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9.18 03:05
[美·이라크 분리독립 움직임 제동… 25일 주민투표 미뤄질 수도]
이라크, 유전지대 내줄 위기 "군사 개입도 고려하고 있다"
터키·이란도 반대 뜻 밝혀
美도 중동정세 안정이 우선 "쿠르드족 주민투표 지지 안해"
미국·이라크 등이 주도한 테러 조직 '이슬람국가(IS)' 격퇴전에 참전해 큰 공을 세운 쿠르드족이 독립국가 수립을 위한 주민투표를 추진하자, 미국과 이라크가 독립에 반대하고 나섰다. 독립을 위한 쿠르드족의 오랜 꿈이 이번에도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쿠르드족은 오는 25일 이라크로부터 분리 독립하기 위한 주민 투표를 실시할 계획이다.
중동 매체 알자지라는 16일(현지 시각) "쿠르드족이 IS 최대 거점 도시인 이라크 모술을 탈환하는 데 크게 기여하면서 독립의 꿈을 키워왔지만, 미국 등 국제사회의 독립 반대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쿠르드족은 아리안계 인종으로 고유의 언어와 생활양식을 갖고 있으며, 터키(1470만명)와 이란(810만명), 이라크(550만명), 시리아(170만명) 등지에 흩어져 살고 있다. 전체 인구가 3000만명에 이르지만, 한 번도 독립국가를 수립하지 못했다. 쿠르드족이 이번 IS 격퇴전에 앞장선 데는 이라크 내 근거지인 모술을 침입한 IS를 물리칠 필요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공을 세우면 오랜 염원이던 독립을 주장할 명분이 생길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오는 25일 쿠르드족의 분리 독립 투표는 이라크 북부 지역에 있는 쿠르드 주민 500여만명을 대상으로 실시된다. 투표는 결과가 '찬성'으로 나와도 국제법적인 효력은 없다. 그러나 쿠르드족은 투표 결과를 이라크 정부와의 '협상 카드'로 활용하기 위해 이번 독립 투표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러나 이라크는 "군사 대응"까지 거론하며 분리 독립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이라크 정부는 지난 3년간 IS에 맞서 싸우기 위해 쿠르드족 민병대 '페슈메르가'에 도움을 요청하는 등 우호적 태도를 보였으나, 독립 주장에 대해서는 냉정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이다르 압바디 이라크 총리는 이날 AP통신 인터뷰에서 "(쿠르드족의 독립 투표 강행 등으로) 이라크 국민이 위협을 받는다면 이라크 정부는 군사 개입을 해서라도 이를 저지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도 중동 정세 변화를 우려하며 쿠르드족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미 백악관 대변인은 15일 브리핑에서 "IS 사태를 겪은 이라크의 정국 안정이 최우선 과제"라면서 "미국은 쿠르드족 주민 투표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했다. 뉴욕타임스는 브레트 맥거크 IS 격퇴전 담당 미 대통령 특사를 인용해 "쿠르드족 독립 분리와 관련한 대안이 협상 테이블에 올려져 있다"면서 "주민 투표가 연기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미국 국제 정세 분석업체 스트랫포는 "이라크가 쿠르드족 독립에 난색을 표하는 것은 독립을 희망하는 지역이 유전(油田) 지대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석유는 이라크 정부 전체 수입의 86%(2016년 기준)를 차지한다. 이 같은 외화 수입원을 쿠르드족과 나눌 수 없다는 것이다.
쿠르드족이 소수민족으로 살고 있는 터키와 이란 등도 일제히 '쿠르드스탄(쿠르드 국가)'의 탄생을 반대하고 있다. 이라크 쿠르드족의 독립이 현실화하면 터키·이란 내에서도 쿠르드족의 독립 움직임이 확산해 정국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비날리 이을드
름 터키 총리는 지난 15일 "이라크 내 쿠르드족이 독립 투표를 강행한다면 단계적으로 제재를 시행할 것"이라며 "쿠르드족은 아직 시간이 남아 있을 때 '실수'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쿠르드족은 터키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다. 터키가 이라크 북부 국경 검문소를 폐쇄하면 내륙에 있는 이라크의 쿠르드족은 생필품 조달과 수출입에 큰 불편을 겪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