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이상의 집’에서 만난 권영민 교수는 자신이 평생 모은 한국문학 관련 도서 1만2000여 권을 한국학 전공 개설을 추진 중인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 기증했다고 밝혔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권영민 단국대 석좌교수 겸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한국 문학 담당 교수가 최근 전한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상(1910∼1937)의 아내였던 변동림 여사의 회고다. 변 여사는 뒷날 김향안으로 개명했고 김환기 화백과 결혼했다.
권 교수는 올 3, 4월 ‘권영민 교수의 문학 콘서트’(해냄)와 ‘한국 모더니즘 문학의 탄생―이상과 그의 문학’(세창출판사)을 잇따라 펴냈다. 미국에서 강의가 없는 여름학기를 맞아 귀국한 그를 최근 서울 종로구 ‘이상의 집’에서 만났다.
이상의 문학을 연구하던 권 교수는 1990년대 초반 환기미술관 건립을 추진하러 서울에 와 있던 변 여사를 서울 평창동의 한 식당에서 만났다고 했다. 당시 변 여사는 이상의 소설 ‘실화(失花)’가 이상과 아내인 자신의 이야기라는 평단 일각의 시선 탓에 고통을 받았다며 하소연했다. “변 여사는 ‘이상의 소설 속 아내가 모두 자신이라면 그게 무슨 문학이겠냐’고 했죠. 한국의 비평가들이 문학을 읽을 줄 모르고 이상을 모르면서 대가인 체한다며 비판하더군요. 사실 이상의 생애와 문학에 대한 오해는 지금도 너무 많습니다.”
권 교수는 이상이 대중문화 속에서 일종의 난봉꾼처럼 재현됐고, 심지어 평단에서도 곡해됐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게 ‘섹스 시’로 알려진 작품 ‘차8씨의 출발(且8氏の出發)’이다. 권 교수는 “‘且8氏’는 남성 성기를 표상하는 기호로 읽기보다는 이상이 즐겼던 ‘글자놀이’로 풀어야 한다”고 했다. 한자 ‘차(且)’와, 숫자 8의 한자(八)를 결합하면 ‘구(具)’가 된다. 이 시는 이상과 친했던 화가 구(具)본웅의 첫 개인전에 대한 헌사로 발표한 시라는 얘기다.
권 교수는 “대중매체가 이상을 신비화하거나 반대로 세속화하면서 오해가 전파됐다”면서도 “물론 역으로 그 덕에 이상이 기억된 면도 있다”고 했다.
“이상이 도쿄에서 쓴 수필 ‘동경’은 식민지 예술가가 쓴 제국의 문명에 대한 가장 신랄한 비판적 에세이입니다. 이상은 식민지 근대의 후진성을 극복하려 했던 대표적 작가지요.”
권 교수는 이상이 조선총독부의 건축기사로 일하게 된 사정, 이상이 자란 큰아버지 집과의 관계, 일본 도쿄의 주소 등도 연구를 통해 새로 밝히거나 바로잡았다.
소속 대학에서 한국학 전공 개설을 추진 중인 그는 1, 2년 뒤 성과를 볼 수 있다고 했다. “‘한국 문화의 세계화’를 말한 게 한 20년 됐지만 대중음악, 드라마, 음식처럼 생활문화나 문화산업만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 바탕이 되는 문학을 비롯해 미술, 음악, 전통예술의 세계화에 대한 뒷받침은 부족합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