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건기 버티는 비법은
뿌리ㆍ줄기에 저장한 수분
자연재해 만나도 재생능력 탁월
탄자니아의 초원에 아프리카바오밥 두그루가 나란히 서 있다. 탄자니아 교민 조정석씨 제공
“바오밥나무는 자칫 늦게 손을 쓰면 그땐 정말 처치할 수 없게 된다. 별을 온통 엉망으로 만드는 것이다.
뿌리로 별에 구멍을 뚫는 것이다. 게다가 별이 너무 작은데 바오밥나무가 너무 많으면 별이 산산조각이 나버리고 만다.”(생텍쥐페리 ‘어린왕자’ 중에서)
황량한 초지에 푸른 하늘을 어깨 위로 받치고 있는 거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바오밥나무는 우리에게 소설 어린왕자로 더욱 친숙합니다. 올해는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가 출간(1943년)된 지 무려 74년이 되는 해인데요. 어린왕자에 등장하는 바오밥나무는 작은 별을 산산조각 낼 수 있는 무서운 나무로 등장합니다. 특히 삽화에 묘사된 별을 휘감고 있는 바오밥나무는 무척이나 강한 인상을 남기죠.
실제 바오밥나무는 20m까지 자랄 정도로 매우 크고, 뿌리도 깊게 내리는 나무인데요. 가까이서는 한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압도적인 모습으로 다양한 전설과 신화에 등장하면서 아프리카에서는 숭배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독특한 모양만큼 다양한 이름
바오밥나무의 일반명은 바오밥(Baobab)으로,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대개는 종자가 많이 있다는 의미인 부히밥(Buhibab)에서 유래됐다고 여겨집니다. 바오밥은 아단소니아속(adansonia)에 속하는 식물들을 의미하는데, 아단소니아라는 이름은 이 식물을 최초로 소개한 프랑스의 식물학자이자 탐험가인 아단손(michel adanson, 1727-1806)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바오밥나무는 독특한 모양만큼이나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집니다. 열매가 달려있는 모양이 쥐가 달린 것 같아 죽은 쥐 나무라고 부르기도 하며, 부드러운 열매 속은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원숭이빵나무라고도 불립니다. 또 옆으로 넓게 퍼진 가지모양이 뿌리를 닮아 있어 뒤집혀진 나무라고도 합니다.
에티오피아의 암하라어로는 밤바(Bamba), 동아프리카 공용어인 스왈리히어로는 음부유(Mbuyu), 마다가스카르의 말라가시어로는 레날라(Renala) 등 정말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넓은 지역에 분포하는 만큼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와 호주에 자생하는 바오밥
바오밥나무는 예전에는 전세계에 모두 8종이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가장 많은 6종이 세계에서 4번째로 큰 마다가스카르 섬에 분포하며, 나머지 2종은 아프리카 대륙과 호주북부에 각각 1종씩 자생한다고 했죠. 그러나 최근(2012년)에 아프리카동남부 고산지대에서 키리마바오밥(A. Kilima)으로 명명된 새로운 1종이 발견돼 현재는 모두 9종으로 늘어났습니다.
아프리카바오밥으로 불리는 아단소니아 디기타타(A. digitata)는 주로 평지나 저지대에서 볼 수 있는데 비해 키리마바오밥은 해발 650~1,500m의 산악지대에서 발견됩니다. 실제 종명인 ‘키리마(kilima)’도 스와힐리어로 언덕(hill)을 뜻하는 단어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키리마바오밥은 줄기, 잎, 꽃 등이 전반적으로 아프리카바오밥에 비해 작은 것이 특징인데요. 특히 꽃가루(화분)의 모습을 현미경으로 보면 확연히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눈에 보이는 형태와 형질만으로는 두 종을 구별하기 쉽지 않다고 합니다.
바오밥나무가 어떻게 아프리카와 호주 북부에까지 분포하는 지에 대해 여러 가설이 있습니다. 먼저 고대에 존재한 하나의 큰 대륙이 나눠지면서 분포지가 분리됐다는 이론과 열매가 해류를 통해 원거리 전파가 되었다는 설명 혹은 인류의 이동과 연관이 있을 거라는 설명 등이 있지만 아직까지도 명확하게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바오밥의 분포는 전 세계 분류학자들이 연구를 계속하고 있어 곧 실마리를 찾을 것으로 보입니다.
