宗敎

이슬람 들여다보기 - 핫즈(Hajj), 메카 대순례

이강기 2017. 10. 7. 21:18

이슬람 들여다보기

핫즈(Hajj), 메카 대순례

글 : 박현도  명지대 중동연구소 연구교수

  • 월간조선 10월호
⊙ 무슬림들, 메카의 카으바 성전을 아담이 세운 인류 최초의 유일신 성전이라고 믿어
⊙ 사우디아라비아, 이슬람 국가 인구 비례해서 순례 비자 발급, 인도네시아는 평균 대기 기간 37년
⊙ 대순례는 아브라함의 유일신 신앙을 완벽하게 이슬람적으로 표현하는 의례
⊙ 올해는 35만2122명이 대순례 참가

박현도
1966년생. 서강대 종교학과 졸업, 캐나다 맥길대 이슬람학 석사 및 박사(수료), 이란 테헤란대 이슬람학 박사 / 현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인문한국 연구교수, 이화여대 겸임교수, 외교부 정책자문위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동연구회전문위원, 종교평화국제사업단 영문계간지 《Religion & Peace》 편집장 / 《법으로 보는 이슬람과 중동》 《IS를 말한다》 등 공저 다수 저술
무슬림들의 가장 큰 성지 메카의 카으바 성전. 아담이 세운 최초의 유일신 신전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
  9월 4일 라마단 단식과 함께 이슬람 의례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메카(Mecca) 성지(聖地) 대순례가 끝났다. 핫즈(Hajj)라고 부르는 대순례는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가 죽기 전에 행한 순례를 본받아 행한다. 이슬람력으로 12번째 달인 둘힛자(Dhu'l-Hijjah)월 8일에 시작하여 12일이나 13일에 끝나는데, 이슬람력으로 1438년인 올해 2017년엔 8월 30일에 시작하여 9월 4일에 마무리됐다.
 
  순례의 장소는 무슬림들이 인류 최초의 유일신 성전으로 여기는 카으바(Ka‘bah)가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다. 메디나와 함께 무슬림만 출입할 수 있다. 무슬림들은 예배할 때는 메카를 향한다. 이슬람에서 천문학이 발전한 것도 자신이 어디에 있든 예배 때 메카 쪽을 바라봐야 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도축(屠畜)할 때에도 동물을 예배 방향인 메카 쪽으로 향하게 한다.
 
 
  ‘인류 최초의 유일신 성전’
 
무함마드는 ‘검은 돌’을 다투지 않고 카으바 성전에 안치하는 지혜를 발휘했다.
  메카는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가 태어난 곳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지로 여겨 순례하는 것은 아니다. 인류 최초의 유일신 성전인 카으바가 있기 때문에 성스러운 곳이다. 무슬림들은 인류의 시조 아담이 세운 이 유일신 성전을 하나님이 노아의 홍수로 인간을 벌할 때에도 흔적을 남겨 둬 아브라함이 재건했다고 한다. 카으바는 아랍어로 큐브(cube), 즉 육면체라는 뜻으로 육면체 구조물이다.
 
  한자로는 천방 (天房), 곧 하늘의 집이라고 부르는 이 성소는 아브라함이 재건한 이후 다신(多神)숭배에 빠진 인간들로 인해 더럽혀졌다가 무함마드가 메카를 정복한 후 다시 정화했다고 무슬림들은 믿는다. 13m 높이인 카으바는 하늘에 있는 ‘세상의 집(알바이트 알마으무르)’의 복사판이라고 한다. 무슬림들에게 이곳은 ‘바이트 알라’ 곧 ‘하나님의 집’이고, 인류 최초의 유일신 신앙이 자리 잡은 세계의 중심지다. 그래서 카으바가 있는 메카를 ‘세상의 배꼽’이라고 불렀다.
 
  카으바 동쪽 모서리에는 검은 돌이 있다. 무슬림 전승(傳乘)에 따르면 아담 시대의 돌이라고 한다. 직경이 약 30cm인 것으로 알려진 이 돌을 일각에서는 운석(隕石)이라고 하지만 정확하진않다. 전승에 따르면 무함마드가 예언자 소명을 받기 전, 메카 사람들이 카으바를 수리한 후 검은 돌을 제 자리에 서로 먼저 갖다 놓는 영광을 갖고자 싸우다가 성전에 제일 먼저 들어오는 사람에게 방법을 묻기로 했다. 그때 무함마드가 들어왔고, 사람들이 의견을 묻자 무함마드는 천 위에 돌을 올린 후 다투던 사람들이 천을 한쪽씩 잡게 하는 방법으로 공평하게 돌을 운반해 지금의 자리에 안치했다고 한다.
 
