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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표리부동(表裏不同) 중국, 속내는? - “北 방치해 美軍 대한해협 밖으로 밀어내는 것!”

이강기 2017. 10. 7. 21:26

총력 특집 | ‘핵 왕따 위기’ 한국외교의 초상 |

“北 방치해 美軍 대한해협 밖으로 밀어내는 것!”

북핵 표리부동(表裏不同) 중국, 속내는?

  • 송홍근 기자|carrot@donga.com

“北 방치해 美軍 대한해협 밖으로 밀어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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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中 레드라인은 ①만주 핵오염 ②한국 핵무장”
  • ● “영리한 김정은 中 레드라인 넘지 않게 관리할 것”
  • ● 北·中은 수레의 덧방나무와 바퀴 같은 관계
  • ● ‘안보 방파제’ ‘국제정치적 방패’로 서로 활용
“北 방치해 美軍 대한해협 밖으로 밀어내는 것!”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급사했다. 이튿날 중국 관영 환추(環球)시보는 사설을 통해 “중국은 북한에 가해지는 외부 압력을 막아주는 방패 구실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김정일 사망 직후 북한 체제 안정을 지지한다는 뜻을 외부에 알렸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현 국가주석) 리커창(李克强) 부총리(현 총리)가 앞다퉈 주중 북한대사관을 찾아 조문했다.  

베이징 주재 한국·미국·일본·러시아 대사를 불러 평양을 자극하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급변사태도 대비했다. 병력 43만 명을 북·중 국경에 배치했으며 조기경보기 정찰도 강화했다.   

9월 3일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9월 15일에는 탄도미사일 발사 시험을 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한 날 환추시보 사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중국 사회가 새로운 핵실험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지만 우리는 충동을 자제할 것이다. 중국은 대북 전면 금수(禁輸) 등 극단적 조치에 쉽게 동의하면 안 된다. 조선에 석유 공급을 완전히 중단하고 변경을 폐쇄한다고 해도 조선이 핵·미사일 활동을 억제할지 명확하지 않으며 오히려 중국, 조선 간 전면적 대립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럴 경우 미국과 한국은 북핵 문제를 중국에 떠넘기려는 목적을 이루게 돼 중국의 국가 이익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조선 핵 문제는 한미동맹이 군사 압박으로 조선에 불안을 주고 평양이 핵 보유를 정권 생존의 보장으로 여김으로써 발생한 문제인 만큼 중국은 이렇듯 복잡하고 첨예한 정치 싸움에서 선봉에 서면 안 된다.” 

1592년, 1894년, 1950년…

중국은 이렇듯 북한 안정이 중국 국익에 부합한다고 여겨왔다. 겉으론 비핵화를 강조하면서도 실제론 핵을 버릴 만큼 압박하진 않는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자세를 취해왔다. 신정승 전 주중대사는 이렇게 말했다.  

“북한 대외무역 85%를 중국이 차지하나 베이징이 평양을 본격적으로 압박할 의지, 역량을 가졌는지 의문이다. 중국에 북한이 가진 전략적 가치는 중요하다. 일정 수준 이상 제재를 가해 북한 붕괴를 초래하면 전략적 가치를 잃는다.” 

한국 시각에서 볼 때 북한 핵개발을 방조하는 것으로도 보이는 중국 태도를 역지사지(易地思之)하면 다음과 같다.  

중국에 북한은 사람으로 치면 목구멍(咽喉)이다. 육지론 동북3성, 바다론 보하이만(渤海灣·발해만)과 연접한다. 중국 수도권 베이징(北京) 톈진(天津) 안보와 관련해 순망치한(脣亡齒寒·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 관계이면서 중국 해군이 지정학적 숙적 일본을 공격할 때 정박할 동해로 나가는 출구를 가졌다. 중국, 일본이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동중국해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는 △한반도 △남중국해 △대만해협과 함께 미국, 중국 간 전략 경쟁이 벌어지는 곳이다. 요컨대 북한은 해양세력(미국, 일본)으로부터 안보를 지키는 요충이면서 유사시 해양세력을 공격할 발판이다. 중국이 해양세력보다 해·공군력이 약하다는 점에서 육지 완충지대는 더욱 중요하다.  

