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2월의 시인 모습. 사진은 정양균이 찍었다. |
대입 수능이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수험생들이 버거워 하는 과목이 국어인데, 그 중에서도 시(詩)와 관련된 현대문학을 어려워한다. 특히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1915~2000) 선생의 시는 자주 시험에 출제되지만 여간 까다롭지 않다. 학생들이 가장 많이 틀린다.
기자는 몇 해 전 서정주 시인의 동생(徐廷太 옹)과 미당의 시를 연구한 제자(윤재웅 동국대 교수)를 만난 적이 있다. 멀리 미국에 사는 두 아들(장남 徐升海, 차남 徐潤)과도 미당의 시에 대해 서신을 주고받았다. 고향인 ‘질마재’(전북 고창군 부안읍 선운리)와 줄포에 내려가 미당이 노래한 시적(詩的) 신화의 공간을 거닐었다.
그러나 알면 알수록 미당의 시는 그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웠다. 부족하나마 기자가 알고 느끼는 선에서 몇몇 책을 참조해 미당의 시 10편을 소개한다. 고교 문학 교과서에 수록된 미당의 작품과 각종 시험에 자주 다루어지는 작품을 골랐다. 어쩌면, 미당의 시만큼 가을에 어울리는 시가 또 있을까.
젊은 시절, 미당은 광범위한 문학적 체험을 했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출발해 차라투스트라로 이어지는 신성과 초인적 신에 관심을 가짐은 물론, 보들레르와 이백(李白)으로부터는 인간의 질곡과 자연의 시심을 두루 섭렵했다. 그런가 하면 김영랑(金永郞)에게서 우리말의 떳떳함과 황홀함을 배웠으며, 이상(李箱)에게서는 마음의 밑바닥에서 꾸밈없이 솟구치는 언어의 환희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친일잡지인 《국민문학》 편집일을 보면서 친일시와 종군시를 썼다. 80년대 군사정권에 대한 찬양 발언도 논란을 빚었다.
미당 서정주 시인 |
①*귀촉도(歸蜀道)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임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西域) 삼만리.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임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리.
신이나 삼아 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 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 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굽이굽이 *은핫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은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임아.
*‘귀촉도’의 표준어는 소쩍새다. 달리 접동새, 두견새, 자규(子規), 불여귀 등으로 부른다. 알을 남의 둥지에 낳아 자기의 새끼를 돌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두견새의 울음은 처절하게 들린다. 전통적으로 두견새는 한(恨)을 상징한다.
*‘서역’은 불교의 이상향인 극락정토가 있는 곳이다. 이 시에서 서역은 임이 죽었음을 암시한다.
*‘파촉’은 죽음의 세계다. 옛 중국 촉나라의 땅이다.
*‘메투리’는 미투리의 사투리로 삼이나 노 따위로 삼은 신을 가리킨다.
*‘이냥’은 ‘이 모양대로’라는 뜻이다.
*‘은핫물’은 은하수를 의미한다. 견우와 직녀를 갈라 놓은 것도 은하수다. 임과 시적 화자(話者)의 거리가 멀다는 의미다.
②견우의 노래
우리들의 사랑을 위하여서는
이별이, 이별이 있어야 하네.
높았다 낮았다 출렁이는 물살과
물살 몰아갔다 오는 바람만이 있어야 하네.
오! 우리들의 그리움을 위하여서는
푸른 은핫물이 있어야 하네.
돌아서는 갈 수 없는 오롯한 이 자리에
불타는 홀몸만이 있어야 하네.
직녀여, 여기 번쩍이는 *모래밭에
돋아나는 풀싹을 나는 세이고....
허이연 허이연 구름 속에서
그대는 베틀에 북을 놀리게.
눈썹 같은 반달이 중천에 걸리는
칠월 칠석이 돌아오기까지는,
검은 암소를 나는 먹이고,
직녀여, 그대는 비단을 짜세.