  이슬람 역사를 돌이켜보면 683년 메카 공방전에서 투석기에서 날아온 돌에 맞아 검은 돌이 일부 손상되었으나 파편을 다시 붙였다고 한다. 930년에는 돌을 가져가면 종말이 올 것이라고 믿은 까라미따(Qaramitah)파들이 검은 돌을 탈취하여 보관하고 있다가 돌려주기도 했다. 무슬림들은 순례 시 이 돌에 입을 맞추거나 만지고, 사람들이 너무 많을 경우에는 멀리에서 손을 들어 경의를 표한다.
 
 
  사우디, 순례 비자 발급
 
  이슬람교에서 순례는 소순례와 대순례로 나뉜다. 둘의 차이는 기간과 규정 의례의 차이다. 우므라(Umra)라고 하는 소순례는 연중 어느 때건 할 수 있다. 대순례는 정해진 기간에 한다.
 
  또 소순례에 비해 대순례는 순례자가 행해야 할 의례가 더 많다. 대순례는 신체가 건강하고, 경제적으로 여행할 능력이 있는 성인 신자라면 평생 한 번은 해야 하는 의무다. 순례를 위해 대출을 하거나 집을 비우는 동안 가족들이 평소와 같은 안정된 삶을 유지할 수 없는 경우에는 순례를 해도 무효다.
 
  교통이 발달하기 전인 과거에는 집을 떠나 메카에 도달하는 데 1년 이상 걸리기도 하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중세의 여행가 이븐 바투타는 1325년 6월 13일에 고향 모로코의 딴자를 출발하여 북아프리카를 가로질러 이집트, 시리아, 다마스쿠스, 메디나를 거쳐 무려 1년 3개월 만인 1326년 9월에야 비로소 메카에 도착했다. 병에 걸려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만일 신께서 나의 죽음을 예정하셨다면, 얼굴을 메카로 향한 채 길 위에서 죽음을 맞으리라”는 굳은 집념으로 대순례 강행의지를 꺾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럴 정도로 메카 여정은 쉽지 않았다. 순례를 마친 사람은 핫지(Hajji), 즉 ‘대순례를 마친 사람’이라는 문패를 달 정도로 자부심을 가졌고, 주변 사람들 역시 핫지를 존경했다.
 
  오늘날이라면 항공편으로 14시간이면 딴자에서 메카까지 갈 수 있다. 이븐 바투타처럼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된다.
 
  문명의 이기 덕에 여정이 편해진 만큼 순례를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과거와 달리 이제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순례 비자를 내주어야만 꿈을 이룰 수 있다. 한정된 공간에 너무나도 많은 순례자가 몰리기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는 무슬림 인구 1000명당 1장 꼴로 해마다 국가별 비자 수를 정하여 발표한다. 여성의 경우 45세 이상이면 배우자의 동의하에 혼자 순례가 가능하다. 45세 이하 여성은 반드시 배우자와 함께 순례를 해야 한다. 비자 발급비는 없지만, 텐트 사용비, 성지 이동 시 교통비 등 순례 부대비용을 내야 한다.
 
 
  인도네시아, 대기자 320만명
 
   할당된 비자 수는 전 세계 국가별 무슬림 인구 수에 비례한다. 역시 1위는 무슬림 인구 세계 1위를 자랑하는 인도네시아로, 22만1000명이 할당됐다. 2위는 파키스탄, 3위는 인도 순이다.
 
  배정된 인원에 따라 각 국가는 순례자를 선발한다. 가려는 사람은 많고 자리는 한정되어 있다 보니 추첨을 해서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당첨되기가 로또보다 더 어렵다고 한다.
 
  올해 최고령(最高齡) 순례자였던 104세의 인도네시아 여성 이부 마리아(Ibu Mariah)는 90세에 소순례를 했지만, 대순례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320만명이 대순례 신청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 평균 대기 기간이 무려 37년이다.
 