“임진왜란, 청일전쟁, 6·25전쟁에 참전한 것에서 미뤄보듯 중국은 한반도를 전략적 완충지대로 여겨왔다. 북한의 지정학적 역할에 대한 중국의 인식은 이 같은 맥락에서 변한 게 없다. 한국의 동맹인 미국의 영향력이 한반도 북부에까지 미쳐 압록강, 두만강에서 미군과 맞닥뜨리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전략적 판단이 바뀌지 않았다. 중국에 북한은 미국을 막아주는 방파제인 것이다.”(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서울대 명예교수)  

“한미동맹은 냉전시대 유물”

1950년 6·25전쟁, 1894년 청일전쟁, 1592년 임진왜란을 보자. 중국은 한반도가 해양세력 영향력하에 들어갈 상황에 처할 때마다 주저하지 않고 대군을 파견했다.

6·25전쟁 때 중국은 미국에 “중국 안보를 지키고자 조선전쟁에 개입한다”고 선언했다. 청일전쟁 때는 서구 열강 침략과 농민반란으로 ‘제 코가 석 자’인데도 한반도에 파병했다. 임진왜란 때는 만주족 흥기와 몽골족 침공으로 북방이 위태로운 상황인데도 육군, 해군을 파견해 조선을 지켰다.  

이렇듯 동아시아에서 미국과 전략 갈등을 빚으면서 패권 의지를 드러낸 중국에 북한의 전략적 가치는 1950년, 1894년, 1592년 한반도의 그것과 유사하다.

중국이 가진 일관된 전략 목표는 한반도 전체를 중국 영향력 아래 두는 것이다. “한미동맹이라는 냉전시대의 유물”(친강·秦剛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을 태평양 동쪽으로 밀어내겠다는 것이다.  

안보 당국 전직 고위 인사는 “2015년 9월 3일 중국 항일전승 70주년 열병식에서 한국 정상이 톈안먼(天安門) 망루에 올랐을 때 베이징은 중국의 방어 외연(外延)이 휴전선에서 대한해협으로 내려갈 수 있다고 오해했다”면서 이렇게 밝혔다.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한국, 중국이 격한 갈등을 빚는 원인은 상대방에 과도한 기대를 가졌기 때문이다. 한국은 핵실험을 한 북한을 베이징이 강력하게 제재해줄 것으로, 중국은 서울이 미국, 중국 사이에서 중립을 지켜줄 것으로 기대했다.” 

중국은 북한과 관계를 지칭할 때 혈맹(血盟)이란 낱말을 쓰진 않는다. 7월 6일 독일 베를린  한중 정상회담 때 시진핑 주석이 “중국과 북한은 선혈로 응고된(鮮血凝成的·선혈응성적) 관계”라고 표현해 파장이 일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 노력이 충분하지 않다. 더 많은 역할을 해 달라”고 주문하자, 시진핑 주석이 “중국과 북한은 이른바 선혈로 응고된 관계였음에도”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진다. 현재형이 아닌 과거형 표현인 ‘관계였음에도’ 앞에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언급했다고 한다. 

선혈로 응고된 관계

북한과의 관계를 두고 선혈(鮮血)이라는 낱말을 처음 쓴 이는 마오쩌둥(毛澤東)이다.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언한 직후 마오쩌둥은 “중화인민공화국 오성홍기엔 조선 공산주의자들과 인민의 선혈이 스며 있다”고 말했다. 중국공산당중앙당사연구실이 펴낸 ‘중국공산당역사’(2014)는 “조선 공산주의자 김일성, 최용건, 김책은 중국의 동지들과 일치단결해 함께 싸우면서 중국 인민과 조선 인민의 해방을 위해 중차대한 기여를 했다”고 기록한다.