*시적 화자는 견우다. 견우의 시선에서 이별의 상황에 맞선, 사랑하지만 서로 헤어져 있는 이들의 심정을 노래한다. 사랑을 위해서는 이별이 있어야 한다는 역설을 화두로 던진다. 이별과 사랑은 서로 반대되는 말이지만 이 시에선 사랑의 끝인 이별이 사랑을 완성하기 위한 조건으로 제시된다. 견우는 이별을 아픔으로 보지 않고 더 큰 사랑을 위한 기다림으로 본다.
*모래밭에 풀이 날 리가 없고, 셀 수도 없다. 이 시에서 ‘풀싹을 센다’는 말은 이루어지기 힘든 것을 기다린다는 의미다. 견우가 견뎌야할 아픔을 의미한다.
③신부
신부는 초록 저고리와 다홍 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 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당기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곤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 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사십년인가 오십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 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 방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 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스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 앉아 버렸습니다.
이 작품은 첫날밤 오해로 인해 소박맞은 여인의 슬픈 운명을 그렸다. 신부의 수동적인 기다림과 신랑의 경솔함이 낳은 비극적 운명이 주제다.
*돌쩌귀는 문짝에 매단 쇠붙이.
*‘매운 재’는 진한 잿물을 내릴 수 있는 독한 재를 뜻한다. ‘초록 재’와 ‘다홍 재’는 전반부의 ‘초록 저고리와 다홍 치마’와 연결되는 이미지다. 유교적 정절이 신화적 세계로 승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④추천사(鞦韆詞)
향단(香丹)아 그넷줄을 밀어라.
머언 바다로
배를 내어밀듯이.
향단아.
이 다소곳이 흔들리는 수양버들나무와
배갯모에 놓이듯 한 풀꽃더미로부터,
자잘한 나비 새끼 꾀꼬리들로부터,
아주 내어밀듯이, 향단아.
산호(珊瑚)도 섬도 없는 저 하늘로
나를 밀어 올려 다오.
*채색(彩色)한 구름같이 나를 밀어 올려 다오.
이 울렁이는 가슴을 밀어 올려 다오!
서(西)으로 가는 달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바람이 파도(波濤)를 밀어 올리듯이
그렇게 나를 밀어 올려 다오.
향단아.
*‘추천’은 그네의 한자어다. <춘향전>에서 춘향이와 이 도령이 만났던 단오날 그네타기가 시적 제재다. ‘향단’이 시적 청자, ‘춘향’이 시적 화자다. 하늘을 바다에, 그네를 배에 비유하고 있다.
*‘그네’는 하늘로 올라갔다가 땅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다. 이런 운명을 체념하지 않고 춘향은 하늘을 향한 비상을 멈추지 않는다. ‘바람이 파도(波濤)를 밀어 올리듯이 그렇게 나를 밀어 올려 다오’라고 노래한다. 그만큼 사랑에 대한 춘향의 의지가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시에서 ‘그네’는 현실을 벗어나 절대 자유의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열망과 현실의 구속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화자의 내면세계를 상징한다.
*‘채색한 구름’은 고운 옷을 입고 그네를 타는 춘향의 모습이 연상된다.
⑤무등을 보며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산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이 그 무릎 아래 지란(芝蘭)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엔 없다.
목숨이 가다 가다 *농울쳐 휘어드는
오후의 때가 오거든
내외(內外)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
지어미는 지애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애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누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靑苔)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
*‘갈매빛’은 짙은 초록빛을 뜻한다.
*‘농울쳐’는 물살이 갑자기 세차게 흐르는 것을 의미한다.
*‘쑥구렁’은 쑥이 자라는 깊은 구렁.
*청태는 글자 그대로 푸른 이끼라는 뜻인데, 앞행의 ‘옥돌’과 같이 삶의 품위와 지조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무등산은 크고 의젓한 산이다. 비바람에도 산은 태연히 이겨낸다. 주어진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이 시는 미당이 광주로 피난 가서 쓴 시다. 1952~52년 사이 조선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6.25 전쟁 당시 정신병 증세에 시달렸던 미당은 무등산을 바라보며 자신의 심경을 읊은 시가 〈무등을 보며〉이다.