  이처럼 순례하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니라 전 세계 무슬림을 대표하는 기관에서 순례를 관장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물론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런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나름대로 더 많은 순례자를 수용하기 위해 성지 시설 확장 공사도 했고, 그 결과 올해 순례에는 더 많은 사람에게 문호를 개방할 수 있었다. 특히 외교적으로 마찰을 빚고 있는 카타르에도 순례비자를 할당하였을 뿐 아니라 국적기 항공사를 보내어 카타르 순례자들에게 입국의 편의를 제공하고자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순례비용, 방글라데시 평균 3년치 연봉
 
  대순례 비용도 만만찮다. 1인당 평균 294만원에서 486만원이 든다. 말레이시아의 경우 평균 6개월 월급, 방글라데시에서는 평균 3년치 연봉에 달하는 금액이다. 경제적으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영국의 경우 대순례를 하려면 2010년에는 평균 3000파운드(약 450만원)가 필요하였는데, 작년에는 무려 3배가 뛴 평균 9000파운드(약 1344만원)가 들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순례가 시작하기 4일 전에는 반드시 사우디아라비아에 입국해야만 하기 때문에 보통 순례기간은 최소 9일이 걸린다. 그만큼 경비가 더 들 수밖에 없다. 성지 주변에는 고급 호텔들이 들어서 있다. 가난한 나라에서 온 순례자들은 성지에서 5km 이상 떨어진 곳에 가야만 비교적 싼 숙박시설을 찾을 수 있는 실정이다.
 
  사우디아라비아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순례자는 작년에 비해 50만명이 늘어난 235만2122명이다.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대이동이다.
 
  이 중 해외 순례자는 175만2014명이다. 항공편으로 164만8332명, 육로로 8만8855명, 선박으로 1만4827명이 사우디아라비아로 입국하였다. 약 5만7500대의 버스가 순례자들을 성지로 실어 날랐다.
 
  순례자들의 편의와 안전을 위해 30만명에 달하는 시민과 군경이 순례 지원 활동에 나섰고, 순례자들의 건강을 위해 3만명에 달하는 의료진, 성지와 주변 청결을 위해 2만3000명의 환경미화원을 동원했다. 또 통신서비스 요원 3700명, 운송요원 3만6000명을 투입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자국 내 순례자는 60만108명인데, 이 중 외국 국적자는 9만9009명이다. 자국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허가를 받아야만 순례를 할 수 있다. 성지에 이르는 길목마다 경찰이 검문검색을 실시하여 인가 받지 않고 성지로 들어오려던 약 22만 대의 차량과 약 49만명의 순례자들을 적발하여 되돌려 보냈다. 불법 순례여행사 101개를 폐쇄했다.
 
 
  ‘아브라함의 종교’ 이슬람
 
이슬람 전승에 의하면 아브라함이 희생물로 바치려 했던 아들은 이스마엘이었다.
  무슬림들은 대순례에서 무엇을 하는 것일까? 대순례는 라마단월 단식과 함께 무슬림들이 삶을 돌아보고 신앙의 뜻을 헤아리며 자기 성찰을 하는 시간이다. 대순례의 핵심 인물은 아랍어로 이브라힘(Ibrahim)이라고 부르는 아브라함이다. 대순례는 유대-그리스도교 전통의 아브라함의 유일신 신앙이 완벽하게 이슬람적으로 표현되는 의례다.
 
  무슬림들은 아브라함을 유일신 신앙의 선조로 칭송한다. 코란 3장 6절에 따르면 “아브라함은 유대인도 그리스도인도 아니라 진정 유일신을 믿은 사람이다. 다신숭배자가 아니다”라고 한다. 아브라함을 유일신 신앙의 선조로 따르는 이슬람은 새로운 종교가 아니라 ‘아브라함의 유일신 신앙을 온전하게 계승한 신앙’으로, 이른바 ‘오래된 새길’이다. 코란은 이슬람이 ‘아브라함의 종교(Millat Ibrahim・밀라트 이브라힘)’라고 선언한다.
 
  이슬람교의 전통적 입장에서 따지자면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는 순수한 아브라함의 유일신 신앙을 바르게 계승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두 종교전통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신앙의 지표로 삼기 때문에 무슬림 학자들은 유대인, 그리스도인, 무슬림을 ‘아브라함의 자녀(Children of Abraham)’라고 부른다.
 