약재에서 여관까지… 하나도 버릴게 없는 나무
2013년 12월 탄자니아 한 마을의 바오밥나무 아래에서 주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바오밥나무 그늘은 마을 주민들에게 모임장소 역할을 한다. 조정석씨 제공
바오밥나무의 줄기는 수분이 많고 푸석푸석해 목재로는 잘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지인들은 껍질을 벗긴 후 섬유를 뽑아내 로프나 바구니 등 생활용품부터 공예품이나 전통악기의 현까지 다양하게 사용합니다. 나머지는 땔감으로 사용하죠.
오래된 바오밥나무는 줄기 가운데가 썩어서 큰 공간을 만듭니다. 나무가 워낙 크다 보니 나무 줄기에 생긴 공간은 곡식창고나 감옥 등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매점, 와인바(Bar), 심지어 여관으로 이용하면서 매력적인 관광명소로 탈바꿈하기도 합니다.
바오밥 열매의 딱딱한 껍질을 깨고 안쪽에 있는 과육과 종자를 분리하면 과육은 쉽게 가루로 만들 수 있어 주스나 반죽한 뒤 빵을 만들 때 씁니다. 현지 어린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간식거리죠. 민간요법으로 해열제나, 말라리아 치료제 등에 사용했으며, 씨앗에서 추출한 오일을 이용해 잇몸 염증과 벌레물린데 쓰기도 했습니다. 실제 아단손이 아프리카 세네갈에서 연구할 때 바오밥 나무 잎을 끓인 물을 계속 마셨다고 전해지기도 합니다.
바오밥나무 열매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오렌지 보다 6배나 많은 비타민 C, 우유보다 3배나 많은 철분을 가지고 있어 영양학적으로도 매력적인 식품소재입니다. 또 항산화물질이 풍부해 최근에는 기능성 식품이나 건강보조식품으로서 각광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바오밥나무 열매의 분말을 판매하고 있답니다.
아프리카바오밥의 잎과 수피. 바오밥나무 껍질에서 뽑아낸 섬유는 로프나 바구니 등 생활용품으로 사용된다. 국립생태원 제공/2017-08-23(한국일보)
불굴의 생명력과 장수의 상징
바오밥나무가 자라는 지역은 주로 열대 사바나 기후인데요. 건기와 우기가 뚜렷한 그곳에서 자라는 식물은 혹독한 건기에 살아남기 위한 여러 가지 적응방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오밥 나무는 수간경(caudiciform) 식물로서 뿌리나 줄기에 많은 물을 저장한 뒤 건조한 시기를 견디는데 이 시기에는 잎이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죠. 증산작용(물이 기체화해서 식물체 밖으로 나오는 현상)으로 인한 수분손실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1월경이 되면 온도가 내려가면서 낙엽이 지는데요. 그때부터는 물주는 것을 완전히 중단합니다. 4월경부터 잎이 나기 시작하는데 이맘때부터 아주 소량의 물만 주면서 관찰하다가 잎이 자라고 무성해지는 것과 보조를 맞춰 물주는 시기와 양을 늘려가야 합니다. 처음 바오밥나무를 키울 때는 이렇게 오랫동안 물을 주지 않아도 죽지 않는게 의구심이 클 수 있는데요. 만약 잎이 없는 상태로 물을 계속 주게 되면 오히려 뿌리와 줄기부분이 썩을 수 있답니다.
바오밥나무의 묘목은 비교적 빨리 자라는 편이고, 모양도 아래가 넓고 줄기 끝이 가늘어 다른 나무와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환경에 적응하면서 점점 원통형의 줄기가 뚱뚱해 집니다. 이쯤 되면 성장속도가 점점 느려지면서 매우 오래 살아가게 됩니다.