미당의 차남 윤씨는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근ㆍ현대 격동기를 산 젊은이로서 아버지의 시 ‘풀리는 한강가에서’나 ‘무등을 보며’를 읽고 위로받던 기억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어요. 아버지의 시가 우리 마음을 울렸던 것은 언어의 유희가 아니라 가슴으로 쓰신 글이기 때문입니다.”
⑥국화 옆에서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은 원숙한 아름다움을 뜻한다.
*시적 화자는 우주와의 영적인 교감, 예를 들어 소쩍새의 울음이나 천둥소리 등을 통해 거록한 생명인 국화꽃이 피어난다고 생각하며 그 순간을 지켜보는 설렘으로 잠을 설치고 있다. 오늘밤 ‘무서리’가 내리는 것도 저 꽃을 피우기 위한 우주의 변화다.
이 시는 불교의 인연설과 관련이 깊다. 불교에서 인(因)은 생명의 씨앗이고, 연(緣)은 그 씨앗이 싹트고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의미한다. ‘소쩍새’ ‘천둥’ ‘무서리’는 모두 국화를 피우기 위한 시련이다. 이것은 ‘누님’이 원숙미를 갖추기 위해 지나왔던 ‘젊음의 뒤안길’과 그 의미가 통한다.
⑦다시 밝은 날에 ― 춘향(春香)의 말·2
신령님…….
처음 내 마음은
수천만 마리
노고지리 우는 날의 아지랭이 같았습니다.
번쩍이는 비늘을 단 고기들이 헤엄치는
초록의 강 물결
어우러져 날으는 애기구름 같았습니다.
신령님…….
그러나 그의 모습으로 어느 날 당신이 내게 오셨을 때
나는 미친 회오리바람이 되었습니다.
쏟아져 내리는 벼랑의 폭포,
쏟아져 내리는 소나기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령님…….
바닷물이 작은 여울을 마시듯
당신이 다시 그를 데려가시고
그 훠 ― ㄴ한 내 마음에
마지막 타는 저녁 노을을 두셨습니다.
그러고는 또 기인 밤을 두셨습니다.
신령님…….
그리하여 또 한번 내 위에 밝는 날
이제
산골에 피어나는 도라지꽃 같은
내 마음의 빛깔은 당신의 사랑입니다.
*이 시는 춘향이가 신령님에게 맹서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신령님’은 춘향에게 있어 자신의 각오를 맹세할 수 있는 절대적 존재다. 1연에서는 평화로운 심리상태, 2연은 사랑의 열정을 나타낸다면 3연과 4연은 춘향이 사랑하는 이와 이별한 뒤에 재회의 날을 간절히 소망하며 자신의 사랑을 굳게 지키겠다는 의지를 그리고 있다.
⑧동천(冬天)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나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차가운 겨울 하늘에 떠 있는 달을 향해 날아 오르던 ‘매서운 새’가 정작 초승달로 떠 있는 ‘임의 눈썹’ 앞에서는 짐짓 그것을 비껴 가는 모습을 통해 절대적 세계에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적 한계를 표현하고 있다.
⑨자화상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 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罪人)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天痴)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틔어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詩)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역사적 시련을 거치며 망국인으로서의 삶을 회고하는 시다. 미당이 스물셋 무렵 토해낸 시에서 ‘애비는 종이었다’고 회고한다. 그리고 ‘종의 아들’로 태어나 그를 키운 건 ‘바람이 팔 할’이라고 썼다.
기자는 몇 해 전 마당의 동생인 서정태 선생과 인터뷰 한 적이 있다. 그는 “우리 집안은 종의 집안이 아니다”고 했다. 당시 일문일답이다.
“조선시대 때는 양반이 3대째 벼슬을 못허면 양인이 돼. 우리 고조부가 정3품 당상관이여. 통정대부를 허셨어. 증조부, 조부는 벼슬을 못허셨고.
