으로 덜 선호했던 정부라고 말할 수 있다. 두 나라 다 민주주의 국가여서 정권교체는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미국에 보수 우파적인 정권이 들어서고 한국에는 좌파 정권이 수립되었을 때, 혹은 그 역의 상황일 때 양국 관계에 심각한 갈등과 마찰이 야기될 수 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상상 가능하며 경험적으로 증명된 바이다.
진보적인 카터 대통령과 보수적인 박정희 대통령 시절 한미동맹은 파탄 직전에 이르렀다. 진보적인 클린턴 대통령 재임 시절(1993~2001) 임기를 시작한 김대중 대통령(1997년 2월~2003년 2월)은 임기 초반 미국과 양호한 관계 아래 햇볕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지만 2001년 보수주의자 부시가 집권한 후 여러 면에서 한미관계는 순탄치 못했다. 2003년 노무현 정부는 2008년 2월 임기가 끝날 무렵까지 지속적으로 미국의 부시 정권과 ‘맞짱’을 떠야만 했던 형국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 말년, 한미관계를 회복했고 오바마 대통령과도 특별한 갈등이 없는 상황을 보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내 정치적으로는 보수를 지향했지만 대북정책과 대외정책에서는 보수적이라고 볼 수 없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분쟁회피형, 전략적 인내형 지도자였던 덕택에 박근혜의 친중(親中)정책 때문에 속은 상했을지 모르지만 겉으로 노골적인 불만을 표현하지는 않았다. 보다 사적인 자리에서는 미국의 고위급 외교관들이 격하게 박근혜의 대외정책을 비난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었다.
2017년 1월 20일 미국에는 레이건 대통령 이후 가장 보수적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했고, 5월 9일 한국에서는 여러 면에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보다 더욱 진보적인 정책을 추구할 것을 목표로 하는 문재인 정권이 성립되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한미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천천히 진행되는 쿠바 미사일 위기’
트럼프는 선거기간 중 미국 우선주의를 강력히 표방했으며 그 결과 적극적 개입정책보다는 최근 미국에서 다시 각광을 받기 시작한 고립주의를 지향하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여겨졌었다. 그러나 트럼프가 임기를 시작한 직후부터 국제정치 문제, 특히 안보 문제에 당면하게 되었다.
취임 후 불과 3주밖에 지나지 않은 올 2월 12일 북한은 마치 트럼프를 시험해 보기나 하려는 듯 미사일 발사 실험을 단행했던 것이다. 2월 13일 트럼프는 북한이야말로 “크고 큰 문제다(big big problem)” 그리고 북한 문제에 “매우 강력하게(very strongly)”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미국과 북한 간에는 고도의 긴장이 지속되고 있으며 긴장은 북한이 핵을 폐기하지 않는 한 지속될 것이다. 미국과 북한 사이의 긴장은 궁극적으로 한편이 무릎을 꿇어야 종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천천히 진행되는 쿠바 미사일 위기(Cuban Missile Crisis in Slow Motion)” 라고도 불린다.
마치 전시(戰時) 내각을 방불케 할 정도로 장성 출신들이 주축을 이루는 트럼프의 외교안보 진용은 트럼프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을 가늠할 수 있는 모든 말을 다 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한반도 정책의 목표는 북한의 비핵화(非核化)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방치할 경우 약 3년 이내에, 즉 트럼프 행정부 1차 임기 중, 북한은 미국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장거리 핵미사일을 보유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트럼프는 이 같은 상황의 도래를 결코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사드를 서둘러 배치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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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성주에 배치된 사드 미사일. 미국이 서둘러 사드를 배치한 것은 주한미군이 북한의 핵 위협에 노출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
이미 트럼프는 4월 2일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미국은 충분히 북한 문제를 혼자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4월 17일 한국을 방문했던 펜스 부통령은 중국이 해주겠지만 중국이 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동맹국들과 함께” 북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미국은 우선 한국을 공격할 수 있는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처하는 방안으로 사드(THAAD) 미사일을 배치했다.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이루어진 미국의 사드 미사일 한국 배치는, 주한미군이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에 이미 ‘노출’된 것으로 판단된 상황에서 이루어진 조치다.
이처럼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의 가장 화급한 이슈는 북한 핵을 제거하는 것이며 그 방법론은 경제적인 것과 군사적인 것으로 나누어진다. 경제적으로 미국은 우선 중국을 활용, 북한의 경제적 숨통을 끊는 것과 더불어 미국 역시 최대한 북한을 경제적으로 압박하는 것이다. 5월 초 미국 하원은 419:1로 역사상 가장 막강한 대북 경제제재 조치를 통과시켰다. 필자는 북한이 얼마 이상 더 버티기 힘들다고 보지만 이 같은 경제적 압박과 중국에 대한 의존만으로 북한 핵 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트럼프는 군사행동에 나설 것이다.