2014년 8월 탄자니아의 바오밥 나무가 벼락을 맞아 세 갈래로 갈라져 있다. 조정석씨 제공
현지인들은 바오밥나무가 5,000년까지 산다고들 이야기 하지만 실제 이렇게 오래 살아있는 바오밥나무는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나이테도 희미한데다, 오래될수록 속이 비어져 정확한 나이를 알기 어렵기 때문이죠. 과학자들이 탄소동위원소법으로 측정한 가장 오래된 바오밥나무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림포포지역의 글렌코 농장에 있는 글렌코바오밥으로 약 1,835년의 나이를 가지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를 근거로 바오밥나무는 2,000년 이상 까지도 살수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글렌코바오밥나무는 둘레가 47m에 달해 현존하는 가장 큰 바오밥나무로 알려져 있었지만 2009년에 몇 개로 쪼개져 버리면서 현재는 그 지위를 내려놓았죠.
이처럼 오랫동안 살아가다 보면 수많은 자연재해와 맞닥뜨립니다. 바오밥나무는 재생능력이 강해 상처를 입더라도 표피 등이 쉽게 재생되고, 불에 대한 적응력 또한 뛰어나 현지에서는 그을린 상처를 가진 채 살아가는 바오밥나무를 많이 만나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아버지,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 때부터 한결같은 모습으로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고 살아가던 바오밥나무를 현지인들은 죽지 않는 나무로, 그래서 생명의 나무로 숭배하고 있습니다.
생태계 균형 유지하는 소중한 자산
마다가스카르의 바오밥나무는 서식지가 심각하게 훼손되어 보존에 어려움이 많다고 하는데 특히 그랑디디에바오밥 등 3종은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에서 멸종위기에 처한 식물로 분류합니다.
바오밥나무는 그 지역의 생태계 균형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핵심종입니다. 이들의 뿌리는 펌프처럼 땅속 깊은 곳에 있는 수분을 끌어와 최대 10만 리터까지 몸에 저장하면서, 가뭄에 단비처럼 필요로 하는 동물들에게 물을 제공하죠. 실제 코끼리들은 바오밥 나무 껍질을 씹어서 수분을 섭취한다고 합니다. 주변의 동물들에게 열매와 그늘을 제공하기도 하고, 피난처가 되기도 하죠. 척박한 환경에 살아있는 오아시스인 셈입니다.
마다가스카르의 말라가시어로는 레날라(Renala)라 불리는데 이 뜻은 ‘숲의 어머니’라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바오밥나무는 생태학적인 가치뿐 아니라 사람들에게는 경제적으로 중요한 생계수단이고 동시에 다양한 문화를 형성하는데 도움을 주는 더없이 귀중한 존재입니다. 만약 바오밥나무가 모두 사라진다면 우리가 익히 알던 초원의 모습을 더는 볼 수 없을 지도 모릅니다.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지역에 주로 분포하는 바오밥나무는 20년 이상 자라야 꽃을 피우고 꽃이 핀 뒤에도 2~3일 내 떨어져 발견하기 쉽지 않다. 7월 22일 충남 서천 국립생태원 에코리움에서 꽃을 피운 바오밥나무. 국립생태원 제공
얼마전 서천의 국립생태원에 있는 바오밥나무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꽃을 피웠습니다. 가지 아래로 길게 달리 꽃봉오리가 해질 무렵이 되자 천천히 벌어지면서 마침내 흰색의 큰 꽃이 자태를 드러내었습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오랫동안 감상할 기회를 주지는 않더군요. 꽃이 핀지 2일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꽃잎과 수술통이 꽃받침과 분리되어 떨어져 버렸습니다. 나무가 자라 꽃이 피는 것이 대수로운 일이겠냐마는 오랫동안 키워오면서 그간 애정을 쏟은 나무가 마침내 어른이 된 것 같아 정말 뿌듯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국립수목원, 경주 동궁원 등 여러 식물원에서 바오밥나무를 볼 수 있습니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바오밥 나무가 품고 있는 많은 이야기와 강인한 생명력을 느껴볼 수 있는 기회가 국내에도 열려 있습니다.
이경철 국립생태원 온실식물부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