외교 소식통은 북한과 중국은 현재 ‘선혈로 응고된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목표가 다르되 필요에 의해 서로를 활용하는 ‘전략적 이해관계 불일치하 일치 관계’라고 정리했다.

“중국은 6·25전쟁 때 대군을 파병해 40만 명이 전사하면서까지 북한 정권을 구해줬다고 여기는 반면 북한은 중국 국공내전 시 군수물자를 지원하고 인민해방군에 도피처를 제공해 중국 정권을 탄생시킨 최대 공로자라고 생각한다. 북한은 지정학적으로 중국의 군사전략적 최대 약점인 보하이만을 육지와 해상으로 감싸주는 역할만 하나 중국은 북한에 정치·경제·군사 안보를 제공해준다. 중국은 김정남 암살 사건 때 북한-말레이시아를 중재하는 등 국제정치적 방패 노릇도 해왔다. 또한 압록강 하구 파이프라인을 통해 원유를 지속적으로 공급하고 무역을 통해 정권 유지에 필수적인 자원을 제공하며 미국의 폭격 가능성을 억제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그는 북·중 관계를 보거상의(輔車相依·수레의 덧방나무와 바퀴가 서로 의지한다)에 빗댔다. 

“중국은 북한 외에도 러시아, 인도, 파키스탄 등 핵무기 보유 국가와 국경을 맞댔다. 동·남중국해와 인도 변경에서 군사적 갈등 내지 긴장 상태이기에 동아시아 패권국이 되기 이전에는 북한이 핵무기와 중·장거리탄도미사일을 보유하더라도 평양이 전쟁 도발 등으로 동아시아 안정을 흔들지만 않는다면 핵무장해 주한·주일미군, 일본군, 한국군을 견제해주는 게 낫다고 판단한다. 중국이 북한을 보호하는 것은 해양세력(미국, 일본)과 충돌 시 베이징, 톈진 등 수도권 안보와 관련해 북한이 방파제(Buffer Zone) 구실을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중국은 보하이만 지역 보호를 위해 2016년 1월 7대 군구를 5대 전구로 개편하면서 동북3성뿐 아니라 산둥반도(개편 전 지난군구 관할 지역)도 북부전구 관할에 포함하는 등 군사력 40%를 이곳에 집중했다. 북부전구에 속한 산둥성 군사력은 유사시 한반도를 겨냥한다.”

요동치는 거대한 체스판

동북3성과 지리적으로 이격(離隔)된 산둥반도가 북부전구에 포함된 것은 함의하는 바가 적지 않다.  

한반도에서 360㎞ 떨어진 산둥반도는 미군 동아시아 요충인 평택 맞은편에 있다. 산둥반도에 주둔하는 육·해·공군 지휘권이 북부전구 사령관 아래로 들어가면서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거나 북한 급변사태 시 중국군이 북·중 국경을 통해서만 한반도로 진출하는 게 아니라 동북3성 육·공군, 산둥반도 육·해·공군이 함께 작전하게 된 것이다. 

산둥성 칭다오(靑島)에 주둔한 북해함대 서해 진출 및 해상 봉쇄, 한반도 서부해안 직접 상륙, 동북3성 병력 북한 진출 등이 합동화한 전역에서 일사불란하게 이뤄지도록 지휘 체계를 바꿈으로써 군사력을 동원할 사태가 일어났을 때 전술 운용 폭이 커졌으며 해·공군력을 활용한 연합작전도 수월해졌다.  

북해함대는 유사시 대한해협으로 진출해 미국을 상대로 반(反)접근지역거부를 수행할 수도 있다. “중국 공군이 1시간이면 사드 체계를 초토화할 수 있다”(인민해방군 기관지 해방군보·解放軍報),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 미국과 한국이 휴전선을 돌파하면 중국도 군사적으로 개입해야 한다”(환추시보)는 함부로 지껄인 말만은 아닌 것이다.