  코란은 4장 125절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친구’로 삼았다고 한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별칭은 ‘하나님의 친구’다. 이처럼 이슬람에서 아브라함은 유일신 신앙의 선조로 극찬의 대상이다. 아브라함을 본받아 하나님을 올곧게 믿으려는 무슬림들의 진지한 자세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종교의례가 메카 대순례다.
 
  이슬람의 아브라함 이야기는 유대-그리스도교와 다소 다르다. 무슬림 전승에서 아브라함은 이사악(이스하끄)이 아니라 이스마엘(이스마일)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번제물(燔祭物)로 바친다. 유대-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이사악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자신을 희생물로 바친다는 사실을 사전에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슬람 전통에서 이스마엘은 자신이 번제물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 뿐 아니라, 이에 기꺼이 응한다. 대순례에서 무슬림들은 자신의 아들을 내어놓는 아브라함과 스스로를 기꺼이 바치는 이스마엘의 굳은 신앙심을 칭송하고 본받는다.
 
  또 어린 아들 이스마엘을 위해 물을 찾아 나선 아브라함의 아내 하갈(하자르)의 모성을 기억하고 그 애타는 마음을 체현한다.
 
 
  소순례
 
무슬림들이 순례 때 입는 옷 이흐람.
  무슬림들은 순례를 하기 위해 먼저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한 뒤 순례자의 옷으로 갈아입는다. 순례 기간 동안 무슬림 남성은 국적, 인종, 직업, 지위에 관계없이 모두 똑같이 재봉선 없이 통천으로 된 두 쪽의 하얀 옷을 입는데, 이를 이흐람(Ihram)이라고 한다. 여성은 각기 정숙한 옷을 입는다. 남성의 옷은 이슬람의 통일성을, 여성의 복장은 이슬람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성과 속의 경계선을 넘으면서 신에게 자신이 성소에 들어왔음을 고하고, 먼저 카으바 주위를 시계 반대방향으로 일곱 번 돈다. 이때 검은 돌에 경의를 표한다.
 
  그런 후 사파(Safa)와 마르와(Mar-wah)라는 두 언덕을 모두 7번 왕복한다. 사파에서 시작하여 마르와에서 끝난다. 이는 아브라함의 아내 하갈이 갓난아이 이스마엘에게 먹일 물을 찾기 위해 애타는 마음으로 헤맨 심정을 체험하고 기억하기 위해서다.
 
  전승에 따르면 아브라함은 아내 하갈과 아들 이스마엘을 메카에 두고 떠났고, 하갈은 이스마엘의 목을 축이기 위해 아이를 놓고 물을 찾아 나섰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아이를 잃어버릴까 보아 언덕으로 뛰어올라 아이에게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두 언덕을 번갈아 오르는 의식을 행하는 것이다. 하갈은 천사의 도움으로 물을 얻었다. 천사의 날개가 닿은 곳에서 샘물이 솟아올랐는데, 이곳을 잠잠(Zamzam) 샘물이라고 한다. 지금도 이 샘물이 나온다고 믿는다. 그래서 순례자들은 성원 내에서 이 샘물을 마시고 물병에 담는다.
 
 
  아라파트 산에서
 
대순례를 앞두고 미나 평원에는 엄청난 크기의 텐트촌이 만들어진다.
  여기까지가 소순례다. 소순례를 마치면 일상으로 돌아왔다가 대순례 시작일인 8일에 다시 의례적으로 정결한 상태로 들어가 이흐람 복장을 하고 바로 미나(Mina) 평원으로 가서 텐트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평원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에어컨을 갖춘 약 5만개의 텐트를 마련해 놓았다.
 
  순례 이틀째인 9일 아침 일찍 순례자들은 아라파트(Arafat) 산으로 이동하여 일몰 때까지 머무른다. 아라파트 산은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번제물로 바치려고 한 곳이자, 무함마드가 인류평등, 무슬림 형제애, 신앙행위 준수 등의 내용을 담은 마지막 설교를 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순례자들은 여기에서 약 한 시간 동안 홀로 명상과 기도를 갖는다. 자신이 살아온 날들과 지은 죄를 돌이켜보며 반성하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를 행하지 않으면 순례 자체가 무효다.
 
