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트의 미술 이야기] 비취청자의 중국 뛰어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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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여 고려청자가 이런 절묘한 비취색을 갖게 되었는가는 한국 예술사에 숨어 있는 놀라운 이야기이다. 본래 청자 기술은 중국에서 수입된 것이었다. 9세기 중국에서는 선종(禪宗)불교가 널리 퍼지면서 좌선 중에 정신을 맑게 하기 위해 차(茶)를 마시는 문화가 붐을 이루었다. 왕족이나 귀족은 옥(玉)으로 만든 다완(茶椀)이라는 잔에 차를 따라 마시는 것을 좋아했다. 우윳빛 같고 푸르스름한 반투명한 옥의 색깔 때문에 옥다완은 차의 색과 옥의 색이 어우러져 신비롭고 아름다운 시각적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또 맑은 정신을 추구하려는 심정과 공명한다고 여겨졌다. 그렇지만 일반인들이 비싼 옥다완에 차를 마시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래서 옥다완과 비슷한 느낌을 내면서 덜 비싼 대체품에 대한 수요가 생겼고 청자가 그 현실적 대안으로 만들어졌다.
10세기 말엽 중국에서 정치적 혼란이 벌어지자 당시 청자 기술로 유명했던 오월국의 장인들이 외국으로 피난했다. 고려는 이때 중국 도공들을 스카우트했다. 고려가 처음 만든 청자는 중국 도공들이 전수한 기술로 그대로 만든 중국 청자였다. 그러나 그 후 150여 년의 실험기를 거쳐 12세기 무렵 고려청자는 모방을 넘어 창조적 도약을 한다. 초기의 탁하고 누런색의 `메이드 인 차이나`가 진짜 비취색을 띠는 `메이드 인 고려`로 변모한 것이다. 여기서 더 발전해 표면에 장식 무늬를 판 상감청자도 만들어졌다.
![387016 기사의 1번째 이미지](http://file.mk.co.kr/meet/neds/2017/06/image_readmed_2017_387016_14969955682913392.jpg)
왜 중국에서는 청자 기술이 발전하지 않았는데, 고려에서만 이런 비약이 일어났는가? 중국에는 옥다완이라는 일류품이 이미 있었고 청자는 이류품이었기 때문에 청자 기술을 발전시킬 동인이 약했던 반면 고려에는 옥다완이 없기 때문에 청자를 일류품으로 만들 동인이 강했기 때문이다. 옥다완이라는 뛰어넘을 수 없는 일류품이 없는 상태에서 고려 도공들은 좀 더 멋있고 신비로운 색을 만들기 위해 부단한 실험과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중국 청자의 이류성을 뛰어넘어 일류 고려청자를 탄생시켰다.
고려청자 이야기는 현대미술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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