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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箱 아내 변동림 여사, 이상 진면목 간과한 비평가들 질타”

이강기 2017. 6. 26. 12:47

李箱 아내 변동림 여사, 이상 진면목 간과한 비평가들 질타”

조종엽기자 입력 2017-06-26 03:00수정 2017-06-26 03:00
아일보
美대학 강의 중 방학맞아 귀국한 ‘이상 문학 연구자’ 권영민 교수
서울 종로구 ‘이상의 집’에서 만난 권영민 교수는 자신이 평생 모은 한국문학 관련 도서 1만2000여 권을 한국학 전공 개설을 추진 중인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 기증했다고 밝혔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이상이 얼마나 숱한 ‘가면’을 쓴 이인데요. 소설 속 등장인물에도 가면을 숱하게 씌우고 휘장을 쳐서 만들었는데, 그것들을 벗겨내지 못한 채 이상의 문학을 평면적이고 단선적으로 보는 비평가들을 신뢰할 수가 없었습니다.”

권영민 단국대 석좌교수 겸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한국 문학 담당 교수가 최근 전한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상(1910∼1937)의 아내였던 변동림 여사의 회고다. 변 여사는 뒷날 김향안으로 개명했고 김환기 화백과 결혼했다.

권 교수는 올 3, 4월 ‘권영민 교수의 문학 콘서트’(해냄)와 ‘한국 모더니즘 문학의 탄생―이상과 그의 문학’(세창출판사)을 잇따라 펴냈다. 미국에서 강의가 없는 여름학기를 맞아 귀국한 그를 최근 서울 종로구 ‘이상의 집’에서 만났다.

이상의 문학을 연구하던 권 교수는 1990년대 초반 환기미술관 건립을 추진하러 서울에 와 있던 변 여사를 서울 평창동의 한 식당에서 만났다고 했다. 당시 변 여사는 이상의 소설 ‘실화(失花)’가 이상과 아내인 자신의 이야기라는 평단 일각의 시선 탓에 고통을 받았다며 하소연했다. “변 여사는 ‘이상의 소설 속 아내가 모두 자신이라면 그게 무슨 문학이겠냐’고 했죠. 한국의 비평가들이 문학을 읽을 줄 모르고 이상을 모르면서 대가인 체한다며 비판하더군요. 사실 이상의 생애와 문학에 대한 오해는 지금도 너무 많습니다.” 

권 교수는 이상이 대중문화 속에서 일종의 난봉꾼처럼 재현됐고, 심지어 평단에서도 곡해됐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게 ‘섹스 시’로 알려진 작품 ‘차8씨의 출발(且8氏の出發)’이다. 권 교수는 “‘且8氏’는 남성 성기를 표상하는 기호로 읽기보다는 이상이 즐겼던 ‘글자놀이’로 풀어야 한다”고 했다. 한자 ‘차(且)’와, 숫자 8의 한자(八)를 결합하면 ‘구(具)’가 된다. 이 시는 이상과 친했던 화가 구(具)본웅의 첫 개인전에 대한 헌사로 발표한 시라는 얘기다. 

 
권 교수는 “대중매체가 이상을 신비화하거나 반대로 세속화하면서 오해가 전파됐다”면서도 “물론 역으로 그 덕에 이상이 기억된 면도 있다”고 했다.

“이상이 도쿄에서 쓴 수필 ‘동경’은 식민지 예술가가 쓴 제국의 문명에 대한 가장 신랄한 비판적 에세이입니다. 이상은 식민지 근대의 후진성을 극복하려 했던 대표적 작가지요.” 



그는 “근래 유럽 학자들이 일본 근대문학을 연구하다가 이상의 시를 발견하고 ‘식민지 조선에 어떻게 이런 인물이 있는가’라며 너무나 놀란다”고 덧붙였다. 유럽이나 일본에 유학한 것도 아니면서 당대 독일이나 프랑스의 초현실주의 시보다 더 뛰어난 의미구조를 가진 시를 썼다는 데 경탄한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이상이 조선총독부의 건축기사로 일하게 된 사정, 이상이 자란 큰아버지 집과의 관계, 일본 도쿄의 주소 등도 연구를 통해 새로 밝히거나 바로잡았다.

소속 대학에서 한국학 전공 개설을 추진 중인 그는 1, 2년 뒤 성과를 볼 수 있다고 했다. “‘한국 문화의 세계화’를 말한 게 한 20년 됐지만 대중음악, 드라마, 음식처럼 생활문화나 문화산업만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 바탕이 되는 문학을 비롯해 미술, 음악, 전통예술의 세계화에 대한 뒷받침은 부족합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3/all/20170626/85054013/1#csidx84555359f61d9d4a3b1bf49cff1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