우리 아버지(徐光漢)는 당신이 벼슬을 혀야 양반 유지가 된다고 여겨, 어릴 적부터 과거를 보셨는디 원래는 옆 마을 무장현(茂長縣) 분이여. 옛날에 지방 선비들이 중앙에 나가 과거를 보려면 지방현 백일장에서 장원을 혀야 혀. 그래야 과거 볼 자격을 줬어. 요즘으로 치면 예비고사 치고 대학별 본고사 치고 그런 식이여.
아버지가 14살 때 무장현 백일장에서 장원을 혔어. 각 고을마다 1년에 한 번씩 백일장 보는디 고창현에서 장원, 흥덕현에서 장원, 심지어 장성현에서 장원을 혀, 이 일대에서 유명혔어.
그때가 17~18살 먹었을 것 아니것어? 그 당시 무장현의 현감이 ‘달성서씨(達城徐氏)’ 동성동본인디 항렬로 볼 때 아버지 윗대 항렬이셨어. 그분이 자식이 없어서 아버지를 양자로 삼으려 혔는디 아버지는 형이 죽어 사실상 외아들이여.
그래 미적미적헐 때, 세상이 개화되야서 과거제가 폐지돼 버렸어. 당시 무장현감이 서울로 아버지를 유학 보냈어. ‘한성학원’이라는 곳이 당시 서울에 처음 생겼단 말이여. 신식 핵교인 셈이지. 거기서 기술을 가르쳐. 측량기술. 우리 아버지가 측량기술을 배웠어. 그라(리)고 한일합방(한일병탄)이 되고 군 서기로 돌아오셨어.
고창군 일대 국유지를 측량하러 다(녔)는디 당시 호남갑부가 인촌(仁村) 김성수(金性洙·1891~1955) 선생의 집안이여. 인촌의 양부(養父·金祺中·1859~1933)가 ‘동복영감’(同福令監·전남 동복 고을에서 조선 말 현감을 지낸 까닭에 동복영감이라 불렀다)이여. 동복영감이 가만히 보니 우리 아버지가 마음에 들어. 대지주니까 측량헐 일도 많을 거 아니것어? 그래서 스카우트되야서 간 거여. 그것이 잘못되고 말았어. 우리집도 노비를 부리고 있었는데도 〈자화상〉을 읽고 ‘노비의 후예인갑다’ 혀서 아직꺼정 말이 있는디 그게 아니여. 실은 동복영감 땅 관리허는 일을 맡았었어. 왜정 때 그 시를 발표허니깨 백철(白鐵)이라는 평론가가 ‘특수계급의 후손인갑다’ 혀서 신문에 글을 쓰고, 김동리(金東里)가 반박을 허고 논전이 붙은 적도 있어.”
—‘팔 할이 바람’이란 뜻은 어떤 의미일까요.
“아주 고약헌 역풍인 셈이지.”
—풀어 설명해 주세요.
“예를 들면 비극적인 문제만 자꾸 생긴다는 것, 그런 게 아니것(겠)어. 자기 뜻과 상관없는 인간의 숙명 같은 것….
재작년인가, 문학지망가 수십 명이 여그(여기) 와서 그 질문을 혀. 그때 그렸어. ‘누구헌테든 오는 것(바람)이 아니것냐’고. 어떤 이는 바람이 역풍이지만 어떤 이에겐 따스한 미풍일 수도 있고 시를 읽는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 다를 거여.”
⑩문둥이
해와 하늘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5행의 짧은 시지만, 언어의 관능적 용법(‘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과 생명 현상에 대한 집착(‘애기 하나 먹고’)으로 대표되는 미당의 초기 시 세계를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미당은 생명파 시인으로 불리웠다. ‘문둥이’는 숨어 사는 운명을 타고 났다. 살기 위한 원초적 욕망에서 자유로운 삶을 갈망한다. 애기를 먹고 병을 고치려 하지만 그런 집념이 나쁜 것임을 깨닫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운다.