미국은 동맹국인 대한민국이 적극적으로 미국의 대북정책에 동조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 미국의 고위급 관리들은 한국의 차기 정부가 어떤 정부이든 한미 양국은 ‘철갑동맹(Ironclad Ally)’일 것이라고 누누이 강조해 왔다. 미국은 동시에 한국이 일본과의 관계를 정상화시키기를 원하고 있다. 한·미·일 3각 동맹이 정상화되어야 북한 핵 문제 해결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장 시급한 문제인 북한 핵 문제가 해결되면 자신이 더욱 중요한 문제로 인식해 온 ‘중국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것이다. 이미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을 미국의 5대 안보 위협 중 하나라고 선언했다. 미국은 한국이 미국의 세계 전략인 대중국 견제정책에도 동조해 주기를 원할 것이다.
이 문제가 동맹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한미동맹이 적용되는 지역과 이슈는 1953년 조인된 한미상호방위조약에 ‘태평양 지역(Pacific Area)에서의 안보 문제’라고 명기되어 있다. 한미동맹은 지역적으로 한반도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더 나아가 중국이 미국의 공장 6만 개를 문 닫게 했고 300만명의 미국인 일자리를 빼앗아갔다고 주장하는 트럼프는 중국을 경제적으로 압박할 것이며 이 같은 경제 문제에도 미국의 동맹국들이 동참해 주기를 원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 사람들의 대미·대중 인식
문재인 정부가 구체적인 대외정책을 발표한 상황은 아니지만, 그리고 구체적인 외교·안보정책이 나오더라도 그것이 100% 수행될 가능성이 있는 것도 물론 아니지만, 기왕 문재인 진영에서 나왔던 언급들을 정리해 보면 여러 면에서 트럼프 행정부와 조화롭기보다는 갈등적인 정책이 더 많다고 볼 수 있다.
우선 문재인 정부를 구성할 사람들의 과거 언행들은 대체적으로 북한의 핵개발 문제를 너그럽게 해석하고 있는 듯하며 북한을 적대국이라고 보기보다는 대화의 상대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월남전에서 미국이 패배했을 때 희열을 느꼈다”고 말할 정도로 미국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베트남 패망 당시 다수의 한국 국민은 희열이 아니라 공포 분위기에 싸여 있었다. 그 공포심은 미국이 한국도 포기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연원하는 것이었다.
베트남 패망 이후 40년도 더 지난 오늘, 베트남 전쟁을 다시 회고해 볼 때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열심히 싸웠는데도 불구하고 진 것은 아니다. 싸우다가 포기한 것이라고 보아야 옳다. 미국은 베트남 그 자체가 중요해서 베트남을 지원했다기보다는 베트남이 적화(赤化)될 경우 중국을 비롯한 국제 공산주의 세력이 동남아시아 전체를 지배할 것 같다는 두려움 때문에 베트남을 지원했다.
하지만 중국을 대소(對蘇)견제에 활용하기로 마음먹은 미국은 중국의 남쪽 안보위협을 덜어주기 위해 남베트남을 버리는 쪽을 택했다. 남쪽에서의 위협이 사라진 중국은 그 병력을 북쪽 소련과의 국경으로 이동시켰다. 소련과 중국이 대립하게 되면서 미국은 서유럽에서의 안보부담을 덜 수 있었다.
미국은 소련 견제라는 대전략을 위해 북베트남(즉 공산베트남)이 통일을 하는 편을 눈감아 준 것이다. 세월이 바뀌어 소련은 붕괴하고 중국의 위협이 대두하자 베트남은 중국의 팽창을 막아주는 강력하고 든든한 동맹처럼 인식되게 되었다. 강대국의 전략적 이해관계 속에서 작은 나라는 장기판의 졸과 같은 신세다.
한국의 새 정부는 미국에 대해서는 사무적으로 대하겠지만 중국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더욱 우호적인 입장을 취할 것 같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인물들이 사드를 반대하기 위해 중국까지 방문했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미국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중국의 비위를 상하게 하는 것이 우리에게 더 큰 손해가 될 것이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이 문재인 정부의 요직에 기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된다. 만약 새 정부가 사드 문제를 가지고 미국과 재협상하자고 나설 경우 상당한 긴장과 갈등이 야기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아 보인다.