  해가 지면 아라파트를 떠나 무즈달리파(Muzdalifah) 평원으로 이동한다. 무슬림들은 이곳에서 최소 49개의 작은 돌을 수집하고 하늘을 보며 노숙을 한다. 그리고 다음 날 동트기 전에 미나로 이동한다. 미나에서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번제물로 바치지 못하게 유혹한 사탄을 돌을 던져 쫓아버렸다. 무슬림들은 이를 기념하여 사탄을 상징하는 돌기둥 3개 중 가장 큰 것을 향해 무즈달리파에서 가져온 돌 일곱 개를 던진다.
 
 
  정결의식
 
이드 알아드하 예배를 보는 터키 군인들. 무슬림들에게 가장 중요한 의식 중 하나다.
  그러고 나서 아들을 기꺼이 희생하려 했던 신앙의 선조 아브라함을 본받아 양이나 염소나 소나 낙타를 번제물로 삼는 희생제를 지낸다. 이드 알아드하(Id al-Adha)라고 하는 이 행사는 라마단 단식월을 마치고 갖는 파단식제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이슬람 종교의례다. 순례에 참가하지 못한 사람들도 세계 곳곳에서 희생제를 지내며 이웃과 음식을 나누며 공동체 의식을 함양한다.
 
  이제 남성은 머리를 밀고, 여성은 머리카락 일부를 자른다. 순례를 마쳤다는 것을 뜻한다. 흥미로운 것은 과거에는 남성의 경우 머리카락을 면도기로 완전히 밀었는데, 면도날이 B, C형 간염 등 병균을 전염시키는 경우가 있어서 요즈음에는 완전히 밀기보다는 전기면도기로 아주 짧게 깎는 것을 더 권장한다.
 
  조금이라도 싸게 깎기 위하여 정부에서 공인받지 않은 이발사를 찾는 경우가 있다. 비공인 이발사는 10사우디리얄(약 3000원), 공인 이발사는 20사우디리얄(약 6000원)을 받는다. 가격차이가 딱 두 배다. 그러나 싼 게 비지떡이라고, 비공인 이발사들은 면도날을 청결하게 관리하지 못하여 병균을 옮긴다. 사우디아라비아 당국은 비공인 이발사를 강력히 규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공인 이발사가 근절되지 않는 것은 수입이 좋기 때문이다. 2014년의 경우 150명의 공인 이발사가 4일 동안 벌어들인 수입이 1인당 5000사우디리얄(약 150만원)에 달했다.
 
  머리를 깎으면 이제 의례적 정결상태에서 벗어나 성(性)행위만 제외하고 일상의 삶이 가능하다. 이발 후 다시 카으바 주위를 일곱 번 시계 반대방향으로 돈 후 사파와 마르와 언덕을 일곱 개 왕복함으로써 모든 의례적 제약에서 벗어난다. 이제 남은 2~3일 동안 다시 미나 평원에서 머물며 사탄을 상징하는 돌기둥 세 개를 향해 나머지 돌을 모두 던진다.
 
  올해는 인명사고 없이 무사히 지나갔지만, 순례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것은 사탄에게 돌을 던질 때다.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몰리거나 일정한 방향으로 질서 있게 움직이지 않아서 치명적인 압사(壓死)사고가 자주 일어난다. 2006년에는 350명이 깔려 죽었다. 2015년에는 2000명이 넘는 순례자들이 돌기둥에 접근하려다 목숨을 잃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이때 460여 명에 달하는 사망자가 발생한 이란은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의 안전 불감증을 비판하고 나섰다. 이 때문에 가뜩이나 정치적으로 불편한 양국 간 관계가 악화되기도 했다.
 
  사탄에게 돌팔매질을 한 후 다시 카으바 주위를 일곱 번 돈 후 대순례를 마치고 귀향길에 오른다. 순례기간 동안 매시간당 평균 10만7000명이 카으바 주위를 돈 것으로 집계됐다.
 
 
  내적 변화의 체험
 
미국의 과격파 흑인 무슬림 지도자였던 맬컴 엑스는 메카 순례를 다녀온 후 입장을 바꾸었다.
  무슬림들은 대순례 후 내적으로 깊은 변화를 체험하고, 긍정적으로 자신과 주변을 바꾼 사람들이 적잖다. 흑인우월주의를 주창하는 미국의 종교단체 ‘네이션 오브 이슬람(Nation of Islam 이슬람민족)’의 지도적 인물이었던 맬컴 엑스가 그러한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다. 그는 메카 순례 후 이슬람이 특정 인종의 우열이 아니라 만민평등을 가르친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생의 행로를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