미국은 북·중 간 특수 관계를 이해하기에 1971년 헨리 키신저-저우언라이(周恩來) 회담 이래 한반도 현상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으나 동아시아-서태평양에서 중국이 패권 의지를 드러낸 상황에서 북한이 6차례 핵실험을 수행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120년 전 유라시아 대륙 동쪽 요충지 만주와 한반도를 두고 영국·미국 세력 후원을 받은 일본과 청(淸)·러시아가 벌인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이 재현되는 양상이다.  

Power Shift 활용한 北

그레이트 게임에서 선수를 둬 판을 요동치게 한 것은 북한이다. 평양은 △중국 부상 △미국 상대적 쇠퇴의 세력 전이(Power Shift) 상황을 활용해 핵무장 완성 단계에 진입했다. 동아시아-서태평양 지역 미군은 중국이 팽창할 때 장애물이다. 북한이 미국과 대화 국면에서 평화협정 체결,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면서 중국 입맛에 맞게 행동할 소지가 크다. 앞서 언급했듯 한반도 전체를 중국 영향력 아래 두는 동시에 미국을 태평양 동쪽으로 밀어내는 게 베이징이 가진 전략 목표다.  

9월 11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대북제재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됐으나 원유 공급 중단 등 북한에 치명적인 내용은 빠졌다. 중국은 안보리 결의를 철저히 준수한다고 밝히지만 결의안 작성 과정에서 베이징의 소극적 태도로 북한을 두 손 들게 할 강력한 제재가 포함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겅상(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결의안 통과 후 논평에서 “북핵 6자회담을 재개해 다시 대화와 협상으로 가야 한다”면서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는 것은 결연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미국 NBC는 9월 9일 “백악관이 ①한국에 전술핵무기를 재배치하고 ②한국·일본 핵무장을 허용하는 방안을 대북 옵션으로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존 매케인 상원 군사위원장은 이튿날 “전술핵 한국 배치를 심각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중국을 상대로 한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북한과 거래하는 제3자를 제재하는 것)도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중국이 가까운 장래에 세계 정치 차원에서 미국을 대체할 슈퍼파워가 되긴 힘들다는 관측이 많다. 미국이 중국을 강하게 압박하면 베이징이 미국과 북한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이 전술핵무기 재배치, 한국 핵무장 옵션을 흘린 것은 안보리 제재 결의안 표결을 앞두고 중국을 압박하는 차원이었다. 한국 핵무장은 중국과 동아시아 안보를 뒤흔드는 사건이다.   

중국학 권위자인 서진영 사회과학원 원장(고려대 명예교수)은 “중국이 1992년 북한을 버렸다. 또 버리지 말란 법이 없다”면서 “베이징이 평양을 포기하게 하려면 최악의 상황엔 전술핵 배치, 더 나아가 핵무장을 하겠다고 중국에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고 했다. “중국 국력이 커졌으나 앞으로 10년은 미국과 협력해야 한다. 미국과 틀어지면 중국이 입을 상처가 크다”고 그는 봤다.  

“중국 국력 커졌으나…”

앞서의 소식통은 “중국이 설정한 대북 레드라인은 ①만주로의 핵오염 물질 확산 ②미국의 한국 핵무장 적극 지원”이라면서 “영리한 김정은은 중국이 설정한 레드라인을 넘지 않게 관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보 당국 전직 고위 인사는 “중국이 북한을 안고 갈 때 껴안을 리스크(risk)와 버든(burden·짐)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일 때만 중국은 북한을 버릴 것”이라면서 “한국이 결사적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미국과 중국이 북한 문제 해결 과정에서 한국을 패싱해 ‘제2의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을 것을 우려한다. 1905년 7월 일본 총리 가쓰라와 미국 육군장관 태프트가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확인한다. 대한제국은 일본이 지배할 것을 승인한다”고 합의한 것처럼 미국이 필리핀과 남중국해를 지키는 대신 중국이 한반도를 영향력 아래에 두는 게 ‘제2의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다. 한국을 방위 목표에서 빼버린 1950년 애치슨라인으로 미국이 후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입력 2017-09-24 09: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