새 정부는 일본에 대해서는 거의 절대적으로 반대의 입장을 취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이미 이들은 박근혜 정부 말기에 체결된 일본과의 정보공유 협정을 결단코 반대하며 위안부 협정에 대해서도 강력한 반대 입장을 취해 왔다. 새 정부의 세계관에 의하면 일본과의 안보 협력 강화는 가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대북정책에서도 미국과 마찰 빚을 듯
노무현 대통령도 언급한 바 있듯이 이들은 북한이 핵을 만드는 이유를 미국의 공격에 대한 자위적인 조치라고 해석하려 하는 경향이 높다. 결국 미국의 대북정책과 한국 신정부의 대북정책은 갈등을 노정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신정부는 또한 미국과의 동맹보다는 자주적인 방위를 강조할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전시작전 통제권을 조속히 환수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새 대통령은 이미 국회의원 시절 전시작전 통제권 환수 일자를 2020년대로 연기하기로 약속하고 귀국한 국방장관에게 “창피하지도 않으냐”며 핀잔을 줄 정도였다. 선거전을 치르는 동안 문재인 정부는 사드 배치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는 듯 변화되었지만 신정부의 사드에 대한 입장은 배치 반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드에 대한 청구서 비슷한 발언을 했을 때, 문재인 후보는 ‘다음 정부에서 사드 배치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반응했다.
선거기간 중 북한부터 먼저 방문할 것이라고 언급했다가 다시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부터 방문할 것이라고 고쳐 말하기는 했지만 문재인 정부의 진면목은 사드 배치 반대, 중국과의 우호, 일본 반대, 북한과의 협상 추구, 개성공단 재개 등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과 여러 면에서 정면 배치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북한과의 대화, 개성공단 2000만 평으로 확대 등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정책들은 ‘북한과의 대화는 실패했다’고 보며 중국에 ‘북한의 경제적 숨통을 끊을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미국의 입장과 정면충돌을 야기할 수 있는 뇌관이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북한 핵 문제가 해결되기 이전 문재인 정부가 개성공단 재개를 들고나올 경우 미국은 이를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한국이 앞장서서 파기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대처할 것이다.
반미적 태도에 한계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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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7일 APEC정상회의에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는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정권 시절 한미관계는 불편했다. |
취임할 당시 상당히 반미적인 입장을 취했던 노무현 정부의 정책들은 대체적으로 보았을 때 미국이 원하는 궤도에서 별로 이탈하지 않았다. 아마 이탈할 수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선거전 당시 문재인 캠프를 자문하던 학자가 미국을 방문해서 문 후보는 반미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하고 다녔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문재인 정부도 미국과의 충돌보다는 당당함을 유지하는 범위에서 적응하게 될 것이다.
미국은 셰일석유로 인해 경기가 되살아나고 있으며 미래를 이끄는 제4차 산업혁명을 거의 전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중이다. 아시아와 유럽의 경기가 침잠하고 있음에도 미국은 홀로 경기가 양호한 상황이다.
미국의 아시아 정책의 종점은 북한이 아니라 중국일 것이라는 사실도 차기 한국 정부가 대외정책을 세울 때 면밀히 관찰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북한 핵의 궁극적 목적이 북한이 주도하는 한반도 통일일진대 북한이 핵을 스스로, 더욱이 평화적으로 내려놓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어떤 경우라도 대한민국이 북한 핵과 ‘더불어’ 살 수는 없다라는 현실 인식도 중요하다. 북한이 목숨을 걸고 개발하려는 핵을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너무나 위험하고 천진스런 생각이 될지 모른다.
한국의 효용
미국은 우리를 결코 가벼이 보지 않을 것이라는 타성도 트럼프 시대에는 더 이상 맞지 않는 생각이다. 고립주의와 더불어 미국 제일주의의 기치를 내건 미국은 한반도의 가치를 중국을 잘 견제할 수 있느냐의 여부로 판단한다. 중국이 강해지는 한, 그래서 미국이 중국을 강하게 봉쇄할 필요가 있는 한 미국은 한반도를 소중하게 여길 가치가 있다고 볼 것이다.
미국의 대가들이 중국의 힘이 약해지면, 그래서 미국에 대한 패권 도전국이 될 수 없다고 판단되면 미국은 한반도에서 철수할 것이라는 냉혹한 현실을 이해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에는 중국과 잘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물들이 있을 것이다. ‘중국은 한국이 중국에 굽신거리는 한에서만 잘해 줄 것’이라는 역사적 사실과 국제정치학적 현실을 이해해야 한다.
어떤 나라라도 궁극적으로 독자적인 안보 능력을 갖추어야 하겠지만 지금 당장의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현재 세계의 유일 패권국이며 앞으로 오랜 기간 그럴 것이다. 새 정부에 미국의 힘을 잘 활용해서 우리가 원하는 대전략, 즉 대한민국이 주도하는 자유민주주의 평화통일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열심히 강구